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추의 계절에 정상적인 등산로를 10여시간 걸었는데도 사람은 커녕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도마뱀 한 마리와 하늘에서 기웃거리는 까마귀 서너마리 밖에 보지 못했다면 이 산행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때론 아무도 없는 깊고 깊은 외로운 곳에서 나 혼자 지내고자 하는 이에게도 충분한 시간일 것 같고, 하늘과 땅을 친구로 하는 보헤미안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으로 여겨 지지 않겠는가....

어느해,
이곳을 가고자 들렸는데 태풍 '매미'로 인해 30번 국도와 수도리로 진입하는 도로가 엉망이 되어 돌아와 버렸지.
또, 어느해는....
3월 중순 이곳을 가고자 들렸는데 수도리 조금 못 미쳐서부터 때아닌 함박눈이 내려 되돌아 왔고.

그렇게 또 해가 바뀌고..

"수도산에 좀 데려다 줘..."
기분이 괜찬아 보이는 시간을 맞추어 아내에게 운을 띄워본다.

"또..!"
틀림없이 예상했던 대답이다.

길치(?)중에 길치인 아내로서 수도산 밑에까지 나를 같다 놓는다는 것은 아주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월요일 쯤 뜸을 놓고 일주일 내내 슬쩍슬쩍 한마디씩 살을 붙여 덧 대다가 드디어 금요일쯤 마무리를 짓는다.

"수도암이 그렇게 용하다메..?"
생뚱맞은 소리에 쳐다본다.

"아는사람중에 수능치는 얘 가진 친구 없나?"
무슨 소리를 하나 하면서 쳐다본다.

"수도암에 새벽 기도나 하러 가자고 하지?"
.....
이제사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결국 좀 데려다 달라는 얘기 아닌가....

일요일 새벽 2시 20분에 자명종과 휴대폰과 전축을 동시에 맞추어 논 알람이 일제히 울어댄다.
부시시 반쯤 일어 나다가 다시 벌렁 누워 버리는 아내를 놔두고 혼자 부리나케 일어나 베낭을 챙긴다.

"차에 가 있을께.."
아내는 아직 누워 있다.

새벽 2시 40분 출발..   무조건 30번 국도로 갔다가 무조건 30번 국도로 돌아 오면 된다고 입이 닳도록 옆에 앉아 이야기 한다.
성주를 지나고부터는 교차되는 차도 한대 없이 오직 고요하다.
갑자기 아내가 급 브레이크를 밟는다.
소리를 지르며 앞쪽을 가리킨다.
앞 라이트 앞에 보이는 저 괴물은 무엇인가?
도로 가운데 커다란 짐승이... 한마리 우리차를 쳐다보고 서 있다.
불빛에 눈이 번쩍 거린다.
늑대? 들개?
둘중에 하나인것 같은데 덩치가 무척 크다.
아내는 무척이나 놀란 것 같다.
그 괴물은 서서히 옆으로 사라진다.
"개야...개.."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동네 똥개가 길을 잃고 나왔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지금도 그 커다란 개같이(?) 생긴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수도사 담밑의 주차장에 4시 반에 도착했다.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나와서 별 좀 봐.."
춥다고 차에 있는 아내에게 나와 보라고 하나 꿈쩍도 없다.
오래 전 노릿재를 꼬불꼬불 오르다가 멀미가 난 아내는 차 옆에서 한참 구역질 하다가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고 별이 머리위에 있다고 하였다.  그 뒤로 별 이야기만 하면 노릿재에서 바라본 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차안에서 등산화를 끼워 신고 5시까지 기다린다.
밖은 칠흙같이 캄캄하다.

"천만금을 준대도 이 시간에는 못 올라갈 것 같다."
"억만금을 주면 올라 갈라나?"
"그래도 못 가.."
"기념 사진이나 하나 찍어줘.."


온도 -8도.  
휴대폰을 껀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라 괜히 켜두면 밧데리만 사정없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차문 잠그고 조심해서 돌아 가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헤드 랜턴를 켠다. 어둠 속으로 들어 간다.

