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토요일), 8시 5분경에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광천행 8시 20분발 표를 끊는다. 요금은 9900원. 10시 50분경 홍성에 도착한 버스는 5분쯤 정차해 있다가 이십여 분을 더 달려서 소요예정시간보다 7분이 늦은 11시 17분에 광천버스터미널에 닿는다. 1000원을 내고 서둘러 상담행 버스표를 끊어서 버스를 타니 11시 20분이 조금 넘어 출발한 버스는 10분이 채 못 된 11시 30분경에 버스의 종점인 상담마을에 도착한다.

상담마을은 외진 곳이라서 산행객들과 이들의 호주머니를 노린 노점상들만 많을 뿐, 가게는 눈에 띄지 않는다. 식사를 대신할 만한 것이라고는 국화빵과 구운 계란 6개들이 팩밖에 없어서 이 두 가지를 각각 2천원에 사서 농로를 따라 오르는데 길을 잘못 들어 농로의 왼쪽으로 빠지게 되는데 그 많던 산행객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정암사로 가는 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다시 농로로 내려와서 10분을 낭비하고 제 길을 찾아간다.

임도 삼거리에 이르러 정암사로 가는 오른쪽 길로 10분쯤 오르니 범종각이 일주문 역할을 하고 있는 정암사에 닿는다. 여기서 절을 구경하며 15분쯤 쉬다가 방향표지판이 가리키는 오서산 들머리로 오르니 의외로 가파른 길이 군데군데 있다.

전망바위 밑의 안부 삼거리에 이르니 억새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오서산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또한 하늘이 흐려지면서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듯이 세찬 바닷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좁은 바위 위에 서 있으면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

안부 삼거리에서 10분 만에 전망바위 정상에 이르러 5분쯤 쉬면서 춥고 손이 시려서 면장갑을 끼고 벗어 놓은 자켓을 걸치니 한결 낫다. 여기서 바라보는, 오서정과 홍성 오서산 정상이 있는 주능선과 그 밑의 비탈은 은발의 노신사를 연상시키는 억새들의 군락지다. 
 


상담마을의 농로에서 바라본 오서산. 
 


정암사의 극락전. 
 


정암사의 약수터. 
 


정암사의 범종각. 
 


정암사의 오른쪽에 나 있는 오서산 들머리. 
 


억새가 보이기 시작하는, 전망바위 밑.  
 


전망바위.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오서정과 홍성 오서산 정상. 
 


내려다본 전망바위. 
 

바위가 많은 암릉길을 통과하니 세찬 바닷바람을 맞아 일제히 한 방향으로 고개를 숙인 억새의 군무가 몇 년 전 정선의 민둥산에서 본 억새들의, 미풍에 흔들리는 유유자적한 군무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오서정으로 걸음을 옮긴다. 바닷바람은 그 기세를 멈추지 않고 억새들을 사납게 흔들고 회색 톤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하늘은 비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채로 머리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지나온 억새밭을 뒤돌아보니 참으로 장관이다. 그리고 세찬 바람에 꺾이지 않고 유연하게 휘어지는 억새의 모습에서 삶의 지혜를 유추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마침내 오서정이 눈앞에 보이고 그 뒤로는 홍성 오서산 정상과 보령 오서산 정상이 난형난제로 나란히 우뚝 서 있다. 
 


세찬 바닷바람에 고개 숙인 억새 1. 
 


억새밭. 
 


지나온 길. 
 


세찬 바닷바람에 고개 숙인 억새 2. 
 


지나온 억새밭 1. 
 


세찬 바닷바람에 고개 숙인 억새 3. 
 


세찬 바닷바람에 고개 숙인 억새 4. 
 


오서정으로 가는 길의 바위지대. 
 


지나온 억새밭 2. 
 


오서정과 홍성 오서산 정상 뒤로 보이는 보령 오서산 정상.


     겨울을 예고하는 듯한 10월 하순의 매서운 바닷바람은 쉼 없이 세차게 불며 몸을 오그리게 만들지만 그 바람에 휘어지는 은갈색의 억새들의 모습에서는 양털의 따뜻하고 포근하며 부드러운 감촉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환상적인 은빛 억새의 물결은 걸음을 자꾸 멈추게 하고 더뎌지게 만들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이런 장관을 갈 길만 재촉하며 놓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랴. 오서정을 지나서 해발 791 미터의 오서산 정상에 이르는데 정상표지석에 음각된 ‘억새풀에 스며드는 서해의 낙조’라는 절묘한 표현은 간결한 시구로 인근 주민의 오서산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억새가 가득한 가을산의 쓸쓸한 정취를 절실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홍성 오서산 정상에서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광천 쪽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자신은 오서산의 전모를 더 상세히 보기 위해 성연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정상 부근의 주능선까지 이어져 있는 임도를 통해 올라와 있는 차량 두 대가 정상의 바로 밑에 보인다. 
 


양털 같이 포근한 느낌을 주는 억새 군락. 
 


세찬 바닷바람에 고개 숙인 억새 5. 
 


오서정 앞에서 바라본 두 개의 오서산 정상과 억새밭. 
 


오서정. 
 


지나온 억새밭 3. 
 


억새숲길. 
 


지나온 억새밭 4. 
 


홍성 오서산 정상의 전경. 
 


