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산행일자:2011년 2월 12일(토)-13일(일)

                          *소재지   :충북단양/경북영주

                          *산높이   :소백산 비로봉1,440m/국망본1,421m

                          *산행코스:죽령휴게소-천문대-비로봉-국망봉-초암사-배점리탐방소

                              -제1일:죽령휴게소-천문대-제1연화봉-비로봉-어의곡리주차장

                              -제2일:어의곡리주차장-비로봉-국망봉-석륜암-초암사-죽계계곡-배점리탐방소

                          *산행시간:총16시간42분

                              -제1일:11시26분-18시41분(7시간15분)

                              -제2일: 7시38분- 17시 5분(9시간27분)

                          *동행     :경동고등학교 동문3명(24회 김주홍, 우명길, 29회 정병기)

 

 

 

  이름도 모른 채 세 번이나 걸었던 소백산의 죽계계곡을 34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고교 동창들과 함께 나선 소백산 종주코스는 죽령고개-비로봉-구인사 코스였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구인사 길이 통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망봉에서 하산 코스를 바꾸어 초암사로 내려갔습니다. 초암사에서 1곡이 시작되는 9명소의 죽구계곡이 우리 국문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려 말 충숙왕 때 문신 안축(安軸)이 지은 죽계별곡(竹溪別曲) 덕분입니다. 이번에 다시 걸어 내려가 실망하기까지는 1971년 산우들과 두 번을 올랐고 1977년 결혼하던 해 여름 집사람과 함께 걸어 내려간 이 계곡이 안축의 죽계별곡이 없었다면 저라도 아름다움을 찬하는 글을 남기고 싶은 추억어린 명소였습니다.

 

 

  1973년에 습작한 졸고 “어떤 죽음”이라는 소설에 순흥의 배점리를 출발해 청다리까지 이어지는 죽계계곡을 따라 걸어 초암사에 다다른 다음, 가파른 길을 따라 석륜암을 숨 가쁘게 올라서기까지를 아래와 같이 서술해 놓았습니다.

 

 

  “소백산은 이번으로 3번째 찾는 것이지만 몇 번이고 다시 찾고픈 좋은 산이다. 천여미터의 고지에 자리 잡은 석윤암은 그 높이로 전망이 일품이다. 해발 1,400여미터의 국망봉을 한 시간 거리에 두고 있고, 풍기에서 청다리를 지나 초암사를 거쳐 오르면 5-6시간이면 족한 조촐한 코스다. 청다리까지 이어지는 옛 선비들이 유유 작작했을 법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제법  산내음을 짙게 풍기는 초암사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민가는 없고 두어 채 화전민의 집이 있을 뿐이다. 그들 화전민조차 여름 한 때 더위를 피해 온 피서객처럼 벌써 풍기로 내려갔다. 말이 화전민이지 겨울이면 풍기에서 부유하게 살림을 꾸리고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만 밭을 일구어 옥수수와 감자 등을 심어 화전민 고유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들이다. 초암사를 지나면 계곡의 폭은 좁아져 급류가 되고 물살이 거세진다. 그리고 오솔길이 시작된다. 복중에 발을 담가도 냉기가 서릴 찬 물과 문답하며 2시간가량 오르면 45도 이상 경사진 가파른 언덕바지를 오른다. 청다리에서 4시간 가깝게 걸어 이곳에 이르기에 오직 역부족을 실감할 뿐이다. 간신히 반시간 가깝게 올라 석윤암에 도착하면 7-8미터 높이의 불상을 만나는데 완전한 석불입상이랄 수는 없어도  규모가 대단하고 그 돌 밑에 아낙들이 시주하는 곳이 있다. 전설로는 돌부처의 귀를 통해 쌀이 흘러 내려와서 이곳 암자에 거처하는 분들에 제공되었는데 임란 때 왜병들이 그 귀를 빠개어서 지금은 그저 전설만을 되씹을 뿐이다. 때가 11월이니 만큼 여름철 짙푸른 옷으로 치장했던  넓은잎나무 들은 모두가 알몸이었고 더러는 내내 벌거벗은 고사목들도 눈에 띄었다. 석윤암 암자 앞에는 제법 너른 뜰이 있어 야영하기에 적합하고 조금 오른 쪽으로 돌면 바위가 천정인 방이 있다. 희방사에서 출발하던 풍기에서 출발하던 산에서 첫 밤은 이곳에서 묵게 된다. 몇 년 전부터 비치해둔 방명록을 보여주는 주인의 자랑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간 사람들의 손이 많이 가 죽계계곡은  옛선비들이 유유작작했을 법한 옛길이 아니었습니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차도로 변한 계곡 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34년 전에 이 길을 함께 걸은 집사람을 불러내 같이 걷자고 말할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제 1일(2월 12일):죽령휴게소-천문대-제1연화봉-비로봉-어의곡리주차장

