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338. 8. 7. 일, 흐림

●경로 : 비슬고개~싸리봉~중원산 갈림길~천사봉~용문산~유명산~소구니산~

         농다치

●시간 : 10:50 - 19:35(휴식 포함 8시간 45분)

●홀로 걷는 한강기맥

이틀 연속으로 마신 술 탓인지 계획한 시간에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설악으로의 긴 산행을 포기하고 인근 지역 산행을 하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계속 잠을 청한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는 한강기맥 용문산권 구간을 해보려고 결심을 한다.

마음속에는 한강기맥 종주에 대한 생각이 늘 자리하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농다치에서 유명산을 오르면서도, 비슬고개에서 양 방향으로 잠시 산행을 하면서도,

우선은 용문산 구간만이라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우선 집 가까이에서부터 순서에 상관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하다보면 언젠가는 한강기맥 종주가

완성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 산행시작

저녁에 농다치에서 만나기로 하고 마누라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비슬 고개로 올라간다.

고갯마루에 도착하여 배낭을 챙기고 들머리로 들어간다.

싸리봉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데 몸은 가볍지를 않고 유별나게 땀이 많이 흐른다. 숫제 쏟아진다.

점차 몸이 풀리면 괜찮겠지 하면서 도저히 좋아지지 않는다면 용문산에서 하산하리라고

생각하며 진행을 한다.


도일봉 쪽에서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싸리봉을 지나 그 다음에 있는 봉우리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등산화를 고쳐 매고 계속 진행을 한다.

비슬고개를 출발한지 한 시간 삼십 분 후, 중원산 갈림길 능선에 올라선다.

예상한 시간에 거의 정확히 다다랐고 몸은 점차 풀리는 듯 했다.

지금부터 용문산아래까지는 한번도 다녀보지 않았던 길이다. 혹시나 옆으로 새지나 않을까

정신을 가다듬고 진행을 한다. 동네 산권이라서 지도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백두대간 길만큼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눈에 익은 표시기들이 붙어있어서  한결 낫다.

처음부터 오늘 구간 길에서 크고 작은 봉우리의 수가 얼마나 있는지 헤아리며 진행해 보리라고

마음먹었기에 봉우리를 넘을 때 마다 숫자를 기억하며 진행을 한다.

대략 50미터 미만의 고도차는 숫자에서 무시하기로 한다.

중원산 갈림길이 있는 곳은 네 번째였다.


삼각점이 있는 다섯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자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난다.

나침반을 놓아보니 하나는 남서쪽 방향이고 또 하나는 북서쪽 방향이다.

표시기는 어느 쪽에도 없다. 배낭을 내려놓고 이쪽저쪽 모두 조금씩 내려가 본다.

낡은 표시기 두개가 남서쪽 방향 길과 북서쪽 방향 길이 연결되는 중간지점에 매달려 있고

북서쪽 방향 길 바닥에 낡은 또 다른 표시기 하나가 떨어져 있다.

북서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틀림없다고 확신을 하면서 중간에 매달아놓은 두개의 표시기중

비교적 깨끗한 하나를 떼어서 그쪽으로 매달아 놓고는 배낭을 챙겨서 북서쪽으로 내려간다.

예감은 맞았다.


길옆 바위에 배낭을 내리고 걸터앉는다. 그리고 행동식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 복숭아 캔의

단맛 냄새를 맡았는지 커다란 말벌 두 마리가 날아와서 조용한 오찬 시간을 방해한다.

그들을 피해서 자리를 옮겨 식사를 마저 하고 다시 출발을 한다.


잠시 후, 여섯 번째 봉우리를 향해 가는데 울창한 숲과 옅은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왼쪽으로 산줄기 하나가 보이는 듯한데 아마도 두 번씩이나 오른 적이 있었던

용문산 왼쪽의 암봉, 용문봉이 아닌가 싶었고, 진행방향으로는 엄청나게 높아 보이는

봉우리가 버티고 있다.

싸리봉을 오른 후 두 번째로 진땀을 흘리면서 오르기 시작한다. 심장이 요동을 친다.

정지한 채 숨 고름 없이 봉우리를 오르기로 작정하고 한발 한발 오르기를 잠시 후,

봉우리에 올라서는데 그 곳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곳에도 두 갈래의 길이 나있었다. 하나는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행방향으로 직진하는 길이었다.

