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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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진달래 군락지와 일출의 장관
그리고 동백 우거진 오동도를 보기위해 머나먼 길을 밤새워 달린다.
 
6시간 여 만에 여수 돌산대교를 건너고 산과 해안을 넘나들며
바닷가 금오산자락에 위치한 임포마을의 거북목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도 차도 지쳐버렸다.(04:46)
 
서울서부터 우리를 쫓아온 달이 금오산 능선위에서 잠시 머물고 임포마을로
들어오는 해안가 길목 가로등 불빛이 새벽녘 바닷가에 뿌옇게 흘린다.
 
검은 바다에서 돌출한 듯 솟아 오른 ‘금오산’이 우뚝 서있고
7부 능선쯤에 숨어있는 ‘향일암’ 불빛과 산 능선위에 머무르는 달빛
그리고 별들만이 고단한 산객들을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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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에선 가두리 양식장의 경계 불빛이 반짝반짝 거릴 뿐 마을은
아직도 한 밤 중인데 ‘향일암’을 찾는 관광버스는 꾸역꾸역 밀려든다.
 
밀려드는 행락객들로 인해 일출의 장관을 지켜볼 자리를 걱정한 일행들은
서둘러 ‘향일암’으로 향하고 나는 신 양수회장님과 전 양규님,
김 명수씨, 박 충건대장과 함께 금오산 정상을 탐하기 위해
능선 삼거리 쪽 가파른 길을 오른다.(05:10)
 
머리에 두른 작은 헤드라이트 불빛의 도움을 받아 능선 삼거리에 오르고
이어서 좌측 바위투성이 능선을 따라 해발 360m의 금오산 정상 암 봉에 선다.(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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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어둠이 사라지는 드넓은 바다를 향하고 서있으려니
차내에서 6시간여 시달린 고단한 가슴은 막힘없이 확 뚫리고
시원 상큼하기 그지없는 바닷바람이 모든 시름을 말끔히 씻어준다.
 
주변 멀리 둘러있는 섬들 속 옅은 불빛이 흐르는 곳곳에는
옹기종기 들어앉은 마을들이 있으리.
 
금오산 기슭 해안을 따라 들어앉은 임포마을도 불빛으로 되살아나면서
바다도 푸른빛으로 바뀌고 동그랗고 작은 밤섬 율도(栗島)가
해안가에 앙증맞게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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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金鰲山)은 정상 인근의 바위에 새겨진 무늬가
마치 거북이 등처럼 육각형 무늬이고 동쪽으로 뻗어있는 산줄기가 마치
거북머리 형상 같으며, 풍수지리상에도 금 거북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이라 쇠금(金)에 거북 오(鰲)를 써서 ‘금오산’이라고 했단다.
 
실제로 정상인근의 바위마다 거북이 등처럼 육각형 무늬로 덮여있고,
임포마을을 품고 바다를 향한 산줄기가
거북이 머리처럼 길고 도톰하게 ‘금오산’에서 뻗어 나가있다.
 
동녘 지평선위에 옅게 깔린 운무가
서서히 붉으래한 빛을 띠면서 일출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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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려 정상으로 모여든다.
바다와 산이 맞물린 거북목의 해안을 따라 자리한 임포마을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임포마을'의 유래를 보면 풍수지리상 이곳이 장사가 태어날 지형인데
일본 사람들이 그 정기를 끊고자 거북이가 잘 먹는 콩 임(荏)자를 써
임포마을이라 했다 하고,
 
