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일 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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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안민고개-석동갈림길-웅산-시루봉-수리봉-천자봉-대발령(3시간 50분)
불모산, 웅산, 시루봉 파노라마
시루봉, 수리봉, 천자봉, 진해만과 진해시가지 파노라마
2008년 4월 10일 그림
위의 그림 흉내라도 내어 주었으면... 그것은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 2주만에 할 수 있는 산행
오늘도 마음의 눈으로 가야만했다. 그러나 전혀 불만은 없었다. 들머리인 안민고개를 꼬물꼬
물 논배미 속에서 올챙이 헤엄치듯 굼실거리며 기어오른 가자 덕분에 일단 30분을 벌었다.
천자봉에서 대발령으로 꼬리를 내리면 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그림들은 참 아름다웠다.
산능선에서 주르륵 타고 내려가는 곳에 과수원이나 밭들이 있고 시가지가 형성된 쪽으
로는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나름 정연하면서도 제법 빼곡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 번째로 만나는 헬리포트에선 불모산과 웅산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서고
임도 따라 업힐을하며 잔차를 타고 온 싸이클족도 있고 널널한 길을 소풍객처럼 느긋하게 걷는 이
들도 있다. 참 한가로운 풍경이다.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있었지만 모른채 지나가는 객들이다.
2년 전의 그 길을 마음의 눈으로 연상하며 걸었다. (2008년 그림)
눈에 익은 바위 옆 나무 사이로 들어서는 시루봉이 괜시리 부끄럽고
역광에 의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수리봉과 천자봉을 살짝 당겨본다.
당겼다, 놓았다 연줄과 씨름하다보니 시루봉 시루가 또 다시 눈안에 뛰어들고
불모산도 더 한층 가까워졌다.
머리 위에서 노는 능선은 봄을 끌어 안지 못하고 잔뜩 웅크린채 노곤한 게으름으로 충만했고.
감추려해도 자꾸만 그 때 그 순간을 외면하지 못해 지난날을 끌어들여본다.(2008년)
거의 같은 위치에서 촬영을 했나보다 몇 걸음쯤 낮은 위치지만.
등짐이 무거운 거북이 여산님을 부러워하는걸까?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걸음인 듯했다. 마치 내 대신 걸어주기라도 하는걸까?
다행히 그 걸음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나도 덩달아 즐거웠으니...
웅산으로 오르는 길 아랫쪽에 철계단 위에 나무데크를 덧 씌우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웅산가교 짧기만한 구름다리가 눈 앞에 놓여지고
시루봉 이르기 전의 벗은 길이 늘어진 빨랫줄처럼 들어선다.
제법 가파른 길인지 교통체증이 있어 줄이 길어졌다.
웅산가교를 지나고 산님 두 분이 식사를 하고 있는 봉우리에서 가교쪽으로 내려다 보았다.
벗은 길과 헬리포트가 들어서는 시루봉 당겨서.
산허리엔 진해시목 편백나무 숲이 몽롱한 꿈이 되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웅산은 언제나 불똥 딛는 고양이 걸음(난테 아우 왈)으로 살금살금 뒷꿈치 들고 걷는다
오래 즐길 새 없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길에 고개를 쳐박는다. 노란색과 검정색으로 꼰
나일론 줄에 의지하다가 기암 옆으로 들어서는 신항만을 훔쳐보니 흐릿한 꿈결같다.
내려선 웅산을 뒤돌아보니 고개쳐박던 암릉이 태연하게 서서 작은자를 향해 지긋한 웃음을 띤다.
시루봉 직전 헬리포트에 서면 불모산과 키재기를 하는 웅산이 의젓하고.
시루봉 아래에 터를 잡은 현호색의 재잘거림에 녹아 잔뜩 움켜 쥔 시간을 놓아준다
현호색의 알랑거림에 정신이 팔린 사이 누군가 자꾸 곁눈질을 하길래 돌아보니
유난히 작고 가녀린 산자고 일행이 겨우 눈을 뜨고 바람에 온몸을 흔들어댄다.
시루봉 오름 직전 돌아보니 웅산과 706봉이 보인다.
시루봉 내림길에서 눈으로 가는 천자봉
시루봉
시루봉에서 바람재로 내려서는 목계단은 갈 짓자의 연속
수리봉 오름에서 시루봉과 정자쉼터 철탑이 보이고
신항만과 부산 가덕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수리봉에서
수리봉에서 진해만과 작은 섬들
ㅋㅋ 렌즈에 티끌이 붙은 줄도 모르고 계속 찰깍찰깍 ㅎㅎ 역시 왕초보
수리봉에서 보는 천자봉 능선
천자봉
에스티엑스 조선소
어수선한 천자봉에서 정상석 대신 산님을
와! 드디어 만났다. 봄물이다!! 연두빛으로 번지는 봄물이닷!
늙은 나뭇가지 끝에도 봄물이 묻어나고 비워진 허공을 향해 봄빛을 채운다
오리나무는 하늘을 가리다.
오리나무 새순
정갈한 물결같은 잔주름은 햇살을 받아 더욱 선연하게 드러나고 문득 뼛속까지 환해지는 내 손등
살 없어 더욱 앙상한 손가락 사이로 깊게 들어서는 햇살, 자꾸 가벼워지는 내 마음은 사랑을 불러
들이려 손까분다. 흙길을 따라 아무렇게나 피어난 유채꽃들이 질펀하게 나 앉은 과수원길을 지나
가다. 하얀 강아지 인기척에 짖는다.
노랑제비꽃
남은 시간은 버스가 정차한 앞산에서 작은풀꽃과 함께한다.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
죽은자의 안식처가 있고 제비꽃이 무리지어 인사한다.
쇠뜨기
기웃거리는 그 곳엔 노부부가 밭일을 하고 계셨다. 무심한 것 같지만 한 마음이 되어
서로의 빈 데를 채우고 계셨고 무심한 세월은 화살이 되어 흰머리카락 하나, 또 하나
더 늘게하고, 기웃거리던 쇠뜨기 며느리가 저녁준비할까? 아님 시어미가 저녁준비
할까? 공연한 걱정 담은 얼굴로 어두웠다, 개었다 실눈을 뜬다.
무덤 곁의 제비꽃
흙덩이를 들어올려 세상을 향해 두리번 거리는 양지꽃도 있고
벚꽃타령을 하는 님들을 위해 겁나는 힘으로 눈을 뜬 그들이 있었고
유채를 탐하는 이것의 정체는?
산복숭아 초라한 기지개를 켜고
무엇을 달라고할까? 겨우 손 내민 단풍나무 새순
봄바람에 실려 온 아기 손같은 여린 속살
이 봄 나도 다시 태어난다.
노란 꽃다지들이 옹알거리는 나무밑을 지나가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면 놀란 눈을 부릅 뜨고 쳐다보는 봄까치
보일듯말듯 이름도 모르는 하얀꽃이 종알종알 꼬물거리는 그 길을 지나면
하얀 소금 뿌려 논 듯한 별꽃이 무리지어서 놀고
게을러 누웠을까 누운주름잎도 흐드러지고
그래봤자 훠언하지도 못한 깨알같은 꽃들이 봄들판을 채웠다.
종일 흙 만지고 놀다보면 손이 트던 어린날의 기억
이제사 다 잊은 듯 싶더니
낡을대로 낡은 지금
내 일상은 흙을 만지며 문을 열고 흙을 털며 문을 닫는다.
고달프면서도 달디 단 잠을 잘 수 있는 나날이다.
잠시 산의 흙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대신 밭의 흙과 친한 일상이다.
민들레가 방글거리고 삽자루가 나를 쳐다보며 빙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