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가 한풀 꺾인 서해의 최고봉 오서산

 


  오서산 개요

 

  충남 보령시와 홍성군에 위치한 오서산(791m)은 천수만 일대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등대구실을 하므로 예로부터 '서해의 등대산'으로 불려져왔으며, 정상을 중심으로 약 2km의 주능선은 온통 억새 밭으로 이루어져 억새산행지의 명소이기도 합니다.  


  오서산(烏棲山)은 까마귀와 까치들이 많이 서식해 산 이름도 "까마귀 보금자리"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홍성의 용봉산 및 청양의 칠갑산과 더불어 충남의 대표적인 산으로 금북정맥의 최고봉으로서 그 안에 명찰인 정암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편 산 아래로는 질펀한 해안평야와 푸른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언제나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특히 7부 능선안부부터 서해바다를 조망하는 상쾌함과 후련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자료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현대의 금강산 사업정상화

 

  2005년 11월 12일 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백두대간 구간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비교적 쉬운 산행 대상지를 찾다가 오서산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서산은 3년 전 한번 답사한 산이지만 정암사와 정상의 표석을 제외하고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에 오른 후 눈을 반쯤 감은 채 흔들리는 전동차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 맞은 편 의자에 앉은 사람이 큰 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자꾸 퍼 주면 안 돼!"


  필자가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나이 지긋한 한 남성이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과 북한의 리종혁 아·태 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어제 개성에서 만나 그 동안의 오해를 풀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는 조간 신문이 들려 있습니다.  


  "에이 씨이….
  "아, 욕을 하면 안되지."
  욕설을 내 뱉으려다가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남자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 동안 언론에 크게 보도된 대로 현대아산이 내부감사에서 비리혐의가 포착된 김윤규 전 부회장을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게 하자, 북측이 배은망덕한 처사라며 김 부회장을 즉각 복귀시키지 않을 경우 현대와의 남북협력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천명하면서 금강산 관광객의 규모를 반으로 줄였던 것입니다.


  북측이 현대아산대신 롯데관광을 사업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 던진 미끼를 롯데 측이 덥석 받아먹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며, 그 동안 북측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던 현 회장은 북한에 대해 할말을 하는 경영자로서 많은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번의 정상화 합의도 현 회장의 뚝심이 꼬인 실타래를 푸는데 도움이 되었겠지요.


  남북관광정상화 합의 소식을 접한 일반 국민이 자꾸 퍼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그 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조(自嘲)일 것이므로 당국자는 새겨들을 일입니다. 

 

 

  산악회 측이 제공하는 아침식사 
  
  이야기가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군요. 서울지하철 천호역에서 80여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2대, T산악회 주관)가 서해안 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로 진입하여 한쪽 옆에 정차합니다.  


  사람들이 화장실을 다녀오면 아침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하더니  산악회 측은 신속하게 간이 테이블을 설치합니다. 조립식 받침대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널빤지를 올려놓으니 그럴듯한 피크닉 테이블이 즉석에서 마련됩니다. 한 줄로 선 사람들이 밥과 반찬 그리고 미역국을 받아 들고는 테이블로 가서 식사를 합니다.


  산악회 측에서 아침식사와 하산 후 식사를 제공한다는 산행안내서를 보았을 때 아침은 간편한 김밥이나 떡 또는 과일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배식하는 음식은 정성이 들어간 먹음직한 것입니다. 2만 2천원의 회비를 받아 두끼 식사를 제공하고서도 남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서산 산행에 버스 두 대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린 것을 보면 식사 2회 제공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광천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온 버스가 지방도로를 타고 산행들머리인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상담마을에 도착합니다(10:28). 서울 천호역을 출발한지 3시간 만입니다. 


 

                                   행담도 휴게소에서 바라본 서해대교


 

                                     행담도휴게소 전경

 


  상담마을∼정암사 

 

  잘 조성된 주차장에는 오서산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는데 오서산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개울에 걸린 외나무다리처럼 생긴 좁은 철판다리를 건너 마을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송림과 묘지가 어우러져 있는 길을 지난 삼거리에서 정암사 방면으로 오릅니다. 오서산 정암사(烏棲山 淨巖寺)라고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 뒤돌아보니 같은 건축물에 범종각이라는 현판이 또 걸려 있습니다. 그 동안 산행을 하면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여러 사찰을 보았지만 일주문과 범종각이 동일한 것은 처음 목격합니다(10:57).


