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산행일자:2009. 5. 10일(일)

                  *소재지  :경북상주/충북보은

                  *산높이  :문장대1,054m/천황봉1,058m

                  *산행코스: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문장대-화북분소 주차장

                  *산행시간:10시10분-14시50분(4시간40분)

                  *동행    :경동고 24회동기28명

 


 


 

  이 세상에 태어난 지 60년이 되었거나 막 넘은 이들에 속세를 한 번 등져보라고 말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벌써 익숙해질 대로 다 익숙해져 속세를 떠나서 산다는 것이 설사 잠시라 해도 엄청 불편할 것이고, 또 이 불편을 감수하라는 말은 그리 길게 남아 있지 않은 여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로 오해받기 십상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 풍진 속세에 고운 정 미운 정이 모두 다 든 것은 60년간 발붙이고 익숙하게 살아왔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발을 떼고 어떠한 세상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속리(俗離) 길에 나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60대의 거의 모두가 오늘도 별 수 없이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잠시 속세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마냥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언젠가는 이 속세를 완전히 등지고 영원의 세계로 먼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전에 세상만사를 모두 잊고 몇 번쯤은 속세를 떠나 속리(俗離) 길에 나서는 것이 그 날을 맞아 받을 충격을 얼마간 줄일 수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경동고 24회동기생들의 등산모임인 동산회에서 이번에 속리산으로 명산100산 탐방을 떠나게 된 것은 주로 올해에 회갑을 맞는 동기들에 모처럼 속리(俗離) 길을 한 번 나서보라고 이달헌 회장이 주선한 덕분입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를 충북보은의 시끌벅적한 법주사 쪽으로 잡지 않고 비교적 한갓진 경북상주의 화북 쪽으로 정한 것도 이번 나들이가 속세와 별리한 속리 길이어서 그리한 것이고 회장이 날머리로 정했던 법주사 길로 하산하지 않고 들머리인 화북분소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주봉인 천황봉을 오르지 않고 달랑 문장대만 올라갔다와 산행자체는 조금 단조로웠지만 그래서 더 속리 길의 산행다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전10시10분 화북분소를 출발했습니다.

올림픽공원역에 집결해 대기해 있는 버스에 오른 동창생들이 모두 26명이었습니다. 아침7시반이 조금 지나 출발한 버스는 수지에서 2명을 더 태워 속리산으로 향했습니다. 화서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앞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화북분소 앞에서 합동사진을 찍은 후 문장대로 향했습니다. 작년 1월 적설기의 오대산을 오르면서 고생했던 두 분이 이번 산행에 동참해 후미에서 이분들과 함께 오르고자 했으나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문장대까지 오르지 않고 중간에 적당한 곳에서 쉬다가 하산 할 뜻을 밝혀 그분들을 앞서 갔습니다. 15분 넘게 포장도로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서자 비로소 속리산의 싱그러운 체취가 느껴졌습니다.


 

  숲속에서는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때 이른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이 향연의 주역은 단연 나무들입니다. 가지마다 돋아난 새파란 나뭇잎들로 온 산이 푸르렀습니다. 연분홍 꽃을 화사하게 피운 철쭉나무는 아직은 많지 않았고 오히려 흔치않은 이팝나무(?)가 여기저기서 흰 꽃들을 만개시켰습니다. 풀꽃들에 제 이름을 찾아 불러주는 여심(女心)이 있어 이 꽃들도 숲속의 향연에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숲속의 나뭇잎 뒤로 몸을 숨긴 산새들이 마음껏 지저귀어 숲속의 향연이 더욱 풍성했습니다. 산새들이 지칠 즈음인 한 여름에는 이 숲속의 음악은 매미들이 맡을 것입니다. 나무와 풀이 꽃을 피운 이 산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것은 저희들의 몫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이 아무리 세속을 떠난 속리의 나들이라 해도 오랜만에 해후한 동기들과 지난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웃음 짓는 일까지 삼갈 것은 아니기에 잠시 쉬는 짬에 작은 웃음들이 연이었습니다.  숲속의 향연을 묵묵히 지켜보는 바위들이 제각기 다른 형상을 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조각공원 못지않았습니다. 세속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묵언의 수행을 하고 있는 바위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리의 참뜻이 터득되는 것 같았습니다. 

