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목요일)의 산행지로 선택한 곳은 지난 5월 18일에 다녀 온 연인산이다. 몇 달 전의 초행길에는 소나기로 인해 용추계곡을 충분히 감상하지 못 했고 장수능선을 거쳐서 정상에 올랐다가 청풍능선을 거쳐 청풍협에서부터 용추계곡을 지나쳤기에 오늘은 그 초행 이후에 마음 먹은 대로 소망능선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연인능선을 통해 용추계곡의 전구간을 다녀 오기로 마음 먹는다. 7,8월 두 달 간은 해발 500 미터 안팎에 불과한 마니산과 삼악산 밖에 오르지 못 했기 때문에 체력이 걱정되기도 했고 약한 감기 기운도 있었지만 여름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 좀 긴 산행을 결정한다.

 군대식으로 아침 여섯시 경에 일어나서 동네 김밥집에서 김밥 네 줄을 사 들고 성북역으로 가서 7시 15분발 경춘선을 타고 열차 안에서 아침으로 김밥 두 줄을 먹는다. 가평역에서 내리니 8시 26분 경.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가평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지루하게 백둔리행 버스를 기다리다가 1700원을 내고 9시 20분발 버스를 타니 9시 55분 경에 버스는 연인산 입구인 자연학교 입구에 정차한다. 연인교를 건너서 계곡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가니 소망능선과 장수고개의 갈림길이 나오고 눈에 익은 연인산 등산 안내도가 보인다.

 소망능선 쪽으로 5분 정도 걸어 올라 가다 보니 경기도의 일방적인 도립공원 강행에 따른 지주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소망능선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산으로 들어 가는 길마저 사유지인지 이해가 안 돼 소망능선으로의 산행을 강행하기로 한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나 있는 폭 넓은 산림도로를 50분 가량 걸어 가니 공터에 신축건물 한 채가 나타나고 그 건물 좌측으로 소망능선의 지릉길 초입이 펼쳐지는데 초입부터 상당히 가파르다.



소망능선으로 가는 산림도로.



산림도로가 지릉길로 바뀌는 초입부터 가파른 소망능선.

  

 소망능선길은 울창하고 키 큰 나무들에 의해 반 쯤 그늘이 져 있지만 가파른 부분이 많고 한참 올라 가야 하기 때문에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숨이 가빠진다. 한참 오르다가 스틱을 대신할 지팡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등로를 두리번거리다가 부근에 안성마춤인 부러진 나뭇가지를 발견하고 주워서 오른 손에 잡고 오른다. 한결 낫다.

 그런데 산행객이라고는 한 명도 볼 수 없다. 이렇게 적적한 산행은 처음이다. 깊은 산중에서 적적한 마음이 들어 워크맨을 들으니 라디오는 전파 방해로 잡음이 심하여 카셋트 테이프에 녹음해 둔, 90년대 중반에 유행했었던 신세대 가요를 듣는다. 적적한 기분이 약간 위로가 된다.

 전형적인 육산의 등로에는 가파른 비탈에 나무의 뿌리들이 돌출하여 흡사 뱀처럼 노출돼 있다. 상당히 가파른 부분에는 로프도 설치돼 있다. 로프가 설치된 지점을 지나서 십 분 이상 더 올라 가니 소망능선에서 연인산으로 가는 길과 장수능선으로 가는 길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소망능선의 가파른 지릉길.



로프가 설치된 소망능선의 가파른 등로.



소망능선에서 연인산과 장수능선으로 가는 길로 갈라지는 삼거리.

  

 12시 30분 경에 장수샘에 도착한다. 두 바가지를 퍼 마시고 수통에 장수샘의 물을 가득 채운다. 다시 등산로로 올라 가서 연인산 정상에 도착하니 12시 50분 경. 백둔리에서 정상까지 3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정상에는 50대로 보이는 산행객 한 팀이 쉬고 있다. 오늘 연인산 산행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일리 쪽으로 내려 가고 잠시 쉬다가 호젓한 정상에서 주변의 산들을 촬영하고 점심으로 가져 온 김밥을 먹는데 별로 식욕이 나지 않아 반 쯤 먹다가 일어나서 하산할 준비를 한다. 시계를 보니 13시 50분 경. 한 시간을 쉰 셈이다.



연인산 정상에서 조망한 주변의 산들 1.



연인산 정상에서 조망한 주변의 산들 2.



연인산 정상에서 조망한 주변의 산들 3.

