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8회차  늘재-화령재  (22,23구간)

 

 

산행일시: 2006년  9월 9-10일   날씨: 비, 맑음
               
혼자서

 

산행구간: 윗늘티- 늘재-문장대-천황봉-피앗재-형제봉-비재-봉황산-화령재


산행시간 :  9월 9일 06:10(윗늘티)-19:55 (동관리)  13시간 45분
                                     10일 08:25(동관리)-13:40분(화령재)  5시간 15분  합 19시간
 

                                                         산행거리 :   31.6   KM 

 

 


 

 

 

 

GPS가 맺어준 인연

 

 

 

나,
아직 힘들어 대간 길 가방 메어 보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요물단지가 맺어 준 인연 때문에
백오동과의 시간이 어긋나
혼자서

산가방을 꾸리니 쓸쓸하고
뭔지 모르게 허전하다.
허지만, 언젠가 대간 길에서 만나야 겠다는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길 나서본다.

 

 

 

 

지리산에

가 보리라 작년 봄부터 걸어
늘재까지 와 있거늘
이 한 몸 다스리지 못하여
상주시와 보은의 길못에 서서
남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으니
걸어온 길들이 정상을 두고
돌고 돌아 간다.

 

 

 

일년 전 카페의 인연이 되어
우연이 받아들인 요물단지를
아무것도 모르고 황당하기만 했던
그 날들이었는데
하찮은 내 산행기를 보고서 선뜻 나서준 분,
컴맹인 나에게 전화로
갈켜줬던 인연을 만나러 간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아닌데,
예쁘고 그윽한 향기를 드려야 하는 것도
아닌데,
웬지 마음이 설고 부끄럽다.

 

 

 


한 번 가르켜주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어찌 둔한 머리가 감당
못하여 묻던 것 또 되물어 보아도
불평없던 목소리에 내 머리를 훔쳐
보는 것 같아 민망하길 일 년!

수술하느랴 전신마치를 몇 번했다는 변명아닌
변명으로 위안 삼으며 배웠던 나,
산이 무엇이고
또 봉우리를 올라야 하고
지금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이 육신을 위해서

언제든 혼자서
어데라도 날기 위해 그 분한데
요물단지를 배워야 했던

나,
구름이 되어 산자락에 앉는다.

 

 

 

 

 

 


선생님!


산행 길 전 날 윗늘티에 도착하여
컴컴한 밤에 어느 낯모르는 여자가 문을 두두려
좀 재워달라고 하니 거절 당했어요. 
또 다른 집을 두두리고 나중에 제 모습을 바라 보았어요.
왜, 안 재워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스틱 두 개를 손에 들고
있어 무서워서 누가 재워주겠나 싶어 스틱를 숨기고
다른 집에 들어가 재워 달라고 간청하니 할머니가 들어오라고
하셔 오히려  한 밤중 할머니의 이야기가 신이 나셨어요.
넘 감사하여 태극달린 새양말을 하나 드렸더니 소녀마냥 좋아
하셨던 할머니가 지금도 그리워요.

 

 

 

밤티재의 쑥부쟁이

 

 

 

 

늘재에서 

선생님  만나러 가는데 이슬비가 내렸어요,
올라가는 길목에 포도가 주렁주렁 하얀옷을 입고 서 있었어요. 

먹고 싶었어요.
봄에 어두움 속을 걸었던 청화산을 이제야 보게 됐어요.
밤티재의 쑥부쟁이가 이슬비에 더 예뻐 보였어요.

화북쪽으로 성불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문장대 가는 길이 미끄럽고 힘들었어요.

 

 

916봉 오르기 전 첫번째 암릉

 

 


귀로만 들었던 개구멍이 살이쪄 바위에 갈퀴고
구름속이라 보이는게 안개 속이지만
바위와 바위의 징검다리 Y자나무다리가 정겨웠어요.
로프에 힘을줘 올라야 하는데 나흘동안이나 버티어
보자고 바리바리 싸온 산가방을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배에 채워 보는게 나을 것 같아
뱃 속에 넣어 보았지만 허겁지겁 뱃 속에서 요동치데요
.