 

  12시25분 해발1,054m의 문장대에 올라섰습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고 화북코스로 올라 법주사 쪽으로 하산하는 안내산악회가 많아 오름 길이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만큼 오르다가 큰 바위를 만나 한참 동안 쉬었습니다. 나무다리를 건너고 비를 가리는 커다란 처마바위(?)를 카메라에 담으며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산죽 길을 지나 문장대-문수봉사이의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몇 해 전까지 라면을 끓여 팔던 휴게소 건물이 철거되어 그 자리가 휑하니 넓어 보였습니다. 철계단 길을 올라 다다른 문장대(文藏臺)의 본래 이름은 운장대(雲藏臺)였다 하니 이 봉우리도 북한산의 백운대(白雲臺)처럼 누구라도 한 번 올라 구름들과 함께 노니면 신선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속리산에 요양을 온 세조임금께서 꿈에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이 봉우리에 올라 "오륜삼강"(?) 책 한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하여 문장대로 바뀌었다는데 주위의 절경에 눈을 주지 않고 딱딱한 내용으로 꽉 채워졌을 예절서를 읽느라 세조임금도 꽤나 지루했을 것입니다. 이 높은 산에 올라서도 세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예절서를 읽어야했던 세조임금이 범부인 저희들보다 속리 길에 나서기가 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속리산의 주봉은 해발1,058m의 천황봉입니다.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금남한남정맥이 천황봉에서 갈라져 나가 이 봉우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금강으로 나뉘는 삼파수가 됩니다. 이 주봉보다 4m가 낮은 문장대는 천황봉에서 북쪽으로 3.4Km 떨어져 있는데 이 봉우리 바로 아래에서 백두대간이 북동쪽으로 뻗어나가고 충북알프스 연봉들은 서쪽으로 이어집니다. 문장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기기묘묘한 암릉의 산줄기가 법주사를 감싸고 있어 이 절이 명찰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장대는 정상에서 휘둘러본 조망이 일품이어서 한 번 오르면 다시는 속세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도저히 일지 않는 참으로 고혹적인 봉우리입니다. 그러기에 속리산을 찾는 산객들이 주봉인 천황봉은 오르지 않으면서 문장대만은 빼놓지 않고 오릅니다. 그래서 문장대를 속리산의 주봉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14시50분 화북분소 주차장에 도착해 속리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문장대에서 내려와 반시간 가까이 점심을 같이 든 후 13시가 조금 못되어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왕복산행이어서 하산 길이 마냥 여유로웠습니다. 오전에 이 길로 오를 때 사진작가로 추대된 한 동문의 손놀림이 신중해진 것은 이제까지 사진사로서 사진 찍기가 이번부터 사진작가로서 작품활동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오른 동문들이 사진 찍기에 더 열심인 것은 이만한 추억 만들기가 어디 있으랴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산 높이에 비해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계곡에 그다지 많은 물이 흐르지 않아 그 유량이 인근의 쌍용계곡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지런한 친구들은 잠시 짬을 내어 이 계곡에서 탁족을 즐겼습니다. 숲속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길로 들어서자 섭씨30도가 다 되는 열기가 곧바로 감지됐습니다. 숲속의 나무들이 태양열을 흡수하는 것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로 그들이 자라는데 필수적인 영양분인 포도당을 합성하기 위해서인데 이 덕분에 산행시간이 시원할 수 있었으니 속리의 나들이가 마냥 힘들고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속리산에서 풍산의 한우고기집으로 직행하지 않은 것은 환속의 속도가 너무 빨라 문화적 충격에 휩싸일까 걱정하는 이 회장의 세심한 배려덕분입니다. 서애 유성룡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병산서원의 탐방으로 이 서원의 역사적역할과 건축사적가치를 학습해 명문고를 졸업한 동문들의 뒤늦은 학구 욕을 일부 채웠을 뿐만 아니라 급작스러운 환속을 막아 세속에 연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풍산의 한우고기집은 재작년 가을에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어 육회의 감칠맛과 스테이크의 씹는 맛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맛은 여전했고 값도 많이 저렴해 몇 몇 동문들은 안심과 등심을 사갖고 가기도 했습니다. 세속에의 성공적인 환속을 기뻐하며 건배를 한 후 이야기를 듬뿍 담아 술잔들을 건넸습니다. 환속의 프로그램은 고기집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주당들이 귀가 버스 안에서 벌인 주연도 환속프로그램의 일환이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해 속리길의 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


 

  1968년에 경동고교를 졸업한 24회동기생 8명이 2006년 가을 설악산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계절별로 한 산씩 정해 오르는 “명산100산 탐방”은 이번에 오른 속리산이 11번째였습니다. 앞으로 89회를 더 해 2031년 여름에 끝나는 “명산100산 탐방”프로그램은 장장 4반세기에 걸친 것으로 동창들의 건강을 지키고 우의를 다지는데 이만한 프로그램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2006년 10월 설악산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덕유산, 지리산, 방태산, 주왕산을, 2008년에는 오대산, 황매산, 명지산, 가야산을 올랐으며 금년 1월에는 계방산을 다녀왔습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참여인원이 조금씩 늘어나 이번 속리산탐방에는 무려 28명이 참여해 세속의 일을 모두 잊고 명산100산으로 속리의 길을 떠나는 이 프로그램의 장수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모두들 오늘의 건강을 그대로 지켜내 2031년 여름에 마지막 명산을 다 함께 오를 수 있기를 빌고 또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