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가족산행 - 오대산 (2006.07.23)


ㅇ 산행지 : 오대산 (강원 평창, 홍천, 1,563.4m)
ㅇ 산행코스 및 시간 : 상원사(14:00) -> 비로전(14:23) -> 적멸보궁 -> 비로봉(15:40) -> 상원사(18:00) (총 4시간 00분)

여름휴가를 조금 일찍 떠난다.
휴가지도 올해 장마피해를 크게 입은 평창 속사리...
더군다나 일기예보에서는 휴가기간 내내 비가 올것이란 소식을 전한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변경할 수도 없고.. 이렇게 내키지 않는 휴가도 처음이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휴가를 떠난다.
휴가일정 중에 첫날은 산행으로 계획되어 있다. 몇해를 그렇게 해 온 터라 이젠 가족들이 이견을 달지 않는다.

속사의 팬션에 도착하니 진부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토사가 흘러 내려 여러 채의 민가가 토사에 파묻힌 모습이 보인다.
팬션에 들기는 이르고.. 오대산 산행을 한 후 팬션에 들기로 한다.
속사에서 진부로 넘어가니 진부는 속사보다도 사정이 더 나쁘다.
중간 중간 길도 끊겨 임시복구된 상태고.. 오대천이 범람한 흔적이 곳곳에 있고.. 군인들이 복구공사를 하기에 정신이 없다.
진부에서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도 토사가 흘러 주변의 밭을 덮어버린 상태다.
안 쓰런 마음을 뒤로 하고 오대산으로 향한다.
시간이 오후를 지나므로 월정사 매표소 근처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지금쯤이면 관광객이 들끓어야 할 때인데.. 수해를 많이 본 지역이라 한산하기 그지없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손님이라고는 우리가족밖에 없다.


들머리를 지나


월정사 입구에서 산행 들머리인 상원사까지는 비포장길이다.
국립공원이고 입장료도 주차비를 합해서 10,000원 이상을 지불했는데.. 비포장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계곡을 보호하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차는 상원사까지 들어가는데...
차창 옆으로 지나는 계곡이 무척 시원해 보인다. 빨리와서 발이라도 담그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
상원사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오늘은 흐리고.. 시원해서 산행하기엔 딱 그만인 날씨다. 더위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한다.


상원사를 지나 중대사와 적멸보궁까지는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중대사는 지금도 아름다운데.. 비로전이라 씌여있는 윗층 건물공사가 한창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해져있다는 적멸보궁을 지나면서 산행로는 평탄한 주능선길이다.
가족들과의 산행이라.. 산행속도도 느리고.. 날씨도 흐려서 땀이 나는지 조차 못느끼며 오른다.

산에도 오래된 산과 젊은 산이 있을까...
산행을 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산에는 젊은 나무들만 있고.. 또 어떤 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나 참나무들이 많아 오래된 산으로 느끼게 된다.
오대산의 주능선에는 산의 역사를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오래된 참나무들이 많다.


중대사


주능선길


평탄하던 주능선길은 비로봉을 500m 남겨놓고 가파른 급경사의 길로 바뀐다.
그리고, 급경사는 비로봉 정상까지 계속된다.
정상을 200m 남겨놓은 지점에 나무계단 사이에서 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질경이를 본다.
고향의 시골길에서 밟혀도 밟혀도 일어나서 살아가던 질경이를 보던 기억이 떠 오른다.
고향의 시골길에서 보았던 생명력을 오대산에서 다시 본다.


주능선길


정상근처 나무계단사이의 질경이


드디어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40분만에 정상에 도착한다.
가족산행 치고는 빨리 오른 편이다.
딸도 이제는 다 커서인지.. 아님 아빠 고집에 반항을 포기한 것인지.. 별다른 투정도 없이 잘 오른다.
날씨가 흐려서 정상에서는 상왕봉쪽 능선만이 간신히 보인다.
주변의 조망보다는 근처의 다람쥐와 까마귀가 눈길을 끈다.

다람쥐는 쵸코파이 맛을 알았는지.. 멀리 가지않고 주변에서 맴돌며 흘린 쵸코파이를 잘도 먹는다.
그리고는 보답이라도 하듯 난간 밧줄에 올라 포즈를 취해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상왕봉 능선을 향할까.. 하산할까.. 잠시 고민한 후.. 오던 길을 되돌아 하산한다.


정상(비로봉)에서 상왕봉 방향


정상에서


다람쥐가 포즈를 취하고..


까마귀도 포즈를 취하고..


하산후 월정사


하산길에는 군데 군데 다람쥐들이 나와서 길 안내를 한다.
저 만큼 앞서 가다 산꾼이 안 따라오면 멈추고.. 따라가면 다시 저 만큼 앞서가고..
다람쥐들도 인간이 지나간 자리에는 먹을 것이 남는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올라 온 길을 되돌아 하산한다.
오르는 길에 지나쳤던 적멸보궁도 들르고.. 아내는 무슨 복을 구하겠다고.. 거금 10,000원을 선뜻 불전함에 넣는다.
그리고는 합장 배례를 한다. 고개숙이기 싫어하는 산꾼은 머쓱하게 서 있는데... 하는 수 없이 산꾼도 마음속으로나마 가족의 건강과 평화를 빌어본다.
나약한 자들만이 종교에 의지한다고 비판해 왔건만... 이제 그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기분좋은 산행을 마무리하고 오는 길에 월정사에도 잠시 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