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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가덕도는 본섬과 연안의 11개 무인도로 이뤄져 있는 섬으로 면적은 20.96평방km로, 부산 영도의 1.6배나 되는 섬입니다. 이 섬에는 동선,성북,눌차,천성,대항등 5개 법정동과 10개의 자연마을이 분포돼 있다. 이 섬에는 1,300세대 4,000여명의 주민이 의좋게 모여 밭농사와 논농사,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섬에는 임진 왜란때 불을 짚혔던 해발 459m의 연대봉이 있고, 국수봉, 문필봉, 갈마봉등 수많은 산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해안의 대부분은 급경사로 이루어 져 있다. 특히 장항~대항~동선 기도원까지는 기암절벽이 장관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역사의 섬, 가덕도

1992년 부산여자대학교(現, 신라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따르면, 가덕도 대항마을과 외양포등지에는 패총과 토기가 발견되었을며, 두문마을에는 지석묘가, 선창마을에는 청자편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미루어볼때, 가덕도에는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 고려,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중종 39년(1544년) 이 섬에 가덕진(加德鎭)과 천성만호진(天城萬戶鎭)을 설치, 이순신 장군이 하루를 묵고 갔다고 한다.
또, 지금의 덕문중,고등학교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곳집(병기제작소) 흔적이 조선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일제때는 왜군이 외양포를 차지, 포대진지를 만들었고, 천성~대항 해안에 동굴을 파서 진지와 관측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1936년 암울했던 이 시기에 성북마을의 故,김도근 옹은 항일친목단체를 결성, 조국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일경에 채포돼 감옥살이를 하는 등 섬사람으로서 독립에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미래의 섬, 가덕도

국제물류의 중심항 '부산신항만 공사'가 지난 97년 착공, 오는 2011년 완공예정으로 현재 진행중에 있으며, 가덕도 천성을 시작으로 거제도와 연결되는 8.2km왕복 4차로의 국내 최장교량 '부산~거제도간 연결도로(거가대교)
'가 프랑스GTM사 참여로 2002년 착공, 2007년 완공예정될 계획이다.
또, 녹산 국가 공단에서 시작되는 '가덕대교'도 이미 실시설계에 들어가는등 다가오는 21세기의 가덕도는 섬이 아닌 섬으로 다시 태어나 서부산권 경제는 물론, 한국경제를 다시쓰는 크나큰 전기가 될 전망이다.



<가덕도의 마을들>


● 동선마을
동선(東仙)
에 가면 응봉산, 매봉, 밤나무등, 동메산 등의 등산코스가 있고, 누릉녕, 기도원, 고래덕, 마당여, 탕수구미 등 훌륭한 갯바위 낚시터가 있다.
반농 반어 형태의 마을로 가덕대구, 수조기, 숭어, 감성돔, 등 풍부한 어자원과 양파, 마늘, 천수답쌀 등이 유명하다.
소야 보육원이라는 고아원도 있다.

● 성북마을
성북(城北)에는 동사무소, 파출소, 학교등 유관기관이 몰려있고, 선창에서 마을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다.
이곳은 주로 농업을 하며, 가덕진성, 대원군척화비, 독립유공자 김근도 선생의 흉상등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뒷산 중턱 참박등 물은 찹기가 유명하다.

● 선창마을
선창(仙倉)은 용원간 진영해운사의 도선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가덕도 의 제 1관문이기도 하다.
옛 가덕 청사시절에는 수군 군항지였고, 이곳에는 곳집이 있었다.
마을 뒷산에는 갈마봉이 있고, 그 곳에 왜성이 하나있다. 패류양식과 유자재배를 주 수입으로 한다.

● 율리마을
밤나무가 많아 붙여진 율리(栗里)는 선창에서 시작되는 천가일주 도로변 어촌이다.
구곡산간과 산박등산, 매선이곡 골짜기 위쪽에는 설멧등 등이 있으며, 뒷산에는 부엉이 바위가 있다.
한때 범죄가 없는 마을이기도 했다.

● 장항마을
노루목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마을 장항(獐項)은 율리에서 해안선을 따라 1.5km정도가면 있는 마을이다.
용원에서 장항~ 두문~천성~ 대항~외양포 로 이루어 지는 진영해운사의 도선이 처음 닿는 곳이다.
마을뒤로 독뫼산이 있고, 몽돌마당이 있는 백옥포, 코바위, 처녀 총각 바위, 입도, 호남도, 토도 등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활어 이외에도 해선물이 풍부해 해녀들의 물길이 붐비는 곳이다.

● 눌차마을
눌차(訥次)는 외눌, 내눌, 항월, 정거마을로 구성된 섬 형태의 어촌이다.
동선세바지와 제방으로 연결된 이곳은 도선도 다니고, 선창을 잇는 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 곳은 문필봉, 눌차왜성, 항월장성 등이 있고, 정거마을 앞에는 국내 최대의 모래섬인 '진우도'가 있다.
굴채묘, 바지락, 피조개, 김, 파래 등을 주로 양식한다.

