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 본인 (2005년 6월 이후 사용된 좌표는 WGS-84좌표임을 알려드립니다.)

날    짜 : 2 0 0 5 월 06월 26일    날 씨 : 비. 흐림. 맑음. 폭우

행 선 지 : 속리산(견훤성(846m) -> 문장대->청법대(930.7m)) 종주산행

산행취지 : 가람산악회 124차 정기산행

참가인원 : 43명

글 쓴 이 : 요산요수 (류 인 호)

산행시점,종점 :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시어동(주차장)

산행코스 : 장암리-견훤성-대간길묘-암릉지대-헬기장-문장대-청법대-산수유능선-성불사-시어동


산행한 지도 (50,000/1지도 임의수정) --- 산행한길  --- 기존등산로

 

지점별통과시간:

-09 : 09~14  장암리(견훤산성(0.7km 이정표)입구)(새로 세운 신도비와 독립가옥 뒤로 난 길로 )

-09 : 43~52  견훤산성(산성위에 올라 북쪽으로 가다 묘를 만나면 숲 속으로 진행 서북으로 진행)

-10 : 19~20  갈림주의(좌측에 묘 있는 지점을 통과한 Y자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갈 것. 두 군데)

-10 : 38~44 대간능선묘(백두대간 길목 삼거리에 있는 묘위에서 휴식, 북쪽은 밤티재로 가는 길)

-11 : 13~16  전망바위(멀리서 보면 절구통 같은 전망바위 특히 화북쪽과 속리산능선 조망이 일품)

-11 : 20     시어동갈림길(전망바위를 내려오면 안부에 있는 길로 희미하여 쉽게 확인할 수 없다)

-12 : 08~09  두 번째 전망바위(줄을 세 번씩이나 잡고 오르자 좌측이 절벽인 이끼 낀 전망바위)

-12 : 20  틈새바위(계속되는 암릉길을 올라 돌아가서 커다란 틈새바위를 줄을 잡고 내려간다.)

-12 : 27     개구멍바위(밧줄을 올라서서 화살표를 따라 우측으로 넘어서면 얽힌 바위굴 ) 

-12:48~13:04 큰암릉구간(상당히 위험한 코스로 한사람씩 오르내리므로 지체현상이 심하다.)

-13 : 09~36  암반위 중식(바위위에서 후미 팀들은 무침회가 곁들인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13 : 50     통천문통과(틈새바위를 힘들게 줄잡고 오르자 다시 개구멍바위를 통과해야 한다.)

-14 : 00     삼거리갈림길 (오른쪽에 밤티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지만 직진한다.)

-14 : 02~03  헬기장(문장대 바로 밑에 있는 헬기장,직진하면 문장대 좌측길은 휴게소.샘터)

-14 : 10~20  문장대정상(철제사다리를 여러번 올라야 정상에 선다.흐린 날씨로 전망이 아쉬움)

-14 : 28~30  사거리갈림길(휴게소 앞 사거리. 여기 두 팀으로 나뉘어 진다.)

-14 : 45~46  산수유능선초입(청법대암봉 옆을 내려가다 좌측으로 산길을 올라간다.)

-15 : 18    삼거리길(시작한 폭우로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우측으로 탈출하여 하산하기 시작)

-15 : 38~45  암릉통과(계곡 길로 한 참을 내려가다 줄을 잡고 올랐다가 줄을 잡고 내려간다.)

-16 : 15~16 상수도시멘트 보(철조망이 쳐진 시멘트 보를 건너가자 신선대서 내려오는 길 합침)

-16 : 24~25  성불사(예전 모습은 없고 모두 헐었다가 다시 지은 건물들뿐 이군 !)

-16 : 33     오송폭포(비속에서 폭포를 구경하고 나와 삼거리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16 : 42   버스주차장(산행종료)(도로를 따라 5분정도 내려가 옛날 우리집터 주차장에 도착.)

 

예 상 시 간 : 6시간 00분

실제등산시간 : 7시간 28분(09시 14분 ~ 16시 42분)=(휴식:1시간 17분+산행:6시간 11분)  

실제산행거리 : 약 10km (대간지도상)  체감거리 약 13km 정도

 