 

 

문장대

 

 

 

 

늘재에서 밤티재
또 밤티재에서 문장대까지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을 걸어서
916봉의 봉우리가 어찌도 잘나 보이길래
문장대의 이름난 소문만큼이나 좋길래 이슬비가 비로 변하여
주룩주룩 하늘도 내리고 내 잠바로 타고 내려갔어요.
미끄러운  계단을 걷고 조심하여 올라보니 문장대의 바람에
날라가는 줄 알았어요.
관음봉, 묘봉으로 이어지는 서쪽으로의 충북알프스도 보이지 않았어요.
천황봉가는 이정표에서 입이 넘 심심하여 지나가는 분에게
"천황봉어데로 가요?"물어보기도 했어요.

 

 

 

신선대의 휴게소에서 따끈한 커피한 잔이 힘을 주었어요.
사모바위보다 더 큰 직사각형 바위가 우뚝 하늘향해 서 있는게
입석대였어요. 

그래도 선생님이 갈켜 줬던 사랑이 더 잘나 보였어요.
언젠가 선생님이 그랬어요. "또 다른 아줌마가 갈켜 달라고 하면
이젠 안 가르켜준다고"  그때서야 정말 남에게 전화로 등신인 나에게
갈켜주신 성의가 괘씸했어요.
비로봉도 만져보지 못했어요.  못간다는 안내판이 쓸쓸하게 했어요
안개에 바라보지도 못하고 길목에 우뚝 선 바위문이 석문이랑걸 알았어요.

 

 

 

 

천황봉(1)

 

 

천황봉 (2)

 

 

 

천황봉 표시석뒤를 꼼꼼이 읽어 보았어요.
"이곳은 조선의 삼대 명수 사파수 달천수 무통수중 삼파수의 발원지입니다.
삼파수(三派水)란 東으로 낙동강, 南으로 금강, 西로 남한강으로 흐르는 물을 말하며

 이곳 천황봉에서 나누어진다. 


"선생님 내일 오실 때 요물 밧데리 만땅으로 하나 채워오시고 제 빈 밧데리
가져가세요. 저 추풍령까지 가려면 밧데리가 바닥날 것 같아요" 산에서도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피앗재에서 홀로 설악산을 향해 가시는 산님을 뵈었어요.
"반갑습니다.  어데까지 가시나요?" "예. 추풍령까지 가려고 오늘 처음 왔어요"
"화령재까지 물이 없습니다.   저도 버섯따는 분들한테 조금 얻어 먹었습니다"
사실 저도 물 한모금도 없어 물이 절절했던 목구멍이지만 "예 그렇습니까?"
산행기를 쓰기전 홀山에 망각님이었을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그럴줄 알았으면 맛난 개떡이라도 드렸여야 했는데 후회가 또다른 아쉬움을

그렸어요.

 

 

형제봉

 

 

 


832m의 형제봉이 나풀거리는 표시기에 좀 빛나 보였어요.
개떡먹고 힘들게 올랐던 된비알이  생각보다 잘나 보이지 않았어요.
갈령삼거리를 찾고 계신 가족대간 길에 나선 분을 만났어요.
초등학생 둘과 내외가 산이좋아란 잡지에 "아이들과 하는 백두대간"를
연재하시고, 가지고 있는 지도가 저와 같길래 반가웠어요.
인터넷 싸이트 산행기 얘기를 하시길래 한참듣고 있다가 "제가
요물인데요" 했더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더 예뻐 보였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대간 길에 만남

 

 