 

  한 겨울에 고교동창들과 함께 설산(雪山)을 종주하는 산행은 올해가 세 번째입니다. 재작년 겨울에는 덕유산을 이틀 간 산행했고 작년에는 지리산을 또 이틀 종주했습니다. 두 산 모두 능선 길에 대피소가 있어 산에서 1박을 해 편했는데, 이번 종주 길에 나선 소백산은 대피소가 따로 없어 비로봉에서 어의곡리로 내려가 하루를 묵고 다시 올라가야 했습니다. 죽령-비로봉-구인사 코스는 아침 일찍 시작하면 당일코스로도 가능합니다만, 이번 산행목적이 소백산 특유의 칼바람에 맞서보고 또 가능하면 느긋하게 진행해 눈길 산행의 진수를 맛보는 데 있어 어의곡리에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산행 길에 올랐습니다.

 

 

 

  휴대폰의 알람이 작동하지 않아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아침 6시40분에야 겨우 눈을 떠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와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별 수 없이 동서울터미널을 6시59분에 출발하는 단양 행 첫차를 포기하고 그 다음 8시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10시15분경 도착한 단양터미널에서 죽령고개까지는 택시로 이동해 반시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여느 해처럼 산행 중 버너를 피워 점심을 해먹다가는 마냥 늦어질 것 같아 좀 이르기는 하지만 죽령휴게소에서 우거지 국을 사먹고 곧바로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11시26분 죽령휴게소를 출발했습니다. 천문대로 향하는 종주 길은 북쪽으로 이어졌는데 한 여름이라면 시멘트도로에서 내뿜는 후끈거리는 지열로 고생을 했을 이 길을 하얀 눈을 밟으며 올라갔습니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눈이 서울 근교 산처럼 지저분하지 않아 소백산의 공기가 얼마나 청정한가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1시간을 조금 못 걸어 다다른 전망대에서 죽령 너머 풍기 쪽을 내려다보자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중앙고속도로가 시원스레 잘 보였습니다. 요 며칠 남한 땅의 눈 거의 다를 영동지방에 쏟아 부어서인지 새벽에 소백산에 내린 눈은 길을 살짝 덮을 정도였다 합니다. 그래도 그간 내린 눈이 많아 길가 눈 무더기는 스틱이 푹 들어갈 정도로 깊었습니다.

 

 

 

