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산 ․ 아차산 산행기/서울 外四山 시리즈1

서울의 외사산(外四山) 중에 좌청룡에 해당한다는 용마산 가는 길은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오늘의 일정은 용마산으로 해서 아차산까지 종주하는 것이다. 나의 아내의 유랑의 남편과 함께-.

*.왜 용마산이라 하였을까
면목동(面牧洞)은 용마산 기슭에 있는 동네다.
한자 ‘面牧’(면목)은 목장 앞이라 풀이할 수가 있다. 앞(前)이란 뜻의 ‘面’(면)에다가 목장 ‘牧’(목) 자이니 목장 앞이란 뜻이 되고 이는 목장 문인 牧門(목문)이란 말을 유추하여 낼 수가 있다. 문헌을 찾아보면  이곳이 조선시대 국립목장인 살곶이목장 터라는 말이 나온다. 용마(龍馬)란  적토마처럼 잘 달리는 좋은 말을 말함이니 그래서 용마산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 같다.


전철2번 출구로 나와서 빙글빙글 멋지게 돌아내려가는 길로 해서 시작되는 층계를 오르니 거기가 바로 용마폭포공원이다. 당초에는 서울 시내 건설공사용 골재 채취장이었던 것을 서울시가 그 암벽을 이용하여 동양최대라는 51m 높이의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좌우로 폭포가 있는데  좌측이 21.4m의 청룡폭포, 우측에는 21m의 백마폭포가 오전 오후 2차례씩 그 장엄한 세계를 연출한다 한다. 그 밑에는 700여 평의 연못이 있고-.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오라는 것인가. 시간이 맞지 않아서 안복(眼福)을 누리지 못하고 건폭(乾瀑)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용마배수지 위에다가 만들어 놓은 운동장 트랙에서 걷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등산로를 물었더니 엉뚱한 곳을 향해 손짓 한다.
‘그렇지, 길은 눈동자가 똑바로 박힌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 거지.  잘못된 대답에 고생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여기 올라오는 길에 지팡이를 짚고 가는 노파에게 저 아파트가 무슨 아파트냐고 물으니까 4동 아파트라고 하지 않던가.’
운동장에서 내려와 현대아파트 정문을 지나 큰길로 나와서 그 아파트가 막 끝나는 곳에 층계가 있어서 오르니 거기가 바로 등산로 입구였다. 이곳은 용마산 여러 가지 등산로 입구 중에 가장 멋진 길이 시작되는 곳인데 표지가 없어 지나칠 번하였다.
둥근 나무 그대로를 엮어 만든 층계 길은 오르내림 없이 정상까지 1.200m 되는 지루한 길이 계속되고 있었다. 태풍이 막 비껴가고 있는 모양인데 왜 이리 더울까. 오늘이 하지(夏至)라서 그런가 보다.

10분도 안 올랐는데 벌써 찬란한 노원구 쪽의 조망이 자꾸 뒤돌아보게 한다.
저기 보이는 집들로 둘러싸인 꼭대기에 안테나 탑이 보이는 짙푸른 산이 봉화산이고, 그 뒤의 오른쪽 산이 불암산, 그 뒤 왼쪽에 흐릿한 커다란 산이 수락산이다.
봉화산(160.1m)은  일명 '봉우재'라고도 하는 평지에서 돌출하여 삼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이다. 그 이름처럼 양평에 있는 한이산으로부터 봉수로 연락을 받아 남산에 전달해 주던 봉화대가 있는 봉화산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서울시기념물 15호로 아차산 봉수대를 복원하여 놓았다는 곳이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요, 용마산은 저 봉화산까지 계속 연결된 하나의 산이었는데, 도로가 생기면서 저렇게 능선이 잘린 것이지요.”
면목동이 고향이라는 60대 노인의 이야기다.

바위 길이 시작되더니 돌탑이 보인다. 마니산에서, 태백산 문수봉, 치악산 정상 등에서 보던 원추형 돌탑이다.  무슨 한이 저리 깊어 무슨 사연을 기원하려고 저리 쌓은 것일까. 정상인가 보다 하였더니 정상은 더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지, 서울 내사산 외사산 중에서도 북한산, 관악산 다음으로 높은 산인데 그렇게 쉽게 정상을 열어 주겠는가.

