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흘산(488m)과 암수바위... kolon9374 2 2008-07-01

 

산행일자:2008년6월329일. 날씨:비

거리및소요시간:약6km. 4시간

 

코스:11시15분/선구리고개-2.5k-12시58분/응봉산(472.7m)-2.2k-13시45분/설흘산-2k-15시15분/가천마을


설흘산은 남해의 끝자락 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노도와 상주해수욕장, 금산이 우뚝하고, 서쪽으로는 여수반도가 한눈에 들어오며 남해바다를 조망할수 있는 전망대라 할수 있겠다. 해발488m의 정상에는 옛봉수대가 있었던곳으로 여수 돌산 봉수대와 금산, 내륙의 망운산 봉수대와 연결되었든 것으로 추정하며 경남 기념물제248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봉수대주변을 정비하였다고 한다.

 

설흘산 산행은 응봉산(매봉)과 연계하여 선구리나 사촌해수욕장, 또는 육조문으로 하산하는게 산수를 즐길수 있으며 응봉산에서 기암절벽의 운산(422m),암릉지대와 낙뇌산(257m)과 암릉구간, 옥녀봉(171m)을 거치는 코스가 스릴과 조망을 즐길수 있으며 여름이면 사촌리나 홍현리로 하산하여 사촌해수욕장이나, 두곡해수욕장을 이용할수 있고, 가천리로 하산하면 경남 민속자료13호인 미륵불(암수바위)를 볼수 있다.


장마비가 오락가락 하며 이슬비가 그칠듯하며 계속내린다. 선구리 고개마루 수령 350년 팽나무 아래에서 인원점검을 하고 임도를 따라 등산로 초입에 이르면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내린비로 숲은 물방울이 잔뜩 맺혀있어 선두는 물벼락을 맞으나 후미는 선두덕분에 빗물을 적게맞는다. 좌측에 인공적인 동굴을 지나고 옥녀봉을 올라서면 시야가 트이지만 안개가 자욱하여 조망을 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

암릉지대가 시작되고 바위가 물기를 머금고 있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안전한 우회길로 진행하는데 선두그룹 몇 명이 암릉리지 구역으로 진입하여 바위를 내려가는데 위험을 느끼며 어렵게 내려왔다고 한다. 직전에 로프로 막아놓았는데 로프가 땅에 쳐저있어 진행하였다고 한다. 위험지역은 반드시 피해가야 한다. 로프있는곳에서 우측아래로 안전한 우회길이 있으며 나무계단으로 안전시설을 해놓았다.

암릉지대는 북서쪽은 모두 천길 절벽이라 내려다보기가 아찔하나 안개 때문에 실감을 하지못하며 기암봉을 지나고 응봉산에 오르니 비가 오는데도 막걸리를 팔고 있다. 점심먹으며 농주를 한잔했기에 미련을 두고 직진방향 좌측으로 내려간다. 우측은 육조문을 거쳐 가천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등로가 좋아지고 안부에 내려서면 수풀이 자라있는 헬기장과 가천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난다.

녹음이 짙게 우거지고 넓고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며 두 번째 헬기장을 만나니 엉겅키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천과 홍현리로 내려가는 사거리 안부를 만나고 설흘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정상 봉우리를 좌측으로 돌아 망산 안부에 올라 지척에 있는 망산(삼각점있음)을 다녀오는데 숲이 우거져 있어 지나쳤다가 돌아 오면서 삼각점을 발견하였다. 설흘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잘정비되어 있고 정상석이 있다.

가천리로 하산 길은 봉수대 망산쪽에서 올라가는 좌측에 있으며 남쪽으로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암반이 여러곳 있어 맑은날이면 조망이 좋을것 같았다. 암반지대를 지나고는 등로가 우측으로 돌아 가파르게 다소 험한 길을 내려가다가 다시 우측으로 돌며 너덜지대를 만나고 곧 마을이 보이고 세맨트 도로에 닿는다. 가천 다랭이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안개가 개이며 건너편 육조문 기암들이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1024번 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내려가면 가천리 버스 정류소가 있고 가천마을 표지석이 크게 세워져 있다. 주차장은 모퉁이를 돌면 계곡가에 있으며 대형버스 서너대 주차가능하다. 암수바위는 주차장에서 계곡옆 길을 따라 내려가면 5분쯤거리 좌측에 있다. 암수바위 위 우측에 할매막걸리 집이 있는데 몇 년전 마셔보았는데 농주맛이 아주좋았다. 버스정류소 인근에 큰식당도 새로 생겼다.

 

가천마을 연혁


본 마을은 남해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로서 설흘산과 응봉산의 정기를 이어받고 서쪽으로는 여섯스님이 탄신하여 승천하였다는 육조문이 있으며 남으로는 자식없는 사람이 공을 드리면 득남한다는 영험이 있는 미륵불(암수바위)과 바다를 보면 그유명한 세존도와 소치도를 품에 안고 산수가 수려하여 평화롭고 인심좋아 한번오면 다시찾는 고장으로서 사람이 살게되기는 자세한 기록은 보존하고 있지 않으나 신라 신문왕 당시로 추정되어 전해오고 있으며 도 민속자료인 미륵불의 전설등으로 미루워 봐서 고려 이전에 사람이 살고 있던 것으로 여겨지며 옛날에는 마을 이름을 간천(間川)이라 불러왔으나 조선시대 중엽에 마을이름을 가천(加川)이라고 개명하여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우리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농토와 자연이 주신 산과 바다로서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자손만대하여 영원히 살아 가리라.


선구리고개에서


수령 350년의 팽나무


사촌해수욕장


사촌해수욕장과 고동산

까치수염


기린초




원추리


위험지대 우회 안전시설


위험한 암봉


응봉산


설흘산

설흘산 봉수대




가천마을과 육조문 기암




암수바위(여자가 임신한 모습)


숫바위




육조문의 기암


가천앞바다


가천마을과 다랭이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