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단상 8>    온달장군은 어디서 죽었을까? (아차산-용마산)


  토요일 새벽은 적막하다. 아내는 어제 직장에서 용평으로 워크샵 겸 스키타러 가고 없어 집안이 더 고요하다. 멀리 충청도 칠갑산으로 훌쩍 떠날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아차산-용마산 연계 산행을 계획하며 홀로 배낭을 꾸린다.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 아차산(287m)은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한다. 현재 아차산의 한자 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혼용되는데,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2가지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들머리 석에는 '峨嵯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올림픽공원 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배낭 속에서 법정스님의 <무소유> 문고판을 빼들자마자 다섯 역을 지나 아차산역에 내린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아차산역에 내리는 배낭 맨 산님들은 두 서넛 밖에 눈에 띄질 않는다. 10여분 걸어 영화사입구에 다다른다. 동의초등학교 담장 길이 끝나자 바로 아차산 생태공원 들머리로 들어선다.


 

 공원에 들어서자 새벽 운동 나온 시민들과 약수터에 물 뜨러온 주민들이 눈에 띈다. 공원 내에는 야생초 밭과 쉼터가 여기저기 잘 조성이 되어 있다. 요술거울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목거울, 볼록거울과 평면거울을 병풍처럼 둘러 세워 여러 가지 모습을 연출시킨다.


 

 아차산 휴게소를 지나 단장한 산책로를 버리고 팔각정 암반 길로 오른다. 금년 봄에 왔을 때 이 암반 길을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일행을 만난 적이 있었다. 위험스러운데도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잡으며 잘 내려온 것으로 기억한다.


 

 팔각정을 지나 해맞이동산 쪽으로 길을 잡는다. 능선 길은 완전히 트레킹코스다. 눈을 왼편으로 돌리면 남산타워를 비롯하여 청계산, 관악산 그리고 북한산이 한눈에 조망된다. 서울 시가지가 둘러 쳐진 산속에 옹기종기 들어 앉아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팔당댐에서 흘러 온 물이 한강 물이 되어 구리시와 서울시를 가르고 있다. 멀리 용문산이 보이고 가까이엔 예봉산과 검단산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한 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말발꿉 소리가 들린다. 환청인가. 온달 장군이 신라와 아차산성에서 싸우다가 신라군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는 전설때문인가.(이이화님의 <한국사이야기>참조)


 

온달 장군이 죽었다는 곳은 아직도 학계에선 논란이 일고 있다. <삼국사기> 온달열전에는 온달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阿旦城之下 爲流矢所中 路而死 阿旦城 

                    (아단성 아래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길에서 죽었다.)


 

 여기에서 아단성은 아차산성이 아니고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설도 있다.(신채호님의 <조선상고사>참조)


 

 지난 역사에서 깨어났다. 다시 발길을 옮긴다. 한 참을 가다보니 또 생각은 지난 역사 속으로 빠져든다.   서기 286년 백제의 책계왕이 고구려 서천왕과 영토 싸움을 벌린다. 삼국시대 당시 한강 유역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아차성 줄기에 고구려의 침구를 막기 위하여 한강 북쪽에 방위성을 쌓는다. 이 성이 바로 아차성이다. 나는 지금 이 길을 걸으며 당시의 전쟁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전쟁은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 영토확장이나 식량확보 또는 문화적 욕구의 명분이나 실리가 전쟁의 정치적 동기나 목적일 것이다. 이라크전쟁처럼 오직 이기는 데만 집착하다 보면 사회적 룰이나 인간성도 말살되고 후세에 큰 재앙으로 돌아 올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발길은 어느덧 아차산 4보루에 닿는다. 이곳은 1500여 년 전에 고구려 군이 주둔

했던 전략적 요충지로서 1997년부터 1998년 까지 구리시 문화원과 서울대학교 조사단에 의하여 발굴 조사되었다는 팻말이 서 있다. 건너편에 용마산이 어서 건너오란다. 처음으로 용마산 오르는 길이 오르막길이다. 헬기장에 도착하니 구리 방면에서 산객들이 간헐적으로 올라온다. 또 산악자건거를 어떻게 끌고 왔는지 두 명이 땀을 닦다 이내 타고 내려간다


 

 용마산 삼각점에 구조물이 서있다. 중곡동 쪽에서 노인 산객 몇 분이 올라온다. 삼각산, 수락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여기 까지 대충 산길로 편도 3km 정도 될 듯 하다. 중곡동으로 하산하려다 마음을 바꿔 원점 회귀를 한다. 왔던 길을 역순으로 가며 다시 서울 시내를 돌아보고 또 첩첩이 쌓인 가깝고도 먼 산들을 바라보며 무학대사의 한성 도읍을 생각하며 산길을 걷는다.


 

 돌아가는 산길엔 갑자기 산객으로 만원이다.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산객님들이 많다. 산이 높지 않고 아차산-용마산 연계산행을 해도 서너 시간이면 족하기 때문이리라. 나이와 건강과 산을 생각하며 산책하듯 내려오는데 스쳐 지나가는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2004.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