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


 

                                                *산행일자:2008. 10. 24일(금)

                                                *소재지  :강원춘천/화천

                                                *산높이  :878m

                                                *산행코스:배후령-764.6봉-사야령-고탄령-830봉(?)사고지점

                                                *산행시간:8시30분-12시10분(3시간40분)

                                                *동행    :나홀로

 

 

  산상의 가을은 어느새 조락의 계절로 들어섰습니다.

진작 왔어야 할 비가 뒤늦게 내리는 바람에 한창 절정을 이루리라 생각했던 용화산의 단풍이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극심한 가을가뭄으로 올 가을 단풍은 잎이 마르고 색상이 칙칙해 여느 해보다 훨씬 부실하다 했는데 그동안 오래 참았던 제우스신이 지지난 밤에 가을비를 한꺼번에 쏟아 붇는 바람에 능선 길의 넓은잎나무들은 잎이 거의 다 떨어져지고 이 산의 가을축제는 이제 끝난 듯 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자켓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냉랭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그나마 가지에 붙어 있던 나뭇잎들이 힘없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을 보자 더 스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가을에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산상의 나뭇잎만이 아니었습니다.

진원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9월의 경제위기설이 헛소문이었음이 밝혀져 얼마간 안도했었는데 10월 들어 1997년의 IMF환란에 버금가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밀어닥쳐 주가가 급락하고 원화가치가 한 없이 떨어져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우리나라로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치닫는 것은 시간문제이기에 이 위기를 헤쳐 나가고자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 뻔 할진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떨어져나가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됐습니다. 11년 전의 IMF환란은 당시 정부가 자초한 면이 컸고 그래서 집권세력교체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번의 금융위기는 생뚱맞게도 전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해온 미국에서 시작되어 그 여파 또한 전 세계적인 것이기에 해법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하니 이번에도 애꿎은 서민들만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이 가을이 더욱 우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가을이 조락의 계절임을 확인하는데 저 또한 한 몫을 해 부끄러웠습니다.

배후령 출발 3시간 반이 지나 다다른 용화산의 암릉지대에서 로프를 잡고 암봉에 올라 한 숨을 돌린 후 높이 2m 가량의 바위를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디어 경사가 70도 이상 되는 절벽 아래로 10m(?) 가까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흉추 세 곳과 요추 두 곳이 골절되는 등 척추를 크게 다쳐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단독산행이어서 누가 대신 연락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다행히도 휴대폰이 터져 119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2시간 후에 구조되어 헬기로 이송되었습니다. 조락의 계절인 이 가을에 저의 부주의로 인한 산행사고로 우울함을 더했다 싶어 여러 산객님들에 죄송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이번 산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춘천과 화천을 경계 짓는 용화산(龍華山)이었습니다.

강원도의 도봉산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만장봉 등 수려한 암봉이 많이 있는 악산이지만,  파로호, 의암호, 소양호와 춘천호가 한 눈에 조망되어 산수를 두루 둘러보기에 이만한 산이 흔치않을 것입니다. 부처께서 열반하시고 수 십 억년 뒤에 세상에 나타나시는 용화(龍華) 미륵불께서 세 번에 걸쳐 설법을 해도 좋을 만한 용화삼회(龍華三會)로 터를 잡아도 그리 손색이 없겠기에 이 산중에 용화사(龍華寺)가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2003년 여름 큰 비를 만나 큰고개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출발지로 되내려오는 짧은 코스로 산행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배후령고개에서 출발하여 춘천시내와 의암호를 조망하며 정상에 오른 후 파로호전시관으로 하산하는 긴 종주코스를 택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중간에 하산해 용화산의 종주산행은 내년으로 미뤘습니다.

 

  아침8시30분 배후령을 출발해 용화산으로 향했습니다.

일출 준비를 막 마친 동녘 하늘이 불그스레해 이른 아침 한강의 강변 풍경이 황홀했습니다. 6시15분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직행버스가 7시 반이 채 못 되어 춘천버스터미널에 도착해, 7시40분에 오음리를 거쳐 화천가는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춘천 출발 반시간 남짓 지나 다다른 배후령에서 하차했는데 같이 내린 한 분은 동쪽의 오봉산으로 향했습니다. 고개를 막 넘어 38선 경계석을 확인 한 후 길 건너 오른쪽 바로 아래 오봉산수 휴게소로 내려가 들머리를 찾았지만, 길이 막혀 허탕 치고 다시 고개마루로 올라오는 바람에 10분가량 지체됐습니다.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오른 쪽으로 표지기가 보여 절개지 위 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해발600m의 배후령의 아침공기는 생각보다 냉랭했습니다. 장갑을 꺼내 끼고 자켓을 껴입고 산길로 들어서자 춘천 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얼굴을 때려 늦가을 한기가 만만치 않다 했습니다. 출발 4-5분 후 절개면 꼭지점에서 내려선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바로 아래 오봉산수로 내려가는 길이 갈렸습니다. 군부대에서 세운 삼각점을 지나 교통로를 따라 올라 헬기장에 다다르기까지 30분이 걸렸습니다.


 

 9시50분 서쪽 사면이 천애의 절벽인 전망바위에 다다랐습니다.