  13시13분 이동통신탑이 세워진 통신기지 바로 아래 “백두대간 제2연화봉”의 표지석을 지났습니다. 제가 가지고 간 지도에 죽령-비로봉코스가 4시간15분, 어의곡리-비로봉 코스가 1시간30분해서 모두 5시간45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어 해떨어지기 전에 어의곡리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했는데 표지목에 죽령-비로봉간 거리가 11km가 넘는 것으로 적혀 있어 서둘러도 저녁 7시가 다되어야 다다를 것 같아 야간산행이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통신기지를 왼쪽으로 에돌다 바람을 피할 만한 곳에서 잠시 머물러 과일을 꺼내 든 후 다시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한참동안 내려가다 다시 올라 소백산 천문대 앞을 지난 시각이 14시7분으로 잠시 멈춰 서서 천문대를 사진 찍었습니다. 실로 광활하기 이를 데 없는 우주에 아주 작은 점을 찍고 있는 별들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천문학(Astronomy)이 세속의 점성술(Astrology)과 같을 수 없기에 칼바람을 맞아가며 이 높은 천문대에 올라 천체를 관측하는 분들이 도시에 앉아 찾아오는 손님들에 운명을 점쳐주는 점성가들과 같은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15시13분 해발1,340m의 제1연화봉 바로 밑에서 쉬었습니다. 천문대를 지나 해발1,383m의  연화봉으로 오르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철쭉 지대를 지났습니다. 희방사로 넘어가는 연화봉은 여러 번 올라 이번에는 왼쪽 아래 길로 질러갔는데 5월의 철쭉제를 준비하는 연달래들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어 이 또한 볼만했습니다. 연화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해 왼쪽으로 계속 내려가 만난 안부에서 계단 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답압(踏壓)으로 인한 황폐화를 막고자 계단을 설치해 오름길이 더 힘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종주꾼들에 대간 길을 막지 않고 열어놓은 소백산국립공원에 참으로 고마워하는 것은 아무리 밟아도 닳을 리 없는 너덜 길의 황철령 구간을 아예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설악산국립공원의 속 좁은 처사와 대비되어서입니다. 계단 길 중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천문대 및 통신탑이 눈 덮인 하얀 능선과 어우러져 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 다다른 제1연화봉 바로 밑에서 15분여 쉬면서 과일을 꺼내 들었습니다.

 

 

  16시41분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비교적 평탄한데다 사방이 탁 트여 전망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올 겨울 내내 오르내린 낙남정맥 길에서는 아예 눈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여기 소백산의 눈 언덕과 고드름이 반갑고 신비로웠습니다. 왼쪽으로 천동리 길이 갈리는 민배기재(?)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노라면 좌측 사면이 북쪽에 자리한 넓은 평원이어서 살을 에는 칼바람을 한 점도 빼지 않고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어인 일인지 그 악명 높은 칼바람이 숨을 죽이고 있어 태풍전야의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덩그러니 정상석이 홀로 서있는 텅 빈 비로봉에 오르자 그동안 숨죽였던 칼바람이 본색을 드러내 사진 몇 장만 후딱 찍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7-8분 내려가 다다른 국망봉 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어의곡리로 향했습니다. 평원지대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고 나서야 몸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18시41분 어의곡리 주차장에 도착해 첫날 산행을 마쳤습니다. 비로봉에서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6년 전 초여름 어의곡리에서 비로봉을 오른 일이 있어 길 찾기는 문제없겠다 하면서도 혹시라도 길이 잘 나있지 않아 캄캄한 밤에 러셀을 해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주능선과 마찬가지로 길이 잘 나있었습니다. 저 혼자라면 어둠에 쫓겨 하산을 서둘렀겠지만 동행하는 친구들이 둘씩이나 되어 땅거미가 지고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해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활엽수 나무들이 진을 친 능선에서 골짜기로 내려서며 낙엽송 숲길을 지났습니다. 고도가 낮아져 수종이 바뀌어도 길을 덮은 눈은 그대로여서 하산을 마칠 때까지 크램폰을 풀지 않았습니다. 머리에 찬 헤드랜턴이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상하로 같이 움직여 탐방소를 막 지나자 아랫마을 백열등이 마치 춤추는 듯 보였습니다. 첫 마을로 내려가 대기 중인 비가목팬션의 차에 올라 숙소로 내려갔습니다.

 

 

  밤11시 심야전기가 들어오기까지는 방안이 생각만큼 뜨듯하지 않았지만 김주홍동문이 마련한 삼겹살을 정병기동문이 가져온 버너를 피워 구워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워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훈기가 느껴졌습니다. 한 해 내내 건강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지는 설산 종주는 앞으로도 20년 넘게 이어갈 뜻입니다. 팔십 넘은 나이에도 이번처럼 삼겹살 파티를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싶어서입니다.