수도사에서 등산로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산죽 숲을 헤치고 올라가는 초입부터 이젠 혼자라는 생각에 가슴속에 한기가 느껴진다.
머리에서 비추는 불빛에 보이는 시야가 내 한계이고 나는 아무 무장도 없다. 달랑 지팡이 하나...
가야산을 거쳐 내려가는 시간을 더 여유있게 벌고자 이렇게 일찍 오르지만 늦가을의 새벽 5시는 아직 밤중이나 마찬가지다.
수도산까지의 오름에는 바람이 세차다.
체감온도가 -20도는 더 내려 갈듯...
오직 바람 소리만 귀를 울린다. 방한장갑과 방한모를 썼는데도 시리워 온다.

내쳐 오르다 보니 단지봉 삼거리를 지나쳐 수도산 정상이다.
잠시 숨을 몰아 쉬고 주위를 둘러 본다.  오직 캄캄하면서도 저 멀리 성주시내의 불빛들이 조금씩 살아나져 있다.
휴대폰을 켜서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길치의 아내는 어느듯 성주를 지나 대구로 향하고 있다.
약간 되돌아가 단지봉으로 향한다.
내리막길..
수도사에서 올라온 거리만큼으로 다시 내려간다.
여명이 밝아 온다.





위의 그림들에서 가운데 봉긋한 곳이 모두 오늘의 목적지인 가야산이다. 단지봉으로 향해 내려 가면서 여명이 밝아오는 모습이다.

헤드 랜턴를 끄고 베낭에 넣는다.
그렇게 불어대던 바람소리도 어느새 멎었다.
어느듯 해가 떠고 햇살이 뒤돌아 보는 수도산 자락을 거쳐 내려와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내리막 계곡에서 일출 시간을 맞으니 멋진 일출을 못 본 것이 아쉽다.  이렇게 좋은 날에..

단지봉으로 향하는 길은 곧장 내려 갔다가 다시 곧장 올라 오는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여러 잔 봉우리를 거친다.  
낙옆에 발이 푹푹 빠진다. 낙옆을 밟는 소리가 산행 내내 이어진다.
시몬을 데리고 왔으면 이 발자국 소리를 다시 어떻게 말할까?
잡목과 넝쿨이 등산로에 많다.
그리고 단지봉이다.

사방 팔방 거침없는 조망.
말로 형용하기도 벅찰 정도로 멋진 조망처이다.
대충 저것이 어느산이다 라고 짐작은 가나 확신이 없어 그냥 그림만 올려 본다.
그냥 사방 팔방 100Km이내의 산은 다 보이는 것 같다.


단지봉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방향이다.  능선을 이어가다가 중간 좌측 부근에 뾰쪽한 곳이 좌일곡령이고 다시 그 능선을 이어가서 중간 오른쪽부근의 능선 끝쯤에 뾰쪽한 곳이 용두암봉(1124.9봉)이다.
멀리 기야산이 보이고..

아래 사진들은 단지봉에서 뱅 둘러 본 산군(群)들이다.





















아침식사를 훈제 닭다리 하나와 떡 튀긴 것 몇개로 해결한다.
가야산에서 비춰오는 햇살이 마주치는 곳에 오목히 앉아서..
그리고 다시 기지개를 크게 한번 켜고 베낭을 멘다.

단지봉에서 좌일곡령까지는 이 능선에서 가장 멋진 길이다.
주로 산죽길인데 사람이 지나다니기 편하게 말끔하게 등산로가 손질되어 있다.  그리고 큰 오르내림이 없어 걷기가 쉽다.

이 구간을 빼면 쉽다고 할수 있는 구간이 별로 없다 .
끝임없이 반복되는 오르고 내려오고...   이것의 연속.  

