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고개에서 사나사까지

  

o 산행일시 ; 2008.6.15(일), 연무 있지만 맑음
o 산행구간 ; 비슬고개->싸리봉(812m)->폭산(992m)->문례재->용문산(1157m)->장군봉(1064m)->함왕봉(947m)->

 함왕성터->사나사
o 산행시간 ; 총 8.5시간(휴식시간, 알바 모두 포함), 운행거리 : 약 15㎞
o 교통편 ; 갈 때 청량리역에서 용문역까지 7시발 기차, 8시 50분에 석산리행 버스 타고 비슬고개 하차.
올 때 용천2리에서 트럭 히치, 양평역에서 7시 48분발 기차


'경기의 지붕', 경기 제 4봉인 용문산(1157m)은 800m 이상의 고봉만도 16개를 헤아리는 거대한 산군(山群)이다.

그래서 5년전인가 용문산을 거쳐 용문봉(951m)에서 내려오던 중 용각골로 빠지기 위해 어설프게 길을 벗어났다가

경을 치렀는데 그 이후 용문산쪽으로 갈 때마다 크고 작은 알바를 하는 징크스가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그동안

경험도 많이 쌓였고 이번에는 절대 그렇지 않을거야 하고 느긋하게 출발한 동서횡단 산행에서 또 당하고 말았다.

원래 6월말에 있을 俉森산악회 6주년 기념산행을 대비하여 어비산(828m)과 중미산(834m) 주변을 살펴본 다음

오래간만에 봉미산(856m) 산행을 할 계획이었는데 같이 가기로 한 금강산에게서 몸이 좋지않다는 연락이 왔다.

일요일 날씨가 좋다는데 그러면 설악산 공룡능선 가는 무박산행에 참여할까 싶었는데 풀어헤친 장비를 다시 꾸리고

10시까지 동대문에 나가려니 시간적 여유가 도저히 안 되었다.

그래서 용문산을 대안으로 정했는데 청량리에서 7시에 출발하는 중앙선 첫 기차를 타고 용문역에서 내릴 때까지도

코스를 정하지 못했다. 용문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다문1리에서 곰산(408m)을 지나 용문산에서 뻗은 긴 능선으로

오르고 싶었으나 수풀이 우거진 초여름에 등로도 희미한 산길에 들어섰다간 알바만 하다가 끝날 것 같아,

비슬고개로 가서 고속도로처럼 뚫린 한강기맥 종주길을 타고 사나사까지 동에서 서로 횡단하기로 작정했다.

단월면 석산리행 버스는 하루에 세 번 있는데 첫차는 양평에서 8시 30분에 출발하여 용문에서는 8시 50분에 탈 수

있으니 기차에서 내려  40분 정도 여유 시간에 아침을 먹고 시내 여기저기 둘러 볼 수가 있다. 승객이라곤 등산객 셋과

주민 너댓 명인 버스에 타고 30분 후 비슬고개에 도착하니 낯익은 장승들과 몇 대의 주차된 차만이 보인다.

바지춤을 추스리고 9시 30분에 출발!

용문산이 풍수지리상 봉황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 함왕봉(947m)에서 폭산(992m)에 이르는 능선이 몸통이라면

백운봉(940m)은 머리, 봉미산은 꼬리가 되며 용문봉, 용조봉(635m), 싸리봉(812m), 도일봉(864m)과 중원산(800m)은

좌측 날개이고, 어비산(822m), 마유산(유명산, 862m), 소구니산(800m), 중미산(834m)은 우측 날개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오늘 산행은 봉황의 왼쪽 날개에 올라 몸통으로 옮겨간 다음 봉황의 머리를 향해 종주하다가 우측으로 살짝

내려서는 형국이 된다.

들머리인 임도에서 벗어나 능선에 들어서니 자연의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이 열섬(heat island)현상에 시달리는

서울 주변의 산과 확연히 다르다. 그래도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머리띠 모드로 바꾸고 밤새 생긴

거미줄을 헤치며 급경사를 오른다. 도일봉 가는 갈림길에 올라서니 10시 17분, 도일봉이 1 km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지만 오늘은 미련이 없이 싸리봉을 향해 간다.

능선은 나무로 우거져 시야는 완전히 막힌 상태인데 싸리재를 지난 오름길에서 관중과 조릿대(산죽) 군락이 연이어

산꾼을 반기고 잠시 진행하니 북쪽 봉미산이 잘 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나 처음으로 조망을 즐겼다. 11시 3분, 중원폭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다시 보이고 무심코 계속 가다가 11시 38분, 중원산과 조계골로 갈라지는 이정목을 보고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뭐야?

그때까지 우측으로는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좌측으로 잠깐씩 보이는 산봉우리가

중원산일거라고 짐작했다. 그제서야 주위를 살펴보니 눈에 익은 정맥꾼들의 표지기는 보이지 않고 일반 산악회

표지기만 걸려 있다. 나침반을 꺼내보니 서쪽으로 가야할 사람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망연자실(茫然自失)이라고 했던가? 얼마나 지나친 걸까? 그냥 조계골로 내려가서 물에서 텀벙거리다 가야하나.....

일단 돌아서서 아깝게 내려온 길을 헉헉거리며 되올라 가는데 중원산 가는 단체 등산객이 스쳐 지나간다.