조금 더 오르니 중량천을 중심으로 한 도심의 조망이 전개 되는 것이 슬라이드를 보는 듯 올라갈수록 진풍경이 전개 된다.  한강의 새끼 강이라 해서 '샛강'이라고도 하고 한강 위쪽에 흐른다 해서 '한내'라고도 하던 중량천이 간밤에 온 비로 강폭을 넓혀 가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그림 같은 조망은 무성한 숲의 어린이대공원 넘어 한강이, 그 건너 장구모양의 멋진 잠실종합운동장이, 거기를 지나 멀리 이 산행 다음에 가기로 한 관악산이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다.

아름다움이 머문 자리
용마봉 타고 서서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또 담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의 하나
우리 수도 서울을.
            -용마산에서


며칠 전에 남산 정상에 올랐더니 이등삼각점이라는 탑이 있고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다.
'이 기준점은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시설입니다. ' 그런 것이 서울에 또 하나 있다더니 여기서 보게 된 것이다. 산을 다니다 보면 봉우리에서 보게 되는 짧은 기둥 같은 네모진 석조 구조물이 여기서 말하는 전국에 일정한 간격으로 만들어 놓은 16.000여 점이 기준점을 위한 표시의 하나였나  보다. 그것이 용마산 정상에는 삼각철탑 구조물로 높이 서 있었다.



대한제국 융희4년(1910년) 설치하였다는 이 대삼각은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국민의 주요재산인 토지의 경계를 정확하게 결정하는 지적측량의 기준점이 되는 중요한 국가시설물인인 것이다.

*. 용마산인가, 용마봉인가

용마산 정상 바위 위에는 섭섭하게도 어느 개인이 새긴 듯한 ‘348M'란 음각 외에는 정상 표지석이 없다.
여기 오기 전부터 의문 하나가 있었다.
'용마산'인가 '용마봉'인가 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봉(峰)은 산(山)의 하위 개념이다. 하나의 산은 여러 개의 봉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랑구청 홈페이지에서는 중랑구 소개 중 용마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우리 고장의 가장 높은 산인 해발 348m의 용마산은 아차산의 최고봉으로 면목동 동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망우리공원, 중곡동간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를 통해 망우리에서 아차산 성을 거쳐 어린이대공원 후 문 근처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용마산은 아차산의 최고 봉’이란 말은 비문법적인 표현이다. ‘용마봉은 아차산의 최고봉으로’라고 해야 호응관계가 성립된다.
용마산에서는 남동쪽 하남시에 검단산(650m)이 보이고 그 같은 능선에 용마산(595.7m) 있는데 그 용마산을 서로 마주 보면서 이 산을 용마산이라고 했겠는가. 게다가 아차산은 삼국시절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다툼이 있던 국경의 요새로서 아차산성이 남아 있으니 서울의 외사산을 용마산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서울시의 홍보는 아차산으로 고쳐야 한다.
고양시 고봉산에서 출정한 온달장군이 아차산 전투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거나, 백제의 개루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아차산 전투에 패하여 죽고 백제의 서울을 공주로 옮겼다는 역시적 사실만 보아도 용마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차산의 한 봉우리가 용마봉이고  서울의 외사산 중 좌청룡이 아차산이라고 해야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명이 용마산으로 굳어졌으니 어쩌랴.
용마산 정상에서는 서울의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이 거의 다 보였다.

그 중 남산을 최근에 인왕산에서도 보고, 낙산에서 보더니 오늘은 용마산에서 보고 있다. 보라, 저 말 등 모양의 동서로 늘어선 서울 남산의 멋진 능선을.
적지 않은 세상을 둘러본 내 눈에도, 많은 국내산을 다녀본 마음에도 언제나 고향처럼 평온하게 다가오는 안산(案山)이 남산이었다.



이제 나는 아차산을 향하고 있다. 정상에 선 이정표를 보니, 용마산에서 아차산공원입구까지는 3.401m 거리다. 그러니까 용마산 처음부터 아차산 입구까지 종주 길은 4.601m를 걸어야 된다.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숲 바위 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 쪽이 발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아차산이 널리 알려지게 된 가람 이병기의 '아차산'이란 시조다.
그러나 지금의 아차산은 호젓한 길이 아니다. 발길에 부딪치는 아차산성 길은 빙빙 둘러 못 들어오게 울타리로 막아 놓았고,

그 설명은 묻지 않아도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도 곳곳에 표지판에서 안내하고 있었다.

