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화봉의 아침]

  

  

  

연화봉에 오른 시각은 아침 6시 10분.

  

일요일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연화봉 철쭉과 백두대간 북쪽으로 펼쳐진 구름바다.

희방사 아래 주차장에서 택시에서 내려 헤드랜턴을 밝혀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4

시 반이었으므로 이곳까지 한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곱디 곱다. 소백철쭉이야 하얀색에 가까우리만큼 연분홍빛을 띈 것들이 대종을

이루지만 간혹 이렇게 홍조 짙은 철쭉이 군데군데 있다. 촉촉한 아침 공기에 연

록의 봄이 더욱 싱그럽다.

  

  

  

  

연화봉은 해발 1383 미터. 살을 에는 칼바람과 혹한의 눈바람이 소백의 상징이지

만, 그 한기는 여름이 가까워진 유월 초에도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연화봉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자 추위가 엄습하기 시작한다. 

  

  

  

  

가야할 비로봉 (소백산 정상) 방향의 능선길

  

  

  

  

구불길을 1킬로 남짓 걸어 혼자서 희방사 경내를 통과하여 산길을 접어들때까지

아무런 긴장도 없었다. 깜깜한 밤중에 산길을 더듬는다는 것이 한밤중이라면야

앞으로 닥칠 많은 난관들을 미리 걱정이라도 하겠지만, 이제 얼마지 않아 여명이

밝아올 것이고, 잘 아는 길이기도 하니 꺼리낄 이유가 없다.

  

  

희방깔딱재를 반쯤 올라왔을 즈음에 이미 검은 어두움은 푸른 빛의 여명으로 묽

어져가기 시작했다.  어둠은 급속히 땅으로 스며들었고 깔딱재에 올라서자 아침

햇살이 능선의 나무가지 사이로 엄청나게 쏟아져 들었다. 온갖 것에 온통 금빛과

주홍빛이 서려 있었다. 5시 25분...... (6월5일 소백산 일출시각은 5시 7분이었다.)

  

  

일출은 직접 대면하지 못했으나 구름바다가 대신 환대를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옛날의 환희, 경탄같은 감동은 사그라들었다. 열정은 변함이

없으되 적당히 냉정해졌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 세월이 있었고, 뜨거움 대신에

견고함이 자리잡는 중일 지 모르겠다.

  

  

일출에 마음 뺏기지 않고, 구름바다에 벅찬 환희도 없으며, 꽃의 화사함이나 단

풍의 수려함에도 탄성을 지르거나 설경의 눈부심에 조바심을 내지도 않는다. 그

렇지만 모든 것이 심드렁해진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이다.

  

  

고도가 1400 가까이 되니 사스레 나무가 은색껍질을 박리하며 하얗게 빛나고 있다.

저 나무 한그루도 소백의 품에 있고, 그 자신이 소백의 한 부분을 이루듯, 나도 지

금 이 순간 단지 소백의 일부가 되고싶을 따름이다.

  

  

  

  

  

한기와 허기가 동시에 엄습해왔다. 햇살이 드는 길가에 앉아 옷을 껴입고, 커피와

크림빵 하나를 먹었다. 배낭을 다시 정리하였다. 산행거리가 멀어 준비를 좀 한다

는 것이 지나쳐버렸다.

  

  

배낭의 무게. 준비할 때는 안전을 위해 자꾸만 더해지는데, 막상 산에 와서 보면

여러 조건에 적응이 되서 그런지 불필요한 것들이 많고, 그 과한 무게 때문에 끝까

지 고생하는 수가 잦다. 닥치는 대로 버텨내기에는 내 자신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

는 것을 가늠한 치밀한 준비성 때문일까, 아직도 떨치지 못한 두려움 때문일까. 

  

  

  

  

내 방식대로, 내 소망대로

소백산 철쭉꽃길 따라

 

 

2011년 6월 5일

혼자서 털레털레

 

 

산행 코스 :  희방사 주차장 - 희방깔딱고개 - 연화봉 - 비로봉 - 국망봉 - 초암사

 

  

  

  

  

2. [내가 선택한 이동방식]

  

  

갈 때 : 부산 부전역 오후 10시30분 발 무궁화 열차 - 다음날 새벽 3시 10 분 풍기역 도착.

이 열차는 아침 6시 50분, 밤 10시 30분, 하루 두번 뿐이다.

  

http://japong.com/korea/gn/busan/bujeon_station.htm (참고)

 

 

알려면 쉽게 알 수도 있는 사실이지만, 이 열차는 밤중을 달려 경주-영천-동대구-안동-

영주-풍기-단양-제천-원주-양평-청량리까지 가는데, 제천과 원주까지 간다는 사실도

앞으로 산행계획에 참고할만 하다.  

  

  

풍기역 인근 오거리에서  파악해둔 식당에서 국수 한그릇 먹고, 약속한 택시와 4시 접선.

