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산행기

한국의 산하에서 주관하는 오프라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사당역으로 갔다. ‘한국의 산하’ 웹 사이트는 산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즐겨 찾는 곳인데 대간 산행을 하던 중 이 곳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이 올린 글들도 많이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자의 이름도 더러 기억하게 되었다.

7시 사당역 5번 출구에 도착하니 차 밖에서 운영진 등이 계시다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름을 말하고 차에 오르니 차 안이 가득해 보였지만 아는 분은 없었다. 조심스레 빈 좌석을 살피다 앞쪽에 빈 좌석이 있어 앉으며 옆에 앉으신 분에게 인사를 했다. 그분은 일만님이라고 했다. 아직 누군가 더 기다리는 듯 싶어 다시 밖에 나가 공기를 쏘이면서 명찰을 받아 달고 다시 타는데 댓글로 인사를 나눴던 운해님이 인사를 건냈다.

7시 13분 출발해 가면서 옆 좌석의 일만님과 산에 관한 이런 저런 예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1961년 설악산을 시작으로 그동안 꾸준히 산을 다녔는데, 오래전에는 산봉우리에 계단이나 로프가 전혀 없었고 험한 곳은 칡넝쿨을 잡고 올라가게 해놓았었다고 했다. 그리고 개울을 걸널 때는 신발을 벗고 건너갔다고 했다.

7시 32분 판교 IC에 접어들면서 권경선 총무가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산하 가족 만남의 날 행사는 10회로 6년째 해오고 있다고 했다. 얼굴을 모른채 글들을 접하다보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기도 하는게 사람들의 심정일 듯 하다.  ‘한국의 산하’가 적힌 스카프를 나누어주며 이번에는 10회를 기념하여 스카프 뒷풀이 비용을 모두 집행부에서 부담하기로 했다고 했다.

관리자 이남주 님의 인사말을 들은 후 참가자들이 앞에서부터 차례로 인사말을 해서, 웹에서 이름을 보았던 분들의 얼굴도 알게 되엇다. 소위 산 전문가, 산꾼, 산 애호가 등으로 불릴만한 분들이 다 모인 듯 했다.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산을 좋아하는 공통적으로 군살 없이 정신이 맑고 순수한 느낌을 지닌 듯 했다.

통로 건너 옆 좌석에 관리자님이 앉아 있어서 궁금히 여기던 ‘산하’의 진행 과정을 물어 보았다. 그러자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한국의 산하가 생기기 전, 1995년 서울대 도서관 산악회에서 점봉산을 갔는데 출입금지가 되어 못 오르고 동해안에 가서 민박하며 회만 먹고 왔는데, 그 일로 산행정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서울대 도서관에 자료를 정리해 올리니 교수 등  호응이 높았다.  그런데 그런 것을 기관 안에 만드느냐는 말이 나와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한국의 산하’라는 이름으로 97년에 운영을 시작했다고 했다.  

8시 35분 천안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고 다시 출발했다. 창 밖에 근래 심은 모가 뿌리를 내리며 푸르러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차 안에서는 권총무가 아득가를 알려주겠다며 따라 부르라고 선창 했는데 혼자만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다 부른 후 다시 한번 불러 주었다 .

아득가


아득히 솟아오른 저 산정
구름도 불타오른 저 산정
사랑하는 정, 미워하는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마음
산사랑 넓고 깊은 그 날을
저 산은 우리 고향
메아리가 되어 부르네

사랑하는 정, 미워하는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사랑하는 정, 미워하는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9시 45분 꼬불탕꼬불탕 거리는 박석고개를 넘어가자 다시 작은 들녘과 길들이 보였다. 그 그윽한 느낌이 먼 시골에 찾아드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는데 좌측으로 삼년산성, 보은 등의 명칭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가는 동안 화양계곡 표지판도 보였다.

