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산


 

               *산행일자:2009. 7. 26일(일)

               *소재지  :경기 용인/안성

               *산높이  :삼봉산415m, 시궁산515m, 쌍령산502m

               *산행코스:굴암교-북봉-삼봉산-시궁산-애덕고개-쌍령산-예지촌

               *산행시간:9시21분-17시13분(7시간52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용인의 삼봉산과 시궁산을 오른 다음 쌍령산으로 옮겨 예지촌으로 하산했습니다.

삼봉산과 시궁산은 영보수녀원과 가깝고 시궁산 남쪽 아래 471봉에서 쌍령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는 미리내성지를 포근하게 에워싸고 있어 이 세 산들을 연이어 밟는 종주코스가 가톨릭신자인 제게 환상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주 한 신문에 실린 굴암교-삼봉산-시궁산-애덕고개-미리내성지 코스 소개기사를 스크랩하고 인터넷에서 시궁산-애덕고개-쌍령산-예지촌 코스를 먼저 밟은 몇 분들의 산행기를 검색하는 등 이번 산행을 준비하는 시간 내내 가슴 설렜습니다.


 

  이번에 오른 산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515m높이의 시궁산입니다.

하필 시궁산으로 산 이름을 정했을까 하고 제가 의아해 한 것은 시궁이란 더러운 물이 잘 빠지지 않고 썩어서 질척질척한 도랑창을 뜻하는 것으로 이 단어와 연관된 시궁창, 시궁발치와 시궁쥐 모두 그 뜻이 별로 깨끗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제 궁금증이 풀린 것은 이 산을 다녀온 “홍어와 무인도”님의 산행기에서 시궁(時宮)의 어원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옛날에 옥황상제가 사는 궁이 여럿 있었고 그중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궁을 시궁(時宮)이라 불렀으며, 선녀들이 이 산 정상에 있었던 연못으로 내려와 목욕을 했다하여 시궁(時宮)의 이름을 얻었다 합니다. 그렇다면 시궁산은 원래 옥황상제가 사시는 하늘나라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사는 인간세상 즉 이승에 있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고 만약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하늘나라에 있는 선녀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인지도 또한 궁금했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도달할 수 없지만 영혼은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저승에 자리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이승과 그 옆자리의 저승 모두 인간이 주역을 이룬 곳이자 또 신들이 깃든 신성의 공간이기 때문에 선녀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옥황상제는 옥황 즉 하늘의 큰 황제여서 하늘과 땅을 모두 어우르기에 천지왕으로도 불리는 우리나라 무속신화의 최고의 신입니다. 이런 분을 옆에서 받드는 선녀라면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하늘나라든 이승이든 저승이든 가리지 않고 나다녔을 법 한데 이승의 별천지인 금강산을 제쳐놓고 시궁산(時宮山)으로 내려온 것은 혹여 이산 아래 아름다운 마을인 시미리(時美里)를 들러 건장한 청년들을 몰래 만나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이 산을 오르며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펴보는 즐거움도 맛보았습니다.

  

  오전9시21분 굴암교를 출발했습니다.

괜스레 늦장을 부리다가 아침7시50분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하는 용인 행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딱 한 시간 후 용인버스터미널에서 묵리행 시내버스를 갈아타 굴암교(묵2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그 아래 팸파스레스토랑과 굴암1교를 확인 한 후 굴암교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다리 건너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따라 걷다가 마지막 하얀 집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차단기를 지나 몇 걸음 옮기자 오른 쪽으로 난 좁은 길 위의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표지기가 보였습니다. 이 길로 들어선 후 곧바로 풀 숲길이 나타나났고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을 건너 100m가량 고도를 높이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서 북봉에 오르기 얼마 전까지 길 양옆 나무들이 베어져 있어 구름이 하늘을 가리지 않았다면 내리쬐는 땡볕에 목덜미가 후끈거렸을 것입니다. 굴암교 출발 50분 만에 올라선 북봉은 삼봉산의 제1봉으로 그 높이가 406m입니다. 나무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리는 중 용인 사는 한 분을 만나 서쪽으로 아주 높게 보이는 고층건물들이 들어선 곳이 신도시 동탄임을 확인했습니다. 주홍색의 예쁜 꼬랑지를 갖고 있는 참새보다 조금 큰 새들이 저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주위를 맴도는 것으로 보아 이 새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배낭을 메고 올라오는 산객들은 자기들을 해치는 적이 아님을 아는 것 같았습니다.


 

  10시37분 해발415m의 삼봉산(三峰山)에 올랐습니다.

