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 숲속에 쏟아지는 하얀 달빛과의  하룻밤-연인산(사진)

 

산행일시 : 2004년 8월27일(금) - 28일(토)

산행지    : 경기도 가평군 연인산

산행코스 : 경기도 현리 - 국수당 -우정고개 (잣나무 숲속 1박)

                우정고개-우정능선-연인산-연인능선-우정고개 원점회귀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 칠흑에 칠흑을 더하여 더욱 깜깜한 잣나무 숲 속.

밤 12시

부엉이는 없지만 부엉이는 부엉부엉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며 소쩍새도

울어 들 듯한 한밤중 잣나무 숲 속.

 

한자락 바람이라도 불면

무언가 하얀 물체가 너울거리며

저 건너 또 다른 어둔 숲에서 닥아 와

와락 안겨들것만 같은 한밤중 잣나무 숲 속

 

안아름 넘는 거목틈새사이 어둠 속을 들여다 보면

엉클려 발 목 잡던 잡목 넝쿨  속

바람에 스르렁거려 무언가 움직이는데

무엇일까 궁금한 한밤중 잣나무 숲 속.

 

돌려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곁눈으로 바라보니

저 곳 거목 잣나무 검은 그림자 뒤에

이 곳을 노려보는 두 개의 산고양이 새파란 섬광.

 

머리는 쭈뼛 솟고 온 몸에는 소름이 솟아 오르는

한밤중 잣나무 숲속.

 

어쩌다 한 번 쎈 바람이 불어오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온갖 아우성소리

 

머리위 잣나무가지 뒤흔들리는 소리

주변의 잡목과 넝쿨들 바람에 휩쓸리는 소리.

온 갖 불길한 소리 넘쳐나는 한밤중 잣나무 숲 속.

 

어둠 속에 보이지를 않으니 더욱 깜깜한 잣나무 숲 속

 

차라리 어둠속을 걷노라면 걷느라 생각치 않겠지만

차라리 능선상이었으면 비록 검지만 하늘을 보고

별도 보고 달도 볼 수 있으련만

 

전후좌우상하 산지사방 꽉 막혀 어둠만이

오직 어둠만이 쌓여있는 한밤중 잣나무 숲 속.

 

그렇다고 배낭을 다시 꾸려 돌아가자니

뒷덜미 잡아챌 듯 새까만 어두움이 더욱 두렵고

 

두 눈 뜨고 꼼짝않고 앉았자니 온 갖 어두운 형상이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눈 앞에 아른거리고

 

두 눈 감고 있자니 이 건 더욱 더 못할 일

눈에 뵈는 형상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눈 앞에서 난무를 하니.......

온 갖 검은 것들이 우글거리는 한밤중 잣나무 숲 속.

 

"괜히 왔나........?"

웅얼거려 보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

시간을 보고자 핸드폰을 찾으니 저---곳

어두운 잣나무 등걸에 배낭이 놓여있어

그 곳까지 가기조차 두려운 한밤중 잣나무 숲 속.

 

아하, 이래서 옛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化石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한밤중 잣나무 숲 속.

 

헌데, 갑자기, 불현 듯

한 줄기 빛이 내려 와 한밤중 검은 잣나무 숲을 환히 비쳐줍니다.

 

한아름 잣나무가 그 어두운 모습을 벗어 제 모습으로 돌아 오고

눈앞에 아른 거리던 온갖 잡귀들이 몽땅 사라져 버립니다.

 

그 멀리 있어 보이던 배낭도 바로 조-기  앞으로 가까이 있고

주변을 둘러 쌓아 온갖 요상한 것들을 만들어 내던 잡목과 넝쿨숲도

한 낯 관목과 넝쿨일 뿐 아무것도 아닌  제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작은 바람에도 너울거리며 눈을 혹하게 하던 것은

바로 관목나뭇가지에 걸려 날리던 그 까짓 두루마리 휴지조각.....

파랗게 두눈으로 노려보던 산고양이도 기껏해야 조그만 강아지만한

보잘 것 없는 녀석입니다.

 

보이면 형편없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틈새를 노려 한 번 잘난척

해 봤는가 봅니다.

덕분에 온갖 얄굿고 희한한 망상과 상상을 하게하고

오랜만에 밤(夜)산에 들어와 아늑하고 호젓한 시간을 갖고자 함마져

잠시나마 후회하게 만들어 놓다니......괘씸한 것들 같으니라구

 

검은 잣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니

아,검은 하늘에 두둥실 둥근 달이 구름 사이로 천천히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새벽 3시 30분 지리산 초입머리 구례구역 역전앞 광장을 비춰주는

가로등의 붉은 전구와도 같습니다.

 

붉은 달이 비쳐주는 하얀 달빛이 잣나무 숲 속을

가득 가득 채움에 아늑하여라.

 

오는 일요일 태풍이 올라 온다는 기상예보에 보름달은커녕

한 조각 달빛마져 기대치 않았으나 내일모래 보름을 앞두고

노란 알루미늄 라면용 냄비 뚜껑처럼 조금 찌그러진

둥근달이 수십발넘는 잣나무 숲 꼭대기에 걸려져 있습니다.

 

잣나무 숲사이로 뿜어지는 하얀색 달빛이 마치 무언가를 찾는

서치라이트의 환한 불빛과도 같습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수십개의 빛이 검은 잣나무 사이로

뿜어져 들어오니 아 참으로 장관입니다.

 

산 속에서의 아침 새벽, 나무사이로 쏟아지는 햇볕과는

또 다른 장중하며 엄숙한 화려함입니다.

