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6년1월30일

산행지;속리산

인원:00명

산행코스:상오리(금란정)-7층석탑-천황봉-비로봉-입석대-신선대-문수봉-문장대-복천암-세심정-법주사-주차장

산행거리;20km內外

산행시간:선두-4시간

             후미-7시간

 

 

 

 

국립공원 제 6호이기도 하고 백두대간길 봉황산과 대야산을 연결 시켜주는 俗離山은 말그대로 속세를 떠나있는 山이다.

개인적으로도 數없이 올랐던 속리산은  상오리를 기점으로 오르는건 사실 처음이다.

어느 산이건 들머리나 날머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같은 산이건만 산행의 묘미를 달리할수 있다.

개인적으로 人生을 살며 정말 지금같이 괴롭고 힘든 시기는 없었다.

산을 사랑하며 수없이 많은 산을 올랐건만 ...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산에서 만난 사람으로 인해 욕심도 없는 내가 괴로워 하다니 앞으로 어떻게 人間을 믿고 살아야 할까가 사실 두렵다.

고유의 명절이니 민속 최고의 명절이니 하는 데도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를 만나러 가지도 못하고 心身이 괴롭고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오늘 산행을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청량산을 다녀온후 버스를 타기 위해 구청으로 나갔다.

어제가 설날인데 오늘 산행들을 한답시고 나왔으니 얼마나 山을 그리워하는 산꾼들인가 말이다.

남들이 볼때는 미치지(狂) 않으면 하지 못하는 행동들인 것이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아침식사를 위해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沃山휴게소에 다다렀다.

새벽일찍부터 귀경을 서두르는 상행선과는 다르게 한가하게 휴게소에 도착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다.

사실 몸도 안 좋고 기분도 山行할 마음은 아닌데도 회장님의 부탁을 받고 나왔는데 몇분의 산행대장님들이 있어 맘편히 산을 오르려 했으나 굳이 또 나에게 선두대장을 맡긴다.

몸이 안 좋아 몇번을 사양하다 결국 선두대장으로 오늘 들머리를 출발한다.

들머리 시작이 9시40분이니 빠른 사람은 천황봉에 약 1시간 30분이면 오를수 있다고 얘기 하고 출발하는데 곧 잘 몇분이 따라 오신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오늘도 결국은 나홀로 천황봉을 찍고 돌아서며 중간과 후미대장에게 알려주고 비로봉쪽으로 향한다.

아랫쪽은 눈도 없고 한데 정상 못미쳐부터는 눈과 얼음으로 길이 많이 미끄럽다.

높이가 100m 날때마다 온도는 0.6도의 차이를 나타낸다.

해발 1058m의 천황봉을 기준으로 들머리를 500m라고 볼때 若3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추위로 인해 똑 같이 내린 눈도 잘 녹지 않아 산 정상쪽엔 아직 눈이 있는 것이다.

 

 

 

천황봉 정상석엔 三派水라고 적혀 있다.

낙동강,금강,남한강의 물줄기가 이곳 천황봉을 기점으로 갈라지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회원들께 설명을 일찍 했어야 하는데 다른 대장이 산행설명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산행을 마친후 오늘 산행에 대해 설명해 주기로 하고 해 줬다.

비로봉 가기 바로전에 좌측으로 탈출로를 만들어 주고 비로봉을 지나 임경업 장군이 7년간 수도하며 올려 세웠다는 설립(立)자 돌석(石)자 입석대를 거쳐 신선이 노닐던 신선대에서 우리나라 토종개인 白狗(백구)를 만나려 했으나 주인장이 설을 세러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이곳을 지날때 마다 만났던 우리나라에서 제일 환경이 좋은곳에서 사는 개인듯한데 말이다.

지날때마다 으르렁대며 무언가를 사 먹고 가란듯 말을 하는것 같았다.

아쉽지만 만나지 못하고 도착한 문장대엔 시어동(화북쪽 방면)과 법주사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꽤나 보였다.

 

 

 

文藏臺는 예전엔 구름운(雲)자를 써서 항상 구름에 가려있다라는 뜻으로 雲藏臺로 불리웠던 곳이다.

세조임금께서 피부병을 치료하기위해 들린곳이 洗心停근처에 있는 복천암인것이다.

세조께서 운장대에 올라 詩와 글을 읽으시며 다른표현으로 글월문(文)字를 써서 지금의 文藏臺로 불리워 진것이고 이승에서 세번을 오르면 死後에 極樂世界를 갈수 있다하여 더욱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문장대에서 관음봉과 두루봉,묘봉,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도 겨울 산행의 묘미를 더해주는 코스이다.

엄밀히 따지면 휴식년제로 인해 지금은 갈수가 없지만 말이다.

문장대에서 잠시 휴식하고 철계단을 내려오는데 좌측벼랑쪽으로 무언가 떨어져 있는데도 위험해서 찾지들 못하고 있어 힘들게 내려가 보니 數없이 많은 물병들과 카메라 케이스며 스틱등등 엄첨나게 많았다.

똑같은 스틱을 두개 주워 깨끗하게 닦고 내려오는데 법주사쪽에서 오르는 한 할머니가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로 삼아 의지하며 오르는 모습이 안쓰러워 스틱한개를 드리니 엄청히 좋아 하신다.

얼마전 이것을 꼭 사려고 했는데 못 샀다며 즐거워 하시고 고마워 하시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매우 좋았다.

또 다른 한개는 차에 와서 꼭 필요할거 같은 아주머니에게 선물했더니 너무나 좋아 하신다.

정철스님이 내가 가진것을 하나 하나 남에게 줌으로써 행복을 느낀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기분좋게 룰루랄라하며 복천암부근에 있는 이뭣꼬다리를 지나 마음을 씻는다는 洗心停를 거쳐 한참만에 법주사 입구에서 100尺(若30m)의 높이와 80kg의 금으로 덮여있는 금동미륵대불께 관세음보살하며 힘든 나의 생활을 극복케 해달라 빌며 옛길인 5리(2km) 숲길을 지나 나의 알탕지대로 갔으나 겨울 가뭄으로 물이 말라 목욕을 못하고 아는 식당에 들러 찬물로 샤워를 하는데 겨울계곡물보다 더 차갑다.

오늘 모든 산행을 마치고 출발하며 회원님들께  산행 뒷얘기와 못다한 산행 안내를 하며 正2品松에 들러 세조께서 이곳을 행차하는데 저 큰 소나무가 임금께서 타고계신 輦에 걸릴듯 하니 소나무 가지가 하늘로 향하는 모습에 감탄하시여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벼슬을 주어 결국은 소나무송(松)字를써서 正2品松이라 했고 세조께서는 평생을 아마도 피부병으로 고생하신거 같다.

얼마전 다녀온 금강산 溫井리 온천에도 피부병을 앓으신 세조가 다녀가신걸로 봐서는 예전에는  피부병이 아주 많았나 보다.

온정리 온천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아들이신 마의태자께서도 다녀간 기록이 있는거로 봐서는 지금의 醫術이 있었다면 병도 아닐지언데말이다. 

지금같이 모든것이 발달한 세상에 함께 산다는게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오늘 함께 한 모든 산님들이여!

그리고 이글을 읽는 모든이들에게 고하노니 인간을 이용하지 말고 제발 믿음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수 있도록 협력하며 도우며 살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다음산행때는 즐山,安山할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ko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