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5년 10월 16일, 일요일, 하늘이 맑고 높푸른 전형적인 가을 날씨

2. 장소 : 광천 오서산

3. 함께 :  부모님 두 분과 아들 그리고 나

4. 그날의 기억들...




          [   부모님 마음도 낚고 마음에 박힌 못도 빼드려야지   ]


오늘은 부모님을 모시고 산에 가는 특별한 날이다.
처음 산에 가자고 말씀드렸을 때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칠순을 넘긴 아버님과 다 되가는 어머님을 모시고 산에 오르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 탓.
대상지를 물색할 때 집에서 가까울 것과 오르내리기 용이한 곳을 생각했었다.
‘오서산’은 집에서 1시간 이내 거리며 임도가 7부 능선까지 있어 조금만 오르면 되니 낙점!
처음 계획은 산에 올랐다가 ‘청양’의 수목원에서 각종 단풍나무를 구경시켜드리려 했었다.
하나 늦은 출발로 인해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 산 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었다.
‘정암사’입구에서 왼쪽 패러글라이더활공장 가는 임도를 따라 차로 한참을 올랐다.
몇몇의 내려오거나 오르던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했지만 어쩌랴!
혼자라면 결코 선택치 않았을 것이지만 오늘은 맘으로나마 양해를 구한다.
부모님께 서해를 바라보는 탁 트인 조망을 맛보게 해 드리고 싶었기에 말이다.







  



      


산굽이를 돌고 돌아 ‘烏棲亭’에 오르는 등산로 입구의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스틱을 하나씩 들려드리고 임도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고 길은 산 사면을 사행한다.
가까운 줄 알았던 ‘임도통제선’은 산허리를 몇 번이나 지나고서야 붉은 파이프로 만났다.
앞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쉰길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군(群)도 허옇다.
제법 곧추선 길에 오토바이 한 대가 위태롭게 내려왔다 다시 비척거리며 오르는데...
하얀 플라스틱 병에 든 막걸리가 상자 째로 실려 시집가는 가 보다.
오를수록 시원한 바람이며 트이는 조망은 즐거움을 더 해주었고 땀도 많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 걸음에 맞추며 천천히 가지만 혹여 다리가 아프실까 가끔 여쭤도 본다.
이미 2km는 족히 걸었고 또 정상까지 또 2km는 되니 조금은 걱정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같이 가는 나들이라 즐거우신 모양으로 힘들지 않다고 하신다.
게다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도 하나 올라가니 구경거리도 충분하다.















그늘에서 자리를 펴고 요기를 하는데 가을바람이란 게 잠시 놔두지 않고 몸을 식혀버린다.
완연한 지그재그형상으로 오르면서 고도를 점점 높이며 내포의 황금들녘을 내려다보았고.
패러글라이더가 몇 기 떠 푸른 하늘을 수놓는데 너풀대는 은빛 억새도 슬슬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아버님의 말씀처럼 길옆의 억새는 사람이 줄줄이 심어 놓은 것.
아마 ‘오서산억새풀등산대회‘를 위해 심은 것 같은데 뿌리가 잘 내려 보이지는 않았다.
각 지자체들이 앞 다퉈 축제를 기획하지만 내실이 있는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찾아와 돈쓰고 싶은 축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금산인삼축제, 머드축제 말고는 다 불황이다.
어느덧 능선에 닿았고 ‘오서정’에 들르기 위해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200m의 신작로 같은 능선을 따르는데 길옆에 아까의 오토바이 말고도 또 한 대가 누웠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조망을 하거나 점심을 먹고 또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오서정’ 옆의 간이매점에서는 막걸리가 네 병밖에 남지 않았다며 호객이 한창이다.
















다행인 것은 “야호”라고 외치거나 불콰한 얼굴로 비척거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
행락질서가 나아졌고 시민의식이 더 성숙한 탓이라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나는 일이다.
정자에 앉아 쉬면서 눈 트임을 즐기며 요기도 하는 동안 시간은 화살처럼 흐르고.
한곳에 오래 계시는 것을 싫어하시는 아버님은 벌써 가자고 재촉 하신다.
나는 성격은 아버지를, 체질은 어머니를 닮았으니 천상 두 분의 작품인 게다.
자리를 옮겨 1km정도 가야 있는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고 하늘은 여전히 높푸르다.
예전의 활공장 자리는 패러 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었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능선을 따라가며 바람에 넘실거리는 억새에 취해도 보고.
문득 보이는 빨간 색감은 붉게 물들고 있는 단풍나무여서 반갑구나!
정상에 다가갈수록 하늘을 수놓는 패러글라이더가 가깝게 지나다니며 쉭쉭거린다.
‘금북정맥’과 만나는 갈림길도 지났고 곧 도착한 정상에는 여전히 정상석이 둘이다.