임란당시 승군들이 이 일대를 근거지로 ‘이 순신 장군’을 도와
왜군과 싸웠다고 하니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과
일본에게 당했던 불행한 과거사를 기억하면서 일본의 최고대신이자
동북아 정복의 야욕을 품고 만주를 찾는 '이토(이등박문)'을
저격할 결의를 다지며 '안 중근 의사'가 쓴 시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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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가 세상을 살아가니/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때를 만드네.
 천하를 응시하니/ 어느 날에 과업을 이룰 고
 동풍이 차가워지니/ 장사의 뜻이 뜨겁다.
 분함으로 한번 치달으니/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새끼 이토 이놈!/ 어찌 이 목숨에 비길 것 인가.
 어찌 이렇게 될 줄이나 알았겠는가.
 일은 그렇게 될 터인데/ 동포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루자.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만세 대한동포"
 (일본인 작가 '시카조류'가 쓴 '광야의 열사'란 책에 실린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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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마음으로 의사의 애국충정을 느끼는 동안 일출은 서서히 시작한다.
 
동녘 지평선을 피 빛으로 물들이는 시뻘건 태양이
조금씩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타오른다.
 
행락객들과 산객들이 웅성거리며 장엄한 일출에 흠뻑 빠져들고
작은 배들이 일터를 찾아 바다로 간다.
 
일출은 산과 바다 그리고 모든 만물들로 하여금 제 모습을 찾게 한다.
 
산재해있는 희끗희끗한 산 벚꽃과 연분홍 진달래 그리고 빨간 동백이
일출에 물들어 그 빛 또한 아름답구나.
 
붉은 빛이 잦아들면서 우리는 서둘러 가파른 난간과 계단 내리막길로
‘향일암’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한 무리의 작은 배들이 편대를 이루고 출정하듯이
흰 물살을 가르며 포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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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아래 지리산 ‘통천문’ 비슷하면서도 더 긴 바위 굴
일명 '해탈문' 또는 '반야굴'이라는 좁은 굴을 지나
'향일암' 대웅전 뜰에서 넓고 시원한 바다를 본다.(06:30)
 
'향일암'은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하나로
백제 '의자왕'4년(644년)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당시에는 '원통암'으로 불리던 것이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천하절경의 장소란 뜻에서 '금오산 향일암'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웅전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금오산 정상의 기암괴석이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내릴 듯 제멋대로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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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뒤뜰에 또 다른 바위 굴 계단으로 거대한 바위들 틈에 숨어있는
‘원효대사’의 수도도량인 관음전에 이른다.
 
아담한 관음전과 석불이 푸른바다를 지그시 내려보고 있다.
 
'향일암'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291개 돌계단을 내려와
‘금오산 향일암’일주문을 벗어나자 몸은 거북인데 용의 목에
해태머리를 한 거북이 두 마리가 지킴이를 하고 있다.(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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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과 만개한 벚꽃의 빛깔이 아침이라선지 더욱 선명하다.
 
예약된 식당에 들어서자 이미 일행은 거반 식사가 끝나고 우리만 남아
된장찌개 백반으로 식사를 하고 거북목 주차장으로 간다.
 
아침부터 유혹하는 횟집의 어항 유리벽에 엉겨 붙은 낙지와 해삼, 멍게들을
돌려놓고 다음 행선지인 ‘오동도’를 찾아간다.
 
구불구불한 해안 길을 따라 마늘밭과 유채꽃 밭에 벚꽃과 동백이 널린 마을들
그리고 가두리 양식장과 작은 포구들이 차창에 스쳐간다.
 
돌산의 명품 갓김치 공장들이 보인다.
 
임포에서 출발한 차는 방죽포를 거쳐 죽포,
산으로 둘러싸여 그나마  논밭이 좀 있는 둔전과 월암 그리고 해안에
굴양식장이 있는 굴전을 지나서 육지와 연결된 돌산대교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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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대일 선을 이용한 밀수꾼들을 잡으려 직원들과 함께
항구에서 잠복한 후 그들을 미행하다가 경부고속도로 상에서 체포했던
추억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여수항이 눈에 들어온다.
 
시골 5일장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여수시내의 복잡한 교동시장과
여수세관을 지나 오동도 입구에서 하차한다.(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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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시간이 빠듯하기에 육지와 오동도를 잇는 786m 방파제를 속보로 건넌다.
 
