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龍華山878.4m춘천, 화천) Photo 에세이
(2006. 06. 27 양통마을-큰고개-만장봉-용화산-고탄령-시야골-양통마을/고양신도시산악회 따라http://cafe.daum.net/goyangjayooro)

*.용화산을 가보셨나요?

  그래도 산꾼이라고 자처하여 오던 나도, 춘천의 용화산(龍華山)은 가보기는 고사하고 그 이름조차 처음 듣는다. 그 용화산이 어디에 있는 산인가 찾아보았더니 춘천시와 화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승천을 꿈꾸던 이 산의 지네와 뱀이 서로 싸우다가 이긴 쪽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용 '龍'(용), 산 이름 華'(화), 용화산(龍華山, 878.4m)산이라 이름을 하였다는 산이다.
  -불교 설화에 의하면 도솔천에서 살던 미래불인 미륵(彌勒)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3 차의 설법에 의하여 석가모니 살아계실 때에 성불하지 못한 중생들을 제도하여 이 땅에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건설 한다는 것이다. 그 용화(龍華)에서 비롯된 이름이 용화산(龍華山)이다. 그래서 미륵불을 모신 전각을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영험한 산이어서인가 이산은 산삼이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여서 처서(凄暑)가 되면 심마니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 드는 산이다. 또한 소나무 군락지에서 자생하는 송이버섯은 향과 품질이 뛰어나 일본으로 전량 수출 된다는 효도상품이 용화산에서 난다.

*. 용화산 가는 길
출처:야후'거기'
  소양강을 끼고 춘천 가는 길은 한 폭의 동양화 속을 달리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詩) 세상 같다.
강촌교 너머 그림 같은 강촌역을 보는 것도 그렇고, 오른쪽의 등선폭포 입구를 지나면서 옛날에 오른 삼악산을 떠올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의암호에 둥둥 떠있는 붕어섬, 중도(中島), 상중도(上中島)나, 고슴도치 섬 위도 건너 편 호반의 도시 춘천을 바라보는 것도 그랬다.
우리들은 춘천댐을 건너서 좌측길로 춘천호를 왼쪽에 끼고 용화산에 가고 있다.


 



용화산을 쉽게 오르는 길은 양통마을 큰 고개에서 용화산 정상을 직접 오르는 것이지만 그건 너무 싱겁다고 산사람들은 새남바위골의 사여교 다리에서 곧장 비포장도로 산길로 접어든다.
유월 중순이지만 오늘은 장마 사이에 끼어서 서늘한 것이 등산하기에는 최적의 날씨 같은데, 오늘 일기예보에 '맑다가 한때 소나기'라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길가에는 참나리, 도라지 꽃,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디서인가 6.25 때 듣던 폭격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 오는데 군인들이 도로 정리를 하고 있다. '아하, 여기가 폭발물 처리장이었구나.'





거기서부터 차도를 버리고 낙엽이 수북히 쌓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울퉁불퉁한 돌길인데 새남바위골 따라 오르는 산 길가 풀잎마다 어제 밤비로 수정 같은 물방울을 가득 담고 있다.

거기서 조금 가니 샘터가 있었다.
  오늘의 나의 길동무는 사진작가 지겟군(닉네임) P씨다.
- 천천히 가요. 우리들의 목적은 산행만이 아니지 않아요?
그렇다 그는 '작품'을 위한 사진을, 나는 'Photo 에세이'를 위한 사진을 탐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자꾸 걱정이 앞선다. P의 느긋한 만만디의 산행기에다가 나의 소요음영(逍謠吟詠)하는 식의 등산이 함께 하였으니 너무 늦어서 함께 온 신도시산악회 일행의 걱정거리가 되면 어쩌지- 하고.

*. 큰 고개 길
 한 40분 쯤 되었을까 해서 비로소 북한산이나 월출산 같은 명산에 가서야 볼 수 있는 커다란 직립의 바위가 운무에 나타났다 가렸다 하니 더욱 신비스러웠다. 앞의 봉이 만장봉, 그 뒤에 운무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용화산 같다.