  

 정상에서 5분 정도 내려 오니 연인능선을 통해 용추휴양소(버스 종점)까지 10.6 킬로미터라는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그 길을 따라서 처음 가 보는 연인능선으로 접어 든다. 연인능선을 전형적인 숲길이라고 표현한 어느 산행기의 설명처럼 이 능선길은 한 사람이 통과할 정도의 좁은 길의 좌우로 수풀이 무성한 곳이다. 15분 정도 내려 가니 연인능선이 계곡길과 능선길로 갈라지는 지점의 방향표지판이 나온다. 그리고 그 부근의 땅 밑에 나무에 기대 놓은 지도도 보인다. 능선길을 택해서 걸어 가니 소망능선보다 더 가파른 연인능선의 내리막길들이 나타나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고 내려 가니 발에 무리가 갔는지 왼 쪽 발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연인능선이 계곡길과 능선길로 갈라지는 지점의 방향표지판.



방향표지판 근처에 설치된 연인산 지도.



연인능선의 한 부분.

  

 14시 40분에 연인능선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오니 연인골까지 0.1 킬로미터라는 방향표지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 표지판을 따라서 걷다 보니 맨땅이 보이지 않고 잡초가 무성한 곳이 있어서 뱀에 의한 피해가 염려되어 스패츠를 착용한다. 그러나 그 길은 지나고 보니 십여 미터 정도에 불과했고 그 곳을 통과하니 연인골이 나타나고 그 곳의 방향표지판은 용추휴양소까지 8.8 킬로미터이고 우정고개를 통해 마일리 국수당까지는 3.0 킬로미터라고 표시돼 있다. 스패츠를 벗을까 생각하다가 징검다리를 건널 때에 등산화가 젖지 않게 하고 또 잡초길을 걷게 될 지도 몰라 탁족을 할 때까지 착용하게 된다.



연인골의 방향표지판.(14:45)



연인골에서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14:45)

  

 그 곳에서 십분 정도 용추계곡으로 걸어 가니 연인골에서 청풍능선으로 가는 산림도로와 용추계곡으로 가는 산악자전거 코스로 갈라지는 삼거리의 방향표지판이 나온다. 그 곳에서 계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용추계곡의 산악자전거 코스 입구로 들어 간다. 울퉁불퉁한 돌밭길을 30분 정도 걸으니 처음으로 소리만 들리던 계류가 눈에 보이고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 곳이 나온다.



연인골에서 청풍능선과 용추계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의 방향표지판.(14:54)



용추계곡길에서 처음으로 계류를 본 징검다리께.(15:25)

  

 계류를 따라 내려 가면서 징검다리를 여러 번 건너다 보니 계류의 좌측으로 산림도로가 나타났는데 지나온 길로 되돌아 가는 듯이 보이는 방향이고 방향표지판도 없어서 그냥 무시하고 계속해서 계류를 따라갔는데 산림도로가 끊기고 정상적인 등산로라고 볼 수 없는 길을 만난다. 그러나 가끔 등산화 발자국도 보여서 계류를 따라 올라 가는데 무심코 계류를 내려다 보니 계류를 거슬러 올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수십 미터 쯤 되돌아가다가 지나온 방향표지판이 분명히 이 방향을 용추휴양소로 가는 길로 가리키고 있었고 계류를 따라 간 것이 분명하므로 계속해서 전진하기로 한다. 15시 40분 경부터 16시 20분 경까지 40여분간 징검다리를 몇 차례 건너면서 계류의 왼 쪽으로는 덩굴들이 길을 막는 비탈길을 헤치고 나아가고 계류의 오른 쪽으로는 잡초가 무성하고 왼 쪽의 잡초만 절반 쯤 비스듬히 뉘어져 있는, 뱀이나 멧돼지가 출몰할 지도 모르는 길을 가다 보니 몸은 탈진 상태에 가깝게 되고 시끄럽던 계류의 소리도 거의 사라지고 만다. 그제서야 자신이 엄청난 판단 착오를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때 시계를 보니 16시 20분 경. 서둘러 징검다리를 여러 번 건너면서 올라 왔었던 길을 되짚어 내려 간다. 요즘 19시면 해가 지는데 이 깊은 산중에서는 18시만 넘으면 어둠이 밀려 오리라. 연인골까지 되돌아 가서 마일리 국수당 쪽으로 탈출할 생각으로 쉴 틈도 없이 발길을 재촉한다. 허둥대다 보니 갈증이 더욱 심하게 나고 수통은 이미 비어 있다. 계류에 접근하여 수통에 계류를 가득 담고 꿀꺽꿀꺽 마신다. 이 청정한 오지의 계류를 마시고 탈이 날 일은 없겠지. 등산화를 적셔 가면서 징검다리를 여러 번 거칠게 건너다 보니 산림도로가 나온다. 그 길로 들어 가서 바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산림도로의 한 쪽으로 계류가 보이고 자신은 그 계류의 흐름대로 걷고 있다. 약간 안심이 된다.