1봉인 북봉에서 2봉을 거쳐 3봉인 삼봉산 정상에 이르는 남행길은 고도차가 거의 없고 그늘이 져 12분간 참으로 편안한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헬기장 한편에 자리한 자그마한 정상 석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고 나자 30-40대에 이곳 용인에서 보낸 13년이란 긴 세월이 저 남쪽 아래 이동저수지에 다 모여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흐르는 물을 담아두는 저수지가 흐르는 세월을 붙잡아 가둬두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싶어서였습니다. 시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안부로 떨어지는 나무계단의 급경사 길로 하얀 로프 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120m 가량 고도를 낮추어 내려선 안부에 “삼봉산0.4km/시궁산2.0Km" 안내글귀가 흐릿하게 적혀 있는 오래된 나무판대기의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고바위 길을 올라 다다른 382.6봉에서 노송사이로 내려다 본 이동저수지의 자태는 참으로 고혹적이어서 조만간 이 저수지를 찾아가 오랜 시간 힘들게 붙잡아두었을 제 가족의 용인생활 13년사를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서울과 수원으로 출퇴근하느라 용인이 베드타운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닌 두 아들에는 흙을 만지며 놀곤 했던 놀이터이자 배움터였기에 베드타운 그 이상이었습니다.


 

  11시46분 해발515m의 시궁산(時宮山)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382.6봉에서 장촌 쪽으로 진행하며 조금 내려가다가 통나무 계단 길로 급하게 올라갔습니다. 며칠 전부터 다친 허리부분의 통증이 진정세를 보여 좋아 했는데 얼마 전부터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내릴 때면 오른 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져 신경이 쓰였습니다. 계단이 끝나는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오름 새가 이어지다가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위가 시궁산 정상으로 오른 쪽 아래로 이동저수지와 화산골프장이 확연하게 보였고, 왼쪽 멀리로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뾰족 봉이 용문산의 백운봉이 아닌 가 했습니다. 시궁산 정상은 이번에 오르는 산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답게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만, 때맞춰 구름을 헤집고 나선 태양이 바로 제 머리 위로 남중해 오래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쉼터 가는 길도 넓게 잘 나있어 까딱 잘못해 이 길로 들어선다면 애덕고개를 거쳐 미리내성지로 내려가는 계획은 포기해야하는 것이 성지 길은 정반대인 남쪽 능선 길이기 때문입니다. 삼봉산에서와 같이 또 한 번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걸어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우산이 세워진 봉우리에 올라 시궁산을 오르겠다는 젊음 부부 두 분을 만났습니다. 애덕고개로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 길을 걷다가 그늘진 평평한 곳을 찾아 점심을 들으며 모처럼 편안히 쉬었습니다. (이 단락 내용 일부는 신동흔 님의 "살아있는 우리 신화"에서 따왔습니다.)


 

  


 

  12시29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오후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산행재개 6분 만에 다다른 471봉에서 조금 내려서자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똑바로 진행하면 갈미봉을 거쳐 미산리저수지로 하산하게 되는데 저는 동쪽으로 방향을 꺾어 애덕고개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에서 10분가량 걸어 안부사거리에 이르자 왼쪽 위 길의 미리내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왼쪽아래 골짜기로 떨어지는 묵리 길이 안부사거리에서는 미리내성지 길과 거의 같은 방향으로 나있어 이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전성기가 막 끝나 곱디 고운 색깔이  조금 바래 보이는 꽤 여러 종의 버섯들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만, 이맘때면 산새들과 더불어 산상음아회를 열곤 했던 매미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의아했습니다. 동쪽으로 얼마간 진행해 두 나무 사이로 통나무를 걸쳐 놓은 쉼터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시궁산-471봉-애덕고개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V자 모양으로 연결되고 쉼터봉우리에서 애덕고개까지 북향의 편안한 흙길로 이어졌습니다. 왼쪽 건너로 시궁산이 의연하게 보이는 능선 길을 걸으며 애덕고개로 향하는 중 마음이 한껏 평화로웠던 것은 오른 쪽 아래로 미리내 성지가 자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3시22분 애덕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용인에는 김대건 신부께서 살아계실 때 사목활동 길이었고 순교하셔서는 유해운구 길이었던 삼덕고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남정맥 상의 망덕고개는 4년 전에 지났고 칠봉산 아래  신덕고개는 며칠 전에 찾았으며 하나 남은 애덕고개를 이번에 마저 들렀습니다. 카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넘어보고 싶은 성지순례 길의 고개들로, 저도 조만간 미리내 성지를 출발해 산줄기를 타면서 애덕고개-망덕고개-신덕고개를 차례로 다시 밟은 후 하산 길에 은이성지를 찾아볼 계획입니다. 애덕고개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네 번이나 다녀왔다는 용인 사시는 한 분을 만나 고맙게도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어떤 길로 어떻게 운구 되었나를 설명 들었습니다. 다음 주 중 저 아래 미리내 성지에서 한남앵자지맥 종주를 시작할 생각이어서 이번에는 성지를 들르지 않고 곧바로 쌍령산으로 향했습니다.