헬기장을 조금 지나 춘천시와 의암호를 카메라에 담고 나자 서쪽 건너로 화악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능선 길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전날 내린 비를 일부 머금고 있어 미끄러질까보아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햇살이 퍼지자 능선 길이 따뜻하고 바람도 약해져 산상의 한 순간이 더할 수 없이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로프가 쳐진 산길을 올라 760봉에 올랐고 그 몇 분 후 천애 절벽 위의 소나무를 붙잡고 서서 춘천시와 의암호를 조망했습니다. 산과 강이 에워싼 춘천시내는 아늑하고 포근해 보여 언제고 짬이 날 때 몇 달 간 옮겨와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동했습니다.


 

  이번 산행을 통해 제가 춘천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먼 옛날 맥국(貊國)이라는 소국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역사기록 때문입니다. 삼국사기 권제1의 신라본기 제1에 신라의 3대 임금 유리이사금의 “즉위 17년 9월에 화려, 불내의 이현인이 공모연합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경을 침범하므로 맥국의 거수가 군사로써 곡하서쪽에서 이를 깨뜨리니 왕은 기뻐하며 맥국과 호의를 맺었다. 19년8월에 맥국의 거수가 금수를 사냥하여 왕에게 바쳤다.”고 적혀 있는데 이 맥국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춘천이라 합니다. 상고시대에 발해만을 사이에 두고 산동반도, 요동반도, 조선반도를 서로 연결하여 동이문화권을 만들었으며 북쪽의 예맥, 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를 세운 예맥족의 한 종족으로 알려진 맥족이 과연 북쪽에서 한반도 중심부인 춘천까지 진출해 맥국을 세웠을까 쉽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번에 오르는 용화산에는 옛날 춘천 지방에 있던 고대국가 맥국(貊國)의 성문역할을 하던 배후령, 성불령, 사야령, 큰고개, 모래재 등의 고갯길 10여 곳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춘천맥국설에 관한 구체적인 사료나 출토된 유물·유적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하니 더욱 그러했습니다.


 

  10시25분 남쪽의 수리봉으로 도솔지맥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첫 번째 고봉인 760봉을 지난 지 30분 만에 삼각점이 세워진 764.6봉에 올라섰습니다. 삼각점을 사진 찍고 나자 배터리가 다됐으니 갈아 끼우라는 메시지지가 떠 꼭 필요한 때 찍고자 얼른 카메라를 껐습니다만, 기라성 같은 용화산의 암봉들과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한 파로호의 정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카메라에 옮겨 실어 가겠다는 욕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각점이 파손된 764.6봉에서 5분을 더 걸어 봉우리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배후령에서 여기 삼거리까지 이어온 도솔지맥은 남쪽의 수리봉으로 향했고, 저는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용화산 가는 길로 갈라섰는데 비로소 북서쪽으로 용화산 정상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소나무가 서 있는 공터 봉우리에 오르자 바람이 거칠어져 헬기장에서 벗어 넣었던 쟈켓을 다시 꺼내 입었습니다. 잎이 거의 다 떨어진 철쭉나무들은 전날 내린 비로 세속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서인지 그 수피가 뽀얗게 보였습니다. 10시50분에 나무계단 길을 걸어 내려선 사야령에서 커피를 곁들인 빵과 사과를 들며 쉬고 있는 제게 그동안 숨죽였던 새들이 노래를 들려주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배후령 출발 2시간 반 동안의 산행 중 아직은  남아있으리라 기대했던 야생화들을 하나도 만나보지 못한 제게 새소리와 빵을 보고 달려드는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이 가을이 전해주는 마지막 음악 같아 귀를 쫑긋 세워 경청했습니다.


 

  도솔지맥은 백두대간의 매자봉에서 분기되어 도솔산, 사명산, 오봉산 등을 일군 다음 춘천의 우두산을 마지막으로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합수점에서 침잠하는 산줄기로 도상거리가 약 124Km에 이른다고 합니다. 작년에 대암산과 오봉산을 오르며 발을 들였던 제가 이번에도 배후령에서 시작해 2시간 가까이 도솔지맥 길을 밟았습니다. 용화산을 오르며 도솔지맥을 떠올린 것은 용화산이나 도솔지맥 모두 그 어원이 미륵불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서였습니다. Daum의 신지식란에 실린 천연기념물 님의 “한국의 지리”에 따르면 미륵불은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수기를 받은 후, 현재는 도솔천에 계시다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56억 7천만년 뒤에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용화수 밑에서 성도한 다음,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을 이릅니다. 도솔산, 도솔봉, 두솔산, 두솔봉은 미륵이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 하는 염원이며 미륵산, 미륵도, 용화산, 용화동 등은 미륵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지명”이라 합니다. 신라말기 궁예가 혹시라도 도솔지맥이 지나는 용화산을 오르지 않고 미륵불을 자처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11시36분 십자안부인 고탄령으로 내려섰습니다.

