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산(蓮花山) 도립공원(道立公園)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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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나는 몇 해를 벼르고 별러오던 경남 고성의 연화산(蓮花山) 가는 길의 옥천사(玉泉寺) 입구에 도착하였다.

이 먼 길을 팔순을 앞둔 고령의 나이로 달려 온 것은 나에겐 오래 동안 별러오던 하나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간된 '국립공원 산행기'에 이어 죽기 전에  전국의 '도립공원 산행기'를 남기고 가겠다는 나의 아름다운 소원이 있어서다.

얼마 전 창녕성씨(昌寧成氏) 성 인(成仁 ) 보(輔) 시조 할아버지께 참배를 하러 경남 창녕(昌寧)에 왔던 길에 마산(馬山)을 거쳐서 고성군(固城郡) 읍내 찜질방에서 와서 모기의 먹이 되어 밤을 지새고 옥천사행(玉泉寺行) 7시 30분 군내 버스 첫차를 타고 홀도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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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固城)에는 인구가 5만 6천여명 밖에 안되어서 25km 가량의 옥천사까지 승객은 일요일인데도 나까지 3명이 오르내릴 뿐인 군내 버스인데 몇 시간 간격으로 오가는 교통편도 일정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도 그 비용은 군의 도움으로 운영 되는 버스 같다.

버스는 신기하게도 교행(交行)을 전혀 할 수 없는 논밭 길과 좁은 마을 곳곳을 들려 50여 분만에 옥천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 연화산 산행 들머리인 '공룡발자국화석지(恐龍足跡化石地)' 까지는 1km요, 옥천사까지는 2km인 모양이다. 들판에는 유난히 따사로운 가을 햇볕에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늦가을이었다.

 

*.연화산 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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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산 가는 길이 옥천사(玉泉寺) 가는 길인데, 일요일인데도 고즈넉한 길의 등산객은 나 혼자뿐이다.

멀리 보이는 것이 연화산인가 보다. 마을 입구 새로지은 8각정을 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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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리길을 벼르고 찾아온 '蓮花山道立公園' 석비가 우뚝 서서 나를 반긴다. 이어서 나타나는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이 연화산의 들머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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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산 (64)등산로이정 암벽 연화봉.JPG  산의 들머리는 어느 곳이나 그 산 각종 정보의 보고(寶庫)다.

들머리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등산안내도 표지, 주변관광지, 등산코스 등이 모여있는 곳이요, 그 산의 터주태감격인 산의 역사가 머물러 있는 사찰(寺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에 시장한 등산객들은 앞다투어 서둘러 산을 오르느라고 이 중요한 정보를 안타깝게도 그냥 지나치기 일수다. '하산할 때 보지- .'하지만 그런 약속이 지켜 지던가. 등산회를 따라 갈 때마다 내가 항상 뒤쳐지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힘에 부쳐서이기도 하였지만 그곳의 정보를 카메라에 담아 가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옥천사입구 이정표에 쓰여 있던 '공룡족적화석지가(恐龍足跡化石地)'가 바로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이었다. 

공룡(恐龍)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간단히 설명해 주는 것이 국어사전이어서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에게 물어 보았다.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설명이 더 어려워지는 법이니 그 이상은 생략하기로 하자-.' 하고.

연화산 (66)공룡발자국.JPG공룡(恐龍)이란 중생대(쥐라기 및 백악기)에 걸쳐 번성하다가 지금은 절멸되어 화석(化石)으로나 발견되는 몸 길이 5 ~ 25m의 거대한 길동물(파충류)의 한 무리들이다. 일반적으로 공룡은 긴 목과 큰 꼬리를 가지고 있고, 앞다리는 뒷다리보다 짧으며, 걸어다니는 데에 주로 뒷다리를 쓴 듯 하다. 모양은 악어와 비슷하지만  뼈대의 구조상으로 보면 조류(鳥類)와 비슷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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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고성(固城)은 중생대 시대에 공룡들이 살다간 곳이어서 고성은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해안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고성에는 '세계최대 공룡탑'과 '국내 최초의 공룡박물관'이 있다. 그래서 군내 모든 버스정류소 곳곳은 공룡의 조각품으로 장식한 정류장으로 서 있다. 그 공룡은 해안선이 아닌 읍내에서 30km 이상 떨어진 이 옥천사 부근에도 그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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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산 집단시설지구 주차장 들머리에서 개울 바위에 찍힌 공룡발자국화석(恐龍足跡化石)을 굽어보며 나무층계를 지나 완만한 산길을 오르고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암벽쉼터'까지는 1.12km지만 잔 돌길이고 오래간만에 하는 등산에다가 무성한 숲으로 전망이 꽉 막힌 오름길이 계속되는 길이라서 답답하고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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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달한 '암벽쉼터'라는 곳이 암벽은 물론 전망도 없이 단순한 이정표에 평상 하나가 있을 뿐이어서 도립공원이라고 먼 길을 찾아온 사람을 실망케 한다.

