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稿 안 될 전설 (운주산-봉좌산-천장산 산행기:2009년 5월 9일.약 20km. 8시간 30분)


 

-프롤로그


 

새벽 2시 30분.

베란다 창가로 만월이 교교하다. 유혹의 달빛이다. 교교한 달빛에 끌려 창가로 나가니 만월이 형산강 수면에 부서진다. 부서져 내게 다가온다. 내게와 산으로 가자고 한다. 빨리. 몽유병 환자도 아닌데 달빛에 끌린다. 아니 이미 계획된 산행이다.


 

물을 끓인다. 여름이가 나보다 더 부산하다. 녀석은 내가 산이라도 갈 낌새가 보이면 자기가 더 수선을 떤다. 함께 가자고...


 

-출발하며


 

‘물이 끓어야 가지’

이런 생각을 하며 물이 끓을 때까지  부산을 떤다. 우리 지방의 산불방지 특별 강조기간이라 화기를 자제해야 한다. 요즘 같은 때는 특히


 

달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름 전 날의 달이다. 달빛이 좋아 오늘 산행은 렌턴 불빛이 없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좋은 새벽이다. 3시 정각에 집을 나선다.


 

‘운-봉-천.

운주산-봉좌산-천장산 연계 산행이다. 언제 부턴가 一群의 山群들을 묶어서 산행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우리 고장의 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 (자-도-봉-어)을 연계하여 산행하였다. 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을 산행하다 보면 인근에 삼성산, 천장산, 운주산들이 보였다. 삼성산, 운주산은 낙동정맥을 하면서 겪은 산이지만 천장산은 그냥 모습만 알았다. 도덕산 가는 산 오름길에서 배티재 삼거리를 지나친 경험이 있다. 배티재를 통하여 천장산을 가는 그 정도만 알고 있있다.


 

우연히 삼성산-천장산-도덕산-자옥산 연계 산행인 삼-천-도-자를 원점회귀 산행으로 자-도-천-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천장산에서 수성리로 내려가면 그 수성리가 운주산 들머리임을 알게 되었다. 역시 운주산-봉좌산-천장산 (운-봉-천) 산행도 있었다. 선행 종주자가 아주 희소 했지만...


 

오늘 산행을 완주하면 이제 자옥산, 도덕산, 봉좌산, 어래산, 운주산, 봉좌산, 천장산을 연계하는 산행은 마음만 먹으면  원점회귀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우선은 자-도-천-운-봉-어와 삼성산을 포함한 삼-천-운-봉-어-도-자를 하면 더욱 행복 할 것이다. 모두 원점회귀 산행이다.


 

오늘은 단지 나의  오후 일로 오후 3시 이전에 포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새벽에 떠난다. 꼭두에. 3시 이전에 귀 포항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들머리 수성리로 출발한다. 기계를 지나 이리재를 지나 수성리로 간다.


 

수성리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조용한 마을에 낯선 침입자가 되어 정적을 깬다. 어둠속에 자동차 라이트에 할머니 세 분이 걸어오신다. 새벽 4시를 지나치는 시간이니 새벽 예배 가시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구만리에 도착하니 들머리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차를 돌려 그 할머니들께 여쭈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운주산 어디로 가요? 할머니들은 교회를 가시는게 아니라 새벽 운동을 하고 계셨다. 길가의 가로등만 태양과의 교대 시간을 기다리는 듯 가늘게 빛을 흘리고 있었다. 이 밤에 어떻게 가려구? 하는 근심과 자세한 안내를 해주신다. 가르쳐 주신 근처에 가서 할머니 또 한 분을 만나  정확한 들머리를 알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언제부턴가 시트를 젖히고 새우잠을 청한다.


 

어둠속에 운주산 들머리임을 강조하는 영전마을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얼른 내려가 사진을 찍는다. 다시 들어와 잠시 눈을 감는다. 어둠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마을을 지키는 나무인가 보다. 오래 된 나무의 그윽한 채취가 은은하게 오는 듯 하다. 어둠도 그렇게 물러간다. 물러가는 어둠은 반갑다.


