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주변 산줄기, 망우리 묘지에 쌓인 깨끗하고 하얀 눈-

 

 

阿且山城을 찾아서(아차산-용마산-망우산 : 설날 두번째)

2013008008호        2013-02-11()

 

자리한 곳 : 서울 중랑구, 경기 구리시

지나온 길 : 아차산역-만남의 광장-아차산성-아차산-용마산-용마산갈림길-보루길(구리둘레길)-망우공원묘지관리소-버스정류장

시간및거리: (14:35~18:09) 3시간 35(산행거리: 12km) 진출입포함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날       씨 : 미세먼지 농도 높지만 맑음

 

산행전야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은 아들놈과 집식구를 대동하고 자택과 80m가량 떨어진 처가에 들려 홀로계신 장인어르신(86)께 세배올리고 저녁상을 받았는데 연로하신 아버님께서 소주 한 병을 내다주셔서 가볍게 비우고 귀가해 일찍 잠을 청했지만 과음후유증으로 뒤척거리느라 수면부족으로 극심한 컨디션 난조 때문에 계획했던 예봉, 운길산행이 무리여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 컨디션이 회복되어 고도차이가 크지 않고 능선에서 한강과 구리 하남 능선의 조망이 일품일 뿐 아니라, 북한, 도봉, 수락, 불암산이 수도 서울시가지를 보둠은 전망이 매우아름답고 특히 한나절 정도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산행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오늘 산행최적지로 물색해 정보를 알아보려 하는데 아침부터 집식구가 컴퓨터를 점령하고 기다려도 비워주지 않아 하는 수없이 중식 후 간단하게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13:10)

 

산행스케치

응암역(지하철 6호선)에서 10여분을 기다려 봉화산역으로 들머리를 잡았으나 열차가 달리는 도중에 마음이 변해 공덕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해 아차산역 2번 출구로 나와 배낭을 내러놓고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활동이 편하도록 복장을 꾸리고 가벼운 워밍업으로 도로를 따라간다.(14:35)

 

 

-만남의 광장 아차산 생태공원-

 

사거리에서 도로이정표 지시에 따라 좌회전 후 직진하다 삼거리갈림길에서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서 잡상인들이 도로를 점거한 동의초등학교 철제울타리 보도따라 정문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생태공원에서 사슴들이 뛰놀고 만남의 광장에는 아차산종합안내도와 아차산의 역사 유적을 안내하는 고갯마루에 이른다.( 14:51) 

 

阿且山城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둘레 약 1,125m이다. 아차산(阿且山: 아차산(峨嵯山))의 남쪽으로 경사진 산허리의 윗부분을 둘러쌓은 테뫼식산성으로 현재 동··남쪽에 문지와 수구터가 있고, 북쪽과 서쪽·동쪽 등의 회절(回折)하는 곳마다에 곡성(曲城) 겸 망루터가 있다. 일명 아단성 (阿旦城) 또는 아차산성(阿且山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으로도 불린다.

축성 연대는 백제가 한강 유역에 도읍하였을 때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하여 쌓았다는 견해가 있다. 산성은 표고 205m의 산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동남의 한강변 쪽으로 경사진 산허리의 윗부분을 둘러쌓았는데 규모가 매우 커 성내에 작은 계곡이 있다.

성벽의 구조는 기복적으로 삭토법(削土法)에 의하여 대체의 형태를 축조한 뒤 그 뒷부분을 따라 돌아가면서 성벽의 내외협축(內外夾築)으로 쌓았고, 성벽 바깥쪽의 아래는 다시 계단식의 경사가 완만한 보축을 돌리고 있다. 현재는 석축 부분이 무너져 토석혼축(土石混築)과 같은 외형을 이루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밖에서 보면 평균 10m정도이지만 그보다 더 높은 곳도 있다. 내측에서는 12m 내의 높이로 보이지만 흙속에 묻혀있는 성벽은 석축이 24m의 수직으로 남아 있다. 수구(水口) 부근은 평탄해져서 내벽은 남아 있지 않으나, 기초 부분은 묻혀 있으리라 여겨진다. 성밖으로 강변 나루터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는 좌우 양편의 지형을 이용, 삭토(削土) 혹은 판축(版築)하여 성벽을 연장하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나, 지금은 주택들이 들어서서 그 원형을 잃게 되었다.