● 두문마을
도선이 장항을 거쳐 이곳 두문(斗文)에 닿는데, 마을앞 해안 몽돌밭이 장관을 이루고, 응주봉에서 뻗어내린 홍착골 계곡 또한 그만이다.
앞바다에는 병산열도가 나열되 있는데, 왜정때 금괴가 침몰됐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군데 군데 낚시도 잘 된다.

● 서중,남중마을
두문 다음으로 도선이 닿는곳으로 유적지가 더러있다.
천성진성 및 가념비, 천성산 국군묘지, 연대봉, 일본군 고사포 진지 등이 그 대표적이 예이다.
천수대, 감수섬 등 낚시터와 험께 해산물이 풍부하고, 한때 이곳에도 숭어들이 성행했다.

● 대항마을
가덕도 마지막 마을인 대항(大項)은 한목이라고도 부른다.
도선이 천성다음으로 닿는 곳으로, 이 마을에는 재래식 숭어들이를 200년째 이어오고있는 곳으로 부산시가 무형문화재로 추진중이다.
곳곳에 낚시터와 다양한 수산물이야 말로 가덕도가 자랑하는 보고이다.
이 마을 넘어엔 또하나의 새바지가 있는데, 이곳은 일본군이 파놓은 동굴이 있다.
마을 오른편에 위치한 외양포는 도선의 최종기착지이다.
시원스런 해송과 몽돌마당이 행락객을 재촉한다.
이마을에는 패총과 선사시대 유물들이 발견됐다.
외양포에서 조금만 더 가면 가덕수로, 등대, 아동섬, 자생동백군락지등 멋진 자연이 있고, 볼락, 감성돔, 게르치, 망상어 , 등 고급어종이 주로 잡힌다.


가덕도 도선시간표와 물 때




 

부산에서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여 가덕도 연대봉 산행을 할려면, 충무동에서 용원까지 운행하는 노선버스(안내표지 참고)를 이용하면 된다.

 

규정된 가덕도의 장항,두문,천성,대항 방면의 여객선 출발시각은 11:00였지만, 만선이 되자 10:33에 출항하였다. 여객선을 놓치지 않으려면 출항시각 보다 최소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인들 대부분이 가덕도 연대봉 산행의 기점을 천성마을로 한다. 우측사진의 중앙지점의 희끗한 밭고랑 사잇길로 올라가면 가덕도 연대봉을 최단 시간에 오르게 된다.
오늘은 대항에서 부터 선창마을까지 좀 더 긴 산행을 하고 싶어서 대항을 산행기점으로 잡았다.

 


 


 


 

대항선착장에 도착하여 마을의 중앙에 난 길로 갈려하니 마을주민 중의 한사람이 공중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하길래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채비를 한 후에 골목으로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천성으로 향하는 포장도로를 따르게 되었다.
포장도로를 따라 가다가 밭 너머로 보니 능선을 치고 오르는 산행로가 있을 것 같아서 밭고랑을 따라서 능선길을 찾으며 오르게 되었는 데,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닌 탓에 풀섶을 헤쳐 오르느라 약간의 고생을 하게 되었다.
대항마을의 중앙에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연대봉을 오르기 위해서 거쳐야 할 전초봉으로 향하는 정상적인 등산로가 있을 것이다.

 


 


 




 


 

웹상으로 등산지도를 몇 개 찾아서 비교해 보니 연대봉의 표지석이 있는 곳을 연대산으로 좌측사진의 낙타등의 혹 같은 봉을 연대봉으로 표기한 지도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표지석은 보다 넓게 이웃한 평지의 봉수대 앞에 있지만, 좌측사진의 봉을 이름하여 연대봉으로 명명한 것으로 추정한다.

 


 


 

산행계획에 있어서 매봉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서 선창으로 향할려고 계획을 세웠었지 굳이 응봉산에 갈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관광안내도에는 매봉은 누락돼 있고 표기나 거리등의 축척이 묘연해서 시그널이 많이 매여진 산행로를 무턱대고 따라 내려가며 응봉산으로 향하는 방향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산악인이라면 마땅한 등산지도를 지참해야 함을 간과하고 본문의 아래에 링크한 관광안내도가 선명해서 인쇄하여 지참한 게 탈이었고 자의적이고도 단순한 판단으로 응봉산을 향하는 방향인 줄로만 착각하는 우를 범했었다.
매봉에서 응봉산을 향할려면 매봉 정상에서 우측방향으로 난 등산로를 찾아 가야한다(아래의 등산코스 참조).

