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문장대에 오르니


 

일  시.....2008.11.9일(일요일)아침 7시 출발

 

참가자.....미림산악회회원 46명 및 매운탕 준비팀10명

 

등산코스...A코스-화북탐방센타-성불사-문장대-문수봉-신선대-

 

                        비로봉-천황봉-세심정-법주사-주차장

 

          B코스-화북탐방센타-성불사-문장대-문수봉-

 

                           -입석대-세심정-법주사-주차장

 

          C코스-화북탐방센타-성불사-문장대-복천암-세심정

 

                             -법주사-주차장

 

 산행지가 결정되고, 날짜가 가까워오면 늘 날씨 걱정이 앞서는

 

 게 습관처럼 되었었지만, 계속해서 쾌청하다는 일기예보가 연

 

 속되었기에 이번엔 그런 걱정이 없었다. 지난 번 내장산 단풍

 

 산행도 무사히 마쳤기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회색빛 빌딩 숲을 떠나 벌써 마음은 대자연의 품속으

 

 로 줄달음치고 있다. 탁한 서울의 공기가 늘 가슴을 답답하게

 

 죄어오기에 잠시나마 탁 트인 들판을 지나고 우거진 숲이 반기

 

 는 산을 찾게 된지도 어언 3.4년은 되었나보다.

 


 

시제를 모시려는 산우들은 불참했지만 역시 차는 만원을 이루

 

었다. 새로운 면면들이 분위기를 일신하는 느낌도 좋았다. 중부

 

 

 

고속도를 이용하면 다소 시간 절약이 되겠지만 경부를 탈수밖

 

에 없었다. 신갈에서 한 분을 모셔야하기에. 그런데 차는 그냥

 

 간이휴게소를 지나고 있지 않는가. 우리 기사님이 또 깜빡했나

 

보다. 차를 돌려 한참이나 지나서 예정된 산우를 모시고 경기평

 

야를 지나는데,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황금물결이 일렁이던

 

 들판이 텅 비어있었다. 벼를 거둔 자리엔 여물로 쓸 하얀 드럼

 

통 같은 뭉치가 군데군데 뒹굴고 있을 뿐이다. 황량한 들판과는

 

달리 멀리 또 가까이 스치는 산야엔 끝물 단풍이지만 곱게 물

 

들어 있다. 싱그러운 봄의 생기와는 또 다른 미감이 우리를 매

 

혹하고 있다. 아름답다. 저녁놀의 황홀함이 아침 햇살의 생동감

 

을 압도하듯 계절의 끝자락인 가을 또한 매직시즌(magic

 

 season?)인가보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고운 선생이 이렇게 읊었다는 속리산을 우리 일행은 찾아가고

 

 있다. 지금 속세를 떠나 그 산을 찾아가고 있다. 가을의 한복

 

 판, 이 가을에 산을 찾고 도(道)를 찾아 나선 길일까.

 


 

      구월이라 계추(季秋)되니 한로(寒露) 상강(霜降)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 왔노

 

      벽공(碧空)에 우는 소리 찬이슬 재촉는다

 

     만산에 풍엽(楓葉)은 연지(嬿 脂)를 물들이고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秋光)을 자랑한다

 

 절후론 한로(寒露)한 상강(霜降) 다 지나고 입동을 지났다. 아침저녁 

 

 으로 제법 찬 기운이 감돌지만 차안의 열기는 오히려 달아오른다. 아

 

름다운 산야를 가까이 하기 때문이리라. 재작년 구병산을 찾았을 때 공

 

사 중이던 청원-상주 간 고속도를 시원하게 질주하면서 파노라마처럼

 

 차창을 스치는 주변 경관에, 높고 낮은 산을 바라보노라면 새삼 가을

 

임을 실감한다. 화서 IC를 나와 49번 지방도로 들어서니 좁고 험한 도

 

로 사정에다 등산객들을 실은 관광버스 행렬이 짜증을 나게 했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났다. 양쪽으로 노랗고 빨간 단풍이 한창 곱게

 

 

 물든 산자락을 보면서 장암교를 지나자 아예 차가 움직일 수가 없었

 

다. 할 수 없이 멀찌감치 내려 걷기로 했다. 차와 사람의 물결이 장사진

 

을 이루어 단체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다.

 

 


 

오늘 산행 들머리는 법주사가 아닌 화북 시어동 쪽으로으로 잡았다.지원

 

센타가 보이는 길섶엔 철모르는 개나리가 수줍은 듯 피어있는 게 보인다.

 

아스팔트길을 조금 오르니 울창한 수림이 앞을 가로 막는다, 풀과 나무들의

 

정겨운 내음, 향수를  느끼게 하는 흙 내음이 물씬 풍긴다. 아련한 그리움

 

에 가슴이 싸아하다. 심연 같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던 그리움이 솟구친

 

다. 연어가 母川을 그리듯 산 내음에 이끌리어 들어선 미지의 계곡, 고욤나

 

무 옆을 지나는데 고욤 하나가 툭 떨어진다. 정갈한 옥류가 흐르는 계곡 길

 

을 따라 오른다. 성불사 표지판을 왼쪽으로 지나치면서 곧장 앞선 산행객들

 

의 뒤를 따라 올랐다.