9시 51분 정이품송 앞에서 쉬었다. 옆 좌석의 일만님이 사진 한 장 찍고 가고 싶다고 했다. 충무님도 도착하면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보다 먼저 도착할 것 같다면 시간이 남는다고 해서 아예 휴게소에 당도한 듯 일행이 모두 내려 정이품송을 천천히 감상하며 쉬었다. 휴게소보다 그 곳서 쉬는 느낌이 훨씬 더 좋았다. 소나무 한 서 잇는 곳에 매점도 있었다. 스케치를 하다 다시 차에 올랐다.

10시 4분 법주사 입구 집단 시설지구에 도착했다. 차가 선 가로수 숲 안쪽에 공터가 벤치가 놓여  쉴 수 있었다. 그 곳에서 기다리니 대구 등지의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도착해 인사들을 나눴다. 불사초님이 나타나자 여러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불사초라는 이름의 유래를 묻자 부처손이라는 식물은 즉은 듯 하다 다시 살아나는데 그처럼 안 죽는다 해서 불사초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구자숙(코스모스)님은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면서 설날에 동네방네 인사하고 다니 듯 했다. 참가자들이 모이자 운영자, 관리자 님이 인사로 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산행 후 모일 시간등을 알려주며 10시 46분 산행을 시작했다.

우측 잔디광장에는 2009 제9회 속리산 전국 등반 축제 를 알리는 대형 표지가 축구 골대 같은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매표소 안으로 들어섰다. 다리를 건너 좌측 숲길로 접어드는 지점에서 관리공단 직원들이 도열하여 입장하는 사람들을 환영해 주었다. 10시 58분 일주문을 지났다. 숲길을 가다 잠시 후 법주사에 당도했다.

입구 표지에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했고, 혜공왕 12년(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 삼존불상을 갖춰 법상종의 3대 가람으로 잘 전해 오던 중 임진왜란 후 사명대사 및 벽암 대사에 의해 다시 건립되고 보수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맑은 개울을 건너가는 다리를 건너니 금강문이 보였다. 그 금강문에 가까이 다가가니 그 안으로 저만치 천왕문이 보였는데 그 안으로 열지어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구도의 행렬 같았다.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는 여자 아이 등에 곰 인형이 앙증스럽게 매어 있었다.  구도행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아이에게 단지 즐거운 나들이길로 보였다.

법주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경내에는 목탑 형식 건물인 팔상전을 비록하여 쌍사자 석등, 석연지 같은 국보가 3점이나 있다. 그 중 팔성전은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특별히 꼽은 8가지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를 보관하는 전각인데 여기서는 부처님의 생애를 각각 불상으로 조성해 놓았다.

세 가지 국보를 돌아보고 경내를 멀찍이 둘러본 후 시간을 의식해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오다 입구의 벽암대사비를 본후 산행길로 올라갔다. 조금 가다 보니 좌측으로 저수지가 보였다. 다시 조금 더 가다 매점이 있는 곳에서 연세 많은 할머니가 막걸리를  팔고 있어 한잔 마시고 갔다. 길을 걷다 보니 우측에 목욕소라고 쓴 안내 표지가 보였다. 그 곳은 태조가 부스럼병을 나으려고 목욕을 했다는 장소이다. 이 곳 말고 상원사 계곡 등에도 같은 이야기가 깃든 곳들이 있다.

11시 58분 세심정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천왕봉을 향해 걸어갔다. 그 길로 접어든 바로 앞에 순조대왕 태실 입구라는 표지가 보였다. 태실이란 왕손의 태를 잘라 봉안해 놓은 곳인데 왕의 핏줄이라 중히 다루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몇 개의 물확처럼 보이는 석조물과 폭포가 보였다. 세심정 절구에 대한 이야기가 써 잇는 안내문을 읽으니 그것은 이 곳 지형을 이용한 물레방아 형태의 절구라고 되여 있었다.