산행개요

옛말에 고향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 말이 있듯이 고향이야기만 나와도 맘이 설레이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리인 것 같다. 이번 산행지는 2000년 8월 27일에 가람산악회에 가입하고 첫 산행으로 갔던 곳이었고 지금 부등반대장인 전천호님께서 다시가고 싶은 앵콜산행지로 신청해 주신 곳을 가는 곳이다. 내 고향 뒷산이고 하산하는 곳이 나의 살던 집터 대신 덩그렇게 생겨난 주차장이지만 향수를 불러오기에는 충분한 사연이 있는 곳이다. 초입인 견훤산성은 초등학교 시절에 사적지 탐방과 풀씨 채취하려 올라가 본 곳으로 애수가 더욱 서려 있었던 곳이나 지금은 3김의 1인의 덕분으로 신도비와 성곽도 말끔이 보수를 하여 보기에는 좋았고 오르는 길도 보수를 하며 산책로 정도로 정비하여 놓았으며 안내문도 세워 놓았다. 견훤산성에서 서북쪽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은 걷기 좋은 숲길이지만 가끔 나타나는 Y자 삼거리 길에서 우측 길로 가야만 한다. 백두대간과 만나는 삼거리 묘지 이후부터 문장대 까지는 길은 훤하지만 문장대가 가까워지자 시작되는 암릉길은 솔솔한 재미라기보다 상당히 조심을 해야 되었지만 왼쪽으로 산수유 능선을 건너다보면서 산행하는 즐거움이었다. 문장대는 언제나 또 많이 올라보아도 새로운 기분이며 청법대에서 산수유 능선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쏟아지기 비 때문에 능선중간에서 계곡으로 탈출을 하는 바람에 아쉬움을 남긴 산행이었지만 다음을 기약하여야 했던 산행이었다.    


새로 보수 견훤산성 동쪽면

견훤산성(甄萱山城 502m(gps측정 높이) 

[개요 및 소개] 1984년 12월 1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길이 650m 면적 35,703㎡인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42번지에 있는 견훤산성은  상주 화북면 시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괴산 보은으로 난 49번 지방도로를 따라 1.1㎞ 가면 장암교를 건너 장암1리 장바위 마을에 닿는다. 장바위 마을에서 속리산 시어동 계곡으로 난 왼쪽 길을 따라 약 5백m가면 오른쪽에 견훤산성으로 오르는 산길이 나 있다. 산성까지는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린다.  산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한 테뫼식 산성으로, 견훤이 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삼국시대의 산성이며, 충청북도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과 축성방법이 비슷하다. 넓은 분지에 자리한 우뚝한 봉우리 주위에 석축을 쌓아 성곽을 만들었는데,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았다고 해서 견훤산성이라 부르지만 기록에 의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훤산성이라는 이름엔 견훤이 이 고장 출신, 곧 가은 사람이라는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가은의 현재 행정 구역은 문경에 속하지만 당시엔 상주 가은현(加恩縣) 이었다.  이 고장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견훤은 이곳에 성을 쌓고 세력이 강성해져 근거지를 전주로 옮겼다고 한다. 성벽은 안팎을 할석(割石)으로 쌓은 내외협축(內外夾築)이고, 길이 약 650m, 면적 35,702㎡이다. 계곡을 이룬 곳은 높이 쌓아 성벽의 높이가 15m 이상이며 자연암석 위에 쌓은 지점은 4~5m로,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너비는 4~6m인데, 완전한 벽면이 6m인 것으로 미루어 당초에는 6m 내외로 축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을 고르게 쌓아 올려 벽면 안팎이 평평하다. 성벽의 네 모퉁이는 천연암석에 의지하여 쌓았으며, 동쪽과 서쪽의 남북 끝 부분에 둘레 33m, 너비 5m, 높이 9~10m로 말굽형의 돌출된 망대(望臺)를 설치하였다. 현재 동쪽의 두 곳은 원형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서쪽의 두 곳은 파손되었으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지금의 문경시 가은읍(加恩邑) 출신인 까닭에 상주지역의 옛 성들과 자주 연관되어 언급되는데, 현지에서는 견훤이 이곳에 웅거하며 북쪽 지방에서 경주로 향하는 공납물을 모두 거두어들였다고 구전된다. 상주에서 속리산을 가로질러 보은. 괴산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49번 지방도로는 본래 삼국시대 때부터 신라가 북으로 오르내리는 통로였으니 견훤 산성이 그 길목을 지키는 요지로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 미루어 짐작 할만하다.  화서면 하송리(下松里)에 있는 대궐터에서 청계사 계곡까지 연결되는 성산산성(城山山城)을 합쳐서 견훤성이라고도 하는데, 하송리 대궐터는 견훤이 처음 축조한성지로 전해지며 지금은 극락정사라는 절이 있다.


보라 문장대의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을...

