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06. 9. 2.(토)
어디로 : 속리산(俗離山.1,057.7m)
누구랑 : 산악회따라 홀로이
산행코스 : 금란정(장각폭포) - 장각계곡 - 헬기장 - 천황봉 - 석문
               비로봉 - 입석대 - 신선대 - 문장대 - 쉴바위(풍선대) - 화북분소
산행시간 : 총 5시간 30분

사회초년생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의 대열속에 내던져진 갓 20대 초반,
푸른 이끼가 즐비한 습한 등로를 따라 힘겨웁게 문장대까지 오른 적이 있다.
이래저래 법주사는 여러 번 밟을 기회가 있었지만
기억 한 켠에 너무도 선명히 각인된 문장대의 속리산
그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 속리산의 속살을, 진면목을
두루 섭렵하고픈 오랜 염원끝에 덜커덕 길을 나섰다.

내(川)의 물빛이 다른 걸 보니 산이 가까운 가 보다.
금란정과 장각폭포는 소담스런 한 폭의 동양화인데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망중한이다.(11:40)
옥구슬 맑은 물에 산천어가 무리지어 노닐고
딱지딱지 다슬기가 쉬이 눈에 띈다.
상오리 7층 석탑이 뜨거운 태양아래 의젓하누나.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 장각계곡으로 들어서니(12:00)
잡목과 산죽사이로 물소리가 낭랑하다.
개울.다리를 건너 평안한 걸음이어 이내 720m 고지에 이르니
장각동1.7km, 천황봉 2.7km, 비로봉 3.5km란 이정표가 서 있다.(12:35)
곤고한 심사, 잡다한 일상 다 내려놓고
오로지 자연속에 하루를 유유자적 노닐고 싶은데
서슬퍼른 산악회의 하산시간 엄수지침이
두고두고 뇌리를 짓누르니 진정 낭패로다.
속리산이 속세와 이별하는 산이랬는데!
초장에 풀어놓은 양떼마냥
산객들도 이미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한 줄기 매미소리가 가냘프다.
속리산의 매미는 기운이 없구나.
장각계곡은 평이하고 산은 고요하다.
헬기장에 다다르니(12:45), 막 꽃을 피우는 억새들
맑고 밝은 햇살아래 여린 몸짓 살랑댄다.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김재진 님의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육산 느낌의 산등성이 밟으면서
훠이훠이 사색 뜨락 노니는데
어느 순간 언뜻언뜻 거대한 기암이 눈에 들어온다.
오묘한 솜씨여, 위대한 자연이여!

단체산객들이 점심중인 헬기장을 지나(13:40)
좁은 길따라 수도 없이 비켜서며
정상에 당도하니 천황봉(天皇峰1,057.7m)이다!(14:00)
볕은 여름이고 바람결은 가을이라.
잠자리떼가 경연하듯 몸짓바쁜데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대고
사방이 오로지 산.산.산 뿐이다.
거대한 산군이 물결치듯 에워쌌으니
천황봉은 한 섬이요, 그 위에 내가 섰더라.

이어지는 암봉의 절경에 푹 젖고 싶은데
여유로이 맘껏 함몰되고 싶은데
시간은 촉박하고 갈 길은 멀다.
자연미의 극치 석문을 통과하고(14:40)
비로봉, 입석대를 지나니
문장대 2.7km, 천황봉 1.2km란 이정표.
유명세만큼이나 오가는 이 넘쳐나고
오름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진다.
시야에 들어오는 문장대엔 사람열매가 주렁주렁하고
왁자한 신선대 휴게소 지나(15:20) 계단길을 올라
맘 한 켠에 늘 그립던 문장대(文藏臺)에 당도하니(16:00)
그렇다!
역시나 섬이다!
떠있는 섬위에 내가 우뚝 서 있다.
기억속의 암반은 엄청난 크기였는데
다시찾은 문장대는 생각보다 왜소하니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이다.
내가 변했다는 연유이리라.

잠시 머무르다 하산길 재촉한다.
돌부리가 즐비한 만만찮은 산길따라
물소리를 귀에 담고, 암봉을 눈에 넣고
나무다리 건너가며 쉴바위를 지나서(16:40)
훠이훠이 걸음 재촉하니 속세가 가깝더라.(17:10)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