거기서부터는 계속 평탄한 내림길이다가 다시 오름길이 시작되고 통나무 층계가 정상이 가까움을 말해주더니 나타나는 불쑥 나타나는 돌무더기를 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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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화제1봉(489m)이요.' 하는 듯이 정상석이 나를 맞는다.  
그런데 정상(頂上)이면 꼭 있어야 할 전망이 숲으로 꼭 막혀 있다. 연화산이 아니라 연화산 자연삼림지대라고 이름을 고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느재고개'란 이정표 따라 아주 평탄한 내림길이 시작된다.

0.7 km 아래에 있는 느재고개에 도착하고 보니 안부에 있는 보통 산의 고개가 아니라 아스팔트의 대로 찻길로 먹거리를 팔고 있는 상혼도 있다. 이정표를 보니 느재고개에서 왼쪽 아래 도로로 가면 옥천사 후문이요, 산쪽 도로로 오르면 '적멸보궁'이 1km 거리에 있는 모양이다. 

우리들은 적별보궁(寂滅寶宮)이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알고 있다. 신라의 승려 지장(慈藏)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의 상원사(上院寺), 살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法興寺)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는 왜 이리 정멸보궁이 많은가.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이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닐 텐데 그렇게 많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부산 태종대 절에 가서도 적멸보궁을 보았는데 연화사에도 적멸보궁이 있다니-.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달리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적멸궁(寂滅宮)이 불상을 봉안하지 아니하고 법당만 있는 불전을 뜻하는 말이라거나, 적멸도량(寂滅道場)이 부처가 화엄경을 설법한 보리수 아래를 일컫는 말이라니 말이다. 옥천사가 당(唐) 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의상대사가 지은 절이라서 이에 연관하여 연화사 적멸보궁이 생긴 것 같다.

 

*. 옥천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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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재고개에서 옥천사가 요 아래 가까이 있다 하여 나는 한참 망설였다. 옥천사와 연화산 중 어느 곳을 먼저 가야 하는가 해서였다. 앞서 말한 대로 연화산을 보러 왔으니 옥천사를 먼저 가 봐야 둘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선 옥천사를 향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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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재고개에서 가는 옥천사 길은 사천왕문 속으로 내려 가는 절 경내의 길이었다. 
옥천사(玉泉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가서 지의법사(智儀法師)에게 화엄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창건한 절이라 한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末寺)에 불과하지만, 창건 당시에는 화엄종찰(華嚴宗刹)로 '화엄 10 사찰'(華嚴十寺刹) 중에 하나였다. 임란과 정유왜란 때에 옥천사는 승병의 군영 (軍營)으로 호국사찰(護國寺刹)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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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의 이름을 '玉泉寺'(옥천사)라 하게 된 것은 대웅전 뒤에 위치한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 석간수인 옥천(玉泉)에서 유래한다. 이 옥천샘은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나 있어 절을 찾는 이마다 옥천각(玉泉閣)을 들러 물을 마시고 간다.

이 절은 임진왜란에 병화를 입어 회진된 것을 여러 번의 중수(重修)를 거쳐서 현재는 대웅전(大雄殿, 유형문화재 132호)을 중심으로 앞에는 자방루(滋芳樓), 왼쪽에 심검당(尋劍堂), 오른쪽에는 적묵당(寂默堂)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대웅전 뒤편에  명부전, 금당, 팔상전, 나한전,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 등이 대웅전을 감싸듯이 둘러 서 있다. 

 이 절의 문화재로 가장 유명한 것은 보물 제495호인 '임자명 반자(壬子銘飯子)'이다.  '임자명 반자'란 금속으로 만든 징 같은 악기로 그 둘레에 '고려23왕환갑지년임자(高麗二十三王還甲之年壬子)'라는 명문(銘文)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반자'란 '금고(金鼓)'라고도 하는 고려와·조선시대에 절에서 사용히단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를 말한다.

이 절에서 그 다음에 유명한 것이 '자방루(滋芳樓,유형문화재 제 53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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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방루는 대웅전(大雄殿, 유형문화재 제132호) 앞마당을 사이두고 있는 대웅전보다 더 큰 규모의 건물로 위 설명에 없는 그 안의 멋진 그림이 있으니 이를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후회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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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방루 넓은 앞뜰 우측에 근대 불교 정화 운동의 주역이던 청담(靑潭)스님의 화강암의 사리탑이 서 있다. 진주에서 살던 청담스님이  40리 밖에 있는 옥천사에 와 출가하여  석학인 박한영(朴漢永)을 모시고 득도(得度)한 데서 연유된 탑이다. 득도(得度)란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믿어 부처님의 제도(濟度)를 얻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대웅전 앞마당에 구태어 사리탑을 세워야 하는가 하고 이를 아타까와 하는 이들의 말이 많은 탑이다. 

