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인이기보다 산이고 싶다. 게시물 포워드
작성일: 2005/10/19
작성자: 김영심
16일 일요일 !
가평 연인산을 올랐습니다.
내 생애 첫등반입니다.
10년전 후배들의 보호아래 지리산을 등반한 적은 있으나
양심상 내의지와 노력으로 자발적인 산행을 결정한 것은
마흔 둘이 된 그 일요일 아침이 처음이었습니다.

나이키 운동화 신고
100% 실크 브라우스 입고
스판 진바지 차림에
달랑 빈손을 덜렁대며 산엘 갔습니다.

나는
왜 사람들은 산에 갈 때 힘들게 등산가방을 메고 가나?
빈 몸으로 가시지들! 할만큼 
무식하며  무책임한채 용감했으므로
나의 옷차림은 당연지사였습니다.

anyway!
연인산이란 웬쥐 
운명적으로 연인을 만날 것 같은 헛꿈을 꾸기 딱 좋은
달콤한 이름입니다.

나처럼 장기 싱글은
잠재된 갈망이며 그리움이며 포기하기 싫은 환상에
베팅을 하기 참으로 좋은 이름입니다.

연인산을 하산하기까지의 6시간 동안
"그 분"을 만나겠지!
"그 분"이 오셨겠지!
내 자신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굳이 분간할 필요없이 
연인산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진입로를 조금 오르고 나니
나의 호흡은 임종을 앞둔이의 애처로운 숨소리처럼 거칠며
또한 가쁘며 곧 꺼져버릴 듯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난 여기서 쉬고 있겠노라고!
이길로 다시 하산하시면 그 때 다시 만나자고 !말씀을 드렸으나
다른 길로 하산을 한다더군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오르는 수밖에!

사실 내가 이토록 무책임하며 또한 막무가내 철부지처럼
굴어야 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나는 몸이 약합니다.
즉 장기만성환자로 지레 겁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어차피 홀로가야 할길!
누구나 절박한 순간 앞에서 스스로 투쟁하며
생존하며 자존해야 하는 법!

해서 무조건 올랐습니다.

저놈의 산
도대체 언제까지 올라야 하는거야?
뭣 땜에 저리도 산길이 멀고 먼거야?

나는 그날 내 안엔 얼마나 유치한 성질머리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다!'

그러나
나는 굳이 내 자신과 싸우고 싶지도 않고
하늘아래 뫼가 됐든 말든 끝까지 올라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터질것만 같은 내 심장만 걱정됐습니다.

게다가
표정관리와 이미지 관리도 해야했지요
최대한 고고하며 우아하며 단아한 마흔 여인의
성숙한  등반가다운 자태로!

왜냐면 이미 왠만큼 망가졌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본능적으로 망가지면
다들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여자의 실체에 대해서 회의를 느낄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연인산의 풍광이나 정상에서의 산세는
수려하거나 신비롭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구름과 안개의 신비로운 현상이라도 있었으면
숨찬 가슴이 벅찬 감동으로 이어졌을텐데
그저 말간하늘에 말짱한 기운이었습니다.

그러나  찰라!
연인산 정상에서  주변 산세를  굽어보니
내 안에 산이 들어앉았습니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산은 홀로 완전한 채 늘 그자리에 서 있습니다.
불완전한 것은 인간 뿐입니다.
만약 내가 인간으로서 지금보다는 좀 더 완전에 가깝다면
하루 열두번씩 예측불허로 뒤엉키는 오욕칠정을
말없이 흐르는 피처럼 알아서 흐르도록 놔뒀을 겁니다.

나도 이제 불혹을 넘긴 마흔의 여인인지라
내 안에 나름의 산을 가진 듯도 하지만
사실은 그저 섬이었습니다.
문득 절망스럽고 원망스러우면 잠수해서
온 바다속을 헤집고 마는 섬!

솟았다 잠겼다 하는 나의 섬은 
수수하며 소박하며 듬직한 연인산과 주변 산봉우리들 앞에서
산이 아니었음을
깨우치게 되었지요!

그 깨우침을 얻었기에
주저없이 하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산길!
거~~의
정삼각형의  한 변을  능력껏 타고 내려와야 하는 곡예였습니다.

"어느 산길 모르는 나그네들!
  미련곰탱이 초행자들!
 
  그 우직한 무리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그 삼각변을  번듯하게 길을 내어났을까?
 
  도대체 척 바도 길이 아닌 걸 몰랐나?
 
  그들의 족적으로 뭉개 난  길에
  덮에 걸리듯 내가 걸려들어서
  나 조차도 몹쓸 길을 닦고 있구나!"

산사람들에 대한 예우 대신
신체부실한자의 유치한 성질만 부리면서
때로  하산이란 등산보다 힘겨운 길임을 깨우쳤습니다.

난 그래도 아직까지는
무릎이니 관절이니의 통증이 뭔지 몰랐는데
하산길에 분명히 알았습니다.
무릎 관절이 쏙쏙 쑤시고 아프고 씨근대며 절절 끓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산 길에서조차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무조건 내려가야했습니다.

연인산 정상에서 하산한 시간이 오후  4시 무렵이었기 때문에
야간산행의 위험에 대비하고자 
단시간의 코스를 정한 깊은 뜻은 알았으나
실제 걸린 시간이 30분인지 한시간인지
고작 20분이었는지!
참으로 길고 징한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산골에 어둠이 살포시 내릴무렵
하산을 마쳤고 
우리는
연인들이 별장에서 잠시 나와
'산길이란 어떤 길이지? 우리 걸어볼까?' 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베시시 웃음지으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걸은 산길에는
이름모를 꽃이 피어있고
누가 갈다 말아서 변변히 걷을 것도 없어보이지만
외려 풍요로워보이는 밭떼기도 있고
말라붙은 쑥. 강아지 풀.
내피처럼 붉고 뜨거운 단풍나무
홀로 럭셔리 한 갈대!

한여름 땡볕이었다면 주저없이 뛰어들어
수줍은 척하며 결국 목욕할 거 다하는 선녀짓도
주저없이 하고 말았을  차고 맑은 초록의 웅덩이 ...

자연 그 자체였기에 진정 아름다웠습니다. 

그 야생 본색은 나로 하여금
있지도 않은 옛추억을 생각하게 할만큼
내 본능과 잠재의식을 몽롱하게 흐렸습니다.

연인산!
비록 "그 분"은 못만났으나
내 안에 산이 생겼기에
내가 깊어진 듯 합니다.

연인산에 다녀온지 3일이 지났습니다.
당연히 온 몸이 아프고 각종 부위들이 알을 잉태하여
한걸음 한걸음이 괴롭습니다만

10월 30일 북한산 등반도
어쩌면 다시 갈 듯도 합니다.
왜냐면 내가 수려한 산이 되고 싶기에!
아직 나는 수려한 산은 커녕 산이 되기에도 멀었기에!


함께 등산 한 많은 분들!
그날 우린 연인만큼 정과 사랑을 주고 받은
인연이었습니다.

모두 일상에서 건강하시고
연이 닿으면 또 만나게 되시길!

추신: 부분적으로 구라와 뻥과 이빨이 너무 심한 일부 문장에 관하여
        산사람 심의 규정에 저촉이 된다면
        소녀 수려한 산이되고자 갈망하는  인간답게
        심풀. 클리어. 쿨하게 (simple, clear, cool)
        그 어떤 조치에도 응할 것을 백두대간 앞에 맹셰함다 (*^.^*)





▲ 새침한 산행기
▼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