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 산행

교대역을 출발한 차가 구리를 지날 쯤 왼편으로 불암산이 보였다. 나는 반대쪽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 모습을 보려고 몸을 일으켜 멀어질 때까지 주시했다. 차가 금곡 가까이 접어들기까지 한동안 그 산의 멋진 자태가 마음을 사로잡으며 보였다. 나는 세잔느가 만년에 셍트빅트와르 산을 끊임없이 그리며 탐미했듯이 불암산을 지날 때마다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그런데 요즘 그 인근에 별내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부근에는 도로 개설이 활발하다. 엊그제 발표한 동북축 발전 구상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는데개발되고 나면 지금 같은 초연한 모습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강철준 건축사가 “묵묵이 힘 있게 일하는 사무총장”이라고 인사하며 행사의 운을 뗏다. 그리고 이종호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장에게 마이크를 건냈다. 이회장은 용화산으로 가는 5월 정기 산행이 북한강을 따라 가는 산행 산행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용화산에 민간 사육장에서 탈출한 곰이 출현 했다면서 곰을 만났을 때 대처 요령도 설명하고 동승한 김영수 서울 건축사회 회장을 소개했다.

지난 3월 회장에 취임한 김형수 회장이 그 동안 추진해온 일들을 설명했는데 업무 파악과 함께 방문하는 회원에게 친절, 전화걸기 친절, 창구 친절 등 3대 친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다. 이어 회원들이 차레로 인사를 했다. 이번 산행에는 조현군, 박민철 건축사 등 처음 참가한 분들도 있었다. 조현군 회원은 평소 아는 분인데, 내가 올린 대간 종주 산행에 댓글을 달아 주셨을 때 언제 산행을 같이 하자고 말씀드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서대문의 박철민 회원은 산행을 신청하면서 “봄 소풍 가듯 기다려진다“ 써 놓은 것을 읽었던 터라 오랜만에 누군가 설레는 마음이 느껴져 누구일까 궁금하게 생각하다 그가 인사하여 얼굴을 알게 되었다.

차가 가는 도중 북한강의 푸르고 유장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의 강, 그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가? 갠지즈강, 바라나시에 가면 물의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산과 물은 짝이다. 산수 음양의 조화 세상의 조화를 상징한다.

하지만 강변을 따라 유흥 시설이 연속해서 보이고 양측에 도로가 놓인데다 큰 댐과 교량들이 나타나서 자연의 살아 있는 강의 느낌은 퍽 감해진 것이 아쉬웠다. 근래 경춘선 전철 복선화사업 등이 시행되면서 이 인근인 부쩍 인위의 손길로 변모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작은 하천을 건너며 길게 펼쳐 보일 때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 이미지를 담아보려고 사진을 찍었다. 청계천 복원을 지켜본 후로 부쩍 살아 있는 하천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차를 타고 가다가 그러한 모습이 보이면 잘 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사진을 찍곤 한다.

길 좌측에 워낭소리 주유소, 아침 고요 수목원 등의 표지를 보며 지나다 휴게소에 들러 쉬고 다시 출발했다. 가평을 지나고부터 산세가 조금씩 높아보였다. 가평을 지날 때 북한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일을 하는 동안 자주 갔었던 남이섬 쪽을 바라보며 그 때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측 길 옆 산록 그늘아래 검은 염소가 한가히 풀을 뜯고 있었다. 녹슨 철교가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어느 덧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오월이 되었다. 이제 마른 대지에서 돋아난 식물들이 무성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올해도 이미 많이 흘러갔다.

