벚꽃놀이가 남긴 것들 - 진해 웅산, 시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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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석동 장복산 까치발께서 시작되는 안민고갯길 2km는 하늘로 오르는 벚꽃길이다. 군항제축제가 장복산터널 주변공원과 구시가지, 해군통제부와 해사(海士)입구의 벚꽃길을 주축으로 이뤄지다보니 이곳을 간과하는데 근래의 벚꽃하일라이트는 안민고갯길의 벚꽃터널이라 해야 할 것이다.

2·30여 년 된 벚나무는 한창이어서 꽃망울을 앙팡지게 피우고 구불구불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꽃길터널은 하늘에 이르는 환상에 젖게 한다.

발아래 깔린 시가지와 엷은 해무에 졸고 있는 진해만의 아기자기함을 조망타보면 천상의 꽃 세계에 붕~떠있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파란 진해만에서 불어오는 미풍에 벚꽃은 꽃비처럼 낙화하고 그 꽃비에 흠뻑 젖어 심호흡 할라치면 일상은 까마득히 잊게 된다.

바람의 촉감과 맛, 꽃비세례와 향에 취하며 꽃구름 속으로 언뜻언뜻 비추는 푸른 하늘을 응시하다보면 천상의 화계(花界)에 든 느낌인데 안민고갯길이 아니곤 감히 상상할 수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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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우리내왼 황 영일형부부와 이곳을 찾았었는데 그때의 몽환적인 벚꽃구경을 잊을 수가 없어 오늘 다시 찾음이다.

퇴직한 황형은 건강이 뭣해 긴 여행을 삼가는 중이어서 아내에게 동행을 권했지만 ‘고생길’이라고 퇴자를 놔 오늘 나 혼자 송학인들 틈에 끼어들었다.

축제기간인데도, 만개했는데도 여긴 북새통이 아니어 좋다. 안민고개 마루에서 송학인들은 이미 시루봉을 향했는데 난 뒤처져 흩날리는 꽃비에 파묻혀본다. 황홀경을 후딱 버릴 순 없잖은가! 고생(차타는 지루함)땜이 아니라도 아낸 여행을 좋아하질 않는다. 산은 산이고 사람 사는 곳은 사람 사는 곳일 뿐이라는 식이다.

독일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벚꽃구경;Hanami=Cherry Blossome)>에서의 남편-루디와 어쩜 똑 같은 생각을 하곤 해 그 영화를 잊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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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꽃비 맞으며 그 영화를 생각하니 루디가 갑자기 죽은 아내-투루디를 가슴에 안고 후지산이 뵈는 공원 벚꽃놀이축제에서 부토(일본현대무용)를 추고 난 후의 독백이, 뼈 저리는 회한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 남아있는 그녀의 기억은 내가 죽고 나선 어디로 갈까?”라고.

아니,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을 줄로만 알았었는데--”라고 절규하는 루디를 잊을 수가 없다. 아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일본여행과 하고파 했던 부토댄서의 꿈을 무뚝뚝하게 접게 했던 무심함을 자책하고, 이제라도 아내에게 해주고 싶어 떠나온 일본여행 이였다. 아직 아낸 자기 안에 살아있기에 부토 춤도 일본여행도 아내는 즐길 수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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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1시가 돼가고 있었다. 시루봉을 향한다.

진달래가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무리지어 나를 영접한다. 그들의 손짓사이로 창원시가지가 돋보인다.

우측엔  진해시가지를 피고 든 진해만의 푸른바다는 뭐가 부끄러워 엷은 해무로 연막을 치고 품에 안은 섬과 배들의 형상만 보여주고 있다.

산릉은 바위와 돌멩이가 심술을 부리긴 하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잰걸음도 좋다. 제비꽃과 양지꽃이 번갈가면서 그 앙증맞은 미소를 띠우고 있고, 노루귀란 놈일까 풀 섶에서 모가지를 길게 빼들고 봄볕을 탐하고 있다.

근데 고개 숙인 할미꽃은 하필 등산길 한가운데 자갈사이에서 뭘 할꼬? 밟히지 않을까 걱정됐다.

