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 주말에 모처럼 원거리 오지산행을 할 궁리를 하다보니 작년 여름에 기회를 놓친 오대산이 떠올랐다. 홍천군 내면의 을수골을 열목어처럼 거슬러 올라 호령봉이나 소대산을 거쳐 비로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태고의 길을 걷는 것이기에 매우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한 산행이다. 다만 장마가 본격화되어 을수골에 물이 넘쳐흐르면 산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날이 다소 궂더라도 예정대로 떠나기로 했다. 출발전에 기상청 강수기록을 조회하고 현지에 전화해 물어보니 며칠새 비는 계속 왔지만 을수골에 물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일기예보론 토요일 오후에 오대산에 비가 올 가능성이 높아 산행일은 일요일로 잡았다.

강원도 홍천의 인구는 7만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시, 군 중에서 가장 넓은 군으로서 서울특별시 면적의 3배에 달한다. 그리고 홍천군의 1/4을 점하는 내면은 우리나라 읍, 면 중에서 가장 넓은 면으로서 제주도 보다 크고 서울 면적의 70%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다.

북으로 구룔덕봉(1,388m)과 가칠봉(1,240m), 동으로 오대산(1,563m), 남으로 계방산(1,577m), 서쪽으로 응봉산(1,103m)이 에워싸고 있는 내면은 그 사이사이에 1000m가 넘는 고봉 30 여개가 솟아 있고 평균 해발 600m인 고산지대로서 우리나라 최후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일찌기 정감록에서 백두대간 서쪽을 피장처, 즉 난리를 피해 살만한 곳으로 찍었고 그게 삼둔사가리인데 삼둔은 홍천 내면에, 사가리는 내면에 잇댄 인제군 기린면에 있다.

6시 15분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홍천행 버스를 타고 홍천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45분이었다. 내면행 버스가 8시 정각에 출발하는데 지하식당에서 순대국을 시켰더니 6분전에 나와 뜨거운 국물은 손도 못대고 건더기만 건져 먹고 나왔다. 홍천읍에서 내면의 면소재지인 창촌리까지 거리가 70km를 넘으니 시외버스로 한 시간이 더 걸렸다. 홍천땅이 얼마나 넓은지 읍과 면사이엔 시외버스가 다니고 면내에선 다시 공영버스가 다니니 주민들이 읍나들이 하려면 교통비가 참 많이 들게 생겼다.

창촌리에서 산행의 들머리인 광원리까지 가는 버스는 9시에 떠나버렸고 두 번에 걸쳐 친절한 주민의 차를 얻어타고 을수골 입구에 도착하니 9시 37분이었다. 그동안 매일 소나기가 내려 걱정을 했었으나 오늘은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전형적인 여름날씨를 보여 기분좋은 산행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을수골의 입구인 광원교는 내린천의 상류인 계방천과 을수골이 합류하는 곳인데 7개의 소를 흐른다 하는 칡소폭포가 바로 보여 내려가보니 아직 취침중인 텐트 몇개가 보인다. 수심이 깊고 맑고 차가운 1급수에만 산다는 열목어가 산란을 하기 위해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을수골입구에서 내린천발원지까지 6km의 평탄한 비포장길인데 거의 2시간 반이 걸렸다. 乙자 형태로 구비쳐 흐르는 을수골 주변으로 농사지을 땅도 넉넉하여 예전엔 많은 주민이 살았으나 70년대 울진삼척공비침투사건이후 소개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드문드문 구옥과 펜션이 있어 계곡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계곡에 내려가 물구경도 하고 사진 찍고 해찰하다가 엉뚱한 길로도 가보고 그러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더구나 소대산골과 큰대산골이 합치는 곳에서 어디로 갈까 우왕좌왕 하다가 시간은 더욱 흘러버렸다.

내린천발원지에서 좌측으로 꺽어 개울을 다시 건너면 큰대산골이 시작되고 얼마가지 않아 바위에도, 쓰러진 나무에도 이끼투성이인 원시의 계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큰대산골은 오대산 비로봉과 호령봉사이에서 내려오는데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길도 제대로 없는 난코스이다. 무심코 계곡을 따라 가다가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어 지계곡인 큰너레골을 지나친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사람의 흔적인 밧줄이 나타났다.

팍팍한 오름길을 거쳐 능선에 올라서고 조금 더 가니 천상의 화원, 감자밭등이 환하게 펼쳐졌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광원리에 살던 주민들이 이곳까지 올라와서 감자농사를 지었다는 곳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야생화는 별로 볼 수 없었으니 아직 계절이 무르익지 않아서인가?