멀리 외항에는 커다란 화물선들이 한가롭게 정박해있고,
파란 하늘에 산과 바다와 잘 어울리는 여수시내 전경이
따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수면 위 낮게 비상하는 갈매기를 따라 오동도로 들어서자마자
‘용굴’쪽 언덕 능선을 간다.(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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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해송과 동백이 숲을 이룬다.
 
보기 힘든 나무들이 명찰을 달고 있어 오르는 길에 점검하며간다.
 
팽나무, 광나무, 천선과나무, 말채나무, 푸조나무, 후박나무를 확인하고
풍란자생지를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을 하나하나 세면서
‘용굴’에 이르니 120여 계단이다.(08:18)
 
짙푸른 바다에 수직 절벽 그리고 용이 승천했다는 좁고 길쭉한 모양의 
 석굴에는 바닷물만이 찰싹거리며 들고난다.
 
섬 주변은 바위 절벽이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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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능선으로 올라와 높이가 10미터이상 된 수 백 년 묵은
동백나무 군락을 통과하자 가늘고 키 큰 대죽(신이대) 밭으로
둘러싸인 오동도 등대를 만난다.
 
우리 꽃 야생화인 ‘털 머위’가 널려있고 ‘머귀나무’도 있다.
 
등대 마당에 들어서니 어두운 밤을 빛으로 인도한다는 뜻의
‘암야도광(暗夜導光)’이 새겨진 돌 비석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을 뿐 고요하다.
 
울창한 신이대(시누대)숲을 지난다.
 
‘신이대’는 임진왜란 당시 이 순신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화살대로 귀하게 사용했던 대나무 일종이다.
 
오동도의 유래에 대한 비문을 본다.
 
오동도는 이름 그대로 벽오동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그 열매를 따먹기 위해 봉황이 많았다고 한다.
 
고려 말 요승 ‘신돈’이 ‘공민왕’에게 전라도라는 전(全)자는
사람 인(人)에 임금 왕(王)을 쓰므로 왕이 태여 날 곳이고
더구나 여수현 오동도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이 있으므로
불길한 징조로서 봉황이 앉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청함으로서
벽오동나무를 몽땅 잘라버려 지금은 한그루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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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조선 초에 귀양 온 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도둑이 들었고
아내는 집에 있는 것을 모두 주었지만 도둑이 몸까지 요구하자
남편이 항상 돌아올 때면 정박하는 동쪽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한다.
 
날이 저물 무렵 오동도로 돌아온 어부는
절벽 밑에 둥 둥 떠있는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고 섬 정상에 묻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몇 년 후에 그 묘에 여인의 절개를 나타내는
‘시누대’와 동백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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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 오동도는 오동나무 대신 동백나무가 많이 번져
눈보라 속에서도 빨간 꽃을 피운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팔손이 등을 보면서 맨발공원을 따라
‘엑스포 2012여수세계박람회’등 여러 건물과 조각품들이 잘 진열된
산자락 아늑한 부두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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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분수대는 하릴없이 놀고 거북선과 ‘若無湖南是無國家’비문 그리고
판옥선을 지나면서 따스한 햇볕 내림을 받는 방파제 길이 정겹다.
 
길고 긴 방파제를 통해 오동도를 벗어나는 길 건너편 절벽 위
‘자산공원’의 정자 모습이 산뜻하다.(08:45)
 
긴 담장 벚꽃이 장관인 여수세관 앞에서 차에 오르자
영취산을 향해 산업도로를 달린다.
 
수면부족으로 밀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창밖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나 가물가물 거린다.
 
적량동 바닷가 해안을 장악한 호남정유 반대편 영취산 주차장에 도착한다.(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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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을 찍고 ‘영취산 3km’의 가파른 아스팔트길을 300m쯤 오르자
김 정안의 ‘진달래 꽃’ 시비가 있고 된 비알의 흙길은 계속된다.
 
8-9부 능선을 덮고 있는 붉은 진달래 산을 바라보며 간다.
 
