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산




                          *산행일자:2009. 12. 25일(금)

                          *소재지 :경남고성

                          *산높이 :연화산528m, 남산427m

                          *산행코스:옥천사입구하명정류장-집단시설지구주차장-연화1봉-연화산

                                         -남산-옥천사-집단시설지구주차장-옥천사입구하명정류장

                          *산행시간:8시55분-14시44분(5시간49분)

                          *동행 :경동고24회 이규성동문

 



  경남 고성의 연화산을 오르는 길에 옥천사 앞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들렀습니다.
고성지방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진즉 알았지만 현장을 찾아 공룡의 족적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공룡의 발자국화석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곳은 여기가 아니고 덕명리 해안가로 그 쪽 화석은 족적이 크고 뚜렷하다 하는 데 이번에 처음 본 옥천사 계곡의 발자국화석은 소형공룡의 것이어서인지 생각보다 족적이 크기도 작고 그리 선명하지 못했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여기 혼펠스로 된 암반은 표면이 울퉁불퉁해 족적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움푹 들어간 것을 잘 연결해보면 소형용각류 보행열 5개가 확실하다 합니다.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뜻의 파충류 공룡(恐龍, dinosaur)은 중생대초기인 2억4천만 년 전에 이 지구에 출현해 1억6천만년 동안 온 누리를 군림하다가 백악기 말에 갑자기 멸종되었다 합니다. 공룡이 멸종된 원인을 설명하는 데 가장 유력한 학설은 “운석충돌에 의한 핵 겨울설” 로 운석이 지구와 충돌해 발생한 대량의 먼지가 햇빛을 수년간 차단해 기온이 급강하했고 이로 인해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추위를 이기지 못한 초식공룡이 먼저 죽고 초식공룡을 먹이로 하는 육식공룡이 그 뒤를 이어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설이 있지만 그토록 오랜 동안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의 지배자로 군림한 공룡이 멸종된 데는 자기의 비대해진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임은 분명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많은 사람 위에 군림했다가 끝내는 자기 몸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능함만 드러내다가 추락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간공룡(人間恐龍)에 다름 아닙니다. 선거 때만 되면 곧바로 용이 될 듯이 날뛰다가 어느 한 날 추락해 다시는 얼굴을 내보이지 못하는 잠룡(潛龍)들도 자기 몸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인간공룡들입니다. 인간이 공룡과 다른 점은 자기 몸무게를 알아 분수를 지킨다는 것인데 그리하지 못하고 과욕으로 몸집만 불린 나머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고만 인간공룡들이 남긴 발자취는 공룡의 발자국보다 지질학적 가치는 없을지 몰라도 사람 살아가는데 소용되는 역사적 교훈은 끌어낼 수 있다 싶어 그들의 생애를 기록, 보관 하고 전시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침8시55분 개천의 하명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옥천사로 향했습니다.
마산의 남부터미널을 출발해 고성군의 배둔에서 하차한 후 15분 남짓 기다려 8시35분에 금곡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배둔 버스정류장에서 젊은 여스님에 옥천사로 가시냐고 한 마디 여쭸다가 그 절로 가지 않는다고 심히 짜증어린 답을 듣고 나서 무슨 스님이 소갈머리가 밴댕이만도 못하냐며 언짢아진 마음을 속으로 삭이다가 의외의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낙남정맥 종주 길에 이 정류장에 들른 분은 부산 사시는 동심이님으로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산하”사이트에서 댓글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 너무 아쉬워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 후 버스에 올랐습니다. 20분이 조금 못 걸려 다다른 하명 정류장에서 왼쪽 다리를 건너 옥천사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걸으며 시골 아침의 겨울 풍경이 참으로 여유롭다 했습니다.






