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

 

 

                                     *산행일자:2010. 4. 11일(일)

                                     *소재지 :강원춘천/화천

                                     *산높이 :878m

                                     *산행코스:배후령-사여령-고탄령-용화산-큰고개

                                     *산행시간:9시28분-16시1분(6시간33분)

                                     *동행 :범솥말님, 조부근님, 성봉현님, 경동고 이규성 동문

 

 

 

    1년 반 만에 추락사고를 당했던 용화산을 다시 찾아 올랐습니다. 3월1일 한남서봉지맥 종주를 같이 마치고 산본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용화산을 다시 올라 사고지점을 확인하고 싶은데 겁이 나서 못가겠다고 이야기를 하자 성봉현님께서 자일을 가지고 동행을 하겠다고 해 엄청 고마웠습니다. 범솥말님과 조부근님도 합류하고 하이맛 친구를 끌어들여 총5명이 용화산을 같이 올라 사고지점을 확인하고 정상에 올라섰다가 큰고개로 하산했습니다.

 

 

  제가 굳이 사고지점을 지나보고자 하는 것은 추락사고 이후 부쩍 심해진 바위공포증을 덜어보고 싶어서입니다. 작년10월에 시작한 낙남정맥 종주산행을 삼신봉에서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옛날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날만한 외삼신봉 아래 암릉길을 위험하다며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용화산을 다시 오르며 사고지점을 보고 제가 느낀 것은 그 때 뭔가 모르게 쫒기며 산행을 하느라 소나무에 매여 있는 밧줄도 보지 못하고 발 딛을 자리를 제대로 확인안하고 바위를 잡은 손을 놓는 바람에 사고를 당한 것이지 코스가 위험해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혼자서 다시 이 코스를 다시 한다면 줄을 잡고 내려가는 것이어서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 싶고 앞으로 바위공포증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용화산 산행사고가 제게는 끔찍한 악몽만은 아니었습니다. 사고 후 제가 받은 고마움은 탑을 쌓아도 될 만큼 크고 높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제 삶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들인가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저의 쾌유를 빌어준 덕에 이번에 다시 용화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수년간 몇 번 어려움을 겪은 후 내 스스로 하찮은 존재라고 여긴 제 생각을 바꾸어 자존을 되찾은 것도 고마움의 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고나서였습니다. 이번에도 내일처럼 생각하고 동행해준 친구들이 있어 고마움의 탑이 또 높아졌습니다. 아직도 다친 부위가 다 낫지 않아 저녁때면 허리에 통증이 오곤 합니다. 어쩌면 웬 만큼의 통증은 평생 달고 살아야할 지도 모릅니다. 이 통증을 뛰어넘는 고마움의 탑이 계속 높아가기에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9시28분 배후령을 출발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을 아침7시에 출발한 직통버스는 기차로 두 시간이 다 걸리는 춘천에 1시간10분만에 도착했고, 30분 가까이 기다려 승차한 양구 행 버스는 그 반시간 후인 9시10분경에 배후령에 다다랐습니다. 명산100산으로 선정된 용화산과 오봉산을 가름하는 배후령은 38선이 지나는 고위도에 위치해서인지 바람이 써늘하고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배후령에서 산행채비를 마친 후 오봉산장 뒤쪽 능선으로 붙어 군용삼각점을 지난 다음 능선 길에 낸 교통호를 따라 걸어 헬기장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범솥말님이 가리켜준 대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자 작년 5월 잔뜩 찌푸린 날씨에 올라 어둡기만 했던 사명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헬기장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 쳐놓은 로프를 잡고 봉우리에 올랐다가 조금 더 가 왼쪽 아래가 천애 절벽으로 시야가 탁 트인 전망바위에 멈춰 선 후 한눈에 잡히는 춘천시내와 의암호 및 의젓한 자태의 화악산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배후령을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더 지나 “용화산4.6Km/배후령2.7 Km"의 이정표가 세워진 봉우리에서 10분 여 쉬면서 홍천의 가리산을 조망했습니다.  이내 764봉을 우회해 이제껏 밟아온 도솔지맥과 헤어지고 북쪽으로 직진해 사여령으로 향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다 샛노란 꽃을 피운 앙증맞은 양지꽃 몇 송이를 보고 남풍에 실려 여기 38선까지 힘들게 올라온 봄이 아직은 제 자리를 잡지 못했구나 했습니다.

 

 