희방사 주차장까지 (요금 15000 원)

  

  

올 때 : 초암사 - 주차장 소로는 교행이 어려운 2 킬로 구간. 택시로 영주버스터미날 이동,

(초암사-영주까지 요금 흥정). 영주-부산 직행버스로 귀환. (3시간 20분 소요)

  

  

결국 혼자서 무박산행을 결행한 셈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새벽산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택시비는 애초에 계획했던 숙박비와 체류비를 대신하는 셈이 되었다. 모름지기 조등조

강 早登早降(일찍 오르고 일찍 하산하는)하는 산행이야말로 번잡함도 피하고, 山과 내가

올곳이 직면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에 경비는 감당할 가치가 넘친다.

  

  

  

  

  

3. [굳이 소백산인 이유ㅡ 봄 소백과 국망봉]

  

위의 사진은 이날 연화봉 정상 직전 오름길에서 본 도솔봉이다. 산은 때로 그 외모의

준수함과  위세에 언젠가는 오르고 싶은 열망을 제공할 때가 있는데 소백산에 올 때마

다 저 도솔봉이 늘 가슴에 박힌 그리움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침내 수 년 전, 저수령 - 도솔봉 - 죽령의 긴 거리를 산사랑방님의 대간길에 동행함

으로써 그 소망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또 하나 이루지 못한 소망이 있었으니, 비로봉

에서 한시간 반 내지 두시간 거리(구간거리 3.1 킬로)에 있는 국망봉을 가보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소백을 다녔어도 봄날의 소백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금년은 어디나

겨울한파로 봄꽃이 않좋지만 마침 어제(6월4일) 끝난 소백 철쭉축제의 떄늦은 만개

를 외롭게 즐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내겐 꿈과 같은 연휴가 다가온 것이다. 

  

  

  

도솔봉 정상에서 제2연화봉 바라보며......(당시 산사랑방님 사진)

산은 바라보면 언제나 그리움을 가지게 되는 대상이다. 대간이나 정맥등 산줄기를 이어

가는 그 내면에는 답습이나 도전보다도 능선에서 이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이 쌓여버

렸기 때문일 지 모른다. 

  

  

  

  

4. [연화에서 비로까지, 분홍철쭉과 하얀 구름과 연초록 풀잎의 능선길]

  

  

앞을 바라보고, 옆을 바라보며, 때로 뒤도 돌아보며, 사진으로 초록 소백의 사연을

마음으로 전한다. 작정하고 쓸려면 끝없이 쏟아지는 그렇고 그렇기만한 독백은 되

도록 눌러보자.

  

  

  

  

아침의 빛내림

  

  

  

  

소백철쭉과 구름바다

  

  

  

  

목책계단길 조성 이후, 생태계를 복원했음을 알리고 있다.

1394m 제1연화봉 오름길이 시작된다.

  

  

  

  

상단에 전망대도 설치하였으니 뒤를 돌아보고......

  

  

  

  

연화봉과 천문대 그리고 시설중인 중계소 풍경을 파노라마로 이어보았다.

  

  

  

  

이곳 바로 위의 제1연화봉 정상은 전망이 없는 숲길이다.

  

  

  

  

제1연화봉 표지목을 지나면 진행방향으로 우측(삼가리 방면)의 경치가 멋지다.

  

  

  

  

드디어 우측 멀리 비로봉이 드러난다.

  

  

  

  

하늘......

  

추억과 그리움과 소망이 깃든 곳.

본질은 그윽하고 검은 어둠이지만, 빛의 산란으로 푸르게 보이는 우주의 외로움.

  

  

그러니 몸은 푸른 옷을 입은 그윽하고 검은 어두움이요, 마음은 외로운 것이 세계

의 형태일 것이다. 그와 낮은 목소리리로 다정하게 대화하라. 걷거나 바라보며......

  

  

  

  

꽃구름

  

  

  

  

꽃바람

  

  

  

  

꽃 햇살

  

  

  

  

초록아침

  

  

  

  

천동계곡은 구름에 잠겼다.

충주호와 남한강에서 피어오른 구름안개는 소백릉 백두대간을 넘지 못한다.

  

  

  

  

우측에 소백의 정상 비로봉이 한껏 다가왔다.

  

  

  

  

뒤돌아보니 꽤나 멀어진 연화봉.

도솔봉과 저수령이 푸른 배경이 되었다.

  

  

  

  

산상정원

  

  

  

  

  

  

5. [비로봉 정상에서 국망봉 까지]

  

  

그렇게 비로봉 정상까지 왔다.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며

일본말로 인사를 건넸다. 영화에서 처럼...... 그도 일본어를 꽤했다. 잘있었니?

우리도 모두...... 잘.지.내!

  

  

소백으로 접근하는 대중교통방식을 상세하게 적은 적이 있었지. 내게도 따

로 보내줘서 무척 고마웠어. 그 내용 중에, 소백능선을 걸으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독백은 지금껏 귓전을 울려......