휴게소를 지나고부터 차 안에서 대화가 활발해졌다. 차내 스피커에서는 기타반주에 맞춘 흘러간 노래가 들렸다. 10시 7분 강원도 경계를 지났다. 길옆으로 산이 비춘 북한강의 풍경이 그윽하게 보였다. 강변에 일군 밭에 검은 천을 씌워 세워 놓은 허수아비가 정선 아우라지에서 보았던 아우라지처녀 동상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암댐을 지나니 너른 수면에 물이 가득해, 춘천이 호반의 도시로 불리는 것을 실감케 했다. 이 지역에는 화천, 춘천, 홍천과 같이 물과 연관된 지명이 많다. 그것은 이 인근이 우리나라 지형상으로 볼 때 마치 갈대기로 물을 받듯 한 형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춘천은 한강기맥과 소양북기백 사이에 생성된 수원과 그 너머 한북정맥 사이에 형성된 수원이 모이는 곳이다. 한강기맥은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져 상왕봉, 비로봉, 호령봉을 지나 계방산, 보래봉, 구목령, 덕고산, 운무산, 수리봉, 대학산, 덕구산, 응곡산, 청계산을 거쳐 양수리에서 꼬리를 내리는데 물길에 막혀서 줄기를 땅끝까지 뻗치지 못해 정맥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강원도 지역으로부터 물길 앞에 멈춰 맺힌 산들이 이 일대의 용화산, 오봉산 등이며, 한북 정맥의 백운산 등은 지난번 회에서 간 적이 있다.

지도에서 보면 용화산은 설악산과 거의 위도가 같을 만큼 북쪽에 위치해 있다. 용화산 북서쪽의 파로호가 있는데 그 곳 상류에 북한의 금강산 댐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었던 평화의 댐이 있다. 그런 일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화천 지역에 오면 어쩐지 더 냉전시의 긴장감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리고 남동쪽에는 소양호가 둘러쳐 있어 마치 호반 위에 솟아 있는 모습이다.

용화산은 배후령에서 북서쪽으로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정상부 능선 이북은 화천, 그 이남은 춘천지역이다. 지난번 오봉산에서 스케치 했던 간동면이 다른 방향에서 그 너머에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말처럼  깊고 길게 골짜기가 이루어져 있어 물길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언 곳이건 직접 접해야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산지식과 체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여   행


여행은 힘과 사랑을
그대에게 들려준다. 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이 길을 따라 걸어가 보자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 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하리라


잘랄루딘 루미(회교 신비주의 시인)


나는 이 시를 얼마전 지하철 열차 안 옆 좌석에 앉은 손님이 읽고 있는 것을 베켜 적었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앎을 얻으려면 생각이 맑고 조용히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 중 조용히 가기를 바란다. 얼마전 부처님오신날 일년에 한번 밖에 일반인에게 문을 열지 않는 봉암사를 다녀왔었다. 작년에 마친 대간 종주중 희양산을 넘으며 아래에 보이는 그 절을 보고 갔는데, 그때 모습을 보면서 이 곳에서 성철 등이 수행했던 엄격한 기풍이 구산선문의 하나로써 본래의 수행처로서의 느낌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다녀온 날도 길게 오가는 들길을 걸으며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본연의 모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

춘천댐을 지나면서 용화산이 가까워 옴을 느꼈다. 춘천댐은 물이 가득했다. 주변 산과 어우러져 산수화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좌석 건너편 차창 밖으로 그 풍경을 보려 애를 쓰며 지나갔다. 10시 58분 차가 출발지를 찾아가다 사여골 사여교 앞에 도착해서 다시 경로를 가늠했다. 이회장이 주변을 지나는 사람에게 붇자 출발 지점으로 가려면 반대편으로 가야 된다고 해서 다시 북한강변 쪽으로 돌아 출발 지점을 찾아 갔다.