  9시19분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성탄절 휴일인데도 주차장이 텅 빈 것으로 보아 잘 지어놓은 집단 시설들이 손님이 없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계곡 입구로 내려가 공룡이 지나가 암반이 움푹 들어간 발자국 자취를 사진 찍은 후 다시 올라와 산행 채비를 했습니다. 연화산 등산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계단 길로 올라서자 이내 낙엽이 소북이 쌓인 오솔길이 나타나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몸을 덥히기 시작했습니다. 얼음이 보이는 계곡을 지나 연화1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서기까지 오름 길이 가팔랐습니다. 계곡에서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15분가량 걸어 암벽쉼터에 다다랐습니다. 정작 암벽은 찾아볼 수 없고 층리가 잘 발달된 팔면체 바위 몇 개가 자리한 암벽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연화1봉으로 향했습니다.






  10시31분 해발489m의 연화1봉에 올랐습니다.
암벽쉼터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 산길이 평평해져 걷기가 편안하다 했는데 이내 치받이 길이 나타났습니다. 해발고도를 150m 가량 높이느라 숨을 헐떡여야 했던 된비알 길에 산 오름을 보다 쉽게 하고자 지그재그로 길을 냈고 몇 곳에 나무계단도 설치해 그나마 힘이 덜 들었습니다. 정상석과 돌탑이 나란히 세워진 연화1봉에서 황새고개로 내려가는 길도 급했습니다. 비올 확률이 30%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햇빛이 나 우중산행을 피할 수 있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급경사 길을 내려가 다다른 황새고개는 아스팔트 차도로 왼쪽 아래로 내려가면 옥천사에 이르고 직진해 능선을 따라 오르면 연화산 정상에 닿게 됩니다만, 저희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을 들르고자 오른 쪽 위 차도를 따라 올랐습니다.







  11시23분 적멸보궁을 둘러보았습니다.
개천방향으로 20분 남짓 왕복2차선의 지방도를 따라 오르다가 적멸보궁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왼쪽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차 1대가 다닐만한 시멘트 길을 따라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산불감시차량이 서 있어 입산을 금하는 것 아닌가 마음을 졸였는데 차안에 감시요원이 보이지 않아 안도했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조금 내려가 올라다 본 사찰의 주 건물은 적멸보궁이 아닌 극락보궁이었고 다른 적멸보궁과는 달리 불상을 같이 모셔 동행한 친구는 과연 적멸보궁이 맞느냐며 의아해 했습니다. 친구가 궁금증을 푼 것은 한 스님으로부터 실론 등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는 진신사리임을 입증하기 어렵고 이 절에서는 사리와 불상을 같이 모셨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11시54분 해발528m의 연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다시 산불감시차량이 서있는 고개마루로 돌아가 오른 쪽 능선 길로 들어섰습니다. 황새고개에서 연화산 정상으로 바로 올랐다면 고도차가 200m 가량 되어 진땀을 흘려야 했을 것을 여기 고개 마루에서 출발해 오름 길이 별반 힘들지 않았습니다. 수피가 깔끔한 서어나무들에 반갑게 눈인사를 한 후 정상에서 내려오는 여러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머지않아 꽃망울이 터져 봄꽃을 피울 것 같은 진달래가 이 산이 따뜻한 한반도 남단에 자리하고 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연화1봉보다 더 넓었고 정상석과 돌탑이 같이 자리한 정상에서 인절미로 요기를 한 후 한 분에 부탁해 친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해마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기가 뭣해 배낭을 정상석 옆에 놓고 등정 증명사진만 찍어온 저로서는 새삼 제가 피사체가 되어 얼굴을 내보이는 일이 영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이런 제 얼굴도 연꽃을 닮았다 해 이름 얻어진 연화산이 받쳐준다면 괜찮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찍었습니다. 황새고개로 내려가는 왼쪽 길 대신 직진하는 남산 길로 내려섰습니다. 남산 가는 내리막길 또한 경사가 급해 혹시라도 뒤로 자빠져 다친 허리를 또 다칠까보아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12시41분 해발427m의 남산을 올랐습니다.
연화산 정상에서 0.38Km 거리의 깊숙한 안부에 내려서기까지 고도가 150m가량 낮아질 만큼 경사가 급하고 땅이 질어 20분 넘게 걸렸습니다. 안부에서 남산까지 거리가 0.22Km에 불과해 이번 산행의 어려움은 안부에 내려선 것으로 끝났다 했습니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길을 올라 다다른 남산에도 정상석이 어엿하게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산이 연화산의 말산이 아니고 독립된 산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자리하고 볼록볼록한 봉우리 너머로 마을이 보이는 산 풍경은 거산에서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이 있었습니다. 오른 쪽 연화쉼터 쪽으로 가다가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돌아와 왼쪽 느재고개 길로 내려가느라 몇 분을 까먹었습니다. 남산 출발 10여분 만에 내려선 느재고개는 벤치가 있어 쉬어갈만 했습니다. 옥천사 길과 청련암 길이 같이 갈리는 느재고개에서 20분을 채 못 올라가 옥녀봉을 올랐습니다. 표지석 대신에 자그마한 바위에 봉우리 이름을 흘겨 쓴 옥녀봉에서 3-4분 더 걸어 왼쪽 아래로 옥천사 길이 갈리는 밋밋한 안부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13시47분 옥천사로 들어가는 천왕문을 지났습니다.
밋밋한 안부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느재고개에서 만난 부부가 일러준 장군봉이 아닐까 해 내친 김에 쉬지 않고 올라갔는데 표지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군봉이 아닌 것이 분명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밋밋한 안부로 되돌아와 옥천사 길로 내려섰습니다. 이내 느재고개에서 내려오는 옥천사 길과 합류했고 뿌리 채 뽑혀 누워있는 거목 옆을 지나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청련암 탐방은 다음으로 미루고 천왕문을 지나 곧바로 옥천사를 둘러보았습니다. 경남지방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이었던 옥천사의 자방루(滋芳樓)가 사찰 외곽을 둘러싸 신경 쓰지 않으면 잘 눈에 띄지 않는 대웅전을 둘러보며 색 바란 단청을 보고 이 절이 오래된 고찰이다 싶었는데 과연 그러한 것이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10년인 서력67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라 합니다. 현존 가람은 임진왜란 때 불 탄 것을 1700년경에 중창한 것이라하니 여기 단청은 300년 넘는 세월을 견뎌낸 것입니다. 광복 이후 교단정화와 불법중흥을 위해 헌신하신 청담대종사께서 1927년 첫 승려생활을 하신 이절에서 매년 음력9월27일에 이 절을 개창한 의상대사와 청담대종사의 열반제가 거행된다 합니다.