  정암사(淨庵寺)는 오서산 아래턱에 있는 사찰로 백제 26대 성왕 3년, 사치화상이 여러 나라의 각지방을 교화하다가 오서산에 이르러 산이 아름답고 웅장하여 만대에 폐하지 않을 땅임을 보고 왕께 고하여 10여 채의 큰절을 지었고, 그 후 조선 35대 철종 2년 대운대사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고찰로 절 주변에는 수 백년 된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어 보기가 좋습니다(자료 : 충남도청 홈페이지). 


  정암사 경내에는 대웅보전 대신 극락전(極樂殿)이 그리고 돌무더기 뒤의 산비탈에는 산신각이 지나가는 길손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습니다.

 


 

                                정암사 일주문겸 범종각

 


 

                                    정암사 극락전

 

                 

 


  정암사∼전망바위∼오서정

 

  정암사를 나와 오른쪽으로 이어진 나무계단을 오릅니다. 정암사에서 정상까지 구간은 가파르면서도 군데군데 바윗길이 자리해 약 한 시간동안 산행 기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어 동호인들이나 가족 등반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가벼운 나들이 차림으로 운동화를 신거나,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어른의 손에 이끌려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힘에 부친 듯 능선 곳곳에는 줄줄이 쉬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다시금 경사가 급한 날등의 오르막을 통과하는데 계단의 높이가 너무 커 발걸음을 옮기기가 불편합니다.


  오른쪽으로 아차산(424m)가는 이정표를 지나(11:20) 설렁설렁 걸어가니 전방바위입니다(11:35). 전망바위에 오르니 산행들머리로 이용한 상담마을과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며 넓은 들판을 지나 멀리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희뿌연 운무가 끼여 선명한 조망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능선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이 한결같이 난쟁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 고산지역에는 키가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해발 높이가 얼마 안 되는 이곳도 해풍이 매우 강한 모양입니다.


  전망바위에서 한숨을 돌린 후 험준한 바위능선을 오른쪽으로 우회한 후 억새가 피어 있는 길을 따라 오르니 오서정(烏棲亭)입니다(11:55). 정자에는 막걸리를 파는 상혼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가야할 전망바위

 


 

                              청소성연(용못)의 모습

 


 

                                 전망바위 위의 노송

 


 

                            산행들머리인 주차장 너머 보이는 광천읍전경

 


 

                                 뒤돌아본 전망바위

 


 

                                 오서정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의 억새


 

                               햇볕에 반사되는 억새


 




 

                                 오서정



 

                                 북쪽으로 바라본 용봉산


 


  오서정∼오서산 정상

 

  이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바위산인 용봉산의 기암괴석이 우람하게 솟아 있습니다. 정자에서 남쪽을 따라 이어진 능선은 부드럽고 광활한 지역으로서 1만여평의 부지에 억새가 많이 자라고 있어 당국에서는 오서산을 전국의 5대 억새 명산에 속한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억새가 제철인 10월, 산 위의 능선은 은빛물결인 억새로 바다를 이루는 반면, 산 아래의 서해는 푸른빛 물결로 바다를 이룹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억새는 그 동안 불꽃을 활활 태우고 난 이후 시든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렇게 황홀경을 연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태양을 역광으로 받아 빛나는 억새는 그래도 한때는 은빛억새의 물결을 이루었음을 과시하는 듯 합니다. 


  오서정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 가니 오른쪽으로 청소성연(용못) 이정표가 나오고 헬기장을 지나자 왼쪽의 쉰질바위로 가는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청소성연'은 이곳의 행정구역이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이므로 이를 따라 이름을 지은 것 같으며, 쉰질바위라는 이름도 매우 특이하지만 그 뜻은 알 길이 없습니다. 능선에서 좌우로 빠지는 등산로가 여러 가닥으로 조성되어 있고, 산행 내내 하산할 방향인 오른쪽에 위치한 용못이 잘 조망됩니다.


  사람들은 점점 시들어 가는 억새를 배경으로 열심히 기념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또한 능선 곳곳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휴일 한 때를 즐깁니다. 급할 것이 전혀 없는 필자는 느긋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서산 정상에 도착하니(12:17) 3단의 돌을 붙인 정상표석과 등산로 안내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정상표석 뒷면에는 "허리를 휘감는 억새능선을 헤쳐 나가다 문득 뒤돌아보면 유난히 아름다운 낙조로 온갖 시름에서 벗어나 황홀경을 맛볼 수 있다"라고 새겨져 있고, 등산 안내도에는 "억새꽃과 바다가 있는 곳, 서해의 최고봉 오서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안내도 남측에는 사각의 돌에 烏棲山(오서산)이라고 적힌 다른 표석이 보입니다.