문장대(文藏臺 1,054m)

[개요 및 소개]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있는 문장대는 높이 1,054m이다. 큰 암석이 하늘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한다. 비로봉(毘盧峰)·관음봉(觀音峰)·천황봉(天皇峰)과 함께 속리산(俗離山)에 딸린 고봉이다. 산마루에는 약 5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암반이 있으며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쇠다리가 놓여 있어 오르내리기에 안전하며, 북쪽 절벽 사이에 있는 감로천(甘露泉)이 유명하다. 1970년 3월 속리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국립공원) 

또한 문장대는 해발1,054m에 위치한 석대이며 세조대왕과 문무시종이 이곳 문장대에서 시를 읊었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으로 이거대한 암봉이 구름속에 묻혀있다 하여 운장대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문장대를 세 번 다녀와야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생길만큼 신선의 땅인 듯 신비로운 곳이다. 이곳 문장대에서는 속리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관음봉, 칠성봉, 시루봉, 투구봉, 문수봉, 비로봉등 높고 낮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가을 단풍의 진경을 보려면 상주시 화북면 쪽에서 문장대로 오르는 계곡의 산행을 빼 놓을 수 없다.(상주시)


시어동에서 촬영한 산수유능선(좌측 끝부분이 청법대로 연결)(하늘보리님 사진) 

산수유 능선(리지)(속칭 할미봉 = 능선 끝에서 2번째 봉우리)

속리산 문장대를 오르려고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도착하여 서쪽 속리산 능선을 처다 본다면 중앙에 청법대와 신선대 사이에 북동쪽으로 뻗은 줄기의 5~6개의 아름다운 암봉이 산수유 능선이다. 시어동에서는 더욱 크고 아름답게 보인다. 워킹을 주로하는 일반 산행인에게는 바라만 볼뿐 가볼 엄두도 못하고 암벽전문가들의 전문 암장으로 ‘산수유리지(11마디)’와 ‘우연일치리지(7마디)’라고 나뉘어 불려지는 곳으로 충북 청주시와 경상북도 산악인들이 1994~5년에 개척한 암벽코스다. 개발도중에 김선주라는 분이 40m직벽에서 추락하여 사망하여 선주벽이고 이름이 붙고 추모동판도 있다고 한다. 산수유리지 암벽을 좌로, 우로 돌아가는 산행길이 있다고 하여 이번에 밟아보기로 한 것이다.

 

찾아간 길:성서나들목-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상주나들목-25번국도를 따라 보은쪽으로 - 상곡삼거리(지명골) 우회전하여 977번지방도 따라 송계삼거리까지 간 후 다시 49번지방도를 따라 가다 화북면소재지를 지나-장암교에서 좌회전-동네 끝에서 200m지점 독립가옥 앞에서 하차

 

산행에 앞서  

04 : 40~09 : 09 즐거운 산행준비와 달리 출발하면서 내리던 비가 상주를 지나자 그치고 개인다.

새벽에 일어나니 잔득 흐린 날씨가 걱정이 되더니 오늘은 메아리님이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여 법원에서 승차하여 인원점검을 하기로 하고 법원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나니 약간씩 빗방울이 떨더니 차가 출발하자 굵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풍국주유소와 유니온호텔 앞에서 늘 상 여러모로 산악회를 위해 헌신노력하시는 옥이이모를 승차시키고 오스카극장을 거쳐 서구청에 도착, 총무님등 여러분이 승차를 하고 (06: 27)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광장코아에서는 오늘 초등학교 5년생 남자아이(차득한 군 대청초교)가 어머니와 함께 동승하여 여러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다. 시내 마지막 경유지인 홈플러스에서 출발하자 회장님도 개인적인 볼일로 불참하시고 김재만 고문님도 급한 일로 서울을 가야 한다면서 홈플러스까지 나와서 배웅을 한다. 예약인원은 48명이었는데 취소가 생기다 보니 만차가 아닌 43명으로 대구를 출발을 한다.(06:58) 성서나들목으로 접어들어 서대구요금소를 지나면서 회장님 대신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경부고속도로로 열심히 달리던 버스가 구미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들어서서 잠시를 달린 후 선산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한다.(07:41~08:12) 비는 서서히 그치고 식사 후에 출발하여 상주나들목을 나가자마자 우회전 하여 상주시시가지 우회도로를 거쳐서(08:24) 직진하여 보은 이정표를 보고  25번국도를 따라 가며 밤원휴게소를 지나서 나오는 지명골(상곡)삼거리에서 ‘문장대’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08:48) 977번지방도를 달리다가 송계삼거리에서 직진하여 49번지방도를 달려가 예전 한국전쟁(6.25전쟁)때 격전지였고 백두대간 형제봉 접근로인 갈령재를 넘어서서(09:00)5분정도 달려 화북면 소재지를 지나 장암교에서  문장대 안내판을 보고 좌회전하여 동네를 지나 올라가 동네 끝머리에서 200m정도 가다 우측에 있는 독립가옥 앞에서 차를 멈추고 하차를 하고나니 구름사이로 햇빛이 살짝 내민다.  