 

환한 여명속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모짜르트의 경쾌함이라면 

짙은 어둠속 나무사이를 헤치는 달빛은 바흐의 장중함이며

 

숲 속의 아침햇살이 퓨릇이라면 숲 속의 달빛은 호-온입니다.

숲 속의 아침햇살이 유채색 서양화라면

숲 속의 달빛은 무채색 동양의 산수화입니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하얀 달빛에 넋을 놓고 정신을 놓아 버립니다.

저리도 아름다운 빛.

숲 속에 쏟아지는 하얀달빛.

 

하얀달빛이 떨어져 쌓여지는 나무등걸에 등을 기대고 앉아

둥근 달을 바라보니 이번에 나의 온몸에 하얀 달빛이 쌓여집니다.

전혀 무게 없이 쌓여지는 흰빛을 느낍니다. 얼굴도 환히 비추겠지요.

 

눈도 부시지 않은 광원이 어찌 저리도 화려할 수 있을까?

겸손함이랄까.

 

물가에 작은 모닥불을 만들고 소주 한 잔을 하며 ....

 

마냥 흰색 달빛에 홀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 있습니다.

옅은 구름속에 숨었다 다시 나오기를 거듭하는 둥근달이

구름이 흐르는지 달이 흐르는지 아니면 세월이 흐르는지....

구름도 흐르고 달도 흐르고 세월도 흐르고  그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잣나무 아래에 세워놓은 비박용 후라이에 들어

침낭속에 누우니 아- 세상은 흐르지 못하고 돌기만 합니다.

빙글빙글  돌고 도니 세상이 또 동전짝만하게 보이고

흰색 달빛에 취하고 한잔 술에 취하여

잠이 들 만하니 잣나무 숲으로 엄청난 바람이 몰아칩니다.

 

밤새도록 잣나무 숲을 뒤 흔드는 바람은 계속 불어 제키고

후라이로 몰려드는 바람은 침낭위에 침낭커버를 씌우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비몽사몽.....

 

아침에 눈을 뜨니 새벽6시 잣나무 속 공기가 참으로 산뜻합니다.

 

하늘엔 회색빛 구름이 가득, 바람은 여전

후라이를 걷고 침낭과 침낭커버를 챙기고 엊저녁 먹다남은

밥에 김치국을 만들어 먹은 후 배낭에 넣으니 꽤나 무겁습니다.

 

어제밤 하얀 달빛에 그토록 화려했던 잣나무숲 속은

두툼히 쌓여진 가리비가 붉은 카페트마냥 넓직히 깔려 있는 아늑한 곳.

메트가 필요없이 그냥 눕기만 하면 보료가 되어 버리고 마는

안방과 같은 곳입니다.

 

08시20분 엊저녁 6시경 국수당에 주차시켜 놓은 차로 원점회귀 하자면

연인산을 오르는데 굳이 배낭을 멜 필요가 없습니다.

해서 키를 넘는 억새 풀밭에 배낭을 감추어 놓고 스틱만을 지닌체

우정능선 억새 풀밭을 가로 질러 올라갑니다.

 

어제부터 여전히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억새풀을 허리 꺽어 눕히고

짚티 하나만을 걸친 상체는 오름길에 땀이 흐를사이도없이 바람에

날려가 버립니다.

 

10시 20분 동자꽃, 붉은 물봉선, 노란 물봉선,둥근이질풀,

쑥부쟁이,닭의 장풀등 오만가지 야생화 가득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어느새 연인산 정상.

사방팔방이 훤히 틔어진 조망이 참으로 호쾌합니다.

 

명지산은 지척이고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의 암봉

뾰좃히 솟아오른 백운봉 곁으로 용문산이 누워있고

화악산 앞으로는 백운산 광덕산 국망봉이 조망됩니다.

운악산의 암벽은 바로 코 앞에....

경기도의 거의 모든 산들이 연인산 표지석을 중심으로 옅은 안개 속에

동양화 수묵화 마냥 펼쳐집니다.

 

11시 연인산을 뒤로 하고 연인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12시에 만나는 산림도로.

전에 올랐던 기억만으로 국수당 향하는 산림도로를 탔으나

역시 산에서의 희미한 기억은 무용지물

거꾸로 다시 연인산 정산을 오르는 산림도로에 기겁을 합니다.

 

나침반으로 방향 확인을 하고 내려오려니 곳곳에 산림도로가

새로히 뚫려 있고 새로히 뚫는 작업이 한창이라 헷갈리기 십상입니다.

한 두 번의 알바를 하고

 

13시 우정고개에 오르니 어느 부부 산님께서 연인산 등정후 내려와

막걸리를 한 잔 중이십니다. 

억새밭에 숨겨놓은 배낭을 꺼내드니 놀라는 표정으로

"진작 알았더라면.........."하시니 함께 웃습니다.

 

예전에 국수당에서 우정고개 오르는 너덜길은

4륜구동차량 애호가들의 출입으로 훼손되어 집채만한 돌멩이로

입구를 막아놓고 숲 속으로 새로운 오솔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려오는 도중 조그만 샘터에 퍼질러 앉아

라면과 김치와 햄을 쏟아 넣어 부대찌개를 만들어

엊저녁 만들어 놓고 아직도 비우지 못한 밥으로 점심을 하고....

 

14시30분 어제 저녁 6시에 도착하여 지난 밤사이 하얀 달빛과

바람과 이슬을 함께했을 차량에 도착을 합니다.

 

다시 현리를 거쳐 집에 돌아오니 16시

연인산 우정능선에 가득 채워진 억새가 하얀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룰 때가 되면 잣나무 숲속에 쏟아지던 하얀 달 빛을

찾아 화려한 어둠 속에서 또 하루를 보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