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


          
*산행일자:2009. 5. 2일(토)

           *소재지  ;경기양평

           *산높이  :부용산363m, 청계산656m

           *산행코스:국수역-508봉-청계산-508봉-부용산-전망대-양수역

           *산행시간:10시42분-18시4분(7시간22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20명

           


 

  연꽃의 아름다움은 그 자태보다도 그 꽃이 피어난 환경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진흙탕을 마다 않고 뿌리를 내려 넓은 잎으로 더러운 물을 가린 후 꽃 한 대에 딱 한 송이의 소담한 꽃을 피우는 연꽃은 서양의 장미꽃처럼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부처님의 미소를 빼어 닮은 듯 온화하고 고귀해보여 많은 여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연꽃처럼 진흙탕 환경에서 살고 있는 기생들이 얼굴만 받쳐준다면 연꽃의 또 다른 이름인 부용의 이름을 빌려 쓰려고 애썼을 것이고, 실제로 성천기생 부용의 애절한 상사곡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용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은 기생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올려 진 이름난 부용산만도 세 곳이나 되니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나지막한 부용산들을 일일이  세 본다면 그 수가 꽤 많을 것입니다. 


 

  어제는 고교동문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의 부용산을 청계산과 연계해 다녀왔습니다.

연꽃이 수두룩한 두물머리에서 멀지 않은 이 산이 부용산의 이름을 얻은 것은 먼 옛날의 일이지만 뭇사람들에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어서 저 역시 이제껏 이 산을 오르지 못했습니다. 전철이 국수역까지 들어가 양평의 청계산이 그 들머리에 들어서기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5년 전에 청계산을 처음 올랐을 때는 중앙선 열차가 이 역에서 하루에 한번 밖에 서지 않아 별 수 없이 차를 몰고 가 역전에다 주차시킨 후 4시간 조금 넘게 걸려 청계산을 올라갔다 왔습니다. 작년 12월 개통된 전철이 반시간에 한 대꼴로 부지런히 승객들을 실어 날라 요즈음 여기 청계산의 인기가 서울의 청계산 못지않아 보입니다. 작년 9월에 용문산의 서너치고개를 출발하여 소구니산을 들른 후 한강기맥을 따라 가 청계산을 올랐다가 국수로 하산한 산행기를 “한국의 산하”사이트에 올렸는데 이제까지 접속건수가 총 2980건이나 됩니다. 이름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청계산이 제가 올린 147건의 산행기 중 비슬산-오대산-명지산 다음으로 접속건수가 많아 이산의 인기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양수역에서 가까운 부용산도 청계산이 뜨면서 덩달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해 이참에 이 산으로 하산코스를 잡고 국수역에 집결했습니다.


 

  오전10시42분 국수역을 출발했습니다.

23기의 정하선 선배님을 비롯해 43기의 서석범 후배에 이르기까지 총 18명의 동창들이 한 팀이 되어 청계산으로 향하는 대열을 바라보며 가슴 뿌듯했던 것은 불과 두 해전만 해도 정기산행에 참여하는 동문들이 5-6명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규성 산행대장이 앞장서 안내하는 대로 굴다리를 지나 15분가량 시멘트 길을 따라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 8-9분간 더 걸어 청계산/부용산 안내판이 세워진 정자동 쪽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산길로 들어서자 그새 녹음이 많이 짙어져 오래 숨죽였던 나무들의 약동하는 숨결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시간에 닿는 전철을 놓치고 다음 차로 뒤따라오는 후배 2명을 기다릴 겸 중간에 잠시 쉬었다가 11시28분에 올라선 십자안부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국수역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저희들은 이곳에서 3,165m 떨어진 청계산 정상을 향해 오른 쪽 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12시 정각 508봉에 올랐습니다.

