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7년12월9일 07시20분 양재역서초구청 건너편

*산행코스 : 무럭고개-왕방산-왕방산1.6km지점-깊이울유원지-고향일번지식당 

*산행시간 : 가림산악회 32명 3시간40분

 

오지산행을 전문으로 했던 안내산악회에서 가까운 포천의 왕방산에서 송년산행을 한다기에 모처럼 참석하기로 하고 차가 대기하고있는 서초구청건너편으로 나가니 산행대장을 빼고는 아는사람이 별로 없다.

차가 출발하여 축석령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무력고개에 도착을 하니 물어고개약수터(問禮峴藥水)간판에 설치되어있는 약수터가 찾는사람이 없이 쓸쓸히 산님들을 맞이한다.(10:04)                        

왕방산은 동두천시와 포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포천의 진산(鎭山)이며, 포천동 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다. 한자로 왕방산(王訪山)이라 쓰는 것은 왕과 관련된 두가지 전설이 전하여 오기 때문이다.

신라 872년 무렵이었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산에 머물고 있을때 헌강왕이 친히 행차라여 도선을 격려하였다 해서 왕방산이라 했다. 함흥차사(咸興差使)와 연관된 전설도 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왕자들의 골육상쟁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왕방사(지금의 왕산사)에 며칠동안 머물렀다 해서 왕방산이라 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왕방사 아래에서 왕을 경호하던 병사들이 야영했다는 마을을 호병골(護兵洞)이라 불렀으며 왕방산과 서북능선상의 주봉인 국사봉의 계곡아래 깊이을 마을에서는 국사(國師),도원수(都元帥),정승들이 모여 국사를 논의했다고 한다.

잔설이 깔려있는 산길에 접어드니 “왕방산 입구, 정상4.8km"의 이정표와 ”왕방산 산행안내도“가 이곳이 왕방산 들머리임을 알리고 있다. 눈이 쌓인 산길은 여름에 무성했던 잎이 모두 떨어져 발아래 폭신한 양탄자를 만들어놓았지만 오늘은 잔설 때문에 낙엽이 미끄럼틀 역할을 하면서 산님들을 힘들게 만든다.

낙엽이 깔린 눈길의 경사길을 오르자니 발에 힘이 들지만 10여분만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하니 길은 평탄한길로 이어지면서 “정상4.4km, 무럭고개0.4km"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오늘따라 산길왼편의 포천읍방향이 아름다운 운무에 쌓여 운무의 향연을 펼치면서 한폭의 동양화을 만들어 산님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못내 아쉬움감이 있어 전망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면서 부지런히 산길을 오르지만 좀처럼 그 멋진모습을 시원스럽게는 드러내지를 않는다.

“무럭고개1.0km,정상3.8km"지점에 도착하여 잔설과 낙엽이 쌓인 산길을 봄날같은 포근한 날씨에 오르자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여분만에 된비알길이 10여분 이어지다 이내 산길을 부드러워지고 무럭고개1.6km지점에 도착하니 ”한국아파트,천주교3.7km“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을 한다.

운무의 향연을 벌이던 안개는 점점 걷쳐가면서 운무속에 포천읍이 서서히 조망되기 시작한다. 정상2.9km지점에 도착을 하니(10:50) 깊이울유원지(깊이울명품 오리마을)1.1지점인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는 안개에 쌓인 포천읍이 서서히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오른편으로는 하얀눈을 뒤집어쓴 능선의 모습이 멋스런모습으로 산님들에게 인사를 한다.

왕방산은 깊이울유원지의 탈출로가 자주 나타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55분만에 깊이울유원지2.0km지점에 도착을 하고  가끔씩 나타나는 내리막길은 잔설과 낙엽이 쌓여 미끄럽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산길을 이어가야한다.

 

왕방산은 여느산에서는 볼 수 없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어가면서 이어지므로 동네산을 산책하는 듯 힘이 들지가 않는다. 하산하던 한 산님이 “눈이 와서 그렇지 이게 산이야”하며 푸념을 하는 것을 보아도 이 산이 얼마나 산행하기 쉬운산임을 짐작케한다.