 


 


 


 


 

응주봉에서 북방향으로 가다가 헬기장을 지나서 10분 정도 가면 호젓한 등산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거리 꼴의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 데, 곧장가면 삼박봉을 향하게 되고 우측으로 향하는 산행로를 따라 내려가면 성북마을로 향하게 된다.
이 갈림길에서 성북마을을 향하는 산행로(나중에 알게 됐음)를 조금 내려 가다가 왠지 이상해서(정밀하지 못한 관광안내도 탓에 응봉산 방향인 줄로 착각한 탓이기에 좌측을 향하여야 한다는 방향감각 때문) 다시 갈림길까지 되돌아 올라 와서 반대방향으로 좀 더 올라가 보니 좌측아래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게 아닌가. 혼돈되는 마음에 음료수도 마실 겸해서 그제서야 배낭에 넣어 둔 실바나침반을 꺼내어서 정밀지도가 아닌 탓에 어슬프게 만들었지만 대략이라도 위치를 파악할려고 관광안내도를 정치하려고 보니 남과 북의 자침이 지도와 완전 거꾸로 임에 지도 제작자에게 애꿎은 원망(관광안내도의 오류는 없는 것으로 집에서 확인 됨)을 했었다.
모든 지도는 위쪽을 북으로 하여 제작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실바나침반은 지참한 관광안내도의 위쪽을 남쪽 자침이 분명히 향하고 있었다.
산행후기를 쓰고있는 현재의 자침은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데 왜, 가덕도에서의 그 지점에서는 자침이 반대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지가 미스터리이다.
조만간 가덕도 산행을 재차 하면서 그 미스터리를 풀어 볼 생각이다.
깊은 숲속이라서 마을이 내려다 보이지 않길래 아까의 갈림길까지 되돌아 가서 삼박봉을 향하는 능선을 타게 되었는 데, 한참을(거의 삼박봉 정상아래까지) 가다 보니 동행인에게서 폰으로 연락이 왔는 데, 뒤따르다가 길을 잃었다는 짤막한 말과 함께 상대방의 폰이 꺼져 버린다(나중에 알고 보니 배터리가 완전 소진되었다 함).
걱정되는 마음에 호각을 간헐적으로 연속하여 불며 근 1Km 가량을 아까의 갈림길까지 되돌아 와도 응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음에 염려스런 마음을 안고 제일 처음에 내려 가려던 하산로(알고 보니 성북마을 뱡향이었음)로 내려 갔겠거니 하고 호각을 불며 가다보니 '국제신문근교산팀'의 시그널도 눈에 띔에 반갑기도 하고 안심도 되지만 동행인의 응답이 없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성북마을에 도착했는 데도 폰의 신호는 가는 데 연결이 되지 않으니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 온다. 선창선착장에 도착하면 만나지겠거니 하고 경보선수처럼 발걸음을 서둘렀다.

 


 

선창선착장에 도착하여도 보이지 않음에 어디로든 내려와서 이 곳을 찾아 오겠거니 하는 기대감 속의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선창가의 간이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자니 한 참 후에 매표소 앞에 벼란간 출현함에 그 반가움은 심장을 냉각시킬 정도였었다.
인적이 하나도 없는 산 속을 한참이나 헤매이다가 그래도 용케 찾아 내려 온 동행인을 보니 그 반가움은 하늘만큼이었었고, 죄송스런 마음은 심해와도 같았었다.
천성이 차분하고 수양이 된 동행인인지라 한 마디 원망도 안 함에 더욱 죄송스런 마음이었었다.
3년 만에 찾은 가덕도 산행은 이러한 우여곡절로 마감하게 되었다.

 





그 날 본인이 지참하였던 안내도의 원본입니다. 위의 안내도를 클릭하면 원본 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등산용으로 사용하기는 미흡함).

  


3년 만에 찾은 가덕도 산행에서 몇 가지의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미스터리를 안고 오게 된 산행이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녹산선착장까지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버스 내의 노선도에 있는 용원이란 종점에 하차해야 되는 줄로 지레짐작하고 잘 못 내린 탓에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녹산선착장에 가야 했고, 단순하게 그려진 관광안내도 탓에 응봉산을 향하는 방향인 줄로 착각한 점, 동행인 보다 걸음을 너무 빨리한 탓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재회하게 된 점, 가덕도에서 녹산선착장으로 돌아 와서 커피를 파는 점주에게 들어 보니 원래의 선착장은 신항만도로 건설하는 동산의 넘어에 있었고 아직도 거기에는 횟집들이 그대로 있다는 점, 녹산공단이 용원까지 완전히 붙어 있음을 보고 생소했던 점, 그 중에서 무엇 보다도 가덕도 그 섬에서는 왜, 실바나침반의 자침이 거꾸로였을까? 라는 미스터리 등이다.
어느 지점에 지천으로 맺어 있던 산딸기도 따 먹고 그 미스터리도 재차 확인할 겸해서 몇 주 내에 가덕도를 다시 찾아 볼거다.
아래의 사진처럼 2002.04.28. 가덕도 산행(천성에서 선창까지)
을 해 봤으면서도 위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이 미스터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