  

  

누구나 살면서 뒤를 돌아보게 돼. 그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야. 하지만

아파하지는 말아야했어. 우리가 산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가슴아파했

던 적이 없었던 것은 그렇기 때문에 남은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해.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사는 거지. 산길만 걷고 싶어 삶의 길을 훌쩍 떠

난 너는 지금 잘 있는 거지......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네가 마지막 보았던 소

백의 상고대 능선은 보는 바와 같이 연두빛 봄날이야. 사는 일 빼고는 정말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세상이야.

  

  

  

  

소백산 비로봉 1440 m

  

  

  

  

삼가리 비로사에서 올라오는 길

  

  

  

  

정상은 한바퀴 둘러보기만 하고 그대로 국망봉을 향해 진행......

  

  

  

  

어의곡 삼거리.

  

이제부터 국망봉까지는 첫발길이다.

오늘 소백을 온 이유,  오래 전부터 철쭉 핀 국망봉을 소망했다는 것!

  

  

  

  

삼거리에서 눈덮힌 저곳을 바라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저어기..... 바로 코 앞에 다가온 국망봉.

  

  

배 고픈 것을 참고 왔지만, 능선에는 찬바람이 계속 몰아쳐 적당한 식사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곳까지 왔다. 능선 아래라 뒷편으로 북서풍을 막아주는 양지바

른 따뚯한 곳이다. 마치 온풍기를 틀어둔 것 같은...... 

  

  

혹시나해서 준비한 도시락이 족히 3인분은 되겠다. 끙! 집에 갈 때 까지 모조리

짐이 될 수 밖에...... 적당히 삭은 김치국물과 잡곡밥, 잘익은 배추김치와 고추

장 볶음이 전부지만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귤 3개와  작은 백설기 떡 한개.

  

  

가만...... 몇 시야? 점심시간이 지났나? 오늘은 손목시계를 챙기지 못해 고도와

위치는 낡은 GPS 가 대신했고 (구닥다리지만 늘 소지하고 다닌다.), 휴대폰으로

시각을 알아보니 억???????? 9시 반....... 아직 아침이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태양으로 천지간에 햇살과 빛이 가득하구나!

 세상은 정말 고요하다. 만물이 이토록 푸르고 요란하고 생명이 분주한데 어찌 이

다지도 고요하기만 할까. 그러고보면 내가 지각하는 세계의 본모습은 작은 빛이

반짝이는 길고 어두운 침묵일 것이다. 

  

  

  

  

국망봉 가는 길은 여태까지의 등로보다 협소한 소로다.

  

  

  

  

저만한 경사길에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국망봉 구간.

천천히 가면 그렇게 에너지 소비가 많지 않겠다. 쉬엄쉬엄 가면서 오는 봄날

미소로 맞이하고, 가는 봄날 웃음으로 보내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보자!

  

  

  

  

쉼터에서 뒤돌아보니 비로봉 정상이 보인다.

  

  

  

  

초암사 내려가는 삼거리.

국망봉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

  

  

  

  

국망봉 능선길이 연화봉 능선길보다 아기자기하고 좋네!

  

  

  

  

철쭉도 예쁘고......

  

  

  

  

담에 소백산 가면 꼭 국망봉가야지, 그렇게 소망했던 이곳......

  

담담하다.

  

  

  

  

그렇니까 저멀리 도솔봉에서......

쩌어기 보이는 연화봉, 비로봉 거쳐 아홉 작은 봉우리 넘고 넘어 이곳 국망봉까지

  

  

소백의 꿈을 겨우 완성했네......

  

  

(대간꾼들이라면 저수령에서 국망봉 너머 늦은맥이재까지 두 구간에 불과한 거리

지만 이 핑게 저 핑게로 눈구경, 봉우리 구경만 하러 다니다가 이제사 잇게된다.)  

  

  

  

6 [초암사 계곡으로 하산]

  

  

  

초암사 내려서는 길에 돼지바위도 구경하고......

사람들, 절도 하더라만 난 돼지띠라 굳이 절까지야......^^

  

  

  

  

  

초암사는 그 이름이 단아하여 와보고 싶었던 절이었다. 초암사 계곡 또한

수줍은 산골 처녀같은 소박한 느낌일 것이라 여겨왔다. 천천히 걸어 내려

온 초암계곡은 작고 한적하여 먼 길을 온 나그네의 심사를 한층 여유롭게

하였다.

  

  

오랫만의 계곡물 소리가 텅 빈 가슴을 울려댄다. 누구 들으라고 두드려대

는 지 잔잔하게 혹은 이따금씩은 크게 울려댄다. 온 몸에 미세한 진동이 느

껴진다. 파동은 계곡의 푸르고 싱그러운 기운이 되어 몸 구석구석 깊숙히 파

고 든다.

  

  

절에 내려서니 한 시 반. 한 낮이다. 영주에서 부산행 버스를 타니 5시 50분

에 도착을 하였다. 여정은 아내의 마중으로 끝이 났다. 허기진 배를 청국장

비빔밥으로 채우고, 여독은 초저녁부터 다음날 오전 네시까지 달콤한 잠으로

풀어버렸다. 굿 할리데이!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