 

 

 

 

 

        *제 2일(2월13일):어의곡리주차장-비로봉-국망봉-석륜암-초암사-죽계계곡-배점리탐방소

 

  휴대폰 알람이 또 울리지 않아 반시간 늦게 출발했습니다. 아예 꺼놓았더라면 자다 깨다는 몇 번 반복했겠지만 정해진 시간 전에 일어날 수 있었을 텐데 휴대폰에 전적으로 기상시간을 맡겼다가 연 이틀 낭패를 보았습니다. 휴대폰 같은 문명의 이기가 몸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등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에 나이가 들거나 심약한 분들을 위해 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이야기들이 논의되곤 하는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환경론자들이 염려하는 생태파괴를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산이 갖고 있는 호연지기가 누구에게나 고루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어서입니다. 이 나라 평균수명이 80세를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연세든 분들에 걸어서만 산에 올라가라 하는 것은 열심히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에 너무 가혹한 주문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될 정도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과의 접촉을 최대한 확대해주는 문명의 이기는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아침7시38분 어의곡리를 출발했습니다. 몇 분후에 지난 탐방소의 온도계가 영하 12도를 가리킬 만큼 산 속의 공기가 매섭도록 차가웠습니다. 해발고도를 천백미터 가까이 높여 국망봉 갈림길에 이르는 것이 일차 과제인데 하룻밤 푹 자고나자 두 다리에 힘이 다시 붙어 별반 힘들지 않았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냉기서린 산속 눈길을 따라 오르는 중 새벽 4시 반에 어의곡리를 출발해 비로봉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두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살을 에는 소백산의 칼바람을 마다 않고 이 산 정상에 올라 해오름을 지켜봤을 젊음을 부러워하면서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 9시23분 “어의곡리3.1Km/비로봉2.1Km"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10시45분 비로봉0.4km 전방의 국망봉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햇살이 바짝 다가오고 시야가 트여 골짜기를 걸을 때의 답답함이 사라졌습니다. 전날 저녁 해가 남아 있을 때 걸었던 길이어서 하나도 낯설지 않았지만 운동방향이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과 정반대여서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줄기와 큰 가지에 걸터앉은 눈 무더기들이 햇빛을 받아 더욱 희게 보였습니다. 해발고도가 천m를 훨씬 넘는 능선 길을 천천히 걷다가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숲의 낙엽생산성 분석을 위해 설치한 낙엽포집기를 보았습니다. 낙남정맥 종주 길에 음양수 근처에서 처음 본 낙엽포집기를 다시 보며 국립공원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항목이 몇 개나 될까 궁금했습니다. 얼핏 생각나는 것은 공원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의 총 개체수와 종의 다양성이 중요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연휴식년제가 국립공원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크게 유용할 것 같았습니다. 오른 쪽으로 비로봉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후미를 기다려 얼마간 같이 쉰 후 국망봉을 향해 북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12시45분 해발1,421m의 국망봉에 올라섰습니다. 국망봉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철 계단에 눈이 도도록도도록 쌓여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발목 깊숙이 잠기는 눈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대간 길이 이러한데 길이 거의 나있을 것 같지 않는 구인사 길은 과연 어떠할까 걱정을 했습니다. 오전 9시에 어의곡리를 출발했다는 부천의 대간 팀원들이 저희들을 앞질러 국망봉으로 내달렸습니다. 북사면의 눈길을 지나 널찍한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쪽 아래로 송림지가 잘 보였습니다. 안부에서 조금 올라  석윤암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왼쪽으로 지근거리에 있는 국망봉에 올라 라면을 끓여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산행속도가 생각보다 많이 느려 구인사 행을 포기하고 초암사로 내려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지도상에 비로봉-국망봉 구간이 1시간 20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보다 0.4Km 짧은 구간 통과에  2시간이 걸린 저희 발걸음으로 6시간은 족히 소요될 구인사로 내려가다가는 저녁6시 구인사 발 마지막 서울 행 버스를 탈 수 없을 것 같아 만부득이 하산코스를 초암사로 바꾸었습니다.

