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의 통문에 여덟 번의 뜀박 연애질 - 막장`장성봉

속리산국립공원 북단을 뚫는 517번 도로는 선유구곡물길과 연애질을 한다. 그 도로 제수리재(괴산군칠성면)에서 막장`장성봉을 오른다. 엊그제 훑고 간 태풍카눈에 시달리고 몸뚱이 살점 찢긴 초목들은 매년 당하는 트라우마 땜에 깊은 침묵에 빠져 바람한 점 일굴 생각도 않는 듯싶었다.

후덥지근한 오르막길 오르면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 트라우마란 어쩜 성장통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다. 적어도 자연에 있어서 말이다.

이십분쯤 올랐을까? 틀니를 한 바위가 윗턱을 쳐들고 무엄하다. 옛날 속리산 사천왕님 이빨이 썩어 이빨세공사가 바위에 틀니 본을 뜨다 말았나? 추한 아귀딱 벌리고 있어도 싫진 않았다. 큰 떡잎으로 성장(盛裝)한 참나무군락들이 숲 터널을 일군 바람 없는 능선 길에 바위들은 온갖 형상으로 더위를 잊게 한다.

투구를 쓴 놈, 코끼리를 끌고 온 놈, 어떤 놈은 화산분화구를 통째로 옮겨놓은 채 심심찮게 마중 나온 바위얼굴을 대하는 재미는, 그들의 기고만장한 솟을대문이나 통천문을 통과하는 스릴까지를 더해 한 시간여의 숲길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거대한 대문 앞에서 망설이다, 협살문 빠지느라 용쓰고, 통천문 통과하랴 긴장하길 여덟 번을 하다보면 막장봉(887m)에 이른다. 정오을 지나 막장봉에서 시장기를 때운 난 급경사내리막을 내려와서 시묘살이갈림길에서 장성봉을 향한다.

마침 산사님(산사랑회원) 한 분이 동행하기로 해 긴장이 풀렸다. 아무도 장성봉을 오르는 분이 없었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자 ‘출입금지’란 안내판이 세워진 등산로는 인기척이 뜸했던지 태곳적 내음과 맛이 묻어났다. 능선은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녹음은 캐노피 숲을 이렀고, 천년을 쌓아 다져놓았을 부엽토의 쿠션은 무딘 등산화발꿈치의 신경을 살려내고 있었다.

참으로 걷기 좋은 숲길 이였다. 태곳적숲길에 빠져든 달뜸 이였다 할까? 아님 이정표나 푯말도 없고 전망이 안 뵌 녹음 탓이라 들러댈까? 우리는 아까 그러니까 반시간 전쯤에 올랐던 가파른 봉우리가 장성봉(916.3m) 이였음을 알아챘어야 했었다.

갈림길에서 장성봉까진 1km 남짓 이였으니 말이다. 우린 악휘봉을 가는 백두대간에서 빠꾸하기로 했다. 한 시간여를 되짚어 갈림길에 다시 섰고, 시묘살이계곡으로 빨려들 듯 내달았다. 근데 그 길은 바위너덜지구에다 장마와 태풍카눈이 빚어놓은 이끼와 습기가 여간 신경을 날 서게 하는 게 아니었다.

시묘살이란 이름이 왜 붙게 됐는 줄은 모르지만 깊은 골의 울창한 녹음을 무수한 넝쿨식물들이 얽어 짜서 촘촘한 그물로 하늘을 걸러내고, 어쩌다 빠진 햇빛은 시묘살이 넋인 양 어슬렁댄다. 수백 년 살았을 귀목들이 계곡의 파수꾼처럼 우뚝하고 천년을 살다 나자빠진 놈은 우리의 무단침입을 막아섰다.

놈은 천년을 살아갈 후예들을 위해 거대한 몸뚱일 까맣게 썩혀 분해하는 중이고, 그들 거목의 죽음을 슬퍼하기라도 하는 듯 골짜기로부턴 장송곡이 희미하게 울려온다. 그 울음은 나의 발길에 따라 가늘고 여리게 흐르다가 장엄한 칸타타로 골짜기를 흔들었다.

장송곡은, 물살이 바위를 타고 계곡을 빠져 골을 넓히며 폭포를 만들고 옥빛 소를 일구며 마침내 하늘을 받아들이자 우주로 울려 퍼졌다. 물살은 장송곡만 태운 게 아니었다. 나도 그 물길에 올라타 무거운 몸 장송곡에 녹여 뛰어넘길 여덟 번은 족히 넘겼을 테다.

물살의 울음에 마음을 녹이고 청정물길에 천근 몸뚱일 씻어내느라 여섯 시간의 산행이 지치진 안했다. 쌍곡폭포 아래론 피서객들로 계곡은 사람꽃을 피웠고 그들이 부러운데도 시간 없어 탁족도 언감생심이다. 물길은 피서객을 태우고 화양계곡으로 내달랐다.

여덟 개의 통천문을 나서고 여덟 번의 개울물을 타며 흥얼거렸던 나만의 짝사랑-연애질은 한 여름날의 피서치곤 최상의 것 이였다. 산사님이 내게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산욕심이 대단하다.”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일 것 같다. 산에 들면 누구 못잖게 두리번거리고, 별나다싶은 건 몽땅 챙겨 배터지도록 포식하려는 욕심 말이다. 그 욕구 탓에 꼴찌는 다반사고 또한 홀로산행이기 일쑤여서 종잡기 뭣한 의뭉스런 놈인 게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비워야 된다고 주문처럼 외우면서 그 욕심은 재물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합리화시킨다.

사랑도 상대를 귀찮게 않고 페끼치지 않으면서 하는 사랑 - 짝사랑은 몸뚱이 문드러질 때까지 해도 괜찮을 성 싶다,

산님들, 막장봉에 이은 시묘살이 사랑 한 번 해보시라!

                                                       2012.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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