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장산에서 쫓겨나 섬진강 매화향기에 취하던 날

 

                                                          2007. 3. 11 (일) 맑고 흐림

 

                                                              꼭지(아내)와 둘이서

 




 

04:00 서대구출발

06:30 궁항리마을(버스종점)


06:40 궁항리마을 우측으로 -산행시작-

07:20 지능선

09:00-09:30 운장산 서봉

11:00 궁항리마을 -원점회귀-

 


운장산은 겨울설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대구에서 가까운거리도 아닌지라 “언제 함가나.” “언제 함가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때마침 올라온 어느 산님의 산행기를 보고 그 아름다운 설경에 반해 마음을 정했습니다.

운장산에서 구봉산까지 그 환상의 꽃길(?)을 꼭지와 원 없이 함 걸어보기로 하였지요.


보통은 10시간정도가 소요된다고 하지만 꼭지의 느림보걸음으로는

12시간정도가 예상되는지라 꼭두새벽에 대구를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사 역시 예상대로 되는게 아니더군요.

몇 일전에 피어있던 환상적인 서리꽃은 이미 녹아내려서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리산 일출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운장산의 서리꽃 설경 또한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가봅니다.

앞으로 열심히 덕부터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장산 서봉에서 바라본 연석산 
 

 

 

                                                             ▲운장산 서봉에서 바라본 궁항리 방향의 조망

 

 


 


어제 비가 내렸고, 강한 칼바람과 영하의 추운 날씨..

이미 서리꽃이 필 수 있는 조건을 대충? 갖추었다고 생각한

사랑방의 얄팍한 상상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운장산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서리꽃의 설경을 보여주기는커녕

냉냉한 찬바람으로 몰아세우기만 하였습니다.

 

 


 

 


                                                                           ▲연석산을 덥기 시작하는 먹구름

 

 


 

그래도 우리는 마냥 즐거웠습니다.

동서남북 겹겹이 파도치는 산군들의 조망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운장산은 그것조차도 우리에게 보여주기 싫었는지

갑작스레 하늘에 먹구름을 드리우더니 이내 눈발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조망마저 앗아가 버렸습니다. 일단, 그래도 좋았습니다.

꼭지와 눈 속을 하루종일 걸을 수 있다는데 위안을 삼고 서봉을 내려서려는데

이번에는 그 희망사항마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봉에서 상봉으로 내려서는 암능길이 빙판으로 변해 있었고

로프나 안전장치도 전무한데다 부상을 각오하며 도저히 내려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내려서려던 산님 세분도

“어! 우리가 설치해놓았던 로프도 없어졌네.” 하며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어쩝니까. 지역에 계시는 고수님들도 돌아서는데 감히..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려고 올라섰더니 다리가 후들후들하더군요.

 

 


 

 


 

 


 

 

쭉~~~ 미끄러 떨어지면 낭떠러지로 다리뼈가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산꾼이 다리부서지면 끝이죠. 하지만 남자 체면은 세워야겠기에

“응~~! 산은 항상 제자리에 있데,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변명 아닌 변명으로 꼭지를 위로합니다.

 

 



 

 

                                                       ▲이곳 매화마을에도 서서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자존심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라 다시 왔던 길로 하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최고의 짧은 산행시간을 기록한 채 말입니다.

걷기 싫어하는 꼭지는 땡잡았다며 좋아하더군요.

다시 내려오면서 서봉 암릉 아래쪽에 우회길로 보이는

묵은 산죽길이 있었지만 못 본 채 그냥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거기서 다시 올라가자고 했다간 아마~~~~~ㅠㅠㅠ


 

 


 

 


 

 


 


 

그래도 남자가 칼을 뺏는데 어디든지 휘둘러는 봐야지요.

기왕 이렇게 된 것 가는 길에 산청에 있는 왕산이나 올라갔다 오자 했더니

꼭지 아니라 다를까 ‘버럭!’ 소리를 질러댑니다.

‘버럭!’은 안선생이 봉달희에게만 질러대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어이구! 무서워라’ 싶어 결국은 뱉은 말 본전도 꾸리지 못한 채

산청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섬진강매화마을로 달렸습니다.

기대했던 서리꽃도 보지 못하고 구봉산까지 종주산행도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예정에도 없던 그윽한 매화향기에 취해 호강한 하루였습니다.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