감자밭등을 지나 호령봉까지 가는 50분은 형극의 길이었다. 감자밭등을 지나자 마자 표지기가 하나 보여 무척 반가웠는데 멧돼지가 달아놓은 것인지 편편한 능선엔 곧 멧돼지의 난전이 펼쳐졌다. 아마도 멧돼지의 아고라, 목욕탕, 운동장이 아니었을까? 마치 인간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듯 등산로는 없어졌고 오로지 그들의 자취만 남아 있었다. 호랑이 소리 요란했었다는 호령봉에 호랑이 사라진 지 오래일테고 비법정탐방로인 이곳은 이제 멧돼지의 세상으로 바뀐 듯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잡목의 저항을 뚫고 무작정 호령봉 정상을 향해야 했으며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는 산꾼의 조금 남은 힘마저 앗아가 버렸다.

호령봉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3시 반이었다. 비구름에 가려 주변의 산은 안 보였지만 남쪽방향으로는 색색의 표지기가 요란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갈라져 나와 계방산, 오음산, 용문산을 거쳐 두물머리까지 뻗은 한강기맥에 올라선 것이다. 아침에 먹은 순대 건더기와 고구마 2개, 그리고 과자 몇 개가 칼로리의 원천이었으니 기도 다하고 맥도 다했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밥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비로봉을 향해가는데 날이 점차 개이면서 시야가 좋아졌다. 둥산로는 훨씬 좋아졌지만 멧돼지들의 세력은 여전히 사람보다 강했다. 4시에 서대사 갈림길에 이르러 도시락을 꺼내 몇 젖가락 먹다가 다시 집어넣고 서둘러 출발했다. 부지런히 가면 상원사에서 진부 가는 5시 20분 막차를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었는데 비로봉에 도착하니 망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비로봉에 도착하니 4시 40분이었다. 오대산 비로봉은 언제 왔었는지 기억조차 없고 오늘 여기 오는데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멀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두로봉(1,422m)과 상왕봉(1,491m), 동대산(1,434m)과 노인봉(1,388m), 가칠봉과 소대산은 멋진 자태로 힘빠진 산꾼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냈다.

혹시 5시 20분 차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내려가는 발걸음을 서둘렀지만 부질없는 짓이었고 적멸보궁에 도착하니 이미 5시 20분에 가까웠다. 늦은 김에 적멸보궁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용안수에서 물도 한 잔 마신 다음 새로 잘 지어진 중대사자암도 구경하고 상원사에 내려가니 5시 50분이었다.

뮨수보살동자상께도 인사드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도 보고 계곡에서 땀을 씻은 다음 월정사 가는 길로 휘휘 내려가는데 SUV를 탄 부부가 고맙게도 차를 세운다. 다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월정사에서 7시 버스를 타고 진부에 도착하니 동서울행 7시 30분 버스가 있단다.  더도 덜도 말고 항상 오늘만 같아라~~~

 

Charlie Landsborough,  What Colour Is The Wind?

 



을수골 거슬러 올라 호령봉, 비로봉으로~

을수골 입구

강원도 풍경

좌측 계방천과 우측 을수골의 만남

칡소폭포

을수골 안으로~

펜션일까, 농장일까?

을수골

거의 매일 비가 왔는데

생각보다 수량이 적다~

저 능선으로 오르면 소대산 갈텐데~

카사비앙카 1

하늘엔 뭉게구름

묵밭엔 개망초

계곡엔 맑은 물

기분 좋고 편안한 길

이 넓은 묵밭은 아까운데~

물가 바위에 앉아 고구마 먹으며(감자나 옥수수가 더 어울렸을텐데~)

시원한 물도 구경하고~

골짜기가 참으로 깊다~

카사비앙카 2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큰대산골과 소대산골(좌)의 갈림길

개울 건너면 소대산 가는데 다음으로 미루고~

풀숲에 싸인 집

개울을 건너면

내린천 발원지

좌로 꺽어 다시 개울을 건너면

원시의 계곡이 시작된다.

사람의 흔적

쓰러진 나무도 돌도 이끼에 덮여

썩은 산삼이 녹아내린 계곡물

함박꽃

산꿩의 다리

산상의 화원, 감자밭등에 야생화가 없다~

노랑장대

어수리

둥근이질풀

감자밭등에서 바라본 호령봉

반가운 표지기

호령봉의 범꼬리

한강기맥의 표지기들

쥐오줌풀

서대사 우통수 갈림길

비로봉의 넉넉한 모습

먼 길 돌아 올라왔다~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가칠봉

적멸보궁 세존진신탑묘

상원사

문수보살 동자상

상원사 범종

구름위에서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는 비천상

상원사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