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원재를 출발하여 수정봉을 넘고 구룡폭포 계곡으로 빠지다.
 
Mt. 1213 水晶峰(▲804.7m) - 전북 남원시
 
산 행 일 :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산의날씨 : 맑음
동 행 인 : 모 산우회 회원님들
 
산행(도상)거리 : 약 12.4km
                      연재 <4.4> 수정봉 <1.0> 750봉 <1.0> 728.2봉 <2.5> 구룡폭포 <3.0> 육모정 <0.5> 내촌교(내평)
 
산행시간 : 5시간 35분 (식사 휴식 1시간 02분포함)
         연재(女院峙) · 24번 국도(2차선) · 雲城大將軍 석장승 · 백두대간등산로 안내도 <0:29> 710봉 <0:15> 갓바래재(笠望峙) <0:29> 헬기장 <0:13> 수정봉(▲804.7m) · 정상표지석 <0:20> 750봉 · 백두대간을 벗어나 우측 지능선으로 <0:28> ▲728.2봉 · 점심 <0:18> 유인금녕김씨 무덤 <0:25> 구룡폭포 <0:28> 육모정 1.9km 이정표 둔덕 <0:15> 영폭교(迎瀑橋) <0:17> 삼곡교 · 60번 국지도(2차선) · 탐방지원센터 <0:13> 내촌교(내평마을 앞)
 
참 고 : 국토지리정보원 1:50,000 운봉(2003년 수정본) * 남원(2003년 수정본)지형도
 
 
만복대와 견두지맥이 바라보인다.
 
 
남원시 너머 천황지맥도 아스라이 보인다.
 
17번 국도를 타고 남원방면으로 달리던 버스가 견두지맥 땅속으로 뚫린 ‘신 밤재 터널’을 통과하여 우측 60번 국지도로 들어선다.
주천면 소재지를 지나면서 지리산 둘레길 답사 차 무리지어 출발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지리산악회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한꺼번에 두 구간씩을 걷는 부담도 있지만 개인사정으로 상당기간 일반 산행도 할 수 없었으니 어쩌겠는가.
 
 
구룡폭포
 
 
구시(구유)소
 
연재가 가까워지자 감회가 새롭다.
2004년, ‘백두대간 길 쓰레기 줍기 종주산행’에 나선 서울 불암산 님의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순천 막걸리를 사들고 이 고개로 마중 나왔던 생각이 불현 듯 나면서 보고 싶어진다.
2008년 한 여름, 한북정맥 노고산 구간 도상거리 약 20km를 홀로 산행할 때, 새벽 4시 반경 용산역으로 마중을 나와 들머리인 상장봉 북서쪽 솔고개 까지 태워다 주더니 날머리인 고양 현달산 아래 신촌고개로 데리러 온 것이 아닌가.
그때 쓴 산행기를 다시 찾아보니 제목이 ‘한북정맥 07. 솔고개-노고산-숫돌고개-왕릉-신촌고개, 정이 뭐 길래’라고 되어 있었다.
 
 
연재. 수정봉 방향
 
 
 

 
오늘 산행 구간도
 
10 : 25 연재(477m) 출발
세모꼴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쓰고, 왕방울만한 눈알을 험상궂게 부라리며, 주먹코는 벌렁벌렁, 입을 앙다물고 있는 돌장승이 백두대간 수정봉 방향 들머리를 지키고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였을 때 이성계의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 적과 싸울 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다.
그로 인해 대승을 거둔 이성계는 꿈속의 노파가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했다는 주모로 믿고 노파를 위해 사당을 짓고 여원(女院)이라 불렀다.
그때부터 이 고개 이름이 여원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주민들은 연재라고 부르고 있으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 표기도 연재로 되어 있다.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대간 길
 
 
주시사 뒤 고약스런 암봉의 불상 - 2004년 불암산 님 마중 때 촬영
 
 
조망바위에서 본 수정봉, 만복대가 살짝 보인다.
 
좌, 우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을 가르는 경계능선을 따라 오른다.
등산로 주변으로 잡목들이 뻗어있는 비교적 편한 길이 이어지고 주시사로 가는 넓은 길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조금 따라 걷기도 하면 울창한 송림이 햇빛을 막아주기도 한다.
예전과 달리 짧은 통나무로 만든 계단이 많이 나타난다.
푹신한 솔가리를 밟기도 하고 돌계단도 오르다 조망바위에 이르렀다.
수정봉 좌측에서 뒤로 세걸산~고리봉~만복대의 장엄한 산줄기가 바라보이고,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남원시와 통신시설이 설치된 고남산이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본 710봉
 
 
710봉
 
 
갓바래재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
 
11 : 17~25 등고선 상 710봉
이 봉우리는 조망이 없다.
동쪽 방향으로 조금 가면 성터 흔적이 나타나면서 태극종주 차 걸었던 덕두산~바래봉 능선과 백두대간 주릉에 둘러싸인 마을과 도로들이 한 눈에 바라다보이지만, 오늘은 작은 돌 위에 걸터앉아 목을 축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내림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거의 550m 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800고지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
 

 
갓바래재 - ㅇ산우회 회장 일행
 
 
헬기장
 
11 : 40 갓바래재(545m)
행정리 갓바래 마을과 과립리 입촌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 입망치(笠望峙)라고도 한다.
입촌(笠村)은 중이 삿갓을 쓰고 배낭을 지고 가는 모습의 산혈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갓을 만드는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얻은 지명이라고 하며, 일설에는 홍거리와 두무실 가운데 아홉 가지 혈 중에서 바래혈이 있다하여 갓바래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수정봉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오늘 내가 걷고 있는 산길을 여수의 모 산우회에서도 걷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여수 ㅇ산우회 회장 일행 세 사람을 만나 조금 앞서 출발했으나 햇빛이 내리꽂히는 헬기장 조금 아래서 뒤쳐지고 말았다.
 

