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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영인지맥종주 제3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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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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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 2008. 1.12(흙의날)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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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 신경수 송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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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 아산온천 고갯마루 배티고개에서 영인면과 염치읍의 경계를 따라 서진하여 영인산에서 인주면내로 들어가 서진하며 맹고개 도로까지 금북영인지맥 약9.7km를 종주하고 그 다음 현대자동차 단지를 따라 대음리 바닷가가 까지 약5.4km는 생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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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봉(330)     : 아산시 염치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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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仁山(△363.6) : 아산시 영인면, 인주면, 염치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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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거리 : 15.1km  지맥거리 : 9.7km  생략거리 : 5.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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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시간 5:10  지맥시간 3:50  휴식시간 1:00  헤맨시간 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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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화정에서 천안가는 6시40분 첫차를 따고 영인지맥을 알현하러 가기로 하고 포터인 마눌 배낭을 꾸려놓고 잠을 청했는데 지독한 어깨 통증으로 잠이 깨서 비몽사몽간에 시간은 흐리고 어떻게 하다하다 잠이 들었는데 시간 맞추어 일어나긴 했으나 다시 무너지는 몸을 주체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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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육체한테 지고 만 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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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 마음을 다잡으나 다시 무너지곤 하는 바람에 두 번째 버스도 놓치고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영등포역으로 가 입석표를 구해 천안에서 내려 택시로 2만원 이상을 주고 아산온천까지 가는 것은 낭비라는 마눌이야기를 들어야지 별 방법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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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온천가는 버스를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온양터미널 가는 버스를 타고 온양에서 내려 택시로 아산온천을 가는데 요금이 무려 13000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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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 하신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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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거잖아 뭐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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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온양택시는 되게 비싼 모양이다 경험측상 거리로 보면 한 칠 팔원원 정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요금이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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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래서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시간은 시간대로 까먹은 꼴이되고 말아 오늘 산행이 약간은 부담처럼 느껴지며 순탄치만은 아닐 것 같은 조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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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온천 배티고개 :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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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고개에서 내려 전에 내려와 먹은 낙지탕 전문 간이건물이 있는 곳에서 산으로 조금 들어가면 길이 없는 가시지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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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급경사를 가시를 피해 기어서 올라 서쪽으로 방향잡고 내려가니 이게 웬말 다시 배티고개를 살짝 넘어가는 혁신사관학교 들어가는 입구 주차장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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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배티고개에서 아산리 쪽으로 내려가면 삼거리 길이 나오고 삼거리서 오른쪽 길로 잠깐 내려가면 전번에 내려온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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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도로를 내면서 산봉우리 하나가 그냥 외따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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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모르고 부득부득 그 산봉우리 하나를 올랐다 다시 도로로 내려섰으니 초장부터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란 말인가 포터 보기도 미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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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배티고개에서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잠깐 내려가다 혁신사관학교 입구 대형 지주 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 민가 한 채가 있는 오른쪽으로 보면 선답자의 표시기가 있고 오르는 길이 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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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사관학교 입구 :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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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로따라 왔으면 1분이면 올 거리를 20분이나 걸려서 내려온 꼴이 되고 말았다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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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확하게 남이 가지않은 능선을 지나온 것으로 만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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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 철탑을 지나 등고선상 펑퍼짐한 170봉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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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선상 170봉 : 13:25  13:30 출발(5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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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하다 Y자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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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 뒤따라오다 바로 그길로 빠져 20분을 기다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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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좋은 길을 따라 좌측 아래로 엄청난 기계소음을 들어가며 또 나오는 Y자길에서 오른쪽 바로 아래에 있는 멋진 삼각바위를 오른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주의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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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니 마눌이 없어져버렸다 사차원으로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눌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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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갔다 하며 어느곳으로 빠졌는지 가늠을 해보나 세군데중 어느 곳으로 빠졌는지 알길이 없어 고래고래 소리쳐 불러도 메아리도 없는 산속에서 질퍽거리는 산사면 어느곳에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서서 기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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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간 오늘 이산가족이 되지나 하는 염려가 