 

*. 연화산 가는 길 

 연화산길을 가기 위해서 내려왔던 길인 느재고개로 다시 향하여 오르고 있다. 느재고개에서 연화산을 향하여 들어서려 하니  '연화산 1.0km/ 남산 0.9km/연화1봉 0.8km' 라는 이정표가 있다. 물론 나는 연화산을 향하는데 가는 길이 지금까지보다 더 완만한 오름길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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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통나무 층계가 있어 오르니'연화제1봉'처럼 나무로 만든 널찍한 평상(平床)이 보이더니 드디어 연화산 정상(528m)이 나타난다.

고성은 남해바다의 한려해상국립공원(閑麗海上國立公園)에위치해 있는 군이다. 나는 전에 고성에 와서 벽방산(碧芳山, 700m)과 거류산(去流山, 570.5m)을 등산하며 정상에서 찬란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본 사람이라 연하산의 전망도 그러리라 기대했더니 도립공원이란 이름이 무색하게도 연화산 정상 마져 숲에 가려서 굽어보는 아무런 전망이 전혀 없으니 말이 되는 일인가. 자고로 산고곡심(山高谷深)이라 하여 산이 높아야 골이 깊은 법인데 연화산 정상은 528m로 높이로도, 계곡으로도 자랑할 것이 없다. 

기암괴석이 없는 육산(肉山)으로 산세가 웅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기자기한 등산의 멋도 없는 평범한 육산일 뿐이다. 게다가 다른 도립공원에 비해서 등산객을 배려해서  각 정상 이외에는 정성 들여 꾸민 아무런 시설 하나도 없는 도립공원이었다. 그러면서도 경남의 그 숱한 산을 제치고 가지산(迦智山, 1,241m)과 나란이 경남의 도립공원으로 선정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남에는 연화산보다 더 유명한 산으로 앞에서 말한 고성의 거류산(570.5m)도 있고, 천황산(1,189m), 화왕산(756.2m), 금산(701m)등도 있지 않은가.   일찍이 김장호 시인은 그의 명저 '韓國名山記'에서 '명산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였다.
 
한국에서 명산(名山)이란 대개는 산세가 수려(秀麗)하여 선인의 발자취며 역사 유적이 흥건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이름난 절간이 들어 앉았거나, 골짜기나 천석(泉石)이 아울러 빼어나거나 함으로써,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 그래서 또 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산들이 거기 대응된다.


이 조건에 견강부회격(牽强附會格)으로 겨우 겨우 연화산에 맞는 것은 둘째로 말한 '절간'에 해당하는 옥천사가 있어 명산 대열에 들어 경남 도립공원의 하나로 선정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연화산은 옥녀봉, 선도봉, 망선봉의 세 봉우리가 어울린 모습이 연꽃 형상을 닮았다 하여 연화산(蓮花山)이라 이름 하였다는 산이다. 
연화산의 북쪽 기슭에 옥천사(玉泉寺)와 그 건너에 백련암(白蓮庵), 청련암(靑蓮庵) , 북의 연대암(蓮臺庵)의 이름 속에 연꽃 '蓮' 자가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연화산(蓮花山)에서 유래한 이름이요, 연화산(蓮花山)은 산 이름처럼 불교와 깊고 밀접한 연관을 가진 산임을 알 수가 있겠다. 연꽃은 부처의 염화시중의 미소(拈華示衆 微笑)와 함께 불교에서는 성화(聖花)라 하하여 만다라화(曼陀羅華)라고도 하니,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화산은 경관이 아름답고 오래된 사찰과 문화재가 많아 198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라 생각 된다. 산림청도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연화산을 선정하였다 한다.

그래서 연화산에 와서는 옥천사의 이모저모를 놓치지 않고 보고 가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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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산 정상에서 얼마쯤 하산하니 '운암고개'가 있고 이정표가 나에게 0.22km의 남산을 통하여 0.6km 황새고개를 향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나 목적지인 연화산을 오른 후라서 갑자기 고성 가는 교통편이 걱정이 된다. 경기도 일산(一山)으로 귀가 해야 하는데 고성까지의 대중교통은 한시간 이상 간격인데다가 그것도 일정하지가 않았다. 옥천사에서 택시를 부르면 2만원 이상의 거금을 주고도 고성에서 오는 택시를 기다려야만 한다니 백수의 처지로는 무리였다. 다행히 고성에 사는 박오영 사장의 호의로 그 차편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집에 돌아 와서 나의 "국립공원산행기"을 박사장에게 붙여 그 고마움을 표하였다. '도립공원 산행기'를 책으로 내고 싶어도 연화산이 너무 멀어서 걸림돌이었는데 그 소원을 이렇게 풀었으니 발로 쓴 나의 '도립공원 산행기'도 상재할 날이 이제 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