 


 


안부3거리에 서서 굽어보니 화천과 춘천을 이어주는 큰고개와 그 옆에 작은 주차장이 보이는데 길은 여기서 뚝 그친 막다른 큰길이었다.
여기가 최근에 뚫린 춘천시 사북면 고성리에서 화천군 하남면 삼화리로 넘어가는 용화산 서쪽에 704번 포장도로다. 용화산 정상까지는 1.0km로 희고 굵은 밧줄을 타는 계속되는 가파른 오름길이다. 그러나 고도계가 해발 560m를 가리키는 곳이니 정상까지는 318m만 오르면 되는 편한 길이다.

 

 





 얼마를 오르니 북동으로 향한 시원한 능선길이 펼쳐지는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시야는 뿌연 안개로 덮여서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아니라 몇 m 앞의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춘천 쪽의 소양호와 의암호도, 화천 쪽의 파로호(破虜湖)의 멋진 풍광과 이 산이 자랑하는 백운대(白雲臺) ·은선암(隱仙巖)· 현선암(顯仙巖)· 광바위· 심지바위·꼭지바위· 주전자바위· 마귀할미바위· 바둑바위· 불알바위 등 벼르던 촬영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말그대로 무산(霧散)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바쁜 등산회를 따라 와서 언감생심(言敢生心)이지 이 산을 지키고 있는 용화사· 용흥사· 용암사 등의 사찰과 용마굴(龍馬窟)· 장수굴(將帥窟) 등의 동굴을 말하겠는가.


*.용화산성
  만장봉 꼭대기는 화강암 바위로 노송과 어울린 바위들의 나라였다. 그러나 여기서 보인다는 하늘벽과 촛대봉은 운무 속에서 숨어서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다.
능선 길은 북동의 화천 쪽으로는 비교적 완만였지만, 서남의 춘천 쪽으로는 바라다만 보아도 현기증이 날 정도의 천길만길의 절벽이다.
이 암릉은 계룡산의 자연성릉과 같이 맥국(麥國) 시절에 쌓았다는 용화산성(龍華山城)의 일부라 한다.
둘레가 956자, 높이 2자로 350m나 그 흔적이 남았다지만 운무 속이라 거기가 어딘지 서운하게도 찾을 길이 없었다.
맥국(麥國)이란 어떤 나라인가?
부여, 고구려가 국명을 갖기 전에 춘천지방에 있었던 소부족국가시대의 나라인데 다음에서 그 문헌상의 기록을 살펴 보자.
-고구려의 남동쪽 예(濊)의 서쪽이 옛 맥(麥)의 땅인데 지금 신라의 북쪽이 삭주(朔州; 춘천)이며 선덕여황 6년에 우수주(牛首州)로 하여 군주(軍主)를 두었다. (삼국사기)
-춘주(春州)는 옛 우수주로 옛날의 맥(麥)인데 혹은 지금의 삭주를 맥국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평양성을 맥국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덕두원의 남방에 위치하는 삼악산성을 일명 맥국산성으로 부르는데 신라의 공격을 받고 맥국이 최후를 마친 곳이 맥국산성이라 전하여 온다.
-지금의 등선폭포를 당시 맥국 군사들이 쌀을 씻었던 곳이라 하여 '시궁치', 아랫마을은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곳이라 하여 의암(衣巖)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춘천지방전설)

*. 용화산 정상
  강원도에는 산이 많다. 춘천에 있는 산만 해도 청평산(오봉산,779.0m), 부용산(m), 마적산(610.3m), 죽엽산(859.2m), 중봉(1436.3m), 장군산(847.3m), 봉화산(615.5m), 몽덕산(635.0m), 가덕산(858.1m), 북배산(867.0m), 계관산(m) 등등.
산으로 부(富)를 논한다면 춘천은 산 부자다. 그래서 이렇게 소홀한가. 용화산에는 이정표가 거의 없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서인지,  덕분에 천연림도 어느 산보다 많다.
그래서 큰 짐승들이 사는지 곳곳에서 까만 염소똥 같은 것이 있어 열매인가 하고 발로 비벼 보면 파란 이파리 색깔이 들어난다. 방금 왔다 간 흔적이다.
이 산의 정상이 화천(華川)에 속하여서인가. 용화산은 화천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화천군민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영산이다. 그래서 군민들이 해마다 용화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한다.