하차지점인 독립가옥(집 뒤에 신도비가 있고 멀리 견훤산성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09:09~14 하차 산행준비(독립가옥,신도비) 길가에 주차‘36°34.13N 127°54.14E 고 352m'=WGS-84

하차를 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도로 우측에 독립가옥이 한 채 있고 집 뒤에는 커다란 거북등위에 검은 대리석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가옥 우측 작은 봇도랑 우측에는 빛바랜 이정표하나가 서있다. 

 

산행을 하면서

산행은 독립가옥 우측에 있는 둑길로 시작

 


이 신도비 우측에 올라가는 길이 있다.

09 : 14  산행시작(독립가옥) 독립가옥과 신도비 좌측을 따라 오르막을 서서히 올라간다.

몇 년 전부터 이곳에 독립가옥이 생겼는데 용도는 모르지만 조용하기만 한데 산행준비로 바쁘다. 시간을 체크하고 산행출발지 주변을 살피면서 배낭을 메고 이정표를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견훤산성 0.7km'라는 글씨가 퇴색 되어 이정표의 구실을 못하는 것 같다. 독립가옥 우측에 있는 풀이 수북이 난 길을 따라 들어가자 ’Y'자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들어서서 좌측에 서있는 비석을 둘러보니 고려삼중대광김령군김해김공신도비(高麗三重大匡金寧君金海金公神道碑)(견훤산성 속의 묘를 뜻하는 듯함(후손이 JP라고 하지만 확인은 못한 사실임)와 함께 뒤에는 행적들을 적은 글들이 써져 있지만 읽어보지 못하고(09:15~18) 시간에 쫓겨 일행들을 따라 오르막길을 5분정도 올라가자 상석과 비석까지 서있는 묘지(광주노씨 묘)좌측으로 지나치자 좌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갈림길을 지나가자(09:27) 또 전후로 2기의 묘가 있으며 그 뒤에 독립가옥에서 우측 골짜기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지는 곳을 만나 직진(09:31) 다시 길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합친 후 오르막을 올라서자 우측에 산성 안내판이 있고 산성으로 올라설 수 있다. 

산성에 올라서자 북쪽으로 성을 따라 가야 한다.

 


성안에 있는 묘(이묘 우측으로 진행하면 된다.) 카메라 이상으로 사진이 적화현상

09 : 48~52 견훤산성통과 산성위에 올라 북쪽으로 가다 묘를 만나면 숲 속으로 진행 서북으로 진행

(36°34.32N 127°53.59E 고 502m)좌측은 예전에 쌓은 성벽이 남아있고 우측은 새로 보수하여 말끔한 성위를 올라 좌우를 살펴보니 초등학교시절 풀씨도 채취하고 토끼몰이도 하던 생각이 뇌리 속에 스친다. 그때는 마구 뛰는게 왜 그리 좋던지! 성벽위를 걸어서 북쪽으로 따라가다 성 안쪽으로 들어가 묘 앞을 지나쳐서 숲 속으로 돌아가자 오늘 나와 함께 앉아 왔던 박은?씨가 앉아 있다. 어제 다친 발목이 불편하여 도저히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할 것 같다며 하산하여 산행종료지점인 시어동으로 가겠으니 염려하지 말고 올라가란다. 할 수없이 버스 있는 곳에 도착하면 전화나 한번 해 달라고 당부하고 나무계단을 올라서서 성 서쪽에 도착하여 공터 있는 곳에서 서북쪽으로 산성을 넘어(09:52) 내려간다.(노란 표시기가 달려 있고 성벽에 화살표 있음) 잠시 내리막길을 가던 길은 이내 편안한 능선길로 이어 지면서 적당히 우거진 숲 속을 걸을 때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더욱 고향의 향수를 불러온다. 나지막한 안부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10:10~12) 산 좌사면을 돌아 올라서 넘어가자 능선 좌측 10m 아래에 묘1기 뒤를 지나서 다시 산좌사면을 따라 가자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 같아 능선으로 올라서보니 아니나 다를까 Y자 갈림길이 있다.


갈림길 나무에 달려 있는 노란색 표시기(시그널)

10 : 19~20 갈림길주의 좌측에 묘 있는 곳을 지나면서 좌측능선길이 아니 우측능선으로 내려갈 것

길이 양쪽 모두 희미하기는 같은데 좌측능선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 같아 우측길을 들어서자 나무에  노란 표시기가 달려 있는 곳은 지나가자 다시 Y자 삼거리 길에서 우측으로 진행(10:23)하여 약간 내리막을 내려갔다가 힘들여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 묘1기를 지나(10:30) 올라가자 능선삼거리위에 묘1기가 있는 곳에서 모두들 모여 쉬고 있다. 