 

영전마을로는 차가 들어갈 수 있다.  아마도 운주산 들머리까지 그런 도로가 있을 것이다.할머니들께서 정보를 주셨다. 그러나 나는 날머리 때문에 한적한 곳에 주차를 하고 어둠에

걷기로 했다. 산행 후 날머리에 도착하여 차량회수기 힘들 것 같았다.


 

시골의 아침은 조용했다. 고요했다. 탁탁치는 나의 스틱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들고 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으니 나무판에 입산금지라고 조악한 표시가 있었다. 마을주민들이 산불방지로 세워 놓은 것이다. 공연히 걱정이 된다. 마침 어르신 한 분이 길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아주 공손하게. 아침 일찍 무슨 일 하시나요? 모판을 만들려고 물을 댄다고 하셨다. 내친김에 이리로 가면 운주산으로 가나요? 하고 또 여쭈어 보았다. 어르신께서는 이리로 가면  빙 들러 가고 저리로 가면  이장님이 길이 잘 정비 하셨 다고 하신다. 시멘트 도로 끝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보면 산 오름길이 보인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왼편 시멘트 도로로 걷는다.


 

본래의 방향으로는 (오른편 시멘트 도로) 운주산 정상을 정상 오른쪽으로 올라 이리재로 향하려면 다시 돌아오게 된다. 어르신의 말씀대로 왼쪽 시멘트 도로로 진행하면 운주산 정상을 왼편으로 올라 오른편으로 진행되는 이리재로 바로 진행할 수 있다. 참으로 고마우신 어르신이다.  오늘의 날머리 천장산과 운주산 들머리는 앞으로의 연계산행에서 아주 중요한 루트가 되기 때문이다.


 

산 오름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가는 길마다 커다란 묘가 있었다. 아마도 묘 때문에 산 오름길이 정비된 것 같았다. 새벽의 공기는 상쾌했다. 돌아보니 천장산이 보인다. 6-7 시간후에 저 산록 어딘가를 걷고 있겠지 하니 무한 행복이다. 신록은 무성했다. 산소 (O2)의 숲을 걷는다. 정상에서 아침을 먹으리라..라라라.


 

정상을 왼편으로 오르는 운주산은 긴 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처럼, 아니 우리 민족처럼. 긴 허리는 오르기가 수월했다. 수월하지만 긴 허리이니 두 어 번의 휴식을 가질 정도로 길다. 갈잎 속에 쉬어가라고  바위들이 놓여 있었다. 갈 잎 속에 다리를 감춘 바위를 목표로 휴식시간을 정한다. 바위에 앉아서 사과도 먹고, 방울 토마토도 먹고, 고독도 먹고, 행복도 먹었다. 그러나 일출의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일출이 있는 동편을 이리재로 향하는 마루금이  길고 높게 山城처럼 전개되어 있었다. 


 

정상으로 다가갈 수 록 산록의 허리가 넓고 산 오름길이 산재해 있었다. 갈잎에 산 오름길이 많이도 숨어 있었다. 산 오름길 찾기가 보물찾기 놀이다. 역주행을 했으면 산 오름길 찾기가 힘들 뻔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산 오름길은 아무 길이나 걸어도 결국은 정상에서 만난다. 그러나 내려가는 산 오름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자칫 날머리를 엉뚱하게  가기도 한다.


 

긴 허리를 다 오르니 정상이다. 몇 번째지? 생각하니 방금 산 오름길로는 처음이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운주산 정상은 다른 산과는 다르게 독특한 방식으로 정상 표지 안내가 여러 개 있었다. 앞으로는 오늘 산 오름길로 자주 오르게 될 것이다. 정상부근에 공터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맛있게 먹는다. 맛있는 밥. 내가 좋아하는 도루묵 조림, 고사리, 콩나물, 김. 어느 하나 맛없는 게 없다. 식당이 좋아서 인가? 식당의 조망이 좋아서인가? 아무튼 형영 못하는 뭔가 있다. 마음 가득히.