특히 이 산성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남쪽에 있는 풍납리토성(風納里土城)과 함께 백제 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도하처(渡河處)를 수비하기 위하여 쌓은 중요한 성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삼국사기(三國使記)에 기록된 백제 시대의 유명한 아단성(阿旦城) 혹은 아차성(阿且城)으로 비정하고 있다. 한편, 백제(百濟)의 수도 한산(漢山)이 고구려(高句麗)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盖鹵王)이 이 성 아래에서 피살되었으며, 고구려(高句麗) 평원왕(平原王)의 사위 온달(溫達)이 죽령 이북의 실지(失地)회복을 위하여 출정하여 신라군(新羅軍)과 싸우다가 역시 이 성 아래에서 전사하였다는 역사적 전설이 성안의 샘을 온달샘이라하여 전해지고 있다.

성안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유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성터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둘레 약 1,125m이다. 아차산(阿且山: 아차산(峨嵯山))의 남쪽으로 경사진 산허리의 윗부분을 둘러쌓은 테뫼식산성으로 현재 동··남쪽에 문지와 수구터가 있고, 북쪽과 서쪽·동쪽 등의 회절(回折)하는 곳마다에 곡성(曲城) 겸 망루터가 있다. 일명 아단성 (阿旦城) 또는 아차산성(阿且山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으로도 불린다.

축성 연대는 백제가 한강 유역에 도읍하였을 때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하여 쌓았다는 견해가 있다. 산성은 표고 205m의 산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동남의 한강변 쪽으로 경사진 산허리의 윗부분을 둘러쌓았는데 규모가 매우 커 성내에 작은 계곡이 있다.

성벽의 구조는 기복적으로 삭토법(削土法)에 의하여 대체의 형태를 축조한 뒤 그 뒷부분을 따라 돌아가면서 성벽의 내외협축(內外夾築)으로 쌓았고, 성벽 바깥쪽의 아래는 다시 계단식의 경사가 완만한 보축을 돌리고 있다. 현재는 석축 부분이 무너져 토석혼축(土石混築)과 같은 외형을 이루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밖에서 보면 평균 10m정도이지만 그보다 더 높은 곳도 있다. 내측에서는 12m 내의 높이로 보이지만 흙속에 묻혀있는 성벽은 석축이 24m의 수직으로 남아 있다. 수구(水口) 부근은 평탄해져서 내벽은 남아 있지 않으나, 기초 부분은 묻혀 있으리라 여겨진다. 성밖으로 강변 나루터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는 좌우 양편의 지형을 이용, 삭토(削土) 혹은 판축(版築)하여 성벽을 연장하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나, 지금은 주택들이 들어서서 그 원형을 잃게 되었다.

특히 이 산성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남쪽에 있는 풍납리토성(風納里土城)과 함께 백제 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도하처(渡河處)를 수비하기 위하여 쌓은 중요한 성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삼국사기(三國使記)에 기록된 백제 시대의 유명한 아단성(阿旦城) 혹은 아차성(阿且城)으로 비정하고 있다. 한편, 백제(百濟)의 수도 한산(漢山)이 고구려(高句麗)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盖鹵王)이 이 성 아래에서 피살되었으며, 고구려(高句麗) 평원왕(平原王)의 사위 온달(溫達)이 죽령 이북의 실지(失地)회복을 위하여 출정하여 신라군(新羅軍)과 싸우다가 역시 이 성 아래에서 전사하였다는 역사적 전설이 성안의 샘을 온달샘이라하여 전해지고 있다.