백두대간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있는 묘

 


묘에서 서남쪽 문장대로 가는 길목(너무 많이 다녔나?) 묘에서 촬영(카메라 이상)

10 : 38~44 백두대간 만남 밤티재서 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묘1기 '36°34.50N 127°52.56E,고 593m'

북쪽에는 밤티재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는 묘는 허술하기는 하지만 전망은 그런대로 좋다. 여기까지는 서쪽으로 왔지만 지금부터는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행한다. 길은 대간길이라 훤히 잘 나 있고 곳곳에 흔적을 남긴 표시기들이 본인들의 이름을 휘날리고 있다. 약간 오르막을 올라서서 산좌사면을 돌아가다 커다란 바위(옛날에는 호랑이굴이라 했음)앞을 지나(10:49) 능선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거리면서 가끔 바위위에 표시되어 있는 붉은색 화살표를 따라 큰가마골 위쪽 사태난 곳을 지나고 V자 홈통 길을 내려갔다 바위틈새길을 올라서자 소나무 숲 속에 별난 바위 전망대에 올라간다.

전망바위에서 보이는 견훤산성과 장바위마을이 훤히보인다. 

 


전망바위 함께 있는 도구통바위(이 바위 우측에 전망대가 있다.) 지나와서 촬영

11 : 13~16 전망바위 능선길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다가 홈통 길을 내려가자 기분 좋은 전망바위

멀리서 보면 도구통(절구통) 같은 바위지만 그 바위 앞에 10여명이 앉을 정도의 넓은 바위가 상석처럼 바쳐져 있어 여기에 올라 뒤돌아보니 우리가 온 능선이 한눈에 보이고 하산장소인 시어동에 주차장과 그 너머로 보이는 속리산 동릉의 끝머리 사모봉이 웅크리고 앉아 있고 우측에는 하산코스인 산수유 능선이 허연 암벽이빨을 들어내고 있다.  가야할 문장대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능선길 곳곳에 암봉이 수월하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물을 마시고 내려와 내리막길이 잠시 이어진 안부에 좌측에 희미한 길이 있지만(11:20) 그냥 지나쳐서 올라가다 생각하니 문장대골 칠성각에서 올라오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되돌아가 보기에는 너무 지나쳤다. 능선 좌사면으로 길이 이어지더니 우리 팀들이 쉬고 있는 곳에서 냉수박 조각을 얻어먹으니 이보다 시원할 수가...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여럿이 웅성대는 이유인즉 암벽에 줄이 있는 구간이라 정체가 된 것이다. 


첫 번째 밧줄구간으로 바위사이에 매달린 줄

 

세번째 줄

11 : 48~54 첫 밧줄구간 양쪽 바위사이 줄을 잡고 올라 능선길을 가자 줄이 두 세군데 더 나온다.

크고 높다란 암벽이 우측능선으로 가로막고 있는 중간에 바위사이에 4~5m정도의 로프가 달려 있어 잡고서 유격훈련을 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앞이 상당히 밀려 있으므로 나는 우측 암벽밑으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하다가 거의 다 올라간 후 뒤따라 줄을 잡고 바위틈을 올라서서 서서히 오르막을 올라가 두 차례 더 가는 줄을 잡고 오르면서 길은 Y자로 양갈래 길에 좌측길(우측길은 봉우리 우측능선 우회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자 어마어마한 바위들이 전시된 두 번째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전망바위 좌측면의 층층이 얹쳐진 바위

 


좌측이 절벽인 두 번째 전망바위와 이끼가 있는 바위

12 : 06~09 두 번째 전망바위 줄을 세 번이나 잡고 오르자 좌측이 절벽인 이끼 낀 전망바위

동서로 길 다란 바위가 좌측은 절벽이요 우측은 비스듬하여 올라서서 주위를 조망할 수 있게끔 되어 있고 서쪽에는 수 십 톤이 넘는 바위덩어리들이 엉기고 성겨 있으며 위부분에는 이끼가 만년의 세월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위치가 문장대골의 위치로는 쉴바위를 약간 지나 곳인 듯 좌측으로 건너편에는 산수유능선의 끝자락인 할미봉이 너무나도 크게 보이고 그 위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암벽훈력을 하는 사람들이 눈길을 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진촬영을 하고는 우측으로 돌아가 암릉을 올라서서 돌아가자 이번에는 또 한번 줄을 잡고 쩔쩔매고 있다.

연속되는 암릉(이바위 넘어에 아래 틈새바위가 있다.)

 


고래의 입인가? 틈새로 내려가야 하는 바위와 줄(까다롭지는 않다.)