40분쯤 속보를 하다가  첨탑을 세우고 있는 불모산이 코앞에 나서자 소나무아래에 자릴 폈다. 배를 채우고 줌·랜즈가 멈춘 디카도 봐(워낙 무지하여 보나마나지만)야 해서였다. 

불모산을 넘으면 김해고 거긴 노짱(노무현 전대통령)이 위선에 맞선 진솔함이 어떠함인가를 실증하려다 그 꿈을 접은 순정의 고을이다. 요즘 그곳엔 또 위선의 대가가 그 위선과 거짓말 땜에 낙마했었는데도 체 2개월도 안돼 그곳대표로 뽑아달라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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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위법,위장,위계를 한 자만이, 그게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지 후안무치하게 고위직에 오르겠다고 나서고, 그걸 진짜 훈장인양 여겨 추천하고 지명하는 썩어문드러진 사회인가!?

어제 빗물에 원전방사능이 포함됐다고 호들갑을 떠는 메스컴의 공포감조성 보다도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이 고위직들의 후안무치한 위선일 것 같다.

미미한 방사선이야 까짓 몸 씻으면 되지만 위선과 범법의 병에 트라우마된 영혼은 고치기가 어려워서 말이다. 진정 메스컴이 호들갑을 떨고 솎아내야 할 것들은 거짓과 위법을 자행하는 고위직들 - 병원체의 숙주들을 도태시키고 국민들께 트라우마 몸살에 시달리지 않게 해야 함이다.

노짱은 슬프다. 김해 사람들은 배알도 없을까? 노짱의 순수를 생각하며 시루봉을 향한다.

웅산(710m)을 밟자 왼편엔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그 사이로 STX조선소가 바다를 삼키고 있고 우측엔 아까의 안민고개 벚꽃길이 흰 구렁이처럼 산허리를 기어서 시내로 향하고 있다. 구시가지와 통제부는 그림자도 안 보인다.

시루봉을 이 삼백 미터 남긴 능선은 부드러운 육산으로 떡갈나무가 스트립쇼를 하고 있다. 아니다, 헬 수 없는 떼거리로 군무를 추며 경연을 하고 있다. 시루봉은 그렇게 쇼를 펼치며 산님들을 맞고 있었다.

나무데크로 사방을 휘돌아 거대한 몸체를 뽐내는 시루바위(높이10m, 둘레50m)는 누가 어떻게 이 자리에 놓았을까? 그 위대한 힘은 여자의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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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에 아천자(阿天子)란 기생이 살았는데 왜국통역관을 사랑하게 됐다.

사랑을 불태우다 떠난 애인이 소식 없자 그녀는 여기 산정에 올라 대마도를 바라보며 기도를 하며 기다리다 지쳐 그만 망부석이 됐단다.

시루바윈 망부석이 된 아천자 이고, 달리 이름도 아름다운바위 - 히메이와(姬巖)라고도 한단다. 왜놈들은 이제나저제나 몹쓸 짓을 해댄다.

3.11대지진에의 아픔을 나누자고 맘을 보태는 우리에게 독도까지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고 있잖은가? 욕심쟁이 후안무치한 놈들은 일본엔 떼거리로 있는 모양이다. 모두 이번 쓰나미에 떠내 보냈어야 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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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쯤, 하산길의 나무데크는 지그제그 연속이어 어지러울 지경이라. 허나 그 어지럼도 편백나무 숲의 상큼한 향이 말끔하게 씻어준다.

아름드리 편백은 하늘을 초록으로 덧씌웠는데 밑의 녹차밭은 누렇게 떠서 지난겨울의 혹독했던 상처를 아물지 못하고 있었다.

따뜻하기로 그만인 진해가 녹차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지난겨울은 모질었던 것이다.

깨끗한 녹차나무가 아닌 후안무치한 위정자들이나 혼쭐나게 할 일이지!

시가지의 가로수벚꽃은 나를 다시 화사하게 맞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내 안에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나를 기억하게끔 아름답게 살아야 할 것이다.

                                                                                      2011. 04.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