 

  13시30분 국망봉을 출발했습니다. 초암사 갈림길로 5-6분 되돌아가 남사면으로 내려서는 계단 길로 들어섰습니다. 옛날에 이 길을 지났을 때는 계단이 설치되지 않아 엄청 힘들었다고 말했더니 지나가던 한 분이 그 때가 언제냐고 물어와 1971년이라고 답하자 픽 웃었습니다. 꼭 40년 전의 일을 마치 몇 년 전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천연덕스럽게 보였나 봅니다. 그때는 모르고 그냥 지나친 복 바위인 돼지바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복스러운 모습을 사진 찍었습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저 아래 시내에서 돈 만원에 팔렸다 하니 이바위가 돈을 만드는 명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한참동안 더 내려가 석윤암터에 도착한 시각은 14시14분이었습니다. 높이가 18m나 되는 석륜암 터 큰 바위가 마치 거대한 봉황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봉바위로 부른다는 안내문을 보고 그 때 주인아저씨가 들려준 전설과 사뭇 다르다 싶었지만 그 바위의 위용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아직 살아 계시다면 80줄을 훌쩍 넘었을 그 아저씨를 뵙지 못하고, 또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그 옛날 몇 번을 묵었던 바위가 천정인 골방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달랑 터만 남은 석륜암을 출발했습니다.

 

 

 

 

 

 

 

  16시22분 초암사에 이르렀습니다. 석륜암터에서 3.4Km 거리의 초암사가 꽤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내려가는데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싶었는데 2시간이 꼬박 걸렸습니다. 하산 길에 만난 순둥이 백구와 어느 누가 바위 밑에서 따다가 길가에 옮겨놓은 커다란 고드름을 사진 찍는 일조차 없었다면 조금은 지루 했을 이 길을 따라 내려가 15시35분 “초암사1.4Km/석륜암2.0Km” 지점을 지났습니다. 석륜암골이 월천계곡과 합류하는 합수점을 막 지나 초암사를 3백m 남겨놓고 오른 쪽으로 비로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국망봉에서 만난 풍기 분으로부터 초암사에서 배점리로 내려가는 죽계계곡 길이 통행 금지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어 잠깐 쉬면서 일행들과 어느 길로 갈까 협의했습니다. 풍기택시에 물어본즉 초암사까지 택시가 들어온다고 해 가까운 초암사로 내려갔습니다. 1970년대 초암사는 초라한 암자규모의 절로 기억하고 있는데 대웅전 위에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어 삼층석탑이 아니었다면 옛 기억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17시5분 배점리탐방소에 도착했습니다. 초암사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탐방소 직원으로부터 앞으로는 이 길로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탐방소까지 걸어간 것은 추억이 깃든 죽계계곡 길을 다시 걷고 싶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이 계곡이 고려말 문신인 안축이 경기체가 “죽계별곡”을 지어 이름을 널리 알린 죽계계곡인 줄 몰랐습니다. 안축이 환생해 시멘트로 포장된 이 길을 걷는다면 과연 이 계곡을 찬하는 경기체가를 다시 지을지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숲이 우거지고 물이 많이 흐르는 한 여름에 다시 찾는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겨울철의 죽계계곡은 명소 9곡을 확인할 마음이 내키지 않을 정도로 썰렁했습니다. 탐방소 직원이 타준 커피로 몸을 녹인 후 택시를 불렀습니다. 풍기역을 저녁6시10분에 출발하는 청량리 행 열차에 올라타 이틀에 걸친 소백산 산행을 매듭졌습니다.

 

 

 

                ****************************************************************

 

 

  죽계계곡이 기대에 못 미쳐 많이 아쉬웠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영주지부의 원정(園丁)님이 뜻풀이를 한 안축(安軸)선생의  죽계별곡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합니다.