12:20 틈새바위 암릉을 올라 돌아가니 틈새바위를 내려가야 한다!‘36°34.20N 127°52.08E,고 904m'

암릉을 올라서니 이곳역시 전망은 일품이지만 암릉위를 따라 옆으로 돌아가니 6~70°정도의 경사진 바위에 줄이 매여진 곳을 내려가는 곳에 그 위에 바위가 하나 더 튀어나와 덮혀서 그 틈새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배낭이 걸리기도 하고 발 디딤도 마땅치 않아 먼저 내려간 사람이 잡아주기도 하여 힘들여 내려가는 틈새바위를 통과하여 다시 줄을 잡고 바위틈을 올라가다(12:24) 우측에 붉은 화살표를 따라 넘어가야 하는데 일부 앞서 간 사람들은 왼쪽으로 올라 간 것 같다.(절대로 좌측으로 가면 않된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넘어서지만 이번에는 길은 없어지고 바위들만 엉겨있는 곳이다. 

이 바위의 화살표를 따라 우측 바위틈새로 넘어 갈것(절대 좌측으로 갈지말것)

 


정말 이 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할단 말인가 ?

12 : 27 개구멍바위 밧줄을 올라서서 붉은 화살표를 따라 우측으로 넘어서니 얽혀 있는 바위틈새!

화살표가 가르치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영켜 있는 바위틈새에 작은 사람하나 겨우 빠져나갈만한 구명이 있는데 뚱뚱한 몸으로 힘겹게 빠져나가 옆으로 돌아가다 조금 전 왼쪽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되돌아온다. 모두가 오기를 기다렸다가(12:30~34) 뒤따라 큰 바위사이를 통과한 후 밧줄을 잡고 깊은 곳으로 내려서자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며 순서를 기다리는 깊고 험한 곳에 도착한다. 

이곳을 빠져 나와야 큰 암릉이 시작된다.(뒤돌아 보고 촬영)

 


사람들이 웅성대는 암릉속을을 지나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위의 사진 끝머리 좌측으로 올라가는 밧줄

12:48~13:04 큰암릉구간 위험구간으로 한사람씩 오르내려서 정체가 심함‘36°34.16N 127°52.07E,고 909m’

한사람 올라가고 한사람 내려오고 하는 곳이라 정체현상이 심하다. 바위틈새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면서 아예 배낭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휴식을 한다. 15분정도 기다리자 내려오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거의 마무리되어 나도 오른쪽 바위 밑으로 엎드려 빠져나가서 다시 왼쪽위로 10m정도의 줄을 잡고 힘들여 올라가서 커다란 바위를 돌아 올라가니 모두들 바위위에 모여서 점심식사를 서두른다. 

속리산 서북능선의 아름다움

13 : 09~36  암봉위서 점심식사 바위위서 후미 팀끼리 모여 무침회가 곁들인 점심식사를 맛있게...

1시 방향으로 문장대가 솟아있고 2시 방향으로는 속리산 서북릉인 관음봉의 연봉인 암봉들이 멋들어지게 보이는 바위위에서 시장기를 해결하는 점심식사를 한다. 모두들 한꺼번에 풀어 놓으니 진수성찬이다. 물김치는 기본이고 무침회까지 준비한 분이 있으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단번에 허기를 해결하고 누가 전해 주었는지도 모르지만 수박으로 후식까지 마치고는 일어서서 길을 재촉하여 내리막으로 들어서자 한바탕 줄을 잡고 내리막을 내려갔다 Y자 삼거리길에서 좌측길로 능선길을 올라가니 바위틈을 올라서서 넘어서자마자 또 다시 비대한 몸집이 원망스럽다.

이 바위길을 올라가 넘어가자 아래의 틈새바위가 있다.

 


위가 뚫렸으니 통천문, 이 틈새를 겨우 빠져나가는 본인의 뒷모습

13 : 50 통천문통과 줄잡고 내려가 틈새바위을 힘들게 오르자 다시 개구멍바위를 통과해야 한다.

양쪽 봉우리사이에 있는 암릉지대에 또 하나의 통천문(개구멍바위)가 있으니 얼마나 좁은지 배낭을 메고 겨우 빠져내갈 수가 있었다. 빠져나가자 또 나무가로 걸쳐놓은 곳도 내려가기가 수월치는 않았다. 어렵사리 내려가자 ‘ㅏ’자 갈림에 도착한다.

 

14 : 00 갈림길삼거리 오른쪽에 밤티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지만 직진한자 앞엔 헬기장이  

오른쪽 길은 밤티에서 올라오는 길인 듯 한 길을 지나쳐 직진하여 올라가니 작은 봉우리 우측에서 코스모스님과 김진희님이 식사를 마치고 길 쪽으로 나오면서 주위의 경치에 재삼 경탄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견훤산성에서 하산한 박은?씨로부터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지속되는 산죽밭길을 함께 잠시 걸어가자 앞이 훤해 지면서 헬기장에 도착한다.