머리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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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잘못 내려간지 알면 다시 빽해서 오겠지 하는 생각도 드나 마눌 성질난 김에 아예 죽 내려가 버린다면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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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도 마눌한테 있고 헨드폰도 마눌한테 2개 다있고 먹을 것도 마눌이 지고 다니고 나한테 있는 것은 오로지 내 한몸을 지탱시키는 스틱 한자루 밖에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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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산까지 와 미아가 되어 누구에게 손을 벌려 구원을 요청하면 별 시덥잖은 인간 취급을 받으며 사람들이 콧방귀나 뀌겠는가 오만 잡생각을 하며 순간 순간이 여삼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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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앞길에 빨간 점이 하나 어른거리더니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점하나가 점점 커지면서 마눌 형상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갑게 맞이하니 앙탈이 보통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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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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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에 가는게 다 이유가 있어서 가는데 앞서 가면서 갈림길에서 기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있냐 그리고 찾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멀뚱하게 꿔다논 보릿자루 모양 서 있기만 하면 되느냐 앞으론 절대 내 앞에서 어른거리지도 말라”는 그런 야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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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삼각바위 : 13:35  13:55 출발(20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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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길을 따라 가다 ╣자길이 나오면 계곡같은 그길로 내려가는 것이 원안이지만 그걸 모른 나는 능선으로 표시기도 하나가 보여 능선을 고집하며 둔덕을 넘어서 가는데 어럅셔 어리 이놈의 능선이 서북진을 하고 있질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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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싶어 조금 빽을 해서 서쪽으로 무슨 노란 건물같은 것이 보이면 무질러서 그냥 서쪽으로 내려가면 구도로 앞 지하통로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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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위에 주유소 건물이 바로 그 노랗게 보이던 것이고 지하통로를 나가면 “영인산자연휴양림” 대형 안내판이 서있고 오르는 등산로가 탄탄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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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주에 “정상완주6.94km 상투봉3.5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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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노점상에서 또 한마디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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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건장한 아저씨는 맨몸으로 가고 키도 조그만 아주머니가 빵빵한 배낭을 메고 가느냐 아저씨가 참 못됐다 이런 논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또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오려는데 마눌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하는데 더 있기가 싫어 채근해서 핫도그 하나씩을 물고 먹어가며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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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남의 행색에 신경 좀 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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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사 100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다니던지 빈몸으로 가던지 한겨울에 발가벗고 다니든지 두겹세겹 꽁꽁 묶어서 다니든지 그저 그런 사람도 있구먼 하고 그냥 좀 냅둬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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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광수생각” 아니 “경수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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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아산고개 : 14:10  14:15 출발(5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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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잘 가꾸어진 왕릉같은 묘지를 지나자마자 십자임도가 나오고 상투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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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로를 오르며 방향을 확인하니 거의 남쪽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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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어느 정도 오르다 임도까지 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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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을 아무리 보아도 먹색파선은 서진을 하질 않더냐 그렇다면 오른쪽으로 임도따라가다 능선으로 오르는 것이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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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를 작성하며 곰곰 남쪽으로 오르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 지하통로라는 것이 고갯마루에 있는 것이 아니질 않은가 즉 고갯마루에서 북쪽으로 조금 비껴난 곳으로 내려왔으니 능선은 남진을 하며 잠시 오른다음 고갯마루로 추정이 되는 지점에서부터 서진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이제사 알아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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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 같은 내머리 한대 쥐어박아도 시원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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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진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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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 :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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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가다 너른 포장도로를 만나면 그 포장도로를 따라서 오르는데 관광버스 등 오만가지 차량들이 종 종 오르고 내리고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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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이 무슨 도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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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치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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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이 도로가 이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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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 보이는 산세를 살펴보니 영인산 정상까지 이도로가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여 횡재를 만난 기분이 드나 마눌은 산속으로 들어가자고 계속해서 앙탈이다 마눌이 산맛을 진짜로 알고 있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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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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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초장부터 너무 늦게 산행을 시작했고 알바를 해대고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그래서 산행 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고 이렇게라도 도로따라 시간을 절약해 끝부분의 길이 없는 가시길을 낮시간대에 지나갈 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포장길에 감사한 마음이 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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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산자연휴양림” 눈썰매장입구에서 일인당 1000원씩 입장료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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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한테 