 

 

 

 

                 죽계별곡(竹溪別曲) 

 

 

 

<1장>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죽령의 남쪽과 영가의 북쪽 그리고 소백산의 앞에

 

 

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천 년을 두고 고려가 흥하고 신라가 망하는동안

 

                                          한결 같이 풍류를 지닌 순정성 안에,

 

 

他代無隱 翠華峯 天子藏胎/다른 데 없는  취화같이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왕의 안태가 되므로

 

 

爲釀作中興 景幾何如/아! 이 고을을 중흥하게끔 만들어준 광경,

 

 

                               위양작중흥 경기하여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淸風杜閣 兩國頭御 /청백지풍을 지닌 杜衍처럼 높은 집에 고려와 원나라의 관함을 지니매

 

 

爲 山水淸高 景幾何如 /아! 산 높고 물 맑은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2장>

 

 

宿水樓 福田臺 僧林亭子/숙수사의 누각과 복전사의 누대 그리고  승림사의 정자,

 

 

草菴洞 郁錦溪 聚遠樓上/소백산 안 초암동의 초암사와 욱금계의 비로전 그리고 부석사의 취원루들에서

 

 

半醉半醒 紅白花開 山雨裏良/술에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깨었는데, 붉고 흰 꽃이 핀

                                          산에는 비가 내리는 속에

 

 

爲 遊寺 景幾何如 /아! 절에서 노니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高陽酒徒 珠履三千/습욱의 고양지에 노는 술꾼들처럼 춘신군의 구슬 신발을 신은 삼천객처럼

 

 

爲 携手相從 景幾何如/아! 손잡고 서로 의좋게 지내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3장>

 

 

彩鳳飛 玉龍盤 碧山松麓/산새는 채봉이 날아오르련 듯·지세는 옥룡이 빙빙

 

 

                                   돌아 서린 듯, 푸른 소나무 우거진 산기슭을 안고

 

 

紙筆峯 硯墨池 齊隱鄕校/향교 앞 지필봉(영귀봉)과 그 앞에는 연묵지로 문방사우를

                                   고루 갖춘 향교에서는

 

 

心趣六經 志窮千古 夫子門徒/항상 마음과 뜻은 육경에 스며들게 하고 그들 뜻

 

                                          천고성현을 궁구하며 부자를 배우는 제자들이여,

 

 

爲 春誦夏絃 景幾何如/아! 봄에는 가악의 편장을 읊고 여름에는 시장을

 

 

                                음절에 맞추어 타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年年三月 長程路良/해마다 삼월이 오면 긴 노정으로

 

 

爲 呵喝迎新 景幾何如/아! 큰소리치며 신임자를 맞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4장>

 

 

楚山曉 小雲英 山苑佳節/초산효와 소운영이라는 기녀들과 동산 후원에서 노닐던 좋은 시절에

 

 

花爛 爲君開 柳陰谷/꽃은 만발하여 난만한데, 그대 위해 훤히 트인 버드나무 그늘진 골짜기로

 

 

忙待重來 獨倚欄干 新鶯聲裏/바삐 거듭 오길 기다리며 홀로 난간에 기대어, 새로 나온 꾀꼴새 울음 속에

 

 

爲 一朶綠雲垂未絶/아! 한 떨기 꽃처럼 검은 머릿결이 구름처럼 흘러내려 끓임 없는데

 

 

天生絶艶 小桃紅時/타고나 천하절색인 小桃紅맘 때쯤이면

 

 

爲 千里相思又柰何/아! 천리 먼 곳에 두고 서로 그리워함을, 또 어찌 하겠습니까?

 

 

 

<5장>

 

 

紅杏紛紛 芳草 樽前永日/붉은 살구꽃이 어지러이 날리고·향긋한 풀은  푸른

 

 

                                   술동이 앞에서 긴 봄 날 하루놀이와

 

 

綠樹陰陰 畵閣沈沈 琴上薰風/푸른 나무가 우거진 속에 단청올린 다락은  깊고그윽한데

 

                                          거문고 타는 위로 불어오는 여름의 훈풍

 

 

黃國丹楓 錦繡靑山 鴻飛後良/노란 국화와 빨간 단풍이 청산을 비단처럼  수놓을 제

 

 

                                          말간 가을 밤 하늘 위로 기러기 날아간 뒤라

 

 

爲 雪月交光 景幾何如/아! 눈 위로 휘영청 달빛이 어리비치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中興聖代 長樂大平/중흥하는 성스러운 시대에, 길이 대평을 즐기느니

 

 

爲 四節遊是沙伊多/아! 사철을 즐거이 놉시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