  11시14분 깊숙한 안부인 사여령을 지났습니다. 왼쪽 아래로 용화산자연휴양림 길이 갈리는 사여령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 오른 쪽으로 수불무산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는데 20분 남짓 걸렸습니다. 동그란 목판의 색다른 이정표가 걸려있는 778봉 삼거리에서 10분가량 더 걸어 다다른 고탄령고개는 사여령처럼 안부가 깊지 않았습니다. 왼쪽 아래로 절골 길이 나있는 고탄령에 이르자 재작년 10월 허리를 크게 다친 사고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싶어 긴장됐습니다. 사고지점을 다시 지나 바위에 대한 공포감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둔 이번 산행에 베테랑 친구들이  동행을 해주어 든든했습니다. 지난 번처럼 저 혼자가 아니어서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는 데도 암릉 길에 다가서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스틱을 접어 넣고 두 손을 다 써 암봉에 올라서자 눈에 익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이 암봉이 바로 재작년 가을 안부로 내려서다 오른 쪽으로 10m이상 굴러 떨어져 사고를 낸 곳이었습니다. 조심해서 내려가면 혼자서도 충분히 내려갈 수 있겠다 하면서도 먼저 내려간 성봉현님에 줄을 잡아달라고 청한 후 안전하게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 아래 사고지점을 사진 찍으면서 왜 제가 그날 소나무에 매여 있는 밧줄을 잡지 않고 그냥 내려가다 사고를 냈는지 그 때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성봉현님이 확보용 자일을 가져온 것은 제가 소나무에 밧줄이 걸려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인데 밧줄이 오래된 것으로 보아 그 때도 걸려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날 사고가 나려고 제 눈에 뭐가 씌워 이 밧줄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사고지점을 같이 확인한 성봉현님과 하이맛 친구도 사고가 날 만큼 위험한 길이 아니라면서 저렇게 깊이 떨어졌는데도 살아난 것은 참으로 천행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12시25분 널찍한 안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사고지점 바로 앞의 위험한 암봉을 우회하지 않고 바로 넘은 조부근님과 범솥말님은 제가 사고가 난 곳이 방금 넘어선 암봉인지 알았다고 했습니다. 위험한 암봉을 우회해 왼쪽 아래로 양통길이 갈리는 이 안부로 내려가 다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한 참을 쉰 후 1.3Km 남은 정상으로 향하는 중 위험하다 싶은 암봉들은 모두 우회했는데 고도가 높은 북사면에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암봉 우회가 끝난 후 가파른 암릉 길을 줄을 붙잡고 오르면서 서쪽 멀리 정상부에 하얀 눈이 쌓여 있는 화악산의 응봉을 조망했고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불알바위도 같이 보았습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오르내리는 산객들이 많아 암릉 길이 붐볐고 산행이 생각보다 더뎠습니다.

 

 

  14시6분 해발878m의 용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커다란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파로호선착장 매표소에 배 시간을 물어보았으나 자기 배는 개인 배라며 화천군청에 물어보라는 퉁명스런 대답만 들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일단 파로호 선착장으로 내려가 화천댐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배 시간을 확인 못한데다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가장 가까운 서쪽의 큰고개로 내려갔습니다. 정상아래 세워진 삼각점을 확인 한 후 큰고개로 길이 갈리는 공터에서 조금 떨어진 전망바위를 들렀습니다. 이 바위도 기묘하지만 오른 쪽 건너로 보이는 용화산을 대표하는 거대한 암벽이 일품이어서 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다시 공터로 돌아와 북서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왼쪽 아래 깎아지른 직벽의 거암이 받쳐주는 바위 길에 안전가드를 설치해 놓지 않았다면 평평한 길이지만 마음 졸이며 걸었을 것입니다.

 

 

  마음 편히 암릉 길을 걸으며 범솥말님으로부터 몇 가지 전설을 들었습니다. 장군바위에 있는 움푹 들어간 곳은 한 장군이 화악산에서 여기 바위로 뛰어내려 생긴 발자국이라 합니다. 이보다 더 엉뚱한 이야기는 주전자부리바위에 얽힌 전설입니다. 기우제를 지내려 올라온 주민들이 이 바위에 돼지피를 뿌려놓으면 화가 난 산신령이 이 피를 씻어내고자 비를 뿌린다는 내용인데 이 전설을 통해 산신령도 사람들이 얼마든지 골탕 먹일 수 있는 인격신임을 알았습니다. 하기는 이 산을 다스리는 분은 산신령이 아니고 부처께서 열반하시고 수 십 억년 뒤에 세상에 나타나시는 용화(龍華) 미륵불이실 것이기에 산신령에는 더 할 수 없이 불경스런 이런 전설이 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6시1분 큰고개로 내려가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번 산행의 백미 길은 주전자부리바위가 자리한 암벽 윗길일 것입니다. 이 길 끝자락에 자리한 의자바위(?)는 사진 찍기에 최고의 장소여서 걸터앉아 사진을 찍으며 쉬어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건너편의 수려한 암봉을 배경삼아 사진을 다 찍고도 더 오래 머무른 것은 머지않아 낙남정맥종주 길에 오를 제가 외삼신봉을 지나 암벽길을 내려갈 때 써 먹고자 성봉현님에게서 자일 및 하네스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서였기에, 어렵게 배워 익힌 사용법을 까먹기 전에 써먹고자 조만간 낙남정맥 종주에 나서려고 합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 도착한 큰고개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난감했는데 고맙게도 경기도 오산의 신우리산악회의 채두병회장께서 흔쾌히 편의를 봐주어 이 산악회차로 편하게 춘천시내로 나갔습니다.

 

 

  춘천시내 시외버스터미널부근에서 저녁을 들었습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를 알게 된 세분과 하이맛 친구는 초면이어서 산행 중 조금 서먹서먹했을 것입니다. 뒤풀이가 조촐했어도 분위기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어 2주후에 대구로 내려가 대구팀과 다 함께 수도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고마움의 탑은 또 높아졌습니다. 고마움의 탑을 쌓아준 동행분들과 오산의 신우리산악회에 고마움을 표하며 이만 산행기를 맺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