용두암봉은 통상 지도에는 1124.9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좌측으로 굽어돌아 지나가면 되는데 다 돌고 나서 보면 용두암으로 올라갈수 있게끔 되어 있다. 노란 밧줄을 겨우 묶어 두었는데 조금 불안 하다. 커다란 바위들이 듬성듬성하게 붙어있어 조금만 높은데 올라가면 공포를 느끼는 나로서는 몹시도 불안하다. 하지만 위에서 둘러보는 조망은 아주 좋다.
뒷다리를 후들거리며 겨우 내려 오다.

갈수록 가야산이 다가 온다.
아래는 각 지점마다 가까이 다가오는 가야산의 모습이다.













목통령 지나서 부터는 길이 약간 희미해 진다. 그리고 여기서 부터 가야산 까지 잡목과 억새, 싸리나무, 진달래 등 온갇 나무들이 등산로를 막고 있다. 지나온 인생길에 죄 좀 지은일이 있다면 여기서 회초리로 얼굴 몇대 맞을 각오 해야 할 것이다.

1154봉인 것 같다.
아늑하고 둥근 형태의 공터가 있는 봉우리이다.
전방에 가야산이 기가 막히게 바라 보여지고 햇살은 따스하다.
되지고기로 만든 행동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아껴 두었던 매실주 300mm 중 200mm를 여기서 마신다. 나머지 100mm는 가야산 우두봉에서 마셔야지 하는 희망으로 좀 더 기운차게 갈 수 있지 않을가  하는 욕심으로.... 남겨두고.

뒤를 돌아 본다.
이제 앞보다 뒤가 더 멀다.
뒤돌아 보면서 멀어져 가는 단지봉을 찍은 것들이다.









가야산이 지척이다.
위로 치어다 봐야하는 거리까지 왔다.
이제 뒷다리가 나를 자주 쉬게 만든다.
간식거리를 몇개 먹고 기운을 내어 본다.
물이 4분의 1이 남았다.

수도 - 가야산의 또다른 복병은 등산로를 가로막는 무성한 잡초와 잡목일 것이다. 하지만 11월도 중순에 접어든 지금은 제까짓 것들도 기운을 접었지만 그래도 양 어깨 옷깃을 스쳐나가는 잡목들의 소리는 하루 종일 끝이 없다.
아래의 그림들은 대표적인 방해꾼의 모습이다.











가야산 바로 밑에서 길이 두갈래로 갈라 진다. Y자 형태로...
내가 봐도 좌측길은 정상로가 아니다.  그런데 좌측으로 나는 간다.  지름길처럼 보여서..
이후 정상에서 서쪽 끝에 붙어 있는 왠 낯선 봉우리에 올라섰다. 릿지암벽의 벼랑을 겨우겨우 오르면서....
이런 여기가 아니네...  
정상에 거의 다 와서 다시 말로 표현할수 없는 생고생을 하며 정신없이 우두봉으로 건너간다.
여기서 사람의 얼굴, 아니 제대로 움직이는 물체를 오늘 처음 대한다. 10여시간만에..

아득히 지나온 여행길이 보인다.
다리는 힘들었지만 마음과 눈은 참으로 호강스러울 것이다.
샌티니즘으로 무장하고 보헤미안의 여행길을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선듯 이 능선의 기나긴 여행을 권하고 싶다.
50을 두어달 남기고 미룬 숙제를 마무리한다.

참 즐거운 하루였다.

                 
                                  가야산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들..

          
           나무가지에 카메라 걸고 찍곤 했는데 우두봉에서 제대로 누구에게 찍혀 보다.

▒ 다른이를 위한 몇가지 자료들 ▒
        ◎ 일자 : 11.12 혼자.