지청구를 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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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갔으면 내지 않아도 될 입장료를 내면서 왜 짜증을 내느냐 그것봐라” 용용 약올라 죽겠지 하는 표정이 역역해 피식 웃음보가 터지려는데 꾹 참아버린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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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주에 정상3.4km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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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산자연휴양림입구 :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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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가로 질러 가다보면 오른쪽 아래로 스머프집 같은 버섯모양의 집들도 보며 야외음악당부터 길은 눈녹은 자갈길로 바뀌고 많은 사람들을 스치며 능선 안부에 이르니 이정철주에 “좌측 상투봉0.78km 우측 정상1.83km"이라 해서 좌측을 보니 통행금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수목원조성공사 중으로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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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능선을 따르지 않은 것이 본의 아니게 지방정부의 뜻에 충실히 따른 결과가 되고 만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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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봉을 쳐다보니 험악한 암봉이 남쪽은 절벽이며 북쪽으로 급경사 암릉길이 이어지며 아마도 쇠파이프를 박아 안전시설을 해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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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봉 정상은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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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봉 쪽 안부는 산자락을 깔아뭉개며 아마도 무슨 건축물을 축조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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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은 능선 왼쪽 사면으로 난 임도를 따라가는 길과 능선으로 직접 너른 산길을 따르는 두가지 방법이 있으나 아무데로나 가도 영인봉 정상으로 가는데는 이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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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임도 안부 흐느재 :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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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버리고 너른 능선길을 따라 가다보면 정상의 거대한 석조탑으로 오르는 끝없는 목조데크 능선길을 버리고 좌측 사면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는데 조망이 더없이 좋아 기분을 업시키면서 오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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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데크로 오른 지점으로 올라 다시 능선을 따르다 보면 송신탑이 서있는 청소년 수련원 건물들이 있는 ╠자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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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주에  “좌측 정상1.2km 우측 향교1.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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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수련원 :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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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원을 관통해서 나가면 좌측 사면으로 달려온 임도와 만나 잠깐 가면 거북입에서 쏟아지는 약수물을 한바가지 받아마시고 잠깐 가면 콘크리트 포장 너른 헬기장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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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주에 “정상1.1km ╠자길 정상2.32km 세심사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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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 :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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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자길 이정철주에 “정상0.97 우측 영인면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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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차도 다닐 수 있는 돌길이 왼쪽 사면으로 이어지며 거대한 쌍둥이 석조탑을 오르는 한없이 이어지는 돌계단길을 버리고 왼쪽 사면으로 난 너른 돌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에서 거대한 석탑으로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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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시련과 영광의탑 구구절절.........98.9.1 아산시장”의 초석 뒤로 거대한 돌탑이 웅장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으며 횃불모양의 조형물도 보고 발길을 영인산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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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주에 “깃대봉0.22km 정상0.47km 아자길 용샘0.6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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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탑 : 15:25  15:30 출발(5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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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어지던 임도는 너른 산길로 바뀌며 영인산 정상 바위들을 바라보며 가노라면 멋진 소나무들이 있는 곳에 영인산과 곡교천을 노래하는 “산사랑” 시비를 지나 난간줄이 쳐진 암릉길로 깃대봉 정상 왼쪽 사면으로 길은 이어지며 이정철주에 “정상0.27 오른쪽으로 0.19 깃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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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 :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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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아내리며 미끄럽기 한량없는 콘크리트 계단길을 한동안 오르면 망가진 작은 창고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세심사라는 이정철주를 지나 영인산대피소와 자동산불감시탑을 지나 작은 돌탑과 판독불능 삼각점과 이정석이 공터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영인산 정상으로 조망이 더할 나위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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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의 대표적인 산 신성시 여기는 영인산은 사람들이 편하게 으르게 하기 위하여 도로를 내고 길을 넓히고 구조물을 짓는 등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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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산 : 15:40 15:45 출발(5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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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빽을 해서 콘크리트 계단을 막 올라선 부셔진 창고 건물이 있는 곳에 있는 이정철주에 “세심사0.82km” 쪽으로 내려가는데 곳곳에 밧줄이 있는 빙판길이라 많은 주의를 하면서 내려가면서 ╣자길이 나오고 아마도 그길이 세심사로 내려가는 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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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나 조망좋은 암릉위에서 빵 한조각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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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길 : 15:55  16:05 출발(10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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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이 멋지게 포개진 짧은 암릉길을 지나 좋은 길은 좌측 전망좋은 곳으로 암릉을 내려가고 지맥은 우측 길흔적을 따라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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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선상 250봉을 오르면서 우측 뒤 내려온 능선 계곡건너 산자락이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산사면 전체가 계단식으로 가죽을 벗겨내고 뼈다귀만 앙상하게 하얀빛을 발하며 아픔을 호소하는데 그 이유를 나는 전혀 짐작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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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도 아니고 묘지조성공사를 해놓은 것도 아니고 암벽에 수종갱신을 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좌우지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산자락이 