 

 

 

                                 오서산 정상을 가면서 뒤돌아본 오서정

 


 

                                주능선의 억새

 


 

                                 정상 표석과 등산로 안내도


 

                                정상표석

 


 

                              오서산 안내도


 

                               사각의 정상표석


 

 


  오서산 정상∼시루봉∼성연주차장  
               
  정상에서 처음으로 배낭을 내려놓고 요기를 하고는 하산을 시도합니다. 통신안테나가 서 있는 곳에는 남쪽의 경관을 사진으로 설명해둔 안내판이 놓여져 있어 반갑습니다. 좌측 산너머로는 보령댐과 성주산 자연휴양림이, 중앙에는 보령시와 무창포 해수욕장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대천 해수욕장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른쪽 서해바닷가에는 보령화력발전소의 높은 굴뚝이 아련하게 보입니다.


  동남쪽으로는 군데군데 연못이 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가운데 경지정리가 잘 된 큰 규모의 들판을 보며 이 지방이 곡창지대임을 실감합니다.


  일행중의 한 사람이 휘파람을 불며 내려가자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오는 사람이 웃으면서 한마디합니다.
  "휘파람을 불며 쉽게 내려오는군요. 우리는 힘이 들어 죽을 지경인데…."
  "아이고, 휘파람을 불어 죄송합니다. 하하하."


  시루봉(550m)에서 길은 오른쪽으로 꺾여지는데 어느새 앙상한 나무 가지만 남은 숲 사이로 들어서니 초겨울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낙엽이 많이 쌓인 미끄러운 급경사를 지나 통나무계단을 내려오니 임도입니다(13:10).
  왼쪽의 임도를 따라 100여 미터 진행되던 등산로는 다시 오른쪽의 비탈면으로 떨어지고 밤송이가 수북히 쌓여 있는 밤나무 단지를 통과하니 마을입니다.


  노란 은행나무 앞에는 불타는 듯한 붉은 고추가 늦가을의 태양열을 받아 더욱 붉게 물이 드는 가운데 한 촌노가 도리깨질을 하며 콩을 수확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도로변 감나무에는 한 농부가 대나무 작대기로 단감을 따고 있어 필자 앞에 가던 등산객이 단감을 사겠다고 제의하자 팔지는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주변을 즐기며 내려오니 등산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성연주차장입니다(13:30). 오늘 산행에 3시간 2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렇게 널널한 산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산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도 부드러운 오서산의 능선과 억새에 취해 산 속 어디에선가 늦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리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시루봉가는 길의 남쪽 조망(1)

 


 

                             시루봉가는 길의 남쪽 조망(2)

 


 

                                              고추가 익어가는 고장


 

                                단감나무

 


 

                                 주차장의 등산 안내도


 

                                      정상에서 날아오는 행글라이드                              



  광천 젓갈시장

 

  다리 밑 계곡으로 내려가 탁족(濯足)을 하고는 산골 아낙네가 파는 팥을 한 봉지 구입한 후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합니다. 술과 돼지고기까지 준비했으니 술꾼들에게는 진수성찬일 것입니다.


  이날 저녁(20:00)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우리보다 실력이 나은 스웨덴 국가 대표팀을 초청하여 평가전을 치르기로 되어 있어 사람들은 축구를 보기 위해 빨리 상경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산악회 측으로서는 김장철을 맞아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의 젓갈시장을 들리기로 약속한바 있어 30분간의 시간을 주면서 길목의 한 도소매점에 차를 세웁니다. 이곳에는 이미 몇 대의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데 우리 팀의 등산객이 한꺼번에 내려 좁은 매장으로 들어서니 한마디로 아수라장입니다. 광천의 새우젓이 유명한 것은 늘 15∼16℃의 온도를 유지하고 85%이상의 습도인 토굴에서 새우젓이 잘 익어 품질이 뛰어난 이 지방 특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류의 젓갈이 진열되어 있지만 정가 표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부르는 게 값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자 김치를 담그는데는 매장에서 권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제일 낫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참으로 믿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리고 일일이 값을 물어보지 않고도 구입할 수 있도록 가격표시라도 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무래도 신선하고 값이 저렴하다고 생각되어서인지 다들 젓갈이 손에 들려 있습니다. 버스 안에 젓갈 냄새가 진동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축구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서울의 집에 빨리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 눈을 감습니다. 오늘 가벼운 산행을 하며 체력을 비축했으니 내일 백두대간 답사길이 무겁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젓갈시장에서 바라본 오서산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