산 위에서 시끌시끌 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일행이 점심을 먹고 있다는 신호다.
비로소 나타나는 이정표를 보니 내가 양통마을에서 여기까지 3.6km를 온 것이고, 다음 하산 이 시작되는 고탄령까지는 1.2km란다.





  정상 아래서 보던 깎아지른 듯한 정상은 올라 와서 보니 사방은 무성한 나뭇잎으로 시선을 막고 있는데 화천군에서 세운 정상석은 지리산 천왕봉, 대청봉 정상석 등 어느것보다 우람하고 크다.
정상에서부터 815고개 3거리까지는 용화산의 하이라이트로 기암괴석의 빼어난 경치가 일품인데 안타깝게도 바람이 운무를 몰아와서 앞을 가려 촬영을 위해서 한참을 기다리곤 하였다.  다음은 그 일부다.

기암양동마을전경운무낀용화산아, 용화산입석대같다기암바위들의나라破石松기암괴석



*. 미로(迷露) 같은 하산길
  우리 일행은 어느 길로 하산하였을까? 남기고 갔을 표지를 찾아 능선을 타다보니 목적지 고탄령을 지나친 것도 같은데-.
이 산에는 지도에 있는 고개만도 6 이나 되는데 큰고개,고탄령(古灘嶺), 사야령(四夜嶺) 같은 큰 고개에도 이정표가 왜 없을까? 춘천시와 화천시가 서로 밀다가 그런 것인가. 자칫하다가는 길을 잃기 쉽상인 곳이 용화산 산행이다.
다행이 울긋불긋한 등산회 리본을 따라 가면 되었지만 리본으로는 화천 쪽인가 춘천 쪽 양통마을 쪽인가를 알 수 없어서 몇 번이나 지도를 보며 확인하곤 했다.
지겟꾼 P는 나보다 더 사진 찍기를 탐하는 분이어서 그를 앞질러 오다 보니 우리끼리도 서로를 잃고 말았다.
전화도 불통지역이라서 대충 어림잡고 하산길로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냥 도중도중 나타나는 리본 따라 그 험한 내림길을 가는데 길은 끊기듯이 나타나고 이어지고 있다.

울긋불긋 리본은 파아란 신호등
산사람들 발자국, 우리들의 이정표
초행길
근심을 위해
달아 둔 나침반들.



*. 욕을 먹는 사람 되어
  지도를 보니 춘천 방향의 하산길은 어느 고개에서나 모두 양통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여기는 어딜까? 길은 양쪽 계곡을 끼고 가는 능선길인 것을 보면 오른쪽이 도토메기골, 왼쪽 계곡이 절골 같다.
합수머리로 해서 시아골에 들어서니 물이 암반위를 흐르는데 자그마한 폭포도 있다. 길은 계곡을 징검다리를 통하여 건너고 다시 또 건너는 길이 되풀이 되는 하산길이어서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나의 소망은 우리 일행들보다 먼저 탈출로로 하산하였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고, 걱정거리는 내변산(內邊算)에 이어 오늘도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두 번 이상 늦는다는 것은 전과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양통마을에 내려와 보니 우리보다 2시간이나 먼저 내려온 일행이 원망하며,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이 모양이니 다음에는 어찌 이분들을 따라 나서랴.
단체 여행 와서 가장 욕을 먹는 사람은 길을 한 번 이상 잃고 남을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요, 가장 허무한 사람은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사람이다.
늦은 것 같아 양통마을로 달려 오는 길에 나의 애장품인 고가의 MP3를 잃고도 되돌아 가 찾을 겨를이 없어 그냥 하산을 서두룰 수밖에 없었던 나였다.
원컨데 제발 눈비 맞아 못쓰게 되기 전에 사람의 눈길에 띄어 어느분의 기쁨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