1. 구간별 산행시간
수도암           : 05:00                   -10' 매우추움. 수도산 정상까지 바람 아주 강함.
수도산           : 05:50                   단지봉 갈림길은 정상 50 여m 전방에서 가야산 방향.
구곡령           : 06:35                   심방 3.5Km 이정표가 있다.(길 주의, 아래 별도 사진표시참조)
송곡령           : 07:15                   오르고 내리는 봉우리가 계속이다.
단지봉           : 07:55                    아침식사. 약 20여분 지체.
좌일곡령        : 09:00                    단지봉에서 좌일곡령까지 편안한 능선길. 등산로 아주 양호.
1145봉           : 09:35          
1118봉           : 09:45                    잔 봉우리를 계곡 오르내린다.
용두암봉        : 10:05                    1124.9봉이라한다. 산행내내 특이하게 보이는 봉우리다.
목통령           : 10:35                    이 곳 뒤로 산행로가 약간 희미하다.
헬기장           : 11:05                    바닥에 블록으로 표시한 헬기장. 남은자리가 툇밭처럼 아늑하다.
1154봉           : 12:10                    점심식사.  10여평되는 조망이 멋진 봉우리 정상. 20여분지체.
분계령           : 12:45                    사거리 갈림길.
두리봉           : 13:15                    오른쪽으로 수도지맥 능선연결.
헬기장           : 13:20                    벽돌로 표시된 헬기장.
코뱅이재        : 13:30                    높지않는 봉우리를 계속 오르내려 힘드는 구간이다.
부박령           : 14:25                    잡풀이 많이 나 있는 헬기장이다.
가야산우두봉  : 15:30                    20여분 휴식.
해인사           : 17:00                    
도로              : 17:30                    간이 버스 정류소.   18:10분발  대구행 승차. 요금 4,200원.
                                                   (대구행 버스 저녁 7시 50분까지 2~30분간격으로 운행)
                                                             ※ 해인사 매표소 : 055- 932- 7362
★전체 총 소요시간 : 12시간 30분  

2. 준비물
식수 : 2000cc           적당하였슴. - 1000cc우유통 두개에 나눠 넣고 빈통 500cc별도로 가져가서 베낭 바깥에 넣고 가면서 마심.

                               (수도산까지는 추워서 물이 얼어 있었슴)
베낭 : 30L                최대한 내용물 무게 줄임. 약 10kg 이내.  행동식및 영양갱과 쵸코렛등.
차림 :                      보온복과 보온 장갑  보온모자 필수. 입고 벗기 쉬운 가벼운 옷으로 준비.
가져간 기본 준비물 : 컴퍼스(나침반), 만능칼(맥가이버칼), 술, 카메라,물, 장갑(두꺼운것,얇은것), 라이터, 전화기, 필기구, 휴지,

                              쓰레기봉지, 구급약, 손수건, 랜턴, 헤드랜턴, 비상건전지, 모자(일반, 방한모), 지도, 스틱, 칼(멧돼지전투용),

                              경량구급담요, 지갑.

3. 참고사항
* 새옷입고 가지말것.
* 겉옷은 미끄러운 옷으로 준비. 피거나 보푸라기 생기는 옷은 삼가.
* 식수는 1인 2L이상(지금 계절 기준, 여름이나 봄에는 이보다 배 정도로 해야 하지 않을까?)

4. 등로 헷갈리는 곳.(용두암봉 지나 곧바로 만나는 Y길 이외에는 거의 직진 능선길로 가면 됨. 리본이  많이 달린 곳은 무시할 것)
              
               구곡령. 심방 표시 있슴.  전방 능선으로 직진.

            
              송곡령.  능선으로 직진.

            
               용두암봉 지나 1분쯤 뒤. 좌측 리본 많고 뚜렷한 곳으로.

            
                목통령. 능선으로 직진.

            
                목통령 지나 사거리. 능선으로 직진.

            
                   분계령.   능선으로 오른다. 직진.

5.지도 :  클릭하면 1024픽셀로 크게 볼수 있슴. (이 지도는 월간 '산'지 '99년 6월 부록을 조금 꾸밈)
            두가지 톤으로 만들었으니 맘에 드는 것으로 보시면 됨.
                  
                  
                  

6. 기타.
    등행로 내내 쓰레기가 많음.....   가장 아쉬운 점이었슴.                                                

                                                                                                                                                             

                                                                                                                                                                          banner_8.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