11시 33분 일행이 탄 버스가 용화산 큰고개에 도착했다. 그 곳은 맞은편으로 관통 도로를 놓다가 환경 단체의 반대에 막혀 중단 된 상태로 있는데, 이미 그 곳은 정상 가까이 올라온 지점이라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이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도로 옆 안내 판 옆 숲길을 걸어 산행을 시작했다. 남 건축사가 선두에 서기로 했는데 오늘 함께 온 아들 성우, 연우와 오느라 중간에 위치했다. 성우는 초등학교 학생일 때 앳된 모습으로 처음 보았는데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어른스러워지고 말수도 적어져 있었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인데, 새삼 그 시절 몇 년은 인간을 빠르고 크게 성장시키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을 워낙 높은 곳에서 시작해서 출발지로부터 정상까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길은 숲 그늘이 되어 따가운 땡볕이 쏟아지지 않았다. 산에 가면 놀라운 생명력으로 온통 산을 금새 뒤덮는다. 오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무성해지는데 성장 속고가 빨라서 이맘땐 “새순 돋아나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과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새 순의 빠른 성장을 느낀 적이 있는 터라 공감되는 면도 있었다.

최근 사무실이 있는 동네 다세대 주택의 조그만 화단에서 금강송이 죽었다 살아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누렇게 말라 말라 죽은 줄 알았다 연초록 빛깔을 띠며 새 순이 나는 모습이 너무도 귀해 보였다. 도시 화단의 나무들은 값으로 치기 때문에 조경하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가 피부로 와 닿는다. 그리고 더 큰 보살핌 속에 자란다. 하지만 산에 잇는 나무들은 묵묵히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산에 가야 숲 내음을 느낄 수 있다.

내 일매헌 옥상에 심은 나무도 겨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지 잎이 피어나고 있다. 생사를 알 수 없어 노심초사하던 나는 나무의 새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을 보고 겨워했었다. 올해는 몇 그루의 나무를 더 심었다. 그 사이 메마른 옥상에 매화 한그루와 화단을 만들어 메마른 옥상에서 꽃이 피고 생물이 자라나는 것만도 신기했는데, 여전히 따가운 스라브 바닥의 열기가 높아서 숲처럼 공간을 둘러쳐 그늘숲이 되기 바라는 심정으로 화단을 배치하고 묘목을 사다 심었다. 그런데 작년에 심은 후 죽고 만 적이 있어 새 잎이 돋아나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었다.


경사 길을 걸어 앞 봉우리에 올랐다. 그 곳에 놓인 큰 바위에 오르니 앞쪽에 놀랄 만한 경관이 펼쳐 보였다. 좌측 앞쪽에 용화산 정상처럼 보이는 거대한 암봉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촛대처럼 높은 바위가 솟아 보였다. 그처럼 크고 작고 육중하고 세장한 느낌의 봉우리와 그 주위로 너르게  겹겹이 펼쳐보이는 능선이 어우러진 것이 특별하고 시원스런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용화산의 진면목을 보는 듯 했다. 이 산에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현지에 와서 직접 대하고 보니 용화산이 유명한 것이 이해되었다. 유명한 것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행이 옆으로 이어진 길로 앞서 출발했다. 나는 스케치를 하고 맨 뒤에 쳐져 갔다. 좌측으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 가다보니 후미가 보였다. 평소 빨리 걷다보니 그들을 지나쳐 다시 앞쪽에 서서 능선에 올라섰다. 앞쪽 봉우리를 올라 있었다. 다시 좌측으로 이동해 가는 도중 이번에도 다시 좋은 경치가 펼쳐 보였다. 멀리 보이던 세장한 바위가 주변의 능선과 어우러져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다시 뒤로 몇 걸음 옮겨 그 모습을 스케치했다.

다시 바위 암릉 길을 따라 걸으며 정상을 향했다. 정상이 가까운 지점이라 주변이 너 너르게 조망되어 시원한 기분이 느껴지고 산행의 즐거움도 커지고 있었다. 다시 출발해 오르막길을 걸었다. 가는 도중 곳곳에 로프가 매달려 있었다. 옆에서 걷던 일행이 유격훈련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완만한 숲길로 들어서 걷다보니 숲길 안쪽으로 일행이 멈춰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곳이 용화산 정상(878.4m)이었다.