  14시44분 하명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옥천사 마당에 핀 진홍색의 동백꽃이 옆 자리의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따다 남은 노란 감들로부터 가을을 넘겨받아 겨울여행을 즐기는 듯했습니다. 일주문을 빠져나와 옥천소류지를 지나며 개나리가 부끄러운 듯 살포시 꽃을 피워 남단의 계절 시계가 서울과 똑같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산행을 시작한 집단시설주차장에 돌아온 시각은 14시29분으로 연화산을 빙 둘러오는 데 5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15분을 더 걸어 다다른 하병 정류장의 음식점을 들러 손두부와 맥주 2병을 시켜 든 후 14시50분에 금곡을 출발한 버스를 타고 아침에 경유한 배둔으로 돌아갔습니다. 배둔에서 통영으로 옮겨 친구의 제자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녁 6시에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습니다.






  이번 산행이 올 한해 마지막 산행이 될 것 같습니다.
작년 10월 산행사고로 다친 허리가 아직 완치되지 않아 장시간 원거리 산행이 아직은 겁이 납니다. 사고로 멈춘 섬진강산줄기 환주를 마치지 못해 매우 아쉽습니다. 바위만 보면 겁부터 나 암릉 길 걷기가 망설여지는 바위공포증을 아직 극복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자연 올 한해 산행이 바란 만큼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고 도와주신 덕에 건강을 거의 다 회복해 이정도로 산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자기 분수를 알고 매사에 고마워한다면 욕심이 낳는 비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공룡처럼 자기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산을 오를 뜻입니다. 그리고 몸무게를 더 줄여볼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산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