그렇게 망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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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슴으로 등고선상 250봉을 오른다 : 16:20  16:25 출발(5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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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며 길 흔적도 없어지고 잔능선이 사방으로 뻗어있으며 능선은 잡목이 심해 상당한 고충을 안고 내려가는데 좌측 일대 산자락을 대규모로 깎아내고 있는 중장비 돌아가는 소리가 굉음을 토하는 모습이 애처로우나 내가 무슨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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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내는 형상을 살펴보건데 채석장인 것 같진 않고 아마도 대규모 무슨 단지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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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을 따라 내려가면 염치읍 산양리 남산말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인주면 복흥골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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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려가면 진창길로 건너가는데 녹아내리는 흙이 신발에 달라붙어 천근만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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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골 십자안부 :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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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을 누가 인위적으로 다듬어 놓았는지 탄탄대로를 오르는데 이곳 일대는 천편일률적으로 키작은 잡관목지대로 조망은 좋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오래전에 산불이 나서 폐허가 된 곳에 숲의 전단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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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스러운 마음으로 잠시 오르면 왼쪽으로 내려가는 ╣자길이 너무 넓어 임도 수준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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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길로 내려갔어야 지맥 능선을 올바로 가는 길인데 아무 생각없이 오르는 마눌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정상까지 오르니 묘1기가 나오고 코팅 공고문이 낮은 나무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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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묘개발(주)천국공사” 공고문으로 언제까지 이장하지 않으면 무연고묘로 개장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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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렇게 등고선상 230봉을 올라 조망이 좋아 길 길을 둘러보고 직진하는 북쪽 방향을 보니 笠岩山(△297.4, 여맥) 능선이 확실한 마루금을 그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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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평야지대를 흐르는 곡교천의 끝 엄청나게 크게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들이 바로 현대자동차공장인 것 같은데 그 담장을 따라 지맥 능선은 바다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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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쉬다 지맥능선을 지나왔으니 방법있나 다시 ╣자길까지 빽을 하여 너른 임도같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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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길 : 16:45  17:10 출발(10분 휴식 15분 헤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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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좌측을 바라보면 복흥골 십자안부 왼쪽 산자락 일대를 깔아뭉개는 라인이 바로 능선까지 올라와 그 다음 내려서는 십자임도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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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공사장을 한바퀴 도는 형상으로 등산화 전체에 무거운 흙더미를 붙여서 뒤뚱거리며 약간 올라간 고개같지도 않은 고갯마루 발을 딛기도 힘이드는 진창 십자임도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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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한대가 힘겹게 진창길을 넘어가고 있다가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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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 십자안부 :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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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로 오르면 성긴 산길이 나오고 그길을 따라 오르면서 길이 있는지 없는지 수준으로 바뀌며 나중에 도면상 삼각점이 있는 132.9봉으로 추정이 되는 봉우리로 올랐으나 삼각점은 찾을 길이 없고 오른쪽으로 나오는 밤밭 능선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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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9봉 :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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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다 왼쪽으로 능선을 가늠하고 서쪽으로 가시를 헤치고 내려서면 콘크리트 십자안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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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왼쪽은 커다란 농장 축사인 것 같고 오른쪽 조금 아래로 날아갈 듯하게 산뜻한 사당 하나가 그 일대 묘지를 싸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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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조금 남아 있어 조금 진행을 해보나 묘지에서 길은 없어지고 갈길은 오리무중이라 해가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다면 아무리 가시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데 길없는 산사면 가시길을 밤에 진행한다는 것은 100% 알바의 길이란 것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잘알고 더군다나 어둠이 살처럼 찾아오니 별수있나 마눌 징징대며 못 가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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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사 이런 야산줄기 가시천국을 어찌 밤에 갈수 있겠는가 그나마 외팔이로서 말이다 미련없이 콘크리트 포장 십자안부로 빽을 하며 이곳에서 금북영인지맥종주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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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안부 : 17:40 18:00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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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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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길을 잡고 2차선 도로 624번 지방도로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나가야 하는데 마침 차가 한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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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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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사는 미꾸라지 잡는 부녀차로 고개넘어 논에서 잡았다며 흙탕물이 든 바께스를 보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온양 버스터미널 근방에 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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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과자값이라도 주는건데 그저 인사만하고 헤어진 것이 몹시 후회되는지 마눌 왜 내릴 때 그생각이 안났는지 모른다며 때 늦은 자책을 하며 그런 생각을 안한 아무 생각없는 신랑을 나무라는 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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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연결이 되는 버스를 타고 천안역으로 가서 여인숙보다도 못한 모텔이라는 속칭 예날 여관을 리모델링한 그런 곳으로 들어가 하루를 유하는데 침대 깔판이 전기장판이라 뜨끈뜨끈한데 밖으로 몸만 내놓으면 한기가 살을 뚫고 바닥이나 벽을 만져보면 시베리아 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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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2일 이라면 제가 쉬는 날이었는데?...연락 주셨으면 쐐주 일잔 하면서 영희님께 진 신세를 다소나마 갚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으니 아쉽네요?...그나저나 어찌끄나?...아직도 영희님께 등짐을 지우고 산행을 하신다니?...사족이 될지 모르지만 반가운 마음에 "한산"에 올리지 못했던 지난 여름 영인산 산행기를 덧붙힙니다.  빠른 쾌유 바라며 늦은 신년 인사 드립니다!....아울러 이상일 아우님께도!....