그 아차산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가 양쪽에서 하늘을 가려 주는 시원한 하산 길이었다. 정상 바로 밑의 체육시설 단지를 지나니 나뭇길 사이에 그림 같은 헬리콥터 장이 있고  

그 조금 아래에 갈림길이 있다. 왼쪽으로 가면 구리시요, 오른쪽으로 가면 워커힐 방면인데 이렇게 중요한 갈림길에 그 흔한 표지판이 없어서 등산객에게 물어야 했다.  
워커힐(Walker Hill)이란 워커 장군의 언덕이란 뜻이다. 6.25사변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무공을 세우고 전사한 W.H 워커 장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명명한 이름이다.
거기 가면 풍전등화 같던 6.25사변에서 이 나라를 구해준 맥아더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서 더그러스 맥아더 하우스 등 역대 사령관들의 이름이 더 있어 한미우호를 뒤돌아보게 한다.

안부를 지나 오름길은 싱겁게 얼마 되지 않은 곳에 다시 또 헬기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이곳을 정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광진구 광장동, 구의동 및 중곡동 일대에 있는 아차산을 고유지명으로, 아차산과 아차성은 예로부터 평강 공주와 온달장군의 사랑과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으로 해발 285m밖에 되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삼국시대의 전략요충지로 알려져 있다. 구리시 아치울에서는 해마다 온달장군 추모제가 열린다.”      -광진구 ‘아차산 안내‘

여기서 ‘285m밖에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라는 광진구의 홈페이지의 말을 그대로 따르면  정상이란 이 헬기장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아차산이란 산 높을 峨(아) +우뚝 솟을 嵯(차), 峨嵯山(아차산)인데 높이도 그렇지만 이 헬기장은 정상치고는 우뚝 솟은 곳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아차산의 옛날 고구려 시대의 보루(堡壘)를 정성 들여 그림과 함께 설명해 놓고 있어  비가 오고 있는데도 카메라를 열게 하였다.
정상이라는 헬기장을 지나니 크도 적지도 않은 소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환상적인 삼림로를 만들어 등산객을 삼림욕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데, 고맙게도 광진구에서 세워 논 '산림의 혜택'에 관한 글이 자연사랑을 깨우치게 한다.

"우리 국토의 65%는 산림입니다. 우리나라 숲이 1년 동안 베푸는 혜택은 돈으로 환산하면 34조6,110원으로 국민 한 사람당 78만원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산림이 저장하고 있는 물의 양은 전국 9개 다목적 댐 저수량의 16배에 달하는 180억 톤에 이릅니다.
잘 가꾼 산림은 보이지 않는 산소 공장으로 1ha의 산림에서 연간 탄산가스 16톤을 흡수하고 산소 12톤을 발산합니다. 이 산소 12톤은 44명이 1년간 호흡할 수 있는 양입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산하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사람이 마시면 혈압 강하, 강장, 거담, 이뇨에 아주 효과가 큽니다."

건강을 위해 산을 자주 오르다 보면 산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경지에 이르면 건강은 자연이 따라오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인간의 이상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이었다. 그러나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불로(不老)란 늙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이보다 젊게 산다는 뜻일 꺼다. 그래서 늙음의 표징이 흰 머리라서 화장하듯이 염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음도 늙음도 어린이가 갑자기 크지 않듯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위서부터 아래로 서서히 오는 것 같다.
머리가 백발이 되기 시작하고, 눈이 침침하여 지며, 해가 갈수록 하나씩 이가 빠진다. 거시기는 머시기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서 있기를 싫어하게 된다. 그 다리를 튼튼히 하는데 등산보다 더 좋은 것이 다시 또 있겠는가.
한 마디로 불로장생이란, 나이보다 젊게 사는 것이 장생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강을 빼놓고 서울을 말할 수가 없다. 서울의 아름다움은 한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한강의 아름다움을 여러 방향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아차산 이외에 다시 또 있을까. 아름다운 한강에서 가장 멋진 다리라는 올림픽대교가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 십장생의 하나인 멋진 소나무 한 구루가 길을 막는데 그 옆에 동그란 단을 만들고 가운데에 돌 하나가 서 있다. 거기에 쓰였으되 새천년 해맞이 소원 글이다. "꿈과 희망의 소나무  '새천년의 소망 기원과 해맞이 기념 200년 광진구'"

저기 저  소나무 되어
해처럼 여는 아침
하루를 희망하는
꿈으로 살고 싶다
영원한
한강 물처럼
아름다운 광진구서



그 아래 팔각정도 이 내 마음 같은가. 태극기 높이 달고 한강을 향하여 서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