“속리산에는 약 300여개의 암자와 토굴이 있어 속리산의 비범한 기운을 받아 공부하기를 원하는 고승, 도인, 학자들과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손님 중에는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다 가는 곳이기도 하여 곡식을 국가에서 제공했다” 고 한다.

다시 산길을 올라갔다. 가면서 지나는 분께 물으니 이 길이 문장대로 오르는 것보다 길이 더 험하다고 했다. 소나무 계곡 신갈나무 개벗나무, 쪽 동백 등 나무 명찰이 달려 있었다. 숲이 점차 무성해지고 빛깔로 짙푸러지고 있었다. 계곡에는 너럭 바위돌이 널려 있고 길 곳곳에 큰 바위 문을 지날 때처럼  절벽 같은 바위가 서 있는 곳도 있었다. 또 낮은 폭포를 이루는 곳도 있어, 운치와 자연의 깊은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12시 13분 천왕봉이 2.1km 세심정을 0,8km 지나온 표지를 보며 철계단 길을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상환암 표지를 보며 지났다. 길 좌측이 트여 바라보니 건너편 능선이 보이는데 주변에는 작은 텃밭을 일구어 놓고 자동 분무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다시 조금 완만해진 길을 올라가자  좌측이 트인 지점에서 부부가 단란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시 계단길을 올라가자 좌측에 삼각형으로 생긴 작은 바위가 수석같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12시 28분 천왕봉이 2.0km 남은 지잠 이정표를 지나니 내리막 앞 쪽에 큰 바위가 가로 막고 놓여 있었다.  그 입구 부분에는 지워진 글씨로 사자암이라고 쓰여 있고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 굴처럼 된 길로 지나갔다. 굴을 빠져 나갈 때 길에 다시 햇살이 비추어 새삼 햇살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거기서 오르막길 옆이 좌위에 바위가 서서 참호를 지나는 듯한 공간감이 느껴졌다. 바닥도 바위인데 디딜 수 있게 계단 같은 턱을 파 놓았다. 그 곳을 오르니 앞이 트여 보이며 건너에 봉우리가 보였다. 짐작으로 천왕봉이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여서 봉우리를 살피며 지나가게 되었다. 좌측으로 큰 봉우리가 올려 보여 마주오는 사람에게  그 곳이 천왕봉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12시 43분 우측에 큰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 조망을 보고 갔다. 그 곳에 오르자 먼저 와 있던 일행이 인사를 건네주었다. 주변이 시원스레 트이는 공인데 능선이 아득히 곂쳐 펼쳐진 모습이 속세를 저 멀리 두고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거기 멈춰 서서 스케치를 하자 그 일행이 잘 그리고 오라며 떠났다.



속리산
              

속세를 가리우는
능선 한 겹

산내음 깊게 하는
또 다른 산자락 한 겹

새소리 물소리 들으며
산 속을 지나다 보면

속세의 체취 아득히 멀어지고
높다란 절경이 벗하고 섰네


다시 출발해 오름길을 걸었다. 정상인 천왕봉이 점차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오름 길을 가다가 천왕봉 0.6km 남은 이정표를 지났다. 그 것을 보면서 전에 대간을 종주할 때 천왕봉에서 내려오며 지나던 길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1시 21분 헬기장을 자났다. 그 곳에서 정상부를 올려 보았다. 좌측으로 주변의 산세가 너르게 트여 보였다.

1시 29분 천왕봉에 올랐다. 속리산은 또아리를 틀듯 지나며 대간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지점이다. 그 기상을 붇돋우려는 듯 험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대간 길에서는 오늘 올라온 길과 반대 방향에서 출발해 이 곳에 도착할 즈음 막 날이 밝았었다. 그 때가 처음 와 보는 길이었다. 그 때 발길이 잘 닿기 어렵고 이름만 듣던 정상에 오른 것에 홀로 환희로워 했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새삼스레 신기하게 바라 보았었다. 하지만  어둑해서 풍경이 잘 보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속리산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 날이었다.