아산이 깨어지나 평택이 무너지나?....충남 아산 영인산(363.6m)

언  제 : 2007. 09. 23 (일요일)

누구랑 :  DJ, YK, B&B (3명)

일제 침략이 서서히 시작되던 조선 왕조 말엽의 그 어두운 시기에 민중의 고통 속에 태어난 속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아산이 깨어지나 평택이 무너지나’라는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갑오농민전쟁과 일제의 잔혹한 식민 지배의 서막이 되었던 청일전쟁이 터진 갑오년(1894)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표면적으로는 갑오농민전쟁이 빌미가 되어 청일전쟁이 일어났지만 청일전쟁은 갑오농민전쟁이 아니더라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사건이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갑오농민전쟁이 성공하지 못한 점이며, 분노가 이는 것은 의로운 투쟁에 나선 동족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당시 봉건 지배 계급의 어처구니없는 작태이다.

갑오농민전쟁은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봉건 왕조 지배 계층의 잔인한 탄압에 농민들의 분노는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1862년에는 삼남 지방에서 대대적인 농민 항쟁이 일어났고 그 뒤 외세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거세어졌다. 1894년, 드디어 농민들은 전쟁을 일으켰다. 그 당시 농민들 사이에 그 동안 쌓인 불만과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은 노래가 있어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  갑오년(1894)에 크게 떨쳐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않고 을미년(1895)까지 을미적 을미적 끌다가는 병신년(1896)엔 병신 되어 아무 일도 못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갑오년 3월,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파죽지세의 그 거센 물결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몇 가지 전술의 오류는 있었지만 정부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배 세력이 외세를 끌어들이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이 4월 27일. 바로 그 다음날, 정부군은 청나라 원세개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5월 5일에서 7일 사이에 띵주창(丁汝昌), 예치차오(葉志超)가 이끄는 청군 2,100여 명이 아산만에 상륙하였다.

일본은 조선 정부가 청군에 파병을 요청하기도 전에 일본군의 조선 파병을 결정하고 5월 6일 선발 부대를 인천에 상륙시켰고 5월 말까지 8,000여 명에 달하는 병력을 서울과 인천 지역에 투입했다. 한편 정부는 청군이 한성에 도착할 때까지 농민군의 한성 진입을 막기 위해 화의를 제의했다.

농민군 지도부는 정부측의 의도를 알았으나 이때는 이미 청군과 일군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으므로 이들에게 도발(출병)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 화의에 응했다. 그래서 정부와 5월 7일 전주 화약을 체결하고 5월 8일에는 전주성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6월 23일에 충청도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군에게 포문을 열었다. 청군은 아산 백사포에 진을 치고 일본군은 평택에 진을 치고 있었다. 6월 27일에는 경기도 평택 부근 성환 역에서 충돌, 청군이 패주하였다. 8월 17일에도 평양에서 청군이 일군에게 대패하였다.

갑오 농민군은 일본군을 내쫓기 위해 9월에 다시 봉기하여 10월에는 전라도 농민군이 논산에 집결하고 10월 22일부터 11월 12일까지 공주 지역에서 일군와 싸웠으나 대패하게 된다. 12월 2일에는 전봉준이 순창에서 체포되고 곧이어 전라, 충청, 경상, 황해, 강원도 등지에서 일군과 관군에게 궤멸되고 만다. 일제는 1895년 8월 20일에 기어코 을미사변을 일으켜 일본 최대의 반대 세력이었던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정치적 지배를 거의 달성하게 된다.

본래는 청군을 지지하고 싶었으나 부녀자를 희롱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그들의 행패를 보니 배신감만 더욱 높아졌고, 그렇다고 일본군을 지지할 수도 없었다. 이때 백성들의 처지가 ‘아산(청군)이 깨어지나 평택(일본군)이 무너지나’ 밑질 것이 없는 상태였고 그래서 이 말은 ‘결판이 날 때까지 끝까지 싸우자고 벼를 때 쓰는 말’이 되었다.(이상 웹에서)

충남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영인산은 옛부터 산이 영험하다 하여 영인산(靈仁山)이라 부르고 있고 정상에 백제 초기의 석성으로 추정되는 영인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청일 전쟁 등 전적이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시설되어 있어 많은 관광 및 탐방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산 정상에 서면 서해 바다, 삽교천, 아산만 방조제와 아산 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으며, 총 면적은 39만평이고 휴양 중심 지구의 사계절 썰매장과 숲속의 집, 산림욕장, 물 놀이 시설 등이 이곳 휴양림의 자랑거리이며 하루 5,000명을 수용 할 수 있다.

