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 2009년 3월 1일(일요일)

□ 하늘 : 맑음

□ 누구와 : 솔 회원님들과

□ 어떻게 :

백운동▶칠불봉(1433m)▶상왕봉(1430m)▶두리봉(1135m) ▶목통령▶단지봉(1335m)▶수도산(1316m)▶수도암

□ 이동거리 : 약30km

□ 걸린 시간 : 9시간 2분

□ 보행속도 : 약간 빠르게

□ 구간별 시간 :

백운동▶(1시간38분)칠불봉▶(12분)상왕봉▶(1시간18분)두리봉▶(1시간18분)목통령▶(2시간12분. 점심시간포함)단지봉▶(1시간38분)수도산▶(38분)수도암

 

 

 

언제나 시간은 흐릅니다.

일상의 생활에 얽매이다 보면 시간에 구애됨을 느끼지 못하고 밝음과 어둠만을 음미한 채 살아가는 중생이 대부분 아닐까? 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망태기를 둘러메고 인생을 공부하려 산으로 갑니다.

 

어려운 숙제는 없지만 언제나 나 자신은 산에서 많은 부족함을 느끼고 발버둥 치며 살아 온 세월에 대한 회상을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보다는 그저 지나간 세월보다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중얼 그립니다.

 

가야산 백운동의 새벽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관광호텔의 네온사인만이 요란한 도시의 흉내를 냅니다.

 

하늘은 별들의 잔치입니다. 가야산의 별들은 진주처럼 영롱하고 더욱 아름답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난 언제나 선두에 자리를 잡습니다.

 

약간의 빠른 걸음과 장기전에 유리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과 무리를 지으며 다니는 것에 아직 익숙지 않아서 입니다.

 

또한 산에서 일행과 많은 잡담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는 보고, 느끼고, 혼자만의 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기 때문입니다.

 

7부 능선을 지나자 기온은 차가워지고 계곡을 휘감아 부는 바람은 휑하니 정상으로 향합니다.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은 동쪽으로 새벽의 여명을 잉태하고, 마지막 겨울의 잔설을 품고 있습니다.

아마 이 잔설이 올 겨울의 내가 보는 마지막 눈이 아닐까? 합니다.

 

상왕봉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비록 높이는 칠불봉에 선두자리를 내 주었지만 꿋꿋한 자태만은 가야의 터줏대감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왕봉을 가야의 주봉이라고 부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희미한 여명에 오늘 가야 할 주능선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멀기도 합니다.

성주군-합천군-김천시를 돌아야 하니 생각만 해도 보통이 아닙니다.

 

상왕봉에서 두리봉코스는 출입통제 구간입니다. 오늘도 난 양심을 져 버립니다.

나에게는 이 구간을 통과할 권한이 없습니다. 가야산-수도산 종주라는 명분을 내 세우지만 그것은 나의 억지논리이며,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통과 합니다.

국립공원 직원이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침의 태양이 어느덧 밝았습니다.

두리봉에서 쳐다보이는 상왕봉은 금새 새 단장을 하였습니다.

햇빛에 반사된 상왕봉은 연꽃을 연상케 합니다.

속세의 인연도 마다한 채 대가람 해인사를 부둥켜안은 모습이 진한 불교의 향기를 피웁니다.

남서쪽으로 매화산(남산제일봉)이 물고기의 등지느러미처럼 파고를 치고 북서쪽으로는 덕유산의 주능선이 도도한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목통령에서 한 모금의 물을 마십니다.

2년 전 산개금마을에서 올라와 목통령-단지봉-수도산-양각산-금귀봉-흰대미산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산행을 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산에 올랐습니다.

일행과 함께 한 산행도 많지만 대부분이 혼자만의 산행이었습니다.

 

혼자만의 산행!

그것 재미있습니다. 혼자는 외롭지 않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산에서는 모든 것이 친구가 되어 주지요.

산에서는 화 낼 일이 없습니다. 고함 칠 일도 없습니다.

 

나는 약 10년 동안 등산과 마라톤과 많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산행보다는 긴 거리와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산행을 즐겼고, 마라톤도 풀코스 보다는 긴 인내를 요구하는 여행인 울트라 마라톤을 즐겨 했지요.

마라톤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뛴 거리만 해도 약 5000km에 이르니 신발 값 제법 들었습니다. 신발 회사 좋은 일 많이 시켜 주었지요.

 

그리하여 무엇을 얻었냐고요?

 

얻은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또 뛰고 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지요.

 

단지봉은 언제 봐도 좋습니다.

여자의 예쁜 엉덩이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펑퍼짐한 엉덩이가 아기 잘 낳게 생겼지요.

나의 마눌님은 엉덩이가 못 생겨 아기 낳는데 있어 고생을 많이 했답니다.

 

단지봉에서 수도산 오름은 마지막 고통을 인내 합니다.

인내의 산실인 땀이 연신 이마를 적십니다.

 

수도산 정상 돌탑에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읍니다.

오늘도 감사하고 행복 했노라고.......

 

수도암 처마 밑 풍경소리가 노스님의 염불소리와 어울려져 화음을 울립니다.

나도 대웅전으로 들어가 이마를 대청마루에 닿게 합니다.

 

그리고 눈을 감습니다.

 

수도암 해우소에서 긴 가래떡(?)을 뽑아냅니다.

아직까지 이렇게 시원한 가래떡(?)을 뽑아 본적이 없습니다.

나의 몸에서 기생하던 온갖 추잡스러움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다시는 나의 몸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가래떡 위에 살짝 왕겨를 뿌립니다.

 

조용한 침묵이 흐릅니다.

자연에 귀속되는 인생을 다시금 뒤돌아봅니다.

잘 살아야 되겠습니다.

 

잘 산다는 것!

그것이 어렵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