아까 큰 바위가 서 있던 곳에서 스케치 할 때 계시던 분들이 먼저 와 있다 삶은 계란을 주었다. 사양을 하니 한 줄 삶아 왔다며 권해 한 개를 받았다. 오랜만에 삶은 계란을 먹으며 어린 시절 소풍 때가 생각났다. 거기서는 사방이 모두 시원스레 조망되어 이 곳 저곳 시선을 돌리며 한참씩 바라보았다. 그 중 입석대, 신선대, 문장대로 이어지는 주 능선이 속리산의 가장 대표적인 산세이다. 그  속리산의 위용을 풍기는 주능선을 바라보며 스케치 했다.

문득 시간을 의식하며  2시 5분 서둘러 천왕봉을 출발해 곧 아까 지나온 0.6km 지점을 지났다. 거기서 문장대 까지 전에 갔던 길이 그려졌다. 기억에 큰 바위가 솟은 오르막 내리막 길이 반복되어 있었다. 걷기가 쉽지 않은 길이었다. 대간에서 속리산은 험준한 산세를 이루는 구간중 하나이다. 국토에서 대간의 맥을 잇는 그 위치가 지닌 의미도 크고 한강, 금강, 낙동강의 3갈래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 갈래를 이룬 물길은 그 각기 다른 강들의 영역을 너르게 적시며 지나간다.

길을 가다보니 맞은편에서남자 아이와 어머니가 오고 있었다. 우측으로 비켜 걷는데는게 뜬 돌을 밟아 넘어졌다. 아이가 급히 오는 것을 피하느라 정황 없이 그랬다. 사람이 올 때 좁은 산길을 급히 가는 것이 산행 예절에 어긋난다는 것을 교육시켜야 될 것 같은데 말을 하려다 그냥 갔다. 그래도 아이가 넘어지는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온은 올라가 증발 지수는 높아지지만 숲이 우거져 길이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입석대 0.7km 남은 곳을 지나는데 주변에서 더덕향기가 났다. 능선마다 큰 바위들이 위용을 뿜는 모습이 보였다. 문장대로 가는 길은 그런 정상부를 오르락내리락 넘나들며 지나는 양상이었다.

3시 30분 전에 들렀던 신선대 표지석이 있는 곳에 닿았다. 험하고 높은 곳인데도 거기에는 물건을 파는 건물이 있었다. 거기서 주변을 돌아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지나온 방향에 솟아 보이는 곳이 진자 신선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뒤돌아가 3시 40분 신선대에 올랐다. 그 봉우리에 오르니 주변 조망이 장관이었다. 신산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그 주변 경치가 신선이 사는 곳처럼 빼어난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다시 그 곳을 출발해 능선을 오르다 보니 헬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지나가는 것이겠지 하고 그냥 가려다 소리가 크게 들려 뒤돌아보니 신선대 주변에 멈춰서 구조를 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고가 있었는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4시 23분 문장대에 도착했다. 전에 있던 건물은 철거되고 없고 석축만 앙상하게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우측 오름 길로 오르니 문장대 표지석이 두 개 보였다. 다사 바위에 턱을 내어 만든 게단 길을 오르니 우측으로 시선이 훤히 트였다. 길 옆에는 출입금지와 벌금 부과를 안내하는 프렛카드가 걸고 길의 흔적이 보이는 곳을 막아 놓았지만 길의 흔적은 보였다. 전에 그 희미한 자취를 지나가던 때가 생각하며 문장대에 오르자 다시 주변이 너르게 펼쳐보였다. 앞에는 기암 절벽의 험준함이 느껴졌다.  좌측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이는 곳 근처가 널재에서 마쳤던 구간의 종착점이었다. 험한 구간을 걷는 육신의 피로를 내려놓았던 곳이라 감회가 느껴졌다. 백두대간의 그 다음 구간인 대야산도 험하게 이어졌었다.