못재에서 몇 년 전 눈 길을 걸었던 구병산으로 가고 싶었어요.
왼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조그마한 동관리 마을이 눈에 들어왔어요.
손폰에서 자꾸 울려댔어요.   "여보세요?, 봄에 암의 판정을 받고
여름을 겨우 이겨내신 사돈어른이시고 친구의 아버님이신 분이 세상을
떠나셔 병원으로 이동하시고 계시다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어떡
하나?
추풍령까지 가려고 나왔는데" 선생님만 내일 만나 뵙고 가야겠어요.
비재였어요.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마을이 조그마하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좀 마을이 크다" 선생님의 목소리였어요.
전 가까울수록 좋은 오른쪽 충북쪽으로 걸었어요.
"계세요, 할머니한테 재워달라 했지만... 돌아서 보니 빈집뿐이었어요.
다시 비재를 넘어 상주땅 동관리로 넘어와 "계세요. 하루밤만 재워주세요?"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어느분이 이장님집을 가르켜주어 다행히도 마을회관에서 등따시게 호강을
했어요.   넘 감사하여 아침인사를 드렸더니 아침먹고 가라하는 걸 재워 준
고마움만 가지고 떠났어요.

 

 

 

구병산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

 

 

 

 

아무래도 선생님을 만나려면 시간이 여유로웠어요.
비재 밤나무가 주렁주렁 달린 걸 보고 밤을 주워 먹으며
봉황산까지 가는 길에 초상집 소식을 전해야 하는 친구들 때문에 시간이
넘 걸렸어요.  

모처럼 활짝 핀 햇살에 구병산에 눈을 띄지 못했어요.
어쩜 얼마남지 않은 충북알프스 길을 걸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어떤나무

 


어떤 나무가 말했어요.   "mt주왕,  늘빈자리, 망각, 뫼향....왔다 갔다고요".
요물도 왔다 간다고 어떤나무에 덧 붙혔어요
구절초,  며느리밥풀, 산똘배, 물푸레나무가 친구되어 주었어요.
"선생님, 내가 매일 꽃노래뿐이 모른다고 투덜댔던 생각나세요?"
허지만 보이는 것은 땅을 보면 꽃이고 나무는 어떤나무일까,  하늘은
어떨까요?를 보면서 흥얼거리고 걸어요. 
그렇잖으면 재미가 없어요.   혼자 가는 발걸음이 자연에 묻힐 때 내
마음이 날씬해 보이거든요.

 

 

봉황산

 

 

 

봉황산에서 처음 올라오신 분을 뵙고 선생님도 이제 뵐 수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발걸음을 사뿐사뿐 역 주행하시는 분들 뵙기가 어쩐지
쑥쓰러워 땅만 보고 걸었어요.  

근데 어느분이 "안녕하세요?" 하면서 쳐다보며 싱긋이 웃으시길래 그 분이 선생님인

 알고 멈칫 했지만 제일 나중분일꺼라는 짐작이 선생님이 아니시더군요.

 

 


"일등이시네요!" 어느분이 그러시길래 제가 "맨 날 일등예요? 했더니
맨 뒤에서 "뭔 맨 날 일등이야!"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정말
선생님이었어요.    "ㅎㅎㅎㅎㅎ , 일년동안 전화 목소리만 듣다
막상 뵈오니 웃음뿐이 나오지 않았어요.  선생님 제 사진 보고 못생겼
다고 그러시더니 선생님은 더 못생기셨잖아요?  "
그동안 넘 고마웠습니다.   한 잔의 모주와 사양주를 건네 드렸던
잠깐동안으론 넘 죄송했습니다.
올라가시는 설악산까지 조심해서 가세요,   저 오늘 화령재까지 밖에
갈 수가 없어요.

 

 

 

 

그랬다.   일년 동안이나 목소리 낮추어 가르켜 주셨던 선생님과
이제 내가 걸었던 길을 선생님이 걸어 가시고 선생님이 오신 길을
내가 걸어 지리산까지 가야 하는 엇갈림은 당연했다.

 

 

 

산에 왔을 때 가끔씩 나타나는 이정표가
나풀거리는 표시기를 보면서
나무보다 풀이 더 강해 보이는 가을을 눈앞에 두고
무명의 봉우리들이 겹겹이 싸고 있는 산들을
가장 가까운 나침반을 선생님이 갈켜 주셨다.

 

 


함께 가는 친구가 있으면 어려움은 반이 된다는 산,
요물단지가 있어 선생님을 알게 되었던 인연,
이제 만나지 못할 지라도 고마움은 내 마음 속에
고스란히 길을 열어주는 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