 

 

내 호흡에 맞춰 걸음을 한 발 한 발 옮기면서 신비로운 자연풍

 

광에 젖어가는 산길. 걷는 동안 자연에 침잠하면서 자신을 성찰

 

하는 시간은 고해성사하는 것처럼 엄숙해 진다. 산은 늘 사색과

 

 성찰의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발이 놓이는 자리마다 낙엽

 

들이 들썩이고 마른 명태 냄새가 나기도 하고 오징어 냄새가 나

 

기도 한다. 마치 겹겹으로 접힌 산길을 누빌 때마다 두고두고

 

 향기로웠고 내내 여운이 남았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

 

이지만 앞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걷는다는 것은 삶의 공부다.

 

 내 뒷모습은 과연 어떨까? 늘 궁금하고 조심스럽다. 산행로는

 

 아기자기하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길이다. 새 소리 물소

 

 

리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금방이라도 심포니가 울려퍼질 것만

 

 같다. 11시에 산행을 시작해 오후 1시에 겨우 문장대 턱밑 휴

 

 

 

게소에 도착했다. 철거를 앞두고 폐점했지만 앞뜰엔 발 디딜 틈

 

이 없을 정도로 산행객들로 붐비고, 문장대로 오르는 길목은

 

집고 들어서기 어려웠다. 늘 내 곁에서 속도를 맞춰주는 잠수함

 

님과 홍보이사 그리고 김회장 이렇게 문장대 턱밑 조붓한 바위

 

 

 아래 도시락을 폈다. 성님이 마련해 온 갈치를 반찬 삼아 푸짐

 

한 오찬이 되었다. 역시 정상주가 없을 순 없지요. 정상석 앞에

 

서 한 컷. 몇 년 전 칼바람이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  쌓인 눈

 

을  헤짚고 올랐을 땐 이 휴게소에서 따뜻한 국밥으로 추위를

 

 

 

달랠 수 있어 좋았는데 없어진다니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문장대(1.033m)에 올라서니 시야는 일망무제. 눈 가까이에 관

 

음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친 대야산. 그 대

 

야산을 백화산이 업고 백화산은 또 다른 산이 업고...첩첩 산릉

 

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속리산은 많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의

 

연한 모습으로 억겁의 광음을 지켜왔다. 산은 변함없이 그대로

 

이건만 사람만이 변하는 것이리라.

 

 

 

 

지금 쯤 A.B 모두 신선대를 지났을 것이다. 오른 쪽 복천암 쪽

 

으로 내려서다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겨우살이가 마른

 

 나무 우듬지에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깊은 산속 높은 가지에

 

 까치집처럼 매달려 나뭇가지의 진액을 빨고 있다. 한 겨울 덕

 

유산에서도, 내장산 숲 속에서도 보았던 그 얌치없는 겨우살이

 

가 여기서도 볼 줄이야. 참나무,팽나무, 물오리나무 어깨에 빌

 

붙어 있다가 겨울이면 피둥피둥 살진 몸을 배시시 드러내는 베

 

짱이나무 그 뿌리는 다른 나무의 혈관에 닿아있고 그 가지는 햇

 

빛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해 뻗어있다.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오다 김이사가 그만 주저앉았다. 또 다리

 

에 쥐가 나 쩔쩔 맨다. 한참이나 주무르고 문지른 다음 조심조

 

심 내려서기 시작했다. 중사자암과 복천암 휴게소에서 다리도

 

 쉴 겸 동동주 한 자백씩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상 근처

 

엔 단풍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바람에 떨고 있었는데 복천암

 

 근처엔 선홍색 단풍이 눈길을 빼앗는다. 진정 아름답다. 사람

 

도 노후가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오솔길 같은 등로를 걷다보면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난다. 솨

 

솨 바람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한 겨울엔 바람 달려가는 소

 

리가 마치 말발굽 소리처럼 어지럽겠지. 발 밑엔 마른 나뭇잎들

 

이 수북하다. 와락 콧속으로 나뭇잎 냄새가 밀려온다. 내가 살

 

아 있다는 충만감과 희열이 밀려와 가슴 가득 뻐근하다.

 

                                   

 


 

법주사를 오른 쪽으로 지나 일주문을 나섰다. 8대 가람의 하나

 

인 법주사를 뒤로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들 먼저 와서 기다린다.

 

 

조선조 세조가 올랐던 문장대, 왕이 지나다 소나무 가지가 연

 

에 걸릴까 소리하니 가지를 번쩍 들어 무사히 지나가게 했다는

 

 정2품송, 모두가 속리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오래오래. 귀로엔

 

 어쭙잖은 인사의 불평으로 즐거웠던 산행의 기쁨이 세속의 탁

 

류로 밀려온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시 아침에 출발하면서 나이

 

아가라로 보냈던 내 나이를 찾아야 할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