또 인근에 현충사, 민속박물관, 민속마을, 온양온천, 도고온천, 강당골 유원지, 도고 골프장 등 관광지와 휴식처가 위치해 자동차로 20분 거리면 주변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삽교방조제·아산만방조제·서해대교 조망되는 충남 아산시 염치읍, 영인면, 인주면 경계를 이루는 영인산(靈仁山·363.6m)은 가족산행 코스로 인기 높은 산이다. 청일전쟁 때 격전지였고, 6.25 때에도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이 산은 6.25 이후에는 미군이 37년동안 주둔하면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 왔었다.

등산인들이 이 산을 찾게 된 계기는 미군부대가 80년 후반에 옮긴 이후부터다. 그 후로 자연휴양림이 조성되고 임도가 개설되면서 자가용을 이용한 가족산행지로 인기를 더해오고 있다. 휴양림 입구에서 임도를 따르는 산악자전거 동호인도 많이 찾는다. 비록 산은 낮지만 바다와 가까운 곳이어서 등행표고차가 300m를 넘기 때문에 내륙 산간지역의 600~700m급 산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영인산이 있는 아산(牙山)은 이 고장을 빛낸 맹사성, 이순신, 장영실, 이지함, 김옥균, 윤보선의 고향이다. 그래서 아산에는 맹사성 고택(맹씨행단)이 있고,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김옥균의 묘소가 있다. (이상 한국의 산천에서)

 

다녀온 길

10:00 문화 아파트앞 → 10:42 아산 향교옆 임시 주차장 → 10:45 국궁장 → 10:47 영인 석불 → 10:58 상투봉 갈림길 → 11:15 수목원 공사장 → 11:50 상투봉 → 11:55 흔들바위 → 12:24 수목원 공사장 다시 옴 → 12:40 영인산 수련원 →12:57 연화봉 → 13:01 영광과 수난의 탑 → 13:16 깃대봉(점심) → 13:50 영인 산성으로 → 14:34 영인 산성터 →14:55 세심사 갈림길 →15:14 세심사 → 15:35 다시 깃대봉으로 →15:45 닫자봉 갈림길 → 16:14 깃대봉 정상 → 16:48 케른 있는 샘터 → 17:04 국궁장(산행 끝)

영인초교에서 좁은 마을길을 잠시 올라 아산향교옆 공터에 주차를 하다보니 천안에서 왔다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호기롭게 산악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오른다. 까만 유니폼의 사내는 내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대뜸 V싸인을 만들며 좋아라 한다!....

아산 향교 뒷담을 따라 국궁장쪽으로 오른다. 아산 향교는 선조 8년(1575)에 기인이라 하는 토정 이지함이 아산 현감 때 이건하였고, 중국의 4성 5현과 국내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면적은 대성전 21평, 명륜당 12평, 동재 9평, 기타 건물 3동 30평이다. 현재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보존되고 있다. 향교 건물가운데 대성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참에 향교에 대해 잠시 알어보고 가자.

향교는 시문(詩文)을 짓는 이른바 사장학(詞章學)과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는 경학(經學)을 교과내용으로 한다. 경학은 경전뿐만 아니라 사서(史書)를 함께 공부하였다.

이렇게 관인후보자를 양성하기 위한 향교교육의 내용은 제도적으로 과거제와 일정한 관계를 갖도록 되어 있었다. 향교에 일정기간 출석한 자에 대하여 과거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원점법(圓點法)의 적용이 그 예이다.

한편 향교의 교과과정은 생원·진사의 시험과목을 통하여 유추해 볼 수 있다. ≪경국대전≫에는 생원초시의 시험과목이 오경의(五經義)·사서의(四書疑) 2()이며, 진사초시에는 () 1편, 고시(古詩(() 중 1편을 짓게 되어 있다. 복시(覆試)의 경우도 초시의 것을 되풀이한다. 사장(詞章)인 제술(製述)과 경학공부를 병행하도록 시험이 출제되었던 것으로 보아, 향교교육도 이에 준하였을 것이다.