표시기는 양쪽 모두에 걸려있고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는 팔뚝 굵기의 나무로 막아놓았다.

저것은 길이 아니라는 표시임에 틀림없다.

진행방향으로 계속 가는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듯 수풀이 잔뜩 우거져서 진행을 방해한다.

산딸기 가시넝쿨과 억새를 발로 밟아서 길을 넓히며 지나가니 다시 길은 트이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잠시 후, 자연석으로 만든 예쁜 정상석이 놓여있는 꼭대기에 올라선다.

‘천사봉’이라고 새겨져 있고 고도가 1004m라고 표시되어 있다.

고도 숫자를 한글로 표기하니 멋진 이름이 된 것 같았다.

산림청 산음리 산림욕장 관리소에서 작년 시월에 설치를 했다고 새겨 놓았는데

정상석의 예쁜 모양이 설치한 사람의 정성이 가득한 것 같았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처음으로 후회가 되었다.

산행 후 개념도를 확인 해보니 문례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산이 바로 그 봉우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개념도에는 고도가 터무니없이 잘못 표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정상에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한쪽은 서쪽 방향,

또 다른 한쪽은 북쪽 방향인데 수풀과 구름 때문에 바깥쪽으로는 그 어떤 윤곽도 볼 수가 없다.

(나중에 확인하였지만 북쪽 길은 봉미산으로 이어지는 길임)

서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방향을 잡고 숲 바깥을 살피며 조심스레 내려가 본다.

5분여를 내려가는데 길은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았고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상하였다.

산 아래쪽으로는 평지인 듯한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내려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간다.

다시 되돌아 올라가는 길은 꽤나 더디다.

천사봉 정상에 올라서서 등산화를 고쳐 신고 최초에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서 내려간다.

견부 갈림길에 도착하여 나무로 막아놓은 길로 다시 내려간다. 고개 아래로 내려서니

다시 표시기가 보이는데 천사봉에서 보았던 표시기들이 그곳에도 붙어있다.

그렇다면 저 사람들도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서 이곳으로 갔다는 말이 아닌가.

잘못된 길에 표시기는 왜 붙여 놓았으며 바른 길에 왜 나무로 막아놓았을까?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천사봉(문례봉)에서는 숲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예쁜 표석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되돌아 올라가서 나무를 치우고 잘못 걸린 표시기들을 바로잡고 싶지만 알바를 하고 난

후인지라 도저히 용기가 없어서 가던 길을 다시 진행한다.

(후답자 산님들께서는 천사봉(문례봉) 견부 갈림길에서 주의를 해야겠다)

 

일곱 번째 봉우리를 넘고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고 올라선 곳이

용문산 정상에서 용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만나는 지점이었다.

잠시 후 아홉 번째 봉우리인 용문산 정상부, 조망을 할 수 있는 바위 위에 올라선다.

그러나 구름 속 심연인지라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바로 바위를 내려서서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하늘로 오르는 구멍이 뚫린 듯한 길을

머리를 들이밀면서 올라서니 울타리가 정상을 막고 있다.

울타리를 따라 나있는 기맥 길은 나무들이 점차 막아가고 있다.

나무를 헤치며 나아가는데 길은 점점 더 나빠진다.

울퉁불퉁한 길에 산딸기의 가시들과 잡목들이 끊임없이 방해를 한다.

이런 상태는 꾸불꾸불한 울타리 옆길을 따라 정상을 통과하여 부대 정문이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된다. 폐수가 흘러내리는 곳은 바닥이 시뻘건 색으로 변하여 악취까지 풍긴다.

이곳을 통과하는데 약 한 시간이나 걸렸으며 정말 고역이었다.

다리와 팔은 가시와 나뭇가지들에 긁혀서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부대 정문에 다다라서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농다치까지 대략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리라고 판단을 하고 유명산을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

부대 정문앞의 마루금 옆으로 나있는 임도를 버리고 마루금으로 진행을 하는데 길은 희미하게

겨우 윤곽만 나있는 정도다. 그 곳을 통과하니 임도와 연결된 곳에 평평하게 깍아 놓은 능선과

만나고 잘려진 마루금 위쪽으로 표시기 두개가 보인다. 그곳으로 올라서서 나아가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숲을 헤치고 나아가니 다시 임도로 떨어지게 된다.