 

이리재로 향한다. 낯익은 산 오름길이다. 돌탑봉이 보인다. 운주산 정상보다 돌탑봉이 당당한 낙동정맥 마루금이다. 돌탑봉에 올라서 운주산 정상과 낙동정맥 마루금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 언제 였던가? 산 오름길 안내가 잘되어 있었던 코팅 안내표가 새삼 생각난다.


 

오래된 큰 규모의 묘지를 왼편으로 하고 이리재 산 오름길을 걷는다. 산 오름길이 아주 촉감이 좋다. 잠시 후 낙동 정맥 마루금과 합류한다. 어디선가 휘파람새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휘파람새인지는 모르지만 ‘휘익’ 하는 소리가 휘파람으로 들려 그렇게 생각한다.


 

밤에 듣는 휘파람 소리는 왠지 기괴스럽고 음침하다고 한다. 아침에 휘파람 소리를 듣거나 내어보면 기괴스럽고 음침함보다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오늘 아침 들어보는  휘파람 새의 노래는 오늘 하루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산 속에서 산 오름길을 걸으며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휘파람 새여! 너는 너의 노래로 배필을 구하고 난 나대로 완주를 꿈꾸마. 잎 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곱다.


 

왼편으로 안국사, 인비리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니 오른편으로 수성리 갈림 길이 보인다. 원래의 산행 계획은 저곳을 오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농로에 물을 대는 어르신을 만난 것이 퍽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식탁 바위에 앉아  잠시 쉰다.


 

편안한 산 오름길이 끝나고 자갈이 섞인 급한 내림 길을 걷는다. 이리재가 멀지 않았군 하고 생각하니 대구 포항 고속도로와 봉좌산이 보인다. 봉좌산 앞의 614,9봉도 보인다. 봉좌산은 높이가 정상석에 600m로 표기되어 있다. “백두대간 & 정맥 종주지도집 (산악문화)”에도 600m로 표기되어 있다 봉좌산은 정상의 암릉 때문에 614,9봉보다 근사한 이름을 얻은듯하다. 그러나 614,9봉은 당당한 낙동정맥 마루금이다.


 

이래재에 도착한다. 이리재 거의 도착하여 이리재로 떨어지는 3 갈래 산 오름길이 있다. 오른편은 이리재에 뛰어 내려야 하고 (2-3m의 절개지) 왼편은 걸어내려 갈 수 있다. 당연히 왼편으로 이리재에 도착한다. 이리재 오른편으로 오늘의 마지막 천장산이 보인다. 이리재를 관통하는 아스팔트 위에서 천장산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다.


 

연세 지긋하신 부부께서 벌써 운주산 다녀옵니까? 하신다. 운-봉-천합니다. 운-봉-천 이라뇨? 운주산-봉좌산-천장산 이렇게 산행합니다 . 운주산이 힘듭니까? 40여분 바짝 오르면 편안합니다. 어디가세요? 봉좌산 갑니다. 저도 봉좌산 가는데 같이 가시죠. 아주머니께서 정색을 하시면서 우린 걸음이 느려요 하신다. 이리재에서 봉좌산 오를 계획이라면 대단하십니다. 사진을 찍으려니, 우린 운주산 가렵니다,  봉좌산 혼자 가세요. 그렇게 작별을 하고 봉좌산을 오른다. 조금 아쉽다. 모처럼의 동행이 될 뻔했는데... 운주산 등정이 힘든 코스라고 할 걸.


 

봉좌산을 오른다. 그래 그랬었지. 여기 어딘가에서 김밥 두 개가  알바를 한 곳이지. 된비얄을 오르고 점심을 먹으려고 김밥을 개봉하니 두 녀석이 데굴데굴 굴러 저만치 갔었다. 소시적이야 툭툭 불어서 흙을 없애고 먹었지만 된비얄을 오르려니 기력이 떨어져 굴러가는 김밥을 잡으려고 일어서기가 싫었다. 힘이 없어서 그냥 산돼지나 먹으라 하는 심정으로 방치해 두었다. 그 생각에 빙긋 웃음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대대적인 벌채작업의 흔적이 있었다. 산판길이 새로이 열려 온 산이 구렁이처럼 누렇게 구불거린다. 황구렁이다. 철탑을 세우는 작업을 하려고 뚫은 길을 아나콘다로 비유한 적이 있다. 요즘 산에서 아나콘다와 황구렁이를 자주 본다. 614,9봉에 오른다. 왼편으로 봉좌산 산 오름길에 들어선다.


