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산 정상>
 
 
 

그저 바라만보다. <고용산>


 



 

2009. 5. 31(일)


 


 
 

신봉(P) - 쉼터 - 8부능선 - 전망대 - 고용산 정상 (원점)


 


 
 

추억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인가.

 

사랑의 계절 5월 愛의 끝이다.

집을 나서면서 어릴적 고향산인 고용산에 대해 불현듯 추억거리가 떠올려진다. 힘든 시기였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 또한 고된 삶을 아우르며 이어왔다.

딩굴며, 뛰어다니며, 우리들만의 공간으로...

여린 마음을 보듬어 주었던 내마음의 영산. 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처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수호신처럼 고창하게 자리하고 있는 고용산.

   

하지만, 그곳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기는 일, 더없이 좋은 일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애써 떠올리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그냥 추억의 한켠에 머물러 있으리라.

 

해서 애틋하고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아쉬워할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느껴보는 것도 작은 安心일 것이라 생각하니 安穩해지는 마음뿐이다.

 

지나간 추억은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고 했으니까.

또 다시 아로 새기는 추억은 그만큼 재회의 연장이니까.

 

 

 

상봉오르면서.
 
 
 
안골호
 
 
 
 
 


한마음 한뜻으로 가는 봄내음을 아쉬워하며.

 


 

우리과 건강의 날 행사이다. 조용한 가운데 한마음 한뜻을 모아 고용산으로 향한다.

물오른 5월 끝의 봄빛은 愛의 향락을 이루고 있고, 길가의 감로수들은 그 향취에 취하여 앞뒤분간하지 못하고 마구마구 달려 나간다. 어느새 들머리이다.

 

숲과 나무에서 나오는 천연항균물질인 피톤치드까지 한껏 들이마시며 자연인이 되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솔향기에 취해 자적하게 걷다보면 가슴이 탁 트이고 머리가 상쾌해진다. 신록초가 만발한 산마루를 바라보며 자적하게 山路에 기대니 어느새 마음은 그 안에 있다.

 

춘풍에 흔들리는 마음으로 봐서 그런지 봄 햇살에 드러난 속세는 호들갑스러울 만큼 어제 오늘이 다르게 변해간다. 하루 햇살에 앙상하기만 했던 가지에선 온갖 꽃눈들이 송이송이 피어나며, 이렇게 저렇게 소리없이 春香에 취해 피어난 꽃들이 폭죽처럼 만발한 곳도 있다. 또 머지않아 조용하기만 했던 논두렁에서도 그 햇살에 개구리소리가 대풍을 알리듯 풍성하게 들려올 것이다.

야트막한 산, 올망졸망한 산야의 신초들이 아침햇살에 활짝 피고 저녁 그늘에 웅크리고, 또 아침햇살에 활짝 피는 등 절제된 춘기의 경거망동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수없이 반복하며 봄을 되새기고 있었다.

 

황금빛 성성한 산길을 걷다보면 함께하기도 해야 하는 계곡엔 춘색의 芳林들이 낯설지 않게 눈에 뛴다. 조석을 달리해 한기와 온기의 물이 되는 아랫녘의 가벼움을 묵직함으로 알려주려는 듯 웃옷을 벗어야 할 만큼 후끈한 날씨에도 봄의 장막을 그대로 보여준다.

 

5월에 이곳의 鮮인 계곡과 무림의 밭인 林平旋 - 그 단정함을 상상해 본다.

오래된 가뭄 끝이라고 하지만 계곡에는 소리없이 봄의 향응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계곡아래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에는 마음을 씻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봄이 왔건만,  하루아침에 내치지 않은 풍경이라 가는 봄조차도 서운치 않게 배웅하는 고용산의 듬직함이 한없이 느껴졌다.

 

마음의 안식처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신록의 계절답게 풍부한 엽록소의 향기를 마구 내뿜어 그 속에 빨려들게 만드니 자연의 원시처로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산세는 그다지 아름답고 미려할 만 큼 크지 않은 규모지만, 우리의 눈과 마음을 매혹시키기에는 충분한 자양분이 있는 소박한 산이다.

 

전망대 귀퉁이에 앉아 눈을 감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자신도 모르게 완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미풍이 자연스레 다가와 오르면서 내안의 풍경으로 새로운 길로 안내하고, 그 길이 닫힐 즈음이면 또 다른 길을 내놓으면서 우리들을 점점 더 봄의 속대로 빠져들게 한다. 무엇보다 美麗하고 幽靜한 이 산야를 걷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흥분될 것이다.

 

 

 

<멀리 영인산이 연무에 묻혀 잠자고 있다.>
 
 
 
<고향마을 신화리 아냇말골>
 
 
 
 
 
 
 
<서해의 웅장한 모습이 그립다.>
 
 
 
 
 
 
 
 
 


상봉으로 오르는 길은 審美의 場이 되었다.

 

바위미가 현란하고 우아한 노송이 있는 암봉에 들어서면 이 곳의 활기가 생생하게 느껴지고, 산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아마 우리 모두 촉촉한 초록빛의 향연에 놀라면서도 스릴 있는 암봉의 미묘함에 감탄하였고, 바위와 철쭉의 무리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모든 근심과 산정에 대한 열정을 내내 토로했을 것이다. 이 잘록한 9부능선 쉼터에서의 甘美的인 느낌은 고용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白眉라 아니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괘이치 않고 흔쾌히 내어주는 고용의 푸근함이 단연 돋보이는 이유는?

내 마음의 영산이 아니어서 일까...

 

이번 산행의 매력은 느림에 있다. 느림에 익숙해질수록 마음은 그 만큼 편안해 진다. 여기도 들러보고 저기도 들러봐야겠다는 욕심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스쳐 지나는 사소한 풍경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덕분에 이제 막 꽃망울을 피우기 시작한 철쭉화에서 길섶으로 힘겹게 고개를 내민 작은 풀잎 하나까지도 꼼꼼히 눈에 담게 된다.

 

상봉에서 그저 바라만보다.

 

景觀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세우느냐가 다를 뿐, 누구나 좋고 나쁨을 구분하며 세상을 본다. 그리고 멋지고 아름다운 경관에  단연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다. 이때, 확실히 웅장하거나 美麗한 산세는 감동의 울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크기가 반드시 마음을 흔드는 척도가 된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작고 아기자기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광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고용산의 매력이다.

그저 바라만 보았다. - 그 매력을.

 

서해의 무리가 보여주는 독특한 풍광이 이어진다. 상봉에서 주변 서해 특유의 경치를 내려다보는 맛이 보통 짜릿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산자락 주위의 소박한 풍경은 색다른 운치를 가져다주며 春情을 탐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일행들,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니, 아무 말 없이 한참 그 자리에서서 憂愁에 잠긴 표정을 하며 흐르는 시간을 원망하는 눈초리다.

“시간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그리움을 낳는다.”

애잔함이 남는 풍경이여!!

 

봄 안개가 앞을 가린다. 천의 ㅡ 장막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돌아볼 수 있는 여운이 가슴속에 사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현재를 주시하는 山情을 버리고 옛 山情을 돌아보는 여정으로 생각했다. 오늘만은 과거에서 더욱 아득한 옛 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택했으니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온다. 그것은 나의 자신에 알 수 없는 충동적 歸依心이 무한히 잠재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국 이 고용의 산정은 그렇게 지나간 세상과 미래의 세상을 끊임없이 이어 우리의 삶을 본질과 의식 깊숙이 자리한다는 믿음이 앞선 것이다.

 

2009.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