          [   서해바다의 은비늘   ]  



오석으로 만든 커다란 빗돌은 삼등분한 것을 이어 붙였으며 ‘보령 오서산’이라 써놓았다.
옛날 것을 없애고 새롭게 한 모양인데 조금 어색하기도 또 이상타.
한 사람이 글라이더를 펼쳐놓고 산(傘)줄을 정리하는 바람에 등산로가 좁아져 불편했다.
“이유는 이해하지만 좀 더 내려서서 했다면 더 멋진 날개 짓이 되었을 텐데 아쉽구먼.”
멀리서 반짝이는 서해의 물결과 오후의 따뜻한 바람이 몸과 마음을 나른하게 만든다.
혹시나 계실까 하여 마지막 봉우리까지 줄달음쳐 갔으나 아버님은 벌써 내려가고 계신단다.
다시 정상에 와서 아쉬운 대로 가족사진을 찍고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쉰길바위’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오서정‘쪽으로 빠른 걸음을 한다.
차가 그 아래 능선에 있기 때문에 우선 회수하고 임도 끝까지 몇 km을 더 가야기 때문.  
‘오서정’을 지나서 죽 뻗는 능선을 지나며 바위지대를 지났다.
아빠와 같이 올라와 바위에 기대고 사진을 찍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나도 딸이 있었더라면...”



          [   마지막 봉에서 정상쪽으로   ]





          [   다시 오서정을 지나다   ]

          [   딸이 부러운 찰나?   ]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내 능력으로는 아들 밖에는 날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상담마을’과 갈라지는 곳에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청년이 있고 사람들은 길을 묻는다.
“어디가 빨라요?” “어떤 길이 쉬워요?”
볼 것 다보고 먹을 거 다 먹으니 집에 가는 것 말고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하긴 나도 빨리 내려가야 돼!”
가파른 초입에 들어서자 얼마나 미끄러운지 경사진 슬로프를 내려가는 느낌.
곧 경사가 잦아들고 평탄한 능선을 가며 점점 고도를 낮추는데 옆에 바위조망대도 있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지나온 길을 올려보면 가을은 빛 바란 색상으로 나뭇잎에 앉았다.
내리받이에 나무계단이 보이며 다 내려왔다는 느낌이 올 때 어느새 땀이 떨어진다.
임도에 내려섰고 주차장에는 아버님이 벌써 와 한참을 기다리고 계셨다고 하신다.
다시 간 ‘임도통제선’에는 119구조대의 차가 와 있는데 어느 산행객이 다친 모양이라 출동.





          [   내륙까지 들어온 물골   ]
    
          [   길을 묻는 사람   ]

          [   물드는 산하   ]

다시 100여m 뛰듯 올라서고는 어머니를 모셔 내려왔고 이제는 하산 길이다.
오늘하루 모처럼 많이 걸어 힘은 드나 모처럼의 나들이에 흡족해 하시는 눈치다.
굽이굽이 돌아내려 절 구경이나 단풍구경의 뜻을 여쭈니 해거름이라 그냥 가자고 하셨다.
지나는 길에 광천젓갈을 조금 샀는데 상술인지 몰라도 토굴 속에서 보여주고 판매를 한다.
인공으로 판 굴속은 서늘하여 숙성과 저장하기가 좋다는데 평균 14도를 유지한단다.
젓갈은 소금으로 절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한 조상의 지혜가 담긴 것인데.
그 안의 소금은 방부역할과 맛깔나게 하는 작용을 동시에 갖는데 부모의 역할도 마찬가지.
자식과 또 자식의 자식을 통해 늘 영속성을 이어가는 순환의 고리.
내 아이도 부모 될 인연의 순환은 계속 될 텐데 부모에 있어 자식이란 어떤 의미인가?
우스개로 빚쟁이라고 하듯이 부모에게 늘 받기만을 채근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모님 마음속에 박힌 못을 빼드려야 하겠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아버님은 벌써 내려가셔서...   ]

            
          [   금강하구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