 

자동차 키? 갑자기 자동차 키가 생각났다. 어디에다 두었지? 자동차 키를? 자동차 키를? 자동차 키를 어디다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동차 키 정리를 한 기억이 없다. 아뿔싸. 서둘러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삼성산에 오르면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하산하니 차문에 꽂혀 있었다. 그런 기억이 있었다. 재발이다. 차 키가. 그러나 오늘은 정황상 차문에는 없다. 손으로 문을 닫은 기억이 생생했다.


 

과장하여 속옷까지 점검 했지만 오리무중이다. 난감하다. 신조어로 대략 난감이다. 어둠속에서 할머니들께 길은 묻고, 잠시 눈을 감고 쉬다. 그러다 여명이 성큼 오는 것 같아  서두르다 그렇게 된 모양이다. 아마 키가 핸들에 그냥 꽂혀 있던지 차 지붕에 있을 것 같다. 前자는 들머리에서 자동차 키의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後자는 나는 들머리에서 산행준비를 할 때 물품을 지붕에 얹어 놓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하산을 할 수는 없다. 산행을 강행한다. 수성리는 인적이 드믄 산골이라 인심을 믿고, 청소년이나 어린 아이들이 없어 자동차가 장난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여기서 하산을 하면 다시 도전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사실 오늘도 오후 2시 이전에 산행을  끝내야 오후 봉사 활동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 요즘은 노는 토요일이 아니면 산행 시간 내기가 어렵다.


 

614,9봉에서 평지 같은 산 오름길을 지나며 봉좌산 정상으로 간다. 정상에서 다시 돌아온다. 614,9봉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3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낙동정맥 마루금과 합류를 하는 것이다. 그 합류 길은 가끔은 낙동정맥 꾼을 알바로 유혹하기도 한다. 나도 초행에 10여 분간 고민을 한 곳 이기도 하다.


 

손에 잡힐 듯 봉좌산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봉좌산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인근 산군에서 사방으로 열린 봉좌산의 조망은 백미다. 鳳은 이곳에 좌정하여 하늘 멀리를 조망하나 보다.  하늘과 지상 모두를...鳳의 영역은 가없는 듯 하다. 정상은 막힘이 없으니 바람도 거침이 없다. 뻥 뚫린 사위의 조망이 내 가슴도 뻥 뚫어지는 듯하다. 뻥 뚫어진 내 가슴에 바람은 나무꾼은 아니지만 산 꾼의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다. 바람이 내 가슴속을 제 멋대로 다닌다.  머리띠를 짜니 땀이 주루룩 흐른다.


 

다시 돌아서 천장산으로 간다. 570,7봉 못미처 만나는 임도 까지 가면 된다. 임도를 만나면 임도를 탈 것이다. 임도에 도착함은 배티재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선행 종주자의 산행기에서는 임도의 정취가 아주 좋다고 적혀 있었다. 그 땐 아마도 가을이었으리라. 혹 여름엔? 이 물음은 여름에도 정취가 좋을까? 하는 물음이다. 봉좌산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여 후에 570,7봉 못 미친 임도에 도착한다. 땀이 난다. 그늘에 앉아 쉰다.


 

쉬면서 지도를 표 놓고 長考 아닌 장고를 한다. 도상거리는 570,7봉을 지나 배티재 삼거리를 지나 배티재로 가나, 임도로 배티재로 가나 거리는 비슷해 보였다. 다만 前 자는 경험 많은 즉, 눈에 익은  산 오름길이고 後자는 미답이었다. 後자를 택했다. 패착 敗着 이었다. 산 오름길이 좋은 이유를 또 한 번 경험하게 된다.