뒤돌아보는 남해바다와 호남정유의 공장시설도 만만찮은 풍경이다.
 
억새밭 능선에 이르자 완만한 경사면을 진달래가 휘덮고 있다.(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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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좋은 암반에 자리하고 앉아 전 양규님과 김 명수씨 셋이서
명수씨가 챙겨온 부침개에 곡주 한잔씩하고 길을 재촉한다.
 
비알 길을 올라 제1 암 봉에 서니 숨겨진 정상까지의
능선 오른쪽 8부 이상을 진달래가 뒤덮어 장관을 이룬다.
 
난생 처음 보는 풍광에 절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능선안부 헬기장을 지나고 제 2암 봉에 올라서자 먼저 자리 잡고 기다리던
신 양수회장님을 만나 등짐을 몽땅 비우며 간식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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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붉게 타오르는 산을 보며
그리운 추억하나 떠오르지 않는 메마른 가슴이 야속할 뿐이다.
 
산은 불타고 있는데 가슴은 불 꺼진 재만 남았나.
두 번에 걸쳐 마신 곡주에 취한 것인지
붉은 진달래에 취한 것인지 붉어진 얼굴로 진달래 능선을 간다.
 
‘영취산’의 정상인 해발 510m ‘진례산(進禮山)’에 오른다.(11:15)
 
영취산(靈鷲山)은 중인도 마갈타국의 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석가여래가 그곳에서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강론하였다고 전하는 산이다.
 
아마도 그 이름을 빌려온듯하다.
 
오던 길 뒤돌아보니 굽이진 능선에 인간 띠가 장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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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과 그 사이로 오가는 어선들의 풍경이
속박 없는 유유자적의 세상이요, 그리고 불붙은 산이 천상의 화원이로다.
 
정상은 산객들로 뒤덮여 복잡하기에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하산한다.
 
너절한 바위 내리막길을 간다.
 
‘도솔암’을 지날 즈음 인간 삶의 고뇌를 품은 듯 처량 애절한
독경소리가 전파에 실려 산 너울을 타고 흐른다.
 
내려가는 계단 길 양옆에 흰 벚꽃들이 예쁘고 화사하게 피었다.
 
흥국사에서 상암동으로 넘어가는 넓은 공간의 사거리 휴게소에서
더 이상의 행군이 시간상 무리라는 생각에 종착지인
흥국사방향 우측 골짜기로 내려간다.(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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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골짜기 암반위에 흐르는 물이 시원해보여 발을 담근다.
세상이 다 시원한 기분이다.
 
‘흥국사 용왕전’에 이르러 약수로 목을 축인다.(12:31)
 
‘흥국사(興國寺)’는 1195년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호국 사찰로 세운 절이며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염원에서 ‘흥국사’라 하였다고한다. 
 
‘적묵당’, ‘심검당’을 좌우로 한 대웅전 그 옆에 ‘무사전’을 들여다보니
평생업보를 싸들고 저승사자 손에 끌려 진강대왕부터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에 이르는 3년 동안
지옥불의 온갖 고통 속 육도윤회 길에서 구원받아 다음 생으로 환생하나
그렇지 못하면 영원한 무간지옥으로 떨어트리는 대왕들의 흉상이 진열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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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 ‘법왕문’을 넘고 ‘봉황루’를 넘고 ‘천왕문’ 문턱을 넘어
벚꽃 잎 하얗게 날리는 길을 따라 ‘영취산 흥국사’ 일주문을 나서니
1639년 ‘계특대사’가 화강석으로 축조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아치형 홍교(虹橋)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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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옆 잘 조림된 독일가문비나무가 시원스레 둘러선 주차장을 찾아가니
산악회에서 준비한 구수한 털게 청국장과 매운 오징어무침
그리고 매콤한 파김치를 차려놓고 하산 식을 즐기고 있다 .(12:54)
 

2007. 4. 7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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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상도    편집: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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