 한참 걷다 보니 17시 30분 경에 청풍협(칼봉이)에 도착한다. 몇 달 전에 청풍능선을 통해 당도해서 낯익은 곳이다. 이 곳의 방향표지판을 보니 마일리 국수당까지 7.3 킬로미터, 용추휴양소까지 4.5 킬로미터이다. 당연히 거리가 더 짧고 한 번 가 봤었던 용추 쪽을 택한다. 이제 어두워지기 전에 약간 위험한 징검다리 몇 개만 건너면 펜션이 있는 곳부터는 해가 떨어져도 안심하고 갈 수 있다. 요즘 비가 오지 않아서 그런지 소나기가 내리던 몇 달 전의 산행일보다 계곡의 수량도 더 적고 건너기도 쉽다.

 중요한 징검다리를 거의 다 건너고 어둠이 밀려 오는 18시 50분 경에 펜션이 여러 채 자리잡고 있는 다리께에 도착한다. 십여분 전에 탁족을 하고 스포츠샌들로 갈아 신었지만 이 곳에서도 탁족을 하고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어차피 용추휴양소에서 가평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18시 정각과 20시 정각에 있는데 혹사를 당한 발도 아픈 고로 천천히 가기로 한다. 소망능선에서 주운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여 용추휴양소에 도착하니 19시 30분 경. 오늘의 산행에서는 이 지팡이가 여러 모로 유용했다. 아무래도 스틱을 하나 사야겠다.

 버스 종점이 있는 넓은 주차장에는 어둠이 깔려 있고 문이 닫힌 가게의 불은 꺼져 있는데 줄을 풀어 놓은 서너 마리의 개들이 사납게 짖으며 나를 맞이한다. 그러나 달려들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30분을 기다린다고 해도 버스가 꼭 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마침 한 부부가 승용차를 타고 있어서 가는 길이라면 가평역까지 태워 줄 수 없느냐고 사정을 해 본다. 결국 차를 얻어 타고 가평역 부근까지 올 수 있었다.

 역 대합실에서 점심 때에 남긴 김밥 한 줄을 저녁으로 먹으니 더 이상 먹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9분 연착한 20시 37분발 경춘선 상행 열차를 타고 성북역까지 가면서 등산지도를 펼쳐 놓고 알바의 원인을 파악해 보니 용추계곡의 계류가 Y자 모양으로 변하면서 지계류(支溪流)와 만났다가 다시 주계류(主溪流)로 합류(合流)하는 부분이 있다.(여기에서 V자가 주계류이고 밑의 I자가 지계류임.) 계류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처음에는 흐름의 방향이 불분명한 지계류를 주계류로 알고 따라가게 됐고 그 것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알바로 이어진 것이다. 계류를 무시하고 가던 길과 거의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산림도로로 가는 게 정상적인 산행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방향표지판이 많은 연인산에서 이렇게 혼동하기 쉬운 곳에 방향표지판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라고 본다. 그 산림도로에는 용추휴양소로 가는 길이라는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어야 하고 지계류로 빠지는 장소에는 등산로가 아니라는 경고표지판을 설치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지계류의 흐름을 따라 간 곳은 알바의 흔적이 있었지만 등산로가 아니었고 잡초가 한 쪽으로 뉘어져 있는 걸로 봐서 사후에 생각해 보니 멧돼지들이 다니는 길로 추정된다. 연인골 직전의 평지인 산행로에도 스패츠를 착용한 곳 부근에 멧돼지의 배설물 같은 누런 오물을 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본 사람들 외에는 산행객을 한 명도 볼 수 없었던 무서운 적막 속의 단독산행 중에 심산유곡에서 길을 잃었으니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심경을 헤아리지 못 하리라. 산행에는 무엇보다도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함은 수십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용추에서 청풍능선이나 연인능선을 통해 연인산에 오르기가 어렵다는 것은 용추계곡 때문이 아니라 청풍능선과 연인능선에 오르기에 꽤 힘든, 상당히 가파른 길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용추계곡이 길다고는 하지만 징검다리를 열 번 이상 건너는 것 외에는 완만한 산림도로와 그리 걷기 힘들지 않은 계곡길을 걷는 것이기 때문에 용추계곡 자체만을 봤을 때에는 올라 가는 것이나 내려 가는 것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코스이다.



알바를 끝내고 안도한 청풍협의 방향표지판.



청풍협의 계류.



용추계곡의 시원하고 청정한 계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계류를 낀 산림도로.



계류의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



계류의 징검다리를 건넌 후.



바위 위의 다람쥐 1.



바위 위의 다람쥐 2.



계류와 바위 1.



계류와 바위 2.



계류와 바위 3.



탁족을 한 계류의 다리.



탁족을 한 계류의 다리에서 한참 걸어 내려 온 산을 뒤돌아 보며...

  


 오늘의 산행로 - 정규 코스 14.6 킬로미터(알바 포함 약 17 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