십자안부에서 508봉으로 오르는 능선 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봉우리를 몇 개 넘으면서 해발고도를 300m 가까이 높이는 산행이어서 오랜만에 산에 오른 몇몇 후배들은 벌써부터 숨소리가 고르지 못했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잔뜩 찌푸린 구름이 햇빛을 가려 땀을 식힐 수 있었음이 이 친구들에 얼마간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대로 기다렸다는 듯이 12시가 다 되 가자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보지 못한 꽤 넓은 데크에 비를 가리고자 정병기 동문이 손수 만들었다는  플라이를 치고 그 아래에서 함께 점심을 들고 있는 중 뒤따라 올라온 2명의 동문이 합류했습니다. 추락사고로 빠졌던 정기산행에 다시 참여한 것이 7개월 만의 일인데 잊지 않고 옛날처럼 제 몫의 점심을 따로 준비해서 가지고 온 김주홍 동문이 고마웠습니다.


 

  이 봉우리에 세워진 “형제봉” 표지석이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국립지리원에서 제작한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이 봉우리의 표고가 507.8m라고 적혀있을 뿐이고 정작 형제봉은 이 봉우리에서 북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지도에는 청계산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봉우리도 형제봉으로 되어 있어 이 봉우리까지 치면 무려 청계산 가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봉우리 3곳이 모두 형제봉으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공인된 지형도의 이름을 따라야 합니다. 제가 형제봉 대신 굳이 508봉으로 표기한 것은 이리 해야 혼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시50분 508봉을 출발했습니다.

그새 내린 비로 길이 많이 미끄러웠습니다. 반년 넘게 고생해 이제 살살 산에 다닐 정도로 간신히 몸을 만들어 놓았는데 자칫 잘못해 엉덩방아라도 찧는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도로아무타불이 될 수도 있다 싶어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작년가을 공사 중이었던 송전탑이 그새 완공되어 장대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해마다 개인전을 여는 사진작가이신 선배분의 말씀을 듣고 송전탑 아래 한 가운데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꼭대기를 보며 이 철탑의 구도미를 담아보고자 했으나 사진이 생각보다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흉내라 하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낼 수 있다면 사이비작품들의 범람으로 전문가들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 같아 저 같은 숙맥이 더 있어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13시43분 해발656m의 청계산에 올라섰습니다.

이 산의 고스락은 헬기장이 들어설 만큼 넓고 평평해 508봉처럼 굳이 데크를 만들지 않아도 가릴 것이 없는 최적의 전망지인데 비가 내리는 통에 합동으로 기념사진 몇 장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소나무 바로 앞에 세워진 정상석에 표기된 658m의 산 높이도 지형도의 656m로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상에서 점으로 만난 한강기맥에 저희 산악회도 한북정맥의 8지맥이 모두 끝나는 후년이면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행선지는 양수역 인근의 부용산이어서 일단 점심식사를 하느라 오래 쉬었던 508봉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녁5시에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김주홍동문은 서둘러 국수역으로 하산했고 나머지 19명은 쉬엄쉬엄 508봉으로 이동했습니다. 어찌하다가 앞장 선 제가 508봉 바로 아래에서 꼭대기를 오르지 않고 오른 쪽 밑으로 우회한 것은 이 비를 맞고 3.6Km나 떨어진 부용산을 꼭 가야하느냐는 소수의견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친구 말마따나 그래도 전문산악회인데 이정도의 비로 산행코스를 수정한다면 여타 아마튜어들과 다를 바가 뭐 있겠나 싶어 다시 두 말이 나오지 않도록 쐐기를 박았습니다.


 

  15시 송전탑공사를 위해 닦아놓은(?) 산 중턱의 비포장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509봉에서 고도를 180m가량 낮추어 차도로 내려서는 길이 엄청 급했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무리하다가 다친 허리가 도지면 어쩌나 걱정되어 내리막길 반시간이 제게는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로프를 붙잡고 아무 탈 없이 내려간 제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한 것은 허리가 멀쩡한 몇몇이 저 대신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뒤쳐진 후미를 기다려 대열을 가다듬은 다음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큰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산길로 들어섰다 다시 큰길로 내려오기를 몇 번 거듭해 해발220m대의 목왕리와 신원리로 길이 갈리는 샘골고개(?)로 내려선 시각이 15시53분이었습니다.  고개 마루에 쌓인 돌탑이 옛날에는 이 고개 길이 저 아래 두 마을을 소통시킨 실크로드였음을 일러주었습니다. 


