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6.12.02(토)

산행 : 나 홀로

시간 : 2시간

구간 : 성동마을(08:30)-시루봉(09.15)-정상(09:40)-용못갈림길(09:50)-성동마을(10:30)

참고 : 동행자가 있을 경우 산행시간 조정필요

 

12월 1일 저녁일기예보에 의하면 충청서해안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다고 한다. 금년 들어 처음으로 설경을 볼 거 같은 기대감으로 내일은 오서산을 찾기로 하고 잠이 들었다.

 

2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을 보니 눈발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쌓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밤에 내린비가 오서산에는 눈으로 변해 있을 거 같은 생각에 아들 등교시간에 서둘러 나섰다. 대천에서 청소로 향하는 차안에서 7부 능선 이상이 하얀 오서산을 보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더욱 엑셀을 밟았다.

청소 면소재지를 지나 성연리 물레방아집에서 마을회관 쪽으로 진입하여 나주임씨 재실 조금 못 미쳐 주차를 하고 산행준비를 완료한 시간이 8시30분이다.

 

재실을 지나 ‘오서산 시남산장’을 지나려니 자주 찾는 나에게 블랙탄(진돗개의 일종, 일명 네눈박이)처럼 생긴 개가 좇아오면서 짖어댄다. 주인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잘생긴 개는 아니다. 세퍼드를 닮은 진돗개다. 전에 산장에 세퍼드를 키웠는데 아마도 교잡된 그의 후손이 아닌가 싶다.

 

짖는 개를 뒤로하고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사회간접자본’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입석에서 시루봉을 향해 10여분 정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초입부터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경사가 가파름을 예고하는 것이다.

숨이 차오를 무렵 제주고씨 묘지에서부터 눈이 밟히기 시작한다. 다행이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다. 산행을 마칠 때까지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기를 바라니 욕심이 생기고, 경사는 더욱 가파르니 숨이 턱턱 막힌다. 게다가 안경을 낀 사람들의 공통적인 애로사항이겠지만 라면 먹을 때와 겨울산행에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루봉에 도착하니 온 나무에 눈꽃이 피었다. 혼자보기에는 좀 아깝게 느껴지기고 한다. 아침에 서두른 보람이 있다. 멀리서 사람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무에 핀 눈꽃을 즐기면서 억새밭을 지나 안부에 도착하니 산불감지를 위한 컨테이네가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다. 멋진 설경으로 좋았던 기분이 좀 상한다. 산불방지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오서산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전에는 FRP로 산불감시초를 조그맣게 지어놓고 한사람이 근무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야간산행을 하면서 비박하느라 많이 애용했었고, 크기도 작아 경관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컨테이너에 도착하니 명대계곡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인다.

혼자서 끝까지 산행을 마치고 싶었던 기대가 깨진다. 두 사람인거 같은데 나보다 더 부지런했으니 그 정도의 혜택을 누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오서산이 나만의 산은 아니지 않는가? 마음을 달래고 정상으로 향했다. 다행이도 정상에서 발길을 돌려 명대계곡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정상이다. 눈발은 조금씩 날리지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천해수욕장과 대하와 새조개로 유명한 홍성 남당리, 청양의 화성 등... 오서산을 자주 찾아오지만 오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계절과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서 다른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봄의 철쭉,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억새, 겨울의 설경, 특히 억새가 피어있는 야간 산행에 둥근달이라도 떠오른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은가.

 

아참 겨울산에 와서 별 생각을 다한다. 아무튼 충청서해안 지역에서는 제일 먼저 눈을 밟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이번엔 발자국이 없는 길을 재촉하여 정암사 쪽으로 향했다. 하산길은 정암사 방향으로 가다가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용못으로 하산할 계획이니 말이다.

 

능선에서 용못쪽으로 하산하다 보면 바로 밑에 샘터가 나온다. 가을 가뭄이 심해 지금은 말라버렸다. 10여년 전에는 거기에 움막을 짓고 깨달음을 찾는 도인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수해로 떠내려가 지금은 그 잔해만 남아있다. 한참을 내려오고 있는데 누군가가 긴 나무로 걸터앉을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아마도 산을 아끼는 사람의 마음인거 같다.

하지만 바로 옆에는 산에 오르느라 힘들었는지 포도즙을 먹고 그 봉지를 틈새에 잘(?) 끼워 놓았다. 그 사람은 오래 살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산에 왔고, 건강식품을 먹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니 말이다.

 

쉼터를 뒤로하고 길을 내려오니 임도가 나온다. 여름에는 야영장으로 활용하는 모양이다. 임도에서 주차장쪽으로 발길을 돌려 10여분을 걸으니 오서산 시남산장의 개짖는소리가 들린다. 산행을 마무리했다는 알림이다.

 

금년들어 첫눈은 아니지만 직장 때문에 주말에만 찾는 나에게 눈 산행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을 조물주에게 감사한다.
오서산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