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2. 3일

                                                   *소재지  :경기양평

                                                   *산높이  :용문산1,157미터/함왕봉947미터/백운봉940미터

                                                   *산행코스:용문사매표소-마당바위-용문산-장군바위-함왕봉

                                                                  -백운봉-백년약수-백안3리 마을회관

                                                   *산행시간:9시50분-17시42분(7시간52분)

                                                   *동행    :이규성, 정병기, 유한준 고교동문 


 

  입춘을 하루 앞둔 어제 고교동문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을 올라 이 겨울을 환송했습니다.

먼동이 트기 훨씬 전의 이른 새벽에 강원도의 조침령-단목령 구간의 대간 길을 걷는 동안 겪었던 영하20도를 밑도는 살을 에는 듯한 혹한도, 호남지방에 극심한 피해를 안겨주었던 엄청난 양의 폭설도 모두 비껴간 올 겨울은 앙칼진 작년 겨울에 비해 너무 온순했습니다. 올 겨울산행 중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소백산의 칼바람과 덕유산의 눈꽃정도여서 이렇게 그냥 끝나는가 싶어 아쉬웠는데 이 겨울의 마지막 날 흩날리는 싸라기눈과 휘몰아치는 삭풍을 용문산 암릉길에서 만나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용문산의 오지랖이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뛰어넘는 것은 동쪽의 산자락에 자리한 고찰 용문사가 이 산의 이름을 빌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됩니다. 설악산도 설악사를, 지리산도 지리사를, 금강산도 금강사를, 또 소백산도 소백사를 품에 안고 있지 못하는데, 유독 이산만은 자기 이름을 본 딴 용문사를 거느리고 있기에 말입니다. 산 낳고 절 낳았지 절 만들고 나서 산이 만들어진 것이 분명 아니라면 절이 산의 이름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겠건만, 산이 내준 땅 떼기에다 절을 지으면서도 산 이름을 그대로 쓰는 절이 거의 없는 것은 예토의 산 이름으로는 서방정토에 다다르기가 힘들겠다고 스님들이 판단할 수도 있었겠다 싶어지자, 용문산이 자기 이름을 그대로 쓴 이 절에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절 앞의 은행나무를 천년이상 지켜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시50분 용문사매표소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청량리에서 용문 역까지는 기차로, 용문사입구까지는 아침9시30분에 용문을 출발하는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울창한 숲을 이루었던 넓은 잎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름날의 영화를 기억하며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길가의 나무들은 아무 말 없이 저희들을 천년고찰 용문사로 안내했습니다. 신라말기 신덕왕 때 창건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 백년가까이 이 절이 겪어온 영고성쇠를 옆에서 지켜본 은행나무가 이제껏 침묵해온 것은 이 나무가 지켜본 내용 모두를 나이테에 담아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1시10분 용각골 중간쯤의 마당바위 옆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용문사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세등등한 함박눈과는 달리 소리 없이 이 땅에 내려앉는 싸라기눈이 제게 다가와 귀에 대고 눈이 그리 많이 오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고 산을 오르라고 속삭였습니다. 먼저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계곡에 싸라기눈이 내리는 대로 그대로 쌓여가 겨울의 두께가 더해지고 있는데 발붙일 곳이 어디 있다고 봄이 벌써 머리를 들이미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몇 개의 나무다리를 건너 다다른 너른 마당바위는 머리 위에 소북이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마치 하얀 식탁보를 덮어씌운 듯 했습니다. 15분을 더 걸어 계곡과 헤어지고 왼쪽의 된비알 길을 오르는 동안 눈발이 거세지고 시야가 좋지 않아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11시52분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반시간 가까이 산 오름을 계속해 능선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암릉길로 접어들어 계곡 안에서 피해왔던 겨울바람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이젠을 찼어도 눈이 제법 깔려있는 암릉길을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 않았고 로프를 잡느라 장갑이 눈에 젖어 손끝이 아려왔습니다. 지난 8월31일 한남금북정맥을 종주하며 가시밭 풀 숲길에서 여름이 심통을 부려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입춘을 하루 앞두고 암릉길에서 싸라기눈을 동원한 이 겨울의 마지막 저항이 저희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12시55분 용문산 최고점에 올랐습니다.

정상은 군부대 안에 위치해 오르지를 못하고 울타리 밖 바로 아래 안내판을 세워놓은 접근가능 최고지점인 신선바위를 올랐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최고의 전망지인 신선바위에서 어제는 희뿌연 회백색 공간만을 조망했을 뿐이어서 몇 커트 찍은 사진이 크게 기대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른 길로 100여 미터를 내려가 장군봉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의 나무의자에서 점심을 들며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3시23분 능선삼거리에서 서쪽 길로 들어서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눈이 많이 쌓여서인지 용문산 정상봉을 완전히 우회하는데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백운봉 3.7Km 전방을 알리는 표지목이 서있는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어 장군봉에 다다르기까지 한 두 사람 지나간 발자국이 남아 있어 길 찾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14시27분 해발947미터의 함왕봉에 올랐습니다.