성안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유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성터로 여겨지고 있다.      -문화재청-

 

 

 

 

 

 

 

 

 

 

 -만남의 광장에서 해맞이광장 까지-

 

계사년 새해 둘째날 아차산 약수터에서 역사유적지(선성복원 완료)에서 돌담을 바라보며 낙타고개를 넘어 해맞이광장으로 올라서면서 부터 가벼운 차림의 가족단위 산객들을 자주만나며 갈림길 한적한 곳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수천 년을 말없이 흐르고 있는 한강을 가로지른 올림픽대교를 내려다보며 해맞이광장에서 특이하고도 거북한 안내판(아차산 명품소나무 제1)에서 느낀 유치함을 털어버리고자 전망데크에 올라서 고산처럼 느껴지는 용마산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고 서울과 경기도 경계능선을 따라 거대한 시설물(저수시설)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을 내려다보며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스쳐 멀리(미세먼지 농도 높아 시계 짧음) 흐릿하게 아른거리는 삼각산(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과 인사하며 나무계단을 내려서는 도중에 단체 산객과 교행하며 서로에게 불편함이 덜 하도록 노력하며 이정목(용마산정상 400m / 망우공원묘지관리소 3200m)에서 용마산으로 방향을 잡아 온갖 운동시설물들이 즐비한 안부를 뒤로하고 용마산정상안부에 올라선다.(16:18)

 

 

 

 

-용마산 시설물에 바라본 풍경-

 

 

나뭇가지의 방해로 국립공원북한산지구 도봉산 능선을 온전하게 카메라에 담아보려는 욕심으로 우측능선으로 100m가량을 내려서 할머니가 손자를 보듬듯 도봉산의 넉넉한 능선이 서울의 동부시가지 일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풍경을 눈에 담고, 사각철탑의 보호를 받고 있는 서울에 두 개뿐인 대삼각본점(1등삼각점)을 확인하며 탁 트인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이정목(용마산정상 400m / 망우공원묘지관리소 3200m)으로 복귀한다.(16:35)

 

 

 

 

 -용마산 대삼각본점(1등삼각점)에서 바라본 풍경-

 

 

아차산성과 망우산에 얽힌 수많은 얘기들을 상기하며 阿且山城용마산제5보류 안부를 경유해 돌탑두개가 나란히 서있는 부드러운 능선을 트레킹 하는 기분으로 안도현님의 우리가 눈발이라면멋진 시한 수를 감상하는 여유를 갖으며 이곳저곳 전망이 뛰어난 모든 곳을 빠트리지 않으며 산불감시초소를 자나서 순환도로(아스팔트포장)가 지나가는 쉼터(사각정자와 긴 의자가 설치됨)에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눈이 소복이 쌓인 언덕으로 올라서니 묘지들이 즐비한 구리 둘레길을 만나며 영면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깨끗하고 두꺼운 눈이불의 보온성이 어떠한지 여쭈어 보지만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구리둘레길이 도로와 만나는 굽은도로에서 신발속의 발을 압박하는 아이젠을 벗고 스틱을 접는다.(17:43)

 

 

 

 

 

 

-멋진 시와 함께 구리 둘레길 트레킹으로 망우리 공원묘지-

 

 

살얼음으로 미끄러운 도로를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도로에서 애완견을 대동하고 산책 나온 산객과 검정털이 풍성한 푸들이 갑자기 나를 보고 짖어대 말리며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덕담을 주고받으며 망우공원묘지관리소의 대형안내도 뒤 화장실에 들렸으나 물 사용이 금지되 씻지 못하고, 도로좌측 계단을 내려와 만난 온기가 흐르는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로 대충 씻고 복장을 단정히 갖추고 얼어붙은 눈길을 따라 큰길 횡단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청량리역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설 연휴 두 번째 산행을  동내 산행으로 접는 아쉬움을 달랜다.(18:09)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2013-02-23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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