사야령에서 18분간 쉰 후 20분 가까이 걸어 올라선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수불무산 행 길이 갈렸고 저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왼쪽 길로 들어서 10분 후 고탄령으로 내려섰는데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아 중간에 전망바위를 그냥 지났습니다. 고탄령에서 830봉(?)으로 오르는 길이 본격적인 암릉 길이어서 로프를 잡고 조심해 올랐습니다. 하늘은 쾌청했고 바람은 여전히 냉랭했습니다. 830봉에 오르자 정상이 가까워서인지 용화산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와 여벌의 밧테리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12시 10분경 휴대폰으로 119에 사고신고를 하고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830봉(?)에 올라 사방을 휘둘러보며 잠시 숨을 고른 후 저 아래 안부로 내려가는 바위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높이가 2m가량 되어 보이는 바위를 타고 내려 가야하는데 길이 분명치 않아 찜찜한 기분으로 소나무 오른 쪽으로 내려서서 바위를 안고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했습니다. 바위 끝머리에서 왼 손을 놓고 왼쪽 발을 내려놓는 다는 것이 잘 못되어 경사가 70도 이상 되는 암벽으로 10m(?)가까이 굴러 떨어지면서 이러다가 죽겠다 했는데 다행히도 중간에 넓은 턱이 있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멈췄습니다. 한 순간 숨이 탁 막혀 고통스러워 하다가 간신히 숨을 되찾은 후 주기도문을 외우며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위를 보자 직벽이어서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밑을 내려다보자 이 역시 낭떠러지여서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어 별 수 없이 배낭에서 휴대폰을 꺼내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구조요청을 마치자 허리가 끊어진 것처럼 아팠고 가슴의 통증도 허리통증에 못지않았습니다. 버스에서 읽다만 조간신문을 깔고 누운 다음 배낭의 옷가지를 꺼내 덮고 나자 제가 누워 있는 곳이 넓은 침니의 한 중간임을 알았습니다. 빠끔히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래 그나마 다행이다 했는데 먹구름이 몰려들자 다시 불안했습니다. 시간 반가량 걸린다는 구조대를 맥 놓고 기다리자니 통증만 더 심하게 느껴져 가지고 간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땅 속 깊이 자리한 지구의 내부구조에 관한 글을 읽다가 사고로 지표면에 등을 눕힌 저를 보자 구조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구의 안의 용암이 지표로 분출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14시10분 경 춘천산악구조대의 대원 셋이서 저를 끌어 올린 다음 헬기를 불러 춘천시내로 이송했습니다. 구조요청 후 구조대원이 사고지점에 당도한 것은 대략 2시간 후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은 큰고개로 정상을 오른 후 사고지점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해 제가 오른 코스와는 정반대방향이어서 혹시라도 그냥 지나칠 까 걱정을 했었는데 사이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큰 소리로 구조대원을 불러 제 위치를 알렸습니다. 구조대원 한 명이 추락지점으로 내려와 확보해주고 두 명이 위에 남아 저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해 비로소 안심됐지만, 허리통증이 더 심해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어 그들은 헬기를 부른 후 저를 다시 830봉 암반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때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 몇 번의 시도 끝에 헬기에서 한 명이 줄을 잡고 내려와 저를 묶고 헬기 안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헬기를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사고로 몸을 다친 제게 헬기를 내주어 춘천시내로 운송한 구조대가 고마웠고 이 나라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북한 땅에서 사고가 났다면 과연 헬기구조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생각하자 이 정도를 국부를 이룬 이 나라가 한 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많은 이들로부터 고마움을 받아 쌓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들었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나서 처음에는 세상사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싶어 앞으로 또 얼마나 힘들게 살아야하나 겁도 났습니다. 8년 전에 집사람을 여의고 두 해 후에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으며 그 3년 후 수 년간 꾸려온 회사를 접으면서 이번이 마지막 시련이기를 주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물론 제 부주의로 바위에서 떨어져 사고를 당하기는 했지만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왜 제게는 이렇게 시련이 계속되는지 짜증스럽기도 했고 참으로 세상사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했습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내고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 실수로 바위에서 떨어지고 난 후로는 주님의 구조프로그램이 곧바로 작동되어 구조되었다는 생각입니다. 허리와 가슴부분 외에는 다친 곳이 전혀 없고 휴대폰이 터져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분의 프로그램이었기에 저는 주저 않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번처럼 대한민국이 고맙고 자랑스러울 때가 없었습니다. 구조대를 보내고 헬기를 내준 이 나라의 구조시스템이 고맙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춘천에서 산본 집으로 데려다 준 고마운 후배와 수많은 친지들이 병원으로 문병 와 걱정해주고 빠른 쾌유를 빌었습니다. 또 여러 친구들이 4주간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에서 요양 중인 저를 잊지 않고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인터넷카페와 산 사이트를 통해 인연을 맺어온 산님들도 격려해주셨습니다. 어느새 제가 받은 고마움이 탑이 되어 높이 쌓인 것을 보자 세상사는 일이 이리도 신나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분들에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용화산 산행으로 잃은 것은 몸을 다친 것이지만 얻은 것은 매사를 고마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큽니다. 고마움을 제게 준 용화산에 먼 훗날 미륵불께서 나타나셔서 설법을 해도 좋을 것 같아 과연 이 산의 명성이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