(잘려진 마루금 위로 올라가지 말고 옆으로 나있는 구 임도를 따라가면 됨)

그곳부터는 마루금 바로 옆으로 구 임도길을 따라서 진행을 하는데 그렇게 편한 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설매재에 다다르기 전에 다시 길은 마루금을 타고 이어진 후 고개로 내려서게 된다.


고개에는 오프로드를 하러온 듯한 사람들의 차들이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

등산화를 다시 고쳐 매고 마루금 길로 올라서는데 능선에는 벌목을 한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다.

진행을 하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는다.

삼각점이 있는 오늘의 열한 번째 봉우리를 넘어서서는 능선 상으로 나있는 오프로드 길을 따라

진행을 하는데 그것도 잠시, 우회하는 듯한 오프로드 길을 버리고 마루금으로 올라붙는다.

그곳부터는 작년 가을에 아들과 다녀갔던 길이라 가급적이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굳이

마루금을 타지 않고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나있는 오프로드 길을 이용하여 진행하려 하였으나

온갖 잡풀과 가시 돋친 산딸기 나무들로 가득 메운 길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시 마루금을

타게 된다.

 

조금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유명산은 구름에 덮여가고 있다.

오늘의 열두 번째 봉우리인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를 우회하려고 하였으나 결국은

본의 아니게 또 다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길마저 가리고 있는 수풀로 뒤 덮인 봉우리에는 낡은 산불감시 초소가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용문산 정상에 이어서 또 다시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다리와 팔을 가시에 긁히며 한참을 그렇게 나아가서 오프로드 길로

내려서게 된다.

뒤를 돌아보니 그 오프로드 길은 지난번 대부산에서 유명산으로 진행할 때 이용했던 길이었다.

오늘은 왜 그 길이 보이지 않았던지 모르겠다. 유명산 구간에서는 마루금을 타고 산행을 했던

적이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오프로드 길을 타려고 했건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은 마루금을 다 타고 넘게 되었다.


활공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바람은 세어지는데 활공장에서는

패러글라이더 한 사람이 막 이륙을 하고 있다. 아마 그것을 타고 산 아래로 내려가려나 보다.

패러글라이더를 이륙시키고 내려오는 지프에서 운전자가 언제 하산 할 거냐고 묻는다.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아서 걱정스러워 보였는가 보다.

 

잠시 후 유명산 정상과 소구니산 갈림길, 직선거리로 유명산 정상까지는 100여 미터 정도

되는 거리인데도 정상은 구름에 갇힌 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러 차례나 올랐고 또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를 정상이기에 굳이 지금 정상까지

갈 필요가 없다.

풀밭에 배낭과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점심을 먹을 때 이후로 무려 다섯 시간 만에 엉덩이를

땅에 붙이는 것 같다. 푹신한 풀밭이 무척 편하다.

유명산 정상에서 느긋하게 마시려고 가지고 갔던 맥주를 꺼낸다.

구름에 사위가 닫히고 바람이 몰아치는 오늘의 열세 번째 봉우리인 유명산 정상 기슭에서

병 주둥이에 입을 갖다대고 맥주를 입안으로 쏟아 붓는다. 갈증이 한순간에 달아나는 것 같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시계를 보니 바늘은 일곱 시를 향해서 치닫고 있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후두둑 떨어진다.

유명산 산신령님께 조금만 참아달라고 중얼거리며 소구니산을 향한다.

오늘의 열네 번째 봉우리 소구니산 정상에 도착하여 다시 시계를 보니

오후 일곱 시 십삼 분을 가리키고 있다. 농다치를 향해서 빠른 걸음을 내딛는다.

거의 뛰다시피 산을 내려간다.


잠시 후, 농다치에 내려서니 시간은 일곱 시 삼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로서 오늘 예정에도 없었던 한강기맥 한 구간을 끝냈다.

이것이 씨앗이 되어 한강기맥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처럼 순서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급히 이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편하게, 마음 내킬 때 마다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진행하면서 헤아려 본 봉우리의 숫자는 별 의미가 없다.

지도를 휴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심심풀이로 헤아려 보았고 또 고도계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고도 50미터 이상 오르내리는 봉우리만 헤아렸다 하더라도 정확하지가 않다.

따라서 이번 구간에서의 봉우리 숫자는 측정하는  기준에 따라서, 또 헤아리는 사람에 따라서

그 숫자는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혹시 이글을 읽는 산님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