 

  14시27분 한남쌍령지맥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애덕고개에서 쌍령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올라 한남쌍령지맥에 이르러야 합니다. 애덕고개 출발 십 여분이 지나자 후드득 비오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아랫바지에 비옷을 껴입은 후 출발하려는데 비가 뚝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해 다시 비옷을 벗느라 10여분이 지났습니다. “문수봉”이라고 적힌 시꺼먼 판때기가 걸려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한남쌍령지맥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한남앵자지맥을 종주할 때도 미리내 성지에서 애덕고개를 거쳐 여기 갈림길을 거치게 되는데 그때는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문수봉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 갈림길에서 쌍령산까지는 박종율님이 “한국의 산하”에 올리신 한남쌍령지맥 종주기를 참고했습니다. 쌍령지맥 길도 여전히 편했습니다만, 이를 시샘한 날파리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12분을 걸어 다다른 407.9봉에서 삼각점을 확인한 후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고도를 높였습니다. 돌무더기의 안부사거리에 다다르자 오른쪽  아래로 미리내성지로 내려가는 길이 제법 넓게 나있었습니다.


 

  16시 정각 해발502m의 쌍령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돌무더기 안부를 출발한 지 20분 만에 송전탑을 만났습니다. 남과 북으로 뻗어나가는 14개 다발의 송전선은 34만5천 볼트의 전압이 걸리는 고압선으로 한번에 대용량의 전류를 운반하는 광활한 고속도로입니다.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송전선을 따라 눈길을 주자 앵자지맥 길이 한눈에 보여 시원했는데 그 반대방향으로는 산허리를 잘라내고 공사를 하고 있는 골프장이 보여 답답했습니다. 송전탑을 세우느라 잘라낸 절개면 옆으로 오르는 중 평택에서 오셨다는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분은 몰고 온 차를 미리내성지에 주차시켜 몇 분 후 올라선 봉우리에서 오른 쪽 방향인 거북바위 길로 내려가야 한다며 쌍령산에서 예지촌으로 내려가겠다는 제게 버스 잡기가 더 편한 반대방향의 고삼저수지쪽으로 하산할 것을 권해왔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10분을 쉰 후 남쪽으로 20분을 더 걸어 쌍령산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석에서 몇 걸음 떨어진 헬기장에서 어느 쪽으로 하산할 까 지형을 살피다가 예지촌으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굳힌 후 정상석 옆 의자에 앉아 10분여 쉬었습니다. 정상에서  쌍령지맥을 타고 남쪽으로 5-6분을 내려가 만난 바위가 있는 희미한 갈림길에서 흐릿한 표지기를 만나 오른 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17시13분 예지촌 입구의 차도를 만나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면서 길이 조금씩 넓어졌고 표지기가 걸려 있어 예지촌 입구까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산했습니다. 중간에 만난 묘지에서 왼쪽으로 꺾어 임도로 내려선 후 몇 분을 더 걸어 내려가자 왼쪽으로 예지촌이 보였습니다. 미산리저수지가 바로 아래인 예지촌 입구의 차도를 건너 음식점 주인아주머니에 버스시간을 여쭈었더니 남편분이 저녁 6시40분에나 안성 가는 버스가 있다며 저 아래 삼거리까지 자기 차로 태워주겠다 해 고마웠습니다. 저수지를 바라다보며 맥주 2병을 사마신 후 주인차를 타고 삼거리로 나갔습니다. 10여분을 기다려 오른 차는 시미리와 화산리를 거쳐 가는 용인행 버스여서 이번 산행중 올랐던 시궁산과 삼봉산을 보다 가까이에서 올려다보았습니다.


 

  최근 혼자 나선 몇 번의 산행에서 번번이 길을 잘 못 들어 생고생을 해온 제가 이번 산행에서는 단 한 번도 알바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님을 가까이서 모시는 모니카 어머니와 제노베파 집사람이 저를 돌본 덕분입니다. 용인에서 살던 20여 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미리내성지를 찾은 적이 있어 어머니도 집사람도 이 근방 산천이 눈에 익었을 것이고 그래서 제게 길안내를 하는 것이 별반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여기 미리내성지를 출발해 삼덕고개를 모두 밟은 후 제게는 헤븐 로드인 은이성지와 광주의 천진암성지를 이어가는 산줄기를 걸어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