 
수정봉 표지석
 
 
수정봉 삼각점
 
 
고인돌 모습의 바위
 
12 : 22 수정봉(▲804.7m)
널찍한 정상에 최근에 세운 듯한 커다란 정상빗돌과 ‘운봉 303. 1981 복구’ 삼각점이 길손을 맞이한다.
빗돌 뒷면에는 수정봉을 설명하는 글자가 빼곡하게 새겨졌다.
옛날에 산에 수정 광산이 있었다 하여 수정봉(水晶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적고 있다.
아무도 없는데다 아직 배가 고프지도 않아서 더 걷기로 한다.
좌측으로 나있는 사면 길을 버리고 봉우리로 올라 다시 길이 합쳐지는 곳의 파묘 터도 보고, 안부를 지나 오른 암릉 초입의 고인돌 모습의 바위도 본다.
 

 
750봉에서 노치로 내려가는 길
 
 
이제 백두대간을 벗어난다.
 
12 : 45~13 : 20 750봉
움막을 스쳐 오른 봉우리에 일행들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치고 있다.
어느 신문사 산행 안내지도에는 덕운봉으로 표기했고 조금 후에 만나게 될 728.2봉을 구룡봉으로 표기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 봉우리는 남원시 운봉읍과 주천면 그리고 이백면 경계로, 이제부터는 노치~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작별하고 주촌면과 이백면 경계능선을 잠시 따르게 된다.
안내산행을 하는 산악회 대부분이 A코스와 B코스 등으로 구분하여 각자의 체력에 맞는 산행을 하도록 하고 있다.
오늘, 이른바 A코스를 걷는 사람이 10분지 1이나 될는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는지라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728.2봉을 바라보고
 
 
728.2봉 삼각점
 
13 : 48~51 ▲728.2봉
산길에서 좌측으로 약간 벗어난 봉우리로 ‘남원 424. 1981 재설’ 삼각점이 설치되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형도를 살펴보면 고남산에서 성삼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남원과 운봉 양쪽, 거의 가장자리에 걸쳐있다.
그러다보니 수정봉 삼각점은 운봉이고 지금 내가 서있는 봉우리의 삼각점은 남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동쪽 능선을 타고 올라오면서 길을 묻는다.
지도를 펴 보이며 자세히 알려주는데 뒤따라 오른 사람 일부는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왔다.
 
 
노치산성 흔적
 
조금 가면 돌무더기가 보인다.
이곳이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노치산성이다.
지나온 750봉과 노치마을, 회덕마을, 정령치, 만복대 등은 삼한시대와 삼국시대를 거치는 동안 중요한 국경 방어지역이었고 노치마을의 경우 한국전쟁 때 공비 토벌 명목으로 마을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비운의 고장이기도 하다.
 

 
유인금녕김씨 무덤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구룡사 아래에서 구룡폭포로 내려가는 길
 
14 : 09 유인금녕김씨 무덤
무덤 앞에 이르러 수정봉 오름길에서 앞질러 갔던 ㅇ산우회 세 분을 다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려가자 임도가 가로 질렀다.
좌측으로 가다 임도를 벗어난 우측 산길을 타고 내려가자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나온다.
시원한 물에 땀을 씻어내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구룡사 앞에 이르렀다.
 

 
구룡폭포 상부 - 2004년 촬영
 
 
암릉의 소나무
 
14 : 42 구룡폭포
이제부터 지리산국립공원구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구룡폭포로 내려가는 가파르고 비좁은 길은 정체되고 있다.
그런데다 몰상식한 몇몇 사람이 그런 것은 아랑곳없다는 듯 출렁다리 난간을 붙잡고 흔들어대며 키득대다 뭐하는 짓이냐는 소리를 듣고 슬그머니 다리를 건너 가버린다.
구룡계곡 길은 한동안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계곡에서 물속에 발을 담그고 편히 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주차장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도 있다.
 
 
국립공원 이정표
 
 
챙이(키)소
 
 
구룡계곡 표지석 - 밑에 있던 정자가 없어졌다.
 
15 : 10~15 ‘↑ 육모정 1.9km * ↓구룡폭포 1.05km’ 이정표 고개
비폭동을 지난 낮은 고개로 올라서면 국립공원에서 세워놓은 이정표가 있는데 연재를 출발하여 백두대간 갈림까지는 남원시에서 세운 이정표를 본 것이다.
사랑의 다리, 영폭교, 구룡교 등을 이용하여 계곡을 좌우로 넘나들었고, 유선대, 챙이소, 구시소 등을 보며 삼곡교 앞에 이르러보니 아담한 정자가 안 보인다.
허물어버렸는지 아니면 폭우에 유실되었는지 알 수 없다.
탐방지원센터와 용호서원, 춘향묘 입구, 육모정,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구룡분소를 차례로 지나간다.
 

 
육모정과 작은 주차장
 
 
북부사무소 구룡분소
 
16 : 00 내평 마을 앞
여수 모 산우회 버스 옆 그늘에서 동동주가 담긴 질그릇을 앞에 두고 하산 주를 마시던 낯선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부른다.
안면이 있는 분이다.
염치불구하고 다가가서 술잔을 받아든다.
맨 마지막 사람이 도착한 시간이 16시 40을 넘었을 때였다.
이렇게 늦어질 줄 알았더라면 탁족이라도 할 걸 잘못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