4시 30분 하산을 시작했다. 긴 계곡길이라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시게를 보니 공지한 시간도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바쁘게 걸어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돌부리가 있는 내림길은 특히 무릎에 무리가 가기 쉬운 곳이라 조심하기도 했다. 4시 49분 암문 같은 곳을 지나가니 앞서 걷던 사람들이 걷기 힘들다고 예기를 하다 나에게 잘 걷는다고 해서 잘 걷는 것이 아니라 갈 길이 바쁘다고 했다.

4시 52분 냉천골휴게소를 지났다.  건물이 계곡 지형에 꼭 맡게 되어 있었다. 꼭 쉬어가고 싶은 느낌이 들 듯 했지만 그냥 지났다. 널부러진 바위 돌들을 밟으며 지나는 것이 걷기 어려웠다. 계속 걷다보니 앞에 봉우리가 나타났다. 그 곳을 넘으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겠구나 하고 긴장했는데 다행히 넘지 않고 지나는 길이 이어졌다. 다시 한참을 걸어 내려왔다. 우로 지나다보니 기리 갈라진 다른 길에 몇 사람이 있었다.  혹시 법주사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아느냐고 하니 근처의 표지를 가리키며 4.5km 남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시간이 빡빡할 것 같아 더 빨리 걸었다.

올라갈 때 지나친 세심정 휴게소에만 닿으면 평평한 길이라 빨리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다시 걸어 5시 10분 다시 휴게소를 지났다. 세심정은 아닌 것 같았다. 주인이 세심정은 20분 정도 더 가야 된다고 했다.

다시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 5시 20분 세심정휴게소를 지났다. 이제 평평한 길이라 빠르게 갈 수 잇을 것 같았다. 그 때 차 한대가 출발하고 있었다. 사정을 말하고 태워달라고 했더니 선 듯 태워주었다. 그는 이 곳에 산다고 했다. 퀴즈를 풀듯 아래서부터 차례로  지나며 보앗던 걸물을 대니 신선대 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신선 같이 산다는 생각이 들어 좋겠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다면서 실제 살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표정을 띠었다.

5시 42분 그 분이 식당 앞에 내려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회원들이 모여 있는 2층으로 올라가니 식사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즐거움이 가득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식탁에 앉은 회원들은 각기 식탁에 마주 않은 사람끼리 술잔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앞쪽 빈자리에 앉아 있던 총무가 자리를 권해 앉아 주변 분들과 건배를 했다. 남은 찌개에서 버섯 등의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 경품 추첨이 있었다. 호명을 받고 앞으로 나가 선물을 받을 때 회원들이 축하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혹시 이름이 불리우기를 기대하는 듯 잠시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듯 조용해졌다.

경품 추첨을 마치고 잔디 마당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큰 나무들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지기 시작해서 그림자와 햇살이 어우러진 영롱한 느낌이 들었다. 위쪽으로는 멀리 속리산의 능선 모습이 보였다. 참가자들이 펼쳐진 프랭카드 뒤로 정돈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아서 어느 사진에 눈을 맞춰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다른 모임과 다른 특이하게 찍히지 않고 찍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조금후 좀더 정리된 상태로 사진을 찍고 차에 올랐다. 일행은 아쉬운 듯 자꾸 뭉그적대듯 보였다. 바로 차에 오르지 않고 걸음이 산보하듯 빙빙 돌며 천천히 움직였다. 거기서 지방으로 가는 회원들과 인사를 하고 올라탔다.

6시 39분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주위 산자락과 작은 들에 비치는 늦은 햇살의 영롱함이 느껴졌다. 해가 더 길어진 듯 했다. 7시 36분 청원 휴게소에 들러 쉬고 청계IC를 지날 무렵 운영자님이 좋은 인연으로 전국의 산하가족의 즐거운 만남이었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관리자님도 헤어져 아쉽고 또 1년 기다려야겠다고 했다. 9시 5분 사당역 도착하자 다시 정감 어린 인사를 나누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09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