 

정상1.6km지점에 도착을 하면 소나무군락지가 나타나면서 산행의 기분을 한껏 복돋아준다. 눈쌓이 송림숲은 이곳이 산책로인양 착각을 하게 만든다. 왕방산은 이정표가 군데군데 잘되어있어 지루함을 잊게 만든다. “무럭고개4.4km,정상0.4km"지점에 도착을 하면 왕산사1.7km지점의 하산길이 나타난다.(11:38)

왕방사는 봉선사본말사약지에 의하면 877년 신라 헌강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건과 함께 왕이 친히 방문하여 격려해 주었으므로 산 이름을 왕방산(王方山)이라 하고 절이름은 왕산사(王山寺)라 했다고 이 약지는 전하고 있다. 헌강왕이 도선국사의 높은 덕을 흠모해 자주 궁으로 모셨던 역사적 사실을 고려해 볼때 이같은 약지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일설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咸興)으로 가서 나오지 않으므로 무학스님이 직접가 설득해 모셔오던 중 왕자의 난이 일어났음을 감지하고 발길을 돌려 이 절에 머무르며 안정을 되찾고 가면서부터 왕방사라 불렸다고 하기도 한다.

 

얼마안가 눈덮인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11:44) 이곳에서는 눈덮이 포천읍과 안개속에 모습을 감춘 산그리메가 아련히 조망되면서 한폭의 멋진 그림을 그리면서 산님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곧 이어 “포천 명산 왕방산 737.2m"라고 표기된 정상석이 산님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장쾌하기그지없다. 눈덮인 포천시는 물론이고 먼저 동쪽 한북정맥의 대표적인 산들이 보인다. 광덕산, 백운산, 국사봉(1,168m), 명성산, 강씨봉, 청계산, 명지산(1,267m), 운악산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것을 한눈에 볼수있다.

 

고스락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길은 미끄러우므로 미리 준비해간 아이젠을 착용하고 하산하다 보면 “쇠목고개3.1km, 오지개고개 3.3km"의 이정표가 나타나고 왕방산0.5km지점에 도착을 하면 ”외목마을2.6km, 깊이울(심곡)저수지2.9km, 국사봉“의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국사봉을 가지않을려면 깊이울저수지쪽으로 하산을 할수도 있다.

이곳에서 왕방산을 뒤돌아보면 잔설이 깔린 완만한 흙산으로 둥그스럽게 조망이 된다. 철탑과 어우러진 국사봉을 보면서 하산을 하다보면 철탑이 나타나고 철탑을 지나 조금가면 내리막길이 이어지면서 “1.5km임도(쇠목마울), 왕방산1.6km, 포천”의 이정표가 있는곳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국사봉을 거쳐 산제당과 가마골고개로 해서 하산을 하자면 2시간여가 소요되고, 국사봉만을 다녀올려면은 30분이 소요된다고 하나 혼자서 가기도 그렇고 하여 아쉽지만 국사봉을 포기하고 깊이울유원지쪽으로 하산을 한다.(12:26) 선두로 갔던 일행은 국사봉으로 향했다고 한다.

깊이울유원지쪽으로 15분여를 하산하다보면 산길은 온통 눈꽃으로 뒤덮여 눈꽃의 향연을 펼치면서 하산하는 산님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깊이울계곡이 나타나면서 수정보다 맑은 계곡물이 눈덮인 바위사이로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gm르기시작하고, 눈꽃으로 장식된 나무터널 또한 운치있는 길을 만들어준다.

 

하산을 시작한지 27분여만에 작은폭포아래 여러개의 소원을 비는 돌탑을 쌓아놓아 산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깊이울2.0km,정상2.1km"지점의 이정표가 있는곳을 지나면서(13:13) 산길은 멋진눈꽃을 산님들에게 선보이고 멋진눈꽃을 감상하면서 하산하다보면

 

아름다운 삼나무숲길이 이어지면서 숲길을 지나면 강우량자동측정기가 있는 방송탑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조금가다보면 나무로 운치있게 만들어놓은 “깊이울만남교”다리가 산님들에게 사진찍는 장소를 제공해준다. 이어서 “성균관대학교 삼정 교육림”의 표지석이 나타나고 깊이울유원지에 가까워오면 인공낚시터가 나타난다.

 

일행은 이곳에서 식당에서 보내준 봉고를 타고 식당에 도착해 안내산악회에서 준비한 푸짐한 오리로스와 오리탕을 안주삼아 산행대장이 7년동안 숙성시킨 음양곽술과 오디와매실로 담근 매실주로 목을 축이므로 송년산행을 마무리하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하나도 없다.

 


노만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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