한편 교생들이 강습한 교재는 ≪소학≫, 사서오경을 비롯한 제사와 ≪근사록 近思錄≫, ≪심경 心經≫ 등으로 성균관이나 서원의 그것과 크게 차이는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학≫과 ≪가례≫는 조선 초기부터 교생들에게 권장된 책으로서, 각종의 고강이나 과거의 시험과목으로 부과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향교는 교육용 서책의 부족을 심하게 겪었고, 이는 향교교육 자체를 곤란하게 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국궁장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위치한 석불입상으로, 화강암에 높이 265㎝, 너비 87㎝로 조각하였다. 목에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청일전쟁 때 목이 절단된 채 방치되다가 1945년에 보수한 것이라 한다. 머리에는 관(冠)을 쓰고 있으며, 계란형의 얼굴은 양 볼이 통통하게 표현되었다.

당당한 체구에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는데 옷주름은 마멸로 인해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배 아래에는 옷주름을 표현한 흔적이 보인다. 왼손의 손바닥에는 동그란 구슬이 올려져 있으며,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쪽 가슴 앞에 올려 놓고 있다. 불상의 조각 솜씨나 머리에 쓴 관의 형태, 얼굴 모습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39호로 지정되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이 탑은 기단부(基壇部), 탑신부(塔身部), 상륜부(相輪部)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탑의 전체 높이는 398㎝이다.탑의 기단부는 중층 기단으로 전체 높이 110㎝이고 상층 기단의 상대갑석 윗면에는 복련이 조각되어 있다.

상투봉 오르는 길은 산을 깍아내어 웅장한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공사중 위험하다고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려있지만 공사에 방해될 것도 없고 위험할 것도 없어 흰 비닐 천으로 경계구역을 표시한 등로를 오르는데 DJ가 수목원 어쩌고?.... 하는 안내표지를 보았다고 하길래 나는 오지랖 넓게 혹시 아산시에서 수목장림을 조성하기 위한 편의시설을 짓는거 아닌가?...하는 허망한 생각을 잠시 한 것이다.

빵과버터 : 야?...여기다 수목장림을 만들면 나는 선착순으로 나무 2그루 분양 받을끼라!...

DJ & YK : ㅋㅋㅋ...

빵과버터 : 소나무면 어떻고 참나무면 어떠냐?...쓸데없는 잡목들 간벌해서 몇 년만 정리하면 산도 낮으막해서 접근성도 좋아 수목장림으로는 딱인데?....근데 수목원은 공원 개념이고 수목장은 묘지 개념인데?...

상투봉 오름길에 돌아본 닷자봉이다. 닷자봉 뒤로 삽교천 방조제가 아스므레하게 보인다. 박통과 삽교천!....거의 30년전 일이지만 아직도 선연하게 떠오르는 그날!...나도 박통 시절의 향수를 그리워 하는 세대가 된것이다.

이정표

니미럴!....청소년 수련원과 연계해서 수목원 만든다고 산을 까 버리고 있는 것이다...씨~!@#$

왼쪽 깃대봉 정상과 시련과 영광의 탑

닷자봉, 깃대봉, 시련과 영광의 탑

공사장에서

박종율님의 산행기에 곡교천이라 했다

영인면

흔들바위는 조금 더 아래에 있다

빤히 보이는 저기까지 가기 싫어서 우선 눈맛만 즐기고 흔들바위는 보지 못했다

상투봉의 소나무

다시 수목원 공사장까지 임도로 내려와 시련과 영광의 탑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

 

 

숲속의 장남감처럼 예쁜 수련원 건물이 멀찌감치 보인다

시련과 영광의 탑

흠!...이제 억새의 계절이 왔다. 별거 아닌 갸녀린 억새는 지치고 상한 마음 달래주는 묘한 그 무엇이 있었다.

수련원 가는길에

No wonder!....어쩐지 건물의 외관이 여느 수련원 처럼 볼성 사나운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특별히 눈에 보기 좋다 했더니?....영인산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사용했던 막사를 80년대에 그들이 철수한후 수련원 시설로 사용중이란다.

수련원으로 오르는 MTB

 

 

 

 

 

 

세멘트 계단에서 올 려본 시련과 영광의 탑

연화봉 이정표

영인면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이 한편으로는 뜨악한 생각이 들었지만 맹사성, 이순신, 장영실, 이지함, 김옥균등 민족의 선각자들이 이고장 출신인데다가 갑오농민혁명, 청일전쟁, 주한 미군의 주둔, 박정희 대통령과 삽교천 방조제....등등을 생각하니 그럴만도 하다라고 머리가 주억거려진다.

 

 

산사랑 산악회는 영인산을 무척 아끼고 있었다.