문장대 바로 밑에 있는 헬기장

14 : 02 헬기장 산죽밭은 끝나고 문장대 바로 아래 있으며 휴게소의 일용품 수송용으로 쓰인다. 

문장대가 2시 방향으로 바로 쳐다보이는데 문장대에 오르지 않을 사람은 10시 방향에 있는 좌측길로 바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문장대로 직행하기로 하고 나는 혹시나 하여 선두에서 올라가니 통신대 변전소 있는 곳에서 휴게소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진다.(14:05) 우측으로 올라가니 넓은 공터에 문장대 안내판과 상징석이 서 있는 앞으로 지나가(14:06) 철계단을 3번 바꾸어 오르자 문장대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문장대를 오르는 철계단

 


점심식사를 한 바위에서 바라본 문장대 정상모습 

 

여러개의 홈들이 파여 있는 문장대 정상바닥과 둘러친 보호철망

14 : 10~20 문장대정상(1,054m) 기막힌 전망은 동서남북이 무한대지만 스모그 현상 때문에 ! ‘36°34.03N 127°51.44E,고 1,056m' 의 문장대 정상에 서니 그전에도 무한히 많이 올랐던 문장대정상인건만 오늘따라 감회가 새로운 것은 세월의 무상함 이련가? 어릴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여기에 올라왔었고 중년에는 상쾌한 기분에 올라왔고 지금은 세파에 시달린 마음이 다소나마 덜해지나 싶어 올랐건만 시원한 바람만 불어올 뿐 역시 세상을 훤하게 바라보며 살아갈 방법은 묘연하다. 둘러쳐진 보호철망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보고 북쪽에 서서 바라보니 발아래 관음봉에서 서쪽으로 묘봉,상학봉,미남봉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의 마지막자락이 용트림하고 그 넘어로 다음 산행때 찾아갈 낙영산,도명산의 능선이 운무 속에 아련히 나열해 있으며 동북쪽으로는 우리가 올라온 길로 이어진 백두대간이 밤티재와 경미산으로 이어지고 늘재에 낮추었다가 청화산으로 솟아난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남쪽으로는 속리산 주능선의 환상적인 암봉 줄기 문수봉,청법대,신선대,입석대,비로봉,천황봉이 산행의 피로를 일시에 잊어버릴 듯 하다. 혼자서 신선이 된 듯 세속을 떠난다는 뜻의 속리산을 실감하면서 일행들의 재촉에 서둘러 내려와 휴게소로 내려와 사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휴게소 앞 사거리에서 진행방향을 바라다 본 모습과 이정표

14:32 사거리갈림길 휴게소 앞 사거리. 두 팀으로 나누어 하산.‘36°33.56N 127°51.46E,고 980m'

←화북 3.3k/천왕봉 3.4k↑/법주사5.8k→/문장대 0.1k↓'표지목이 있고 올라가 놀기가 좋은 넓은 반석이 있는 낮은 봉우리가 있는 사거길이다. 여기서 여태껏 함께 오든 일행들이 두 팀으로 갈라져서 한 팀은 전천호 부등반대장이 인솔하고 문장대골로 바로 하산하기로 하고 한 팀은 계획대로 산행을 계속하기로 하고 서둘러 출발하는 데 아무래도  날씨가 잔뜩 찌푸린 것이 곧 소나기라도 한줄기 올 것 같아 신선대쪽인 남쪽으로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무명봉을 넘어서고(14:40) 문수봉을 지나서(14:43) 계단을 내려서는데 선두 이미 산수유 능선 초입을 찾았다고 한다. 오르막계단을 올랐다가 청법대 우측으로 내려서다 좌측에 나무로 가이드를 세워놓은 안쪽에 붉은 글씨로 초입을 알리는 곳에 내려선다. 

문수봉인가 첨법대인가 아리송 ?

 


청법대 앞을 내려가다 있는 산수유능선 초입

14 : 45~46 산수유능선초입 청법대 앞을 내려가다 좌측 통나무 가이드목책 안 산길로 올라선다. 

좌측으로 들어서자 왼쪽 바위에 붉은 글씨로 ‘산수유’란 글씨가 써 있는 것은 보아 초입이 틀림없다. 서둘러 바위 우측으로 올라서서 희미한 길을 따라가며 봉우리위 Y자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진행하여(14:46) 약간 내리막으로 이어지는데 비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 급기야는 소나기로 변한다. 비옷으로 갈아입고 낙엽이 쌓인 길을 진행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고 돌아왔을까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려서 더 이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 능선을 폭우 속에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일행들과 상의한 결과 우측계곡으로 탈출하기로 하고 삼거리 길에서 우측 길로 내려섰다.      