 

임도는 지루했다. 흙길과 시멘트 도로가 100여m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폭염 (?)에 흙길도 힘들었다. 하물며 시멘트 도로는 두 말 하면 잔소리다. 한마디로 지겨웠다. 간간히 임도를 모두 포장하려는 듯 인부들의 기초 공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멘트 도로 이겠지. 그러나 이제 다시는 임도를 타지 않고 도덕산 가는 길에 배티재 삼거리에서 완만한 능선을 내려가며 천장산으로 오를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이 임도를 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산행이 삼성산이나 자옥산이 들머리면 도덕산에서 천장산으로 가거나 천장산에서 운주산으로 가게 될 것이다. 두 산행 코스역시 봉좌산에서 어래산으로 빠지면 이 임도를 못 볼지도 모른다.


 

타박타박 걸으니 배티재다. 짧은 시간에 벌써 3번째 만나는 배티재다.고개마루 시메트 바닥에 노란색 락카로 표시해놓은 이정표가 반갑고 서글프게 보인다. 정오 무렵이라 그림자는 겨울철 수은주처럼 짧다. 짧은 그림자를 머리에 이고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 먹다 남은 밥과 반찬이다. 오늘은 날 측은하게 보는 승용차가 다니지 말기를.. 천장산 오르는 길이 이젠 낯익을 듯하다. 그러나 산은 봐 주는 것이 없다. 공짜가 없다. 에누리가 없다.


 

헉헉. 캑캑, 컥컥거리며 오른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고 정상 20여m전 묘지 그늘에서 그냥 주저앉는다. 얼음물을 마신다. 그 맛에 마땅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다. 칵테일을 만든다. 더워진 물을 얼음에 넣고 물을 다시 본래의 통에 넣는다.  그런 작업을 두어 번 하면  시원한 물이 된다. 시원한 물. 물을 다 마시니 얼음만 남는다. 얼음이 남은 물통에 방울토마토를 함께 넣는다.


 

긴 휴식 끝에, 짧게 진행하니 정상이다. 이제 정상 표지석 뒤로 1시간여 진행하면 날머리다. 들머리도 되고 날머리도 된다. 원점회귀다. 혼자 하는 산행의 특징이다. 또 다시  미답의 길을 내려간다. 임도에서 보며 느꼈지만  그렇게 급한 경사는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 키 생각이 났다. 산 오름길이 위태위태하게 존재 했다. 사람의 왕래가 극히 적은 것 같았다. 그러나 감각으로 산 오름길을 찾는다. 단순한 하산의 형태라 길 찾기는 큰 의미가 없다. 죽죽 앞으로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마음속으로  바람이 있다면 제대로 된 산 오름길과 만나는 것이었다. 그래야 나중의 산행 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지금 내려가는 이 산 오름길이 날머리와 한참 떨어진 곳에 도착 하다면 정탐을 다시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20여분을 내려가니 또렷한 산 오름길이 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끔 잡목의 가는 손이 진행을 방해하였다. 또렷한 산 오름길은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지도에 표시된 무덤 중심의 안내와 나의 진행은 같았다.   


 

가깝게 마을이 보였다. 태양은 뜨거웠다.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가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고속도로 교각의 그늘이 반갑다. 자동차 걱정이 없으면 쉬고 싶다. 날머리가 보였다. 수성 분교를 지난다. 내 차가 보인다. 앞문에 자동차 키는 꽂혀 있지 않았다. 보험회사에 SOS를 치고 남은 물을 먹는다. 마신다. 차 키를 잘 보관했으면 더 좋은 산행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속에  그만하길 다행이다가 나의 욕심을 잡는다. 마티즈는 땡볕에 그렇게 30여분을 더 서 있었다.


 

-에필로그

자동차 키는 핸들에 꽂혀 있었다. 키에 달려 있는 스텐레스 호각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건다. 영천서 출발하니 시간이 걸린단다. 30여분. 남은 간식을 먹는다. 그늘에 앉는다. 구멍가게가 없다. 아까부터 방안에서 나를 보시는 할머니 집으로 간다. 잠깐 세수 좀 할 수 있나요?  고맙게도 세수를 허락하신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교회로 간다. 오늘은 매주 토요일에 있는 설거지 당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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