장군봉에서 상원사를 거쳐 용문사로 바로 내려갈까 잠시 의논한 것은 백운봉으로 가는 방향으로는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전혀 없어 길을 내며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였는데 시간이 충분해 예정대로 강행했습니다. 산 밑에서 계곡풍이 끌어올린 눈들이 고스란히 능선에 쌓여 만들어진 눈 언덕이 꽤 여러 곳에 있어 모처럼 발이 빠지는 깊은 눈길도 밟았습니다. 이미 난 길을 걷는 것보다 새로이 길을 내며 걷는 것이 이리도 신경 쓰일 줄은 몰랐지만 한 편으로는 처음 길을 밟는다는 쾌감도 컸습니다. 장군봉을 출발하여 함왕봉에 이르기까지 20분간은 이렇다할 갈림길이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봉우리삼거리인 함왕봉에 올라서서 지도로 갈 길을 확인한 후 13분간 남쪽으로 전진하여 사나사 행 갈림길에 서있는 표지목을 보고 안도했습니다. 함왕봉에서 40분 가까이 걸어 석성의 잔해(?)인 돌들이 널려있는 능선 길을 지나며 이 돌무더기를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함왕봉-백운봉을 잇는 능선에서 서쪽 아래 해발 700미터  쯤에다 함씨의 시조 분이 석성을 쌓고 왕국을 세웠다 하여 함왕산으로 불린다 하니 방금 지나온 돌길이 산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눈 속에 덮여 있거나 우회길 암릉 위에 있을 삼각점을 세 곳이나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저희들의 현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던 차 산성의 돌길을 지나자 백운봉이 안개를 제치고 제 모습을 내보여 반가웠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경기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문산의 자태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까탈스러운 암릉길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2003년 수둑골에서 백운봉을 올라 장군봉으로 산행하며 산길이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여름산행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함왕봉 출발 50분이 다되어 바람이 못 미치는 안부 아래에서 남은 먹거리를 마저 꺼내 들었습니다.


 

  16시 정각 해발 940미터의 백운봉에 올라섰습니다.

뾰족한 삼각봉으로 이름이 나있어 한국의 마터호른으로 일컫는 백운봉 정상에 서기 위해 가파른 철제계단을 숨 가쁘게 올랐습니다. 쾌속의 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이미 겨울바람이 아니어서 시베리아의 냉기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보다도 기온의 변화에 더 민감한 카메라가 하루 종일 속을 썩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도 이번 산행이 올 겨울에 안녕을 고하는 고별 산행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두산의 돌과 흙을 가져다 만든 통일단을 다시보자 여기 백운봉의 돌과 흙을 갖고 가 백두산에다 제단을 만들어 놓고 빌어야 통일이 당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산 길은 새수미골로 잡았습니다.

몇 친구들이 이내 아이젠을 벗어 넣을 정도로 등산로의 눈이 다 녹아 이제껏 걸어온 길에 비하면 완전히 보너스 길이었습니다. 처음 얼마간 경사진 길을 내려오다가 평평한 능선 길로 접어들어 편안히 걷는 동안 마음이 안온해짐을 느꼈습니다.


 

  16시37분 백년약수터에서 정상에서 들지 못한 캔 맥주를 꺼내 마셨습니다.

약수 물이 샘솟은 지 백년이 넘어서인지 약수가 말라 맥주로 대신했습니다. 아이젠을 벗고 새수미계곡을 따라 하산하면서 얼어붙은 사자바위폭포를 지났습니다. 표면의 물은 얼어붙어도 속살은 그대로인 폭포수가 얼음장 밑에서 준비해온 봄이 입춘인 내일부터 고개를 들것이라 생각하자 사라져가는 겨울이 아쉬워졌습니다. 약수사를 지났고  잘 지어진 목재건물이 들어있는 자연휴양림도 지났습니다.


 

  17시42분 백안3리 마을회관에 도착해 이 겨울을 보내는 환송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택시로 양평역으로 옮겨 기차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감자탕과 반주를 들며 하루산행을 되새겼습니다. 작년 4월 미시령-진부령의 마지막 대간 구간을 같이 뛴 동기 1명과 5년 후배 2명이 다시 모여 함께한 용문산 산행이 힘들었지만 동창애를 다진 보람 있는 산행이었음을 기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