 

15 : 18 능선삼거리 퍼붓는 폭우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 계곡으로 탈출 하산시작 

선두에 간 몇몇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앞쪽 암벽에서 하강훈련을 하는 남여팀들의 구령소리만 들릴 뿐 불러도 대답이 없다. 5분 이상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할 수없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길로 되돌아 와서 앞서 내려갔는데 본대에 알리지 않고 먼저 가는 바람에 후미에서 이렇게 찾아야 한다는 걸 좀 알아주었으면 한다. 골짜기 아래로 계속되던 길이 우측으로 오르막을 올라가더니 앞서 간 일행들이 웅성우성 대고 있다.  


쏟아지는 폭우속에 올랐다가 내려가야 하는 암봉에 매인 줄

 

줄잡고 오르면 우측에 있는 암벽

15 : 38~45 암봉통과 내려가던 길이 우측으로 돌아가 줄잡고 올라 암봉을 넘어 다시 줄잡고 내려감

알고 보니 바위사이의 매여진 줄이 짧아 올라가기에 애를 먹는단다. 더구나 쏟아지는 비로 줄도 미끄러우니 더욱 그렇다. 위에서 당기고 밑에서 밀면서 암봉에 올라서자 주변의 경치는 상당히 좋지만 흘러내리는 빗물에 감상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또 바위사이에 줄을 잡고 내리는 길이 수월치 않다. 발 디딤이 마땅하지 않아 조심조심 내려가서 내리막길을 20여분 내려가니 계곡물이 흐르면서 우측에 시멘트로 보를 막아놓은 곳이 나온다.

 

16 : 15~16 상수도시멘트보  철조망이 쳐진 시멘트 보를 건너가자 신선대 길과 합쳐진다.  

출입을 금지시키는 철조망을 둘러쳐 있는 것을 보아 성불사의 상수도수원지 보가 틀림없다 보뚝을 건너서자 오른쪽 골자기 신선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쳐서 좌측으로 내려가기 시작 길은 상당히 넓어지고 평탄한 길로 이어지더니 곧 성불사 뒤쪽에 도착 왼쪽 개울 쪽으로 돌아서 축대 틈으로 올라서니 성불사 앞에 도착한다.


새로 단장한 성불사 전경(박하님 사진)

16 : 24~25 성불사 예전모습은 없고 모두 헐었다가 다시 지은 건물 뿐 이군! 큰 조형물도 있고

성불사는 예전 모습은 간곳이 없고 모든 건물을 다시 건축하였다. 마당에 큰 조형물도 예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새웠고 마당 앞 우측 개울 쪽에 있던 분수대도 흔적이 없다. 혹시 문장선원이란 근거를 찾아보지만 찾지 못하고 길을 따라 내려가 다리를 건너자 산수유능선에서 내려오는 길을 확인하고 시멘트포장도로를 걸어서 내려가면서 좌측에 있는 묘 옆을 지나자 나오는 오송폭포 입구에서 박하님과 함께 폭포에 들어간다. 60m만 들어가면 되니까...

폭우 속에 찍은 오송폭포의 모습(사진이 너무 어둡다)

16 : 33 오송폭포 비속에도 폭포를 구경하고 나와 문장길과 합치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수량이 그리 많지 않아 절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향수가 어린 폭포다. 한바퀴 돌아보고

나와 조금 내려가자 문장대골 길과 합치는 지점에 매점이 그 대로다. 우측으로 시멘트 다리를 건너 화장실 앞을 지나서 시멘트다리(오송교)를 하나 더 건너 2분정도 걷자 시어동에 유일한 예전 한동네 사람이었던 김석준씨(민박.꿩요리.토종닭)댁에 잠시 들여 인사만 하고 젖은 옷이라 빨리 주차장에 도착한다.

 

16 : 42 시어동주차장(산행종료) 산옛날 우리 집자리 주차장에 도착. 상전벽해의 무상함을 느낀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리는데 걱정하였던 사람들은 먼저 무사히 하산을 한 것을 보고 안심이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출발을 서두르니 비는 점점 그 치고 차는 화북을 빠져 나간다. 오늘 상당히 험난한 코스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쏟아지는 잠을 청해본다. 잘 있거라 고향산천아! 다시보자 낙동강 상류의 맑은 물아!  산행 후에 피곤이 몰려오는 것은 꿈속에 다시 산행을 하라는 뜻일까? 

 

산행을 돌아보며

(1) 견훤산성으로 이어진 호젓한 길은 사적지 탐방과 산행이 한 거번에 이룰 수 있어 좋았다.

(2)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산행한 초등학교 5년생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3) 위험한 암벽 산행임에도 모두의 도움으로 한 분도 낙오도 없이 산행을 마쳐서 정말 고맙습니다.   

 

  - 끝 -

 

  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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