정상석이 마치 족자에 쓴 서애 글씨처럼 쓰여 있었는데 주위로 숲이 우거져 시원스레 조망되지는 않았다. 일행은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쉬다 식사하기로 한 곳으로 오르던 길을 조금 되돌아가 좌측으로 진행했다. 가다 보니 정상과 아래로 나눠지는 곳이 나타났다. 남 건축사가 아랫길로 가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내려가는 길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길을 걷다보니 능선 길과 연결되어 보였다.

다시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능선에 오르니 앞쪽 봉우리에 바위가 솟아 있었다. 거기서 뒤돌아보니 앞의 바위와 뒤로 보이는 능선에 솟은 바위와 옆으로 흐르는 산세가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보였다.

그런데 후미의 일행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용화산에서 이동한 거리가 그리 멀지 않는데 어떻게 된건지 걱정을 하는 사이 잠시 후 일행이 도착했다. 일행은 거기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자리를 폈다. 산행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각자 배낭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 놓고 보니 푸짐한 식탁이 차려졌다. 막걸리를 돌렸다 땀을 흘리며 올라온 때에 막걸리 맛은 일품이다. 양념에 버무려 비빔밥을 해서 몇 사람이 나눠 먹기도 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리막 길로 진행하다. 안부에서 계곡길로 하산하기로 했다. 나는 맨 앞에서 걷다 안부에서  뒤의 일행을 기다려 확인하고 다시 앞서 계곡의 내림길을 내려갔다. 위쪽의 계곡은 말라 있었는데 정상부에서 본 재질의 바위들이 연마되어 계곡 바닥에 깔려 있었다.

점차 아래로 내려왔다. 거리가 긴 계곡길이었다. 아까 오전에 진입할 때 보았던 다리와 연결되려면 많이 걸어야 될 것 같았다. 거기서 올려다 보이는 용화산 정산은 거리가 멀어보였었다. 내리막길은 올라 갈 때보다 힘은 덜 들지만 자칫 미끄러질 염려가 있어 조심스럽다. 특히 무릎에 충격이 가기 쉬워서 조심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신록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숲 그늘을 걷는 느낌이 좋았다.  어느덧 잎이 무성해져 산길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점차 내려오다보니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계곡의 자연이 살아 있는 소리로 들렸다. 계곡을 바라보니 많지 않은 자갈 위로 얕게 흐르는 것이 보였다.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니 계곡의 시원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로 더 걸어 내려올수록 수량도 더 많아졌다. 돌확 같은 웅덩이에는 맑은 물이 고요히 고여 있었다. 그 물은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와 다름없을 것 같았다. 목이 마른 상황이라면 그대로 들이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아래쪽으로 완만한 긴 계곡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물 웅덩이가 연이어 형성된 곳도 있고 너럭 바위처럼 제법 넓은 바위가 정갈하게 깔려 있는 곳에 그 위로 비추는 물살이 비단처럼 바위가 비춰 보여 운치를 지닌 곳도 있었다.

계속해서 선두에서 혼자 걸으며 주변 풍광을 느끼며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가다보니 바위가 층을 지며 낙차 낮은 폭포러럼 흐르는 곳이 나타났다. 그 위로 보이는 계곡과 숲이 어우러진 구도가 좋아서 게곡 중간 지점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며 스케치 했다. 아까 안부에서 이회장이 너럭바위에서 쉬자고 했는데 이곳이 그곳 같기도 해서 멈춰 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이 일행이 그냥 지나쳐 내려갔다.

다시 맨 뒤쪽에 위치해 내려가다 보니 길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을 건너는 곳에 좌축으로 일행이 모여 탁족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발을 담그고 있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벌써 탁족이 좋은 계절이 되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 위로 오르니 버스가 올라와 차에 타고 춘천으로 내려가 식당에 들어섰다. 소양댐이 멀지 않은 길목의 식당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시장끼를 느끼는 시각에 이 지역의 유명한 닭갈비를 요리를 안주로 술잔을 돌리고 건배를 했다. 자리마다 주변 분들과 잔을 부디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좋은 산에 오르고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보낸 하루였다.
(09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