여전히 시야가 막혀 있었지만 용문산이나 폭산같은 큰 산이 좌측으로 얼핏 보이긴 했다. 도중에 좌측에 길이 있어

잠시 확인하고 올라와 한강기맥 갈림길인 770봉에 다시 온 시간이 12시 17분이니 족히 한 시간은 알바를 한 셈인가?

허참, 폭산에서 반대방향으로 올 때는 몰랐는데 기맥길이 U턴하듯이 우측으로 완전히 꺽여 있으니 그걸 모르고

독일병정처럼 앞만 보고 그냥 직진한 것이다. 준비소홀에 대한 벌을 받은 셈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폭산을 향해 출발하니 급한 내리막이다. 12시 43분에 안부에 도착하니 이제부터는 봉황의
날개를

벗어나 몸통인 폭산의 영역에 들어선 셈이다. 한참 힘들게 올라가는데 급하게 내려오던 젊은 산님이 길을 묻는다.

용문봉으로 올라 봉미산 지나 나산까지 종주하는 일행과 헤어져 서울로 가는 길이란다. 일행이 갔다는 코스는 필자가 

진달래 피던 작년 4월에 갔던 길이다. 방향을 돌려 폭산까지 같이 오른 후 용각골로 내려가도록 했다.

1시 36분에 폭산에 들렀다가 바로 문례재로 가니 1시 48분, 조계골 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점심자리를
폈다.

2시 15분, 다시 출발하여 용문봉삼거리를 지난 다음 용문산 북정상을 향하는 기맥길을 벗어나 트래버스하여

용문사에서 올라오는 등로로 합류, 3시 24분 드디어 용문산 정상에 올라섰다!

40여 년간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던 용문산 정상이 작년 11월 개방되었는데 전망대와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2단계 사업으로 얼마전까지도 정상에 오를 수 없었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니 자연친화적으로

잘 만들어진 넓은 전망대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연무는 끼었지만 숨이 막힐듯한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북으로 폭산과 봉미산, 동으로 용문봉, 중원산, 도일봉이, 남으로는 신점리와 연수리에 펼쳐진

그림같은 산하!

10분 정도 정상에 머무르다 장군봉을 향해 출발했다. 정상부에 넓게 자리잡은 군부대 아래로 30분 정도 우회하여

장군봉, 함왕봉 가는 능선에 올라설 때까지 단체 산행객인듯 많은 산님과 마주쳤다. 능선에 올라서서 군부대

초소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용문산 서쪽의 경관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봉황의 우익이 되는 마유산, 어비산,

중미산과 멀리 양평 청계산(658m)까지, 그리고 북으로는 삼태봉(683m)과 통방산(650m)넘어 화야산(755m)까지

장관이 펼쳐지니 가히 '경기의 지붕'이라 할 만하다.

4시 24분, 장군봉에 도착하니 동강난 정상석이 처량하다. 곧 이어 삼각점이 있으나 별 특징이 없는 함왕봉을

지날 때까지 잘 생긴 백운봉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다음 봉우리인 887봉을 지나 10분 정도 내려가니 비로소

백운봉의 멋진 모습을 전망할 수 있는 바위가 나타났다. 백운봉을 보았으니 사나사로 내려가기로 하고 다음

안부 갈림길에서 하산하니 함왕성터가 나오고 6시 정각 사나사 바로 위 계곡에 도착하였다. 백운봉도 안 들렸는데

8시간 반이나 걸렸다는 말인가.... 어쨌든 모처럼 찾은 용문산의 선선한 산상에서 하루를 지내며 봉황의 기를

양껏 받았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풍경을 둘러보며 버스정류장인 용천2리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6시 40분이다. 마침 낡은

트럭이 내려 오길래 손을 드니 마을청년이 선선히 태워 준다. 얼마전까지 남양주시 별내면에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포클레인 기사란다.  다시 한번 감사!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양평역 광장에 앉아 7시 48분 기차를 기다리며 대학 1학년 때 처음 찾았던 양평역의

그때 모습을 회상해 보려고 애써 보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키가 수십 미터나 될 것같은 역광장의 플라타나스가

그때도 있었을까?   물어볼 사람이 없다.....

  

등려군(鄧麗君),  忘記他(그 사람을 잊었어요)

    

버스에서 바라본 도일봉

  

비슬고개  

  

싸리봉

  

원추리꽃

  

관중과 조릿대 군락, 그리고 참나무 숲길

  

봉미산

  

우측에서 오다가 좌측으로 완전 유턴해야 하는 걸 모르고 직진했다~~

  

문례재

  

용문봉, 우측에 중원산과 용조봉, 좌측 뒤에 도일봉

  

폭산과 봉미산(좌)

  

용문사 방향 신점리

  

절고개 지나 멀리 용문까지 뻗은 능선. 11월에 밟아야겠다~

  

용문산 줄기 넘어 중앙에 마유산(유명산)과 우측 앞 어비산, 우측 뒤로 중미산

  

장군봉의 동강난 정상석

  

함왕봉

  

마침내 백운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에 여우봉도 보인다.

  

무성한 풀에 덮인 함왕성 유적비

  

함왕성 옛터

  

이곳에서 땀을 씻고

  

사나사

  

함왕혈엔 오늘도 물이 솟아 오르고

  

활짝 핀 밤나무꽃

  

백운봉에서 용문산까지 능선, 그리고 흰 구름 두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