 

  16시20분 해발363m의 부용산을 올랐습니다.

모처럼 짬을 내어 현호색과 아기똥풀 등 빗방울을 머금은 야생화를 사진 찍느라 맨 후미로 쳐졌습니다. 샘골고개에서 부용산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20분을 채 못 올라가 다다른 신원리/부인당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른 곳이 부인당이었습니다. 시집간 첫날밤에 왕 앞에서 방귀를 뀌었다하여 쫓겨난 왕비가 똑똑한 아들 덕에 자리를 되찾았으나 이를 버리고 그대로 살다가 묻힌 곳이 부인당으로 삼각점은 여기에 박혀있었고 부용산의 정상석은 바로 아래 넓은 헬기장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헬기장에서 먼저 오른 선배분이 수고했다며 커피한잔을 건네주어 따끈함과 고마움을 함께 마셨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자리를 옮긴 전망대에서 양수리 쪽을 조망하자 안개로 흐릿한 두물머리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 쳐다보는 것 같다하여 부용산(芙蓉山)의 이름을 얻은 이산이 앞서 오른 청계산보다 한 수 위인 것은 단순히 산이 푸르고 강물만 맑았다면 당연히 청계산(淸溪山)으로 불렸을 텐데 그에다 더해 연못가에 지은 정자인 연당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것 같다 하여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芙蓉)이라는 이름까지 얻었으니 말입니다. 날씨만 좋다면 두물머리의 연꽃들이 이곳에 설치된 망원경에 잡힐 수도 있겠다 싶어지자 누군가가 이름하나는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치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하계산 같다는 이대장의 말을 듣고 얼마 후 하계산표지목이 서 있는 갈림길에서 몇 분 짬을 내어 오른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표지물이 하나도 없어 정말 하계산인지 확인하지 못한 채 내려가 또 다른 전망대에 오른 시각이 17시2분이었습니다.


 

  18시4분 양수역에서 하루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두물머리를 조망하기에는 부용산 전망대보다 훨씬 더 나아보이는 또 하나의 전망대에서도 망원경으로 부용화를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양수역으로 내려가는 길이 평탄한 대신에 길게 뻗어 있어 소요되는 에너지는 가파른 경사길이나 매한가지이겠지만 산길이 편안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빚어내는 색다른 풍경들을 넉넉하게 바라다보았습니다. 전망대에서 20분을 더 걸어 내려선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10분도 채 안내려가 날머리에 다다랐습니다. 청계산과 부용산을 잇는 연계산행은 이렇게 끝났고 시멘트 포장길을 걸어 양수역에 도착해 이번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선배 한 분도 약속이 있다며 전망대에서 먼저 내려가 나머지 18명이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모처럼 주로 바위를 오르는 젊은 후배들과 산행을 함께 해 저도 한 10년은 젊어진 느낌입니다.

지난 가을 바위에서 떨어진 후 바위공포증이 새로 생겨 이제껏 늘 해오던 나 홀로 산행이 겁이 날 정도여서 어떻게든 이 공포증을 치유해야 합니다. 허리에 힘이 좀 붙으면 언제고 한 두 번은 후배들의 록 크라이밍에 따라붙어 바위공포증을 극복해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후배들과 비를 맞으며 장시간 같이 산행을 하고나자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이들이 이어가는 한 경동동문산악회는 영원할 것입니다. 만우절로 시작되는 4월이 노동절로 시작되는 5월보다 여유롭게 보이는 것은 세속의 일이고 산 속에서 만난 자연은 5월이 4월보다 훨씬 푸르르고 싱그럽습니다. 마치 저 후배들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