고룡산 뒤로 평택 시내 아파트가 보이고... 산하리 마을에 YK는 탯줄을 묻었단다.

서해대교

옛날 탄약고에는 포탄 대신 모래 주머니가 쌓여 있었다.

깃대봉에서

깃대봉에서 바라본 서해대교

"아산이 깨어지나 평택이 무너지나" 라는 속담이 무색하게 "평택호다 아니다 아산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영인 저수지

미군 주둔시 옥외 화장실쯤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흉물스럽게 남어있으니 아직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또 서해대교

깃대봉에서

억새의 모습

Hellow?...One Coke Please?...ㅋㅋㅋ

포좌였지?...

미군부대 벙커를 산악구조대 막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막사에는 평택에 사는 박노근(69)씨와 박왕규(67)씨가 10년째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이 두 분은 일주일에 5번씩 오가며 산쓰레기 청소에 등산코스 가이드, 산길보수 등 환경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단다.

성터 가는길에

아산산성은 백제 초기의 석성(石城)으로 추정되는 성이니 여기가 삼국시대와 청일전쟁의 격전지로 역사의 터전이 되는 곳인 모양이다.

성터 가는 길에서

세심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깃대봉 뒷모습

세심사 가는 길

세심사 이정표

세심사의 2단 석축이 눈에 띄었다

고려시대에 청석(점판암)으로 만들어진 9층 석탑으로 원래는 탑신 없이 옥개석만이 연화대석 위에 얹혀진 채 대웅전 앞에 있었던 것을 195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탑의 세부를 살펴보면 3단의 화강암 기단부 위에 방형의 판석(점판암) 1기가 끼워져 있고 그 위로는 연화상대석이 1매가 보이고 있는데, 복판의 연화문이 아래로 향해 조각되어 있다. 연꽃 사이사이엔 삼각형의 간판이 조각되어 있고 연화 하대석 위로는 상대중석이 올려져 있다.

각각의 탑신 면석에는 우주가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의 하단엔 2단의 층급 받침이 조출되어져 있는데 이는 화강암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뚜렷하게 조각된 것은 아니다. 옥개석의 경우 낙수면의 경사도는 완만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전각과 우동이 접하는 부분은 깎여져 있음이 발견되는데 풍탁이 매달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세심사 부도 -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우측에 봉안되어 있는 부도로서 2기 모두  '송매당(松梅堂)'이라는 명문이 있다. 부도는 지대석은 없으며, 각각 정방형의 하대석과 탑신, 옥개석이 별석(別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세심사로 오르는 길가에는 3기의 부도가 있었으나 "세심당(洗心堂)" 부도를 도난 당한 후 199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세심사에서

세심사에서

세심사에서...절터에서 보는 나무나 꽃은 절과 상관관계가 있다 싶은데?....

세심사에서 다시 오르는 이정표

 

조스?...

세심사에서 다시 정상오름

전선없는 소나무 전봇대에서 격세지감을 맛본다

군바리 계단

닫자봉과 상투봉

한여름에는 여인네들 볼텃치하는 부드러운 솔처럼 예쁜 모습을 자랑하더니?....미모사 콩깍지

군바리 통신선

산사랑 기념비

성터

하산길 샘터

국궁장에서.... 얼추 6시간의 널널한 산행을 하고 원점회귀로 국궁장에 이르니 우연히 젊은 궁사와 연만하신 궁사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나이드신 궁사의 저 홍두깨 같은 팔뚝을 보니 이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특히 연만하신 궁사의 허리에 두른 푸른 허리띠가 궁사의 관록을 나타내는 것 같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잠시 그 모습을 보여주더니 자취를 감추고 사대 오른쪽 스피카에서 "쿵!"하는 둔탁한 음향이 들린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맞추면 그 소리를 확성기를 통해서 전달하는 모양이다.  

양궁은 조준기를 사용하여 조준하지만 국궁은 여하한 조준장치도 부착할 수 없고, 양궁은 최대 사거리를 90m로 하여 화살이 과녁판에 맞는 위치에 따라 점수가 다르게 배정되는데 반하여 국궁은 145m 고정 사거리를 이용하며 과녁판의 어디를 맞추어도 명중으로 간주한다는 것 등이 양궁과 국궁의 차이점일 것이다. 

산행에 나서면 역사와 문화를 덤으로 배우고 가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동안 지척에 있는 낮은 산이라고 우습게 알고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영인산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으며 가까운 지인들과 우의를 다지는 하루를 보냈으니 행복하다 할 만한 하루를 보낸거 감사한다....(끝)

 

(영인산에서 만난 야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