바닷바람이 세차게 부는 홍성 오서산 정상 - 해발 791 미터. 
 


임도를 통해 정상 부근의 주능선까지 올라온 차량들. 
 

보령 오서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능선의 오른쪽으로 어슴푸레 보이는 서해는 회색 구름이 가득한, 잔뜩 찌푸린 무거운 하늘을 머리에 이고 그 파도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고단하게 물결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홍성 오서산 정상에서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린 끝에 25분 만에 지도상의 정상인 보령 오서산 정상에 이른다. 해발 790.7 미터인 이곳에는 억새 군락이 홍성 오서산 정상 쪽 만큼 드넓지는 않지만 정상표지석이 두 개나 있고 삼각점이 설치돼 있다.

보령 오서산 정상에서 헬리포트를 지나 3분 만에 방향표지판과 경관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삼거리와 시설물이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 여기서 세찬 바람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곳에 앉아서 15분쯤 쉬다가 성연리로 하산을 시작한다. 
 


흐린 하늘 밑의 서해 1. 
 


흐린 하늘 밑의 서해 2. 
 


보령 오서산 정상으로 가는 길. 
 


보령 오서산 정상의 전경. 
 


보령 오서산 정상 - 해발 790.7 미터. 
 


지나온 능선길.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로 내려가는 주능선길. 
 


시설물이 있는 봉우리로 가는 길. 
 


시설물과 삼거리가 있는 봉우리. 
 


지나온 억새밭 5. 
 

바위가 많은 지대를 몇 분 내려서면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능선길을 지나서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가게 되고 시설물이 있는 봉우리에서 20분 만에 해발 559 미터의, 돌탑이 한 개 설치돼 있는 시루봉에 이른다. 여기서 쉬지 않고 12분쯤 내려가니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가면 주차장까지 1.3 킬로미터, 직진하면 성골까지 1.1 킬로미터라고 표기돼 있다. 확실하게 길이 보이는 직진로로 10분쯤 내려가니 임도와 만나는 오서산 날머리다. 임도에서 방향표지판이 가리키는 왼쪽의 성골 쪽으로 3분쯤 나아가니 다시 임도와 만나는 산길의 날머리에 이르는데 여기가 아까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오는 길인가보다. 그런데 여기서 어처구니없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자신이 인쇄해서 갖고 온 한 장의 지도와 한 장의 개념도 중에 개념도에는 임도가 표시돼 있지 않고 등고선이 표기돼 있는 지도에는 임도가 희미하게 나와 있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판독하기 어렵고 지도에의 불신도 한 몫 하여 임도만 따라 내려가면 성연리 주차장에 도착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임도를 따라가게 된다. 임도와 맞닿은 두 개의 산길 날머리 부근의 비탈에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겠지만 통일되지 않은 부정확한 표기의 방향표지판도 신뢰하기 어렵고 오른쪽의 비탈을 눈여겨 보지 않고 임도만 따라 내려가면 주차장에 이를 것이라는 속단을 스스로 철석처럼 믿은 게 화근이었다.

잡초를 베어낸 흙길의 임도는 푹신한 감촉을 발바닥에 전해준다. 보령시내로 나가는 버스 출발 시각인 16시 25분을 맞추기 위해 두 번째 날머리에서 20분 이상 바쁘게 걸어도 주차장은 보이지 않고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는 오히려 고도를 높여서 등로를 놓친 게 아닐까 불안해서 돌아가려는 마음이 슬그머니 치솟는 것을 억누르고 좀 더 나아가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나오리라 생각하며 임도로 나아가기를 고집하는데 임도의 바닥은 잔돌이 많이 깔린 딱딱한 길로 바뀌면서 대구의 비슬산을 연상시키는 암괴류가 임도의 바로 위에 있는 곳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임도 삼거리에 이르러 왼쪽 길을 택해 피곤한 걸음을 옮긴다. 오른쪽 길은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꿈의 궁전을 통해 넙티고개에 이르는 길인 듯하다.

임도 삼거리에서 8분 만에 낡은 정자 옆에 비교적 넓은 내리막의 숲길이 나타나서 그 길로 내려서다보니 넓은 터에 폐묘 한 기가 방치돼 있는 곳에 이른다. 시계를 보니 16시 30분. 16시 25분에 성연리 주차장의 버스 종점에서 보령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지 못하게 되어 조급해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폐묘 밑에 앉아서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오서산에는 산허리를 감고 도는 기나긴 임도가 나 있고 두 번째 날머리와 맞닿는 임도의 비탈에 성연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김이 빠진 채로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와서 차도에 닿게 되고 그 차도의 바로 밑을 내려다보니 넙티제가 있다. 넙티제의 날머리에서 오른쪽으로 15분쯤 차도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넙티고개에 임도 안내석이 설치돼 있고 고개를 조금 내려선 곳의 오른편에 꿈의 궁전이 있다. 맥이 빠져 길가에 앉아 5분쯤 쉬다가 넙티고개에서 15분쯤 내려가면 민가도 전혀 없는 외진 곳에 오서산 안내소라는 작은 매점과 커다란 오서산 등산로 안내도가 설치돼 있는 성연리 주차장이 나온다. 이제 18시 40분에 오는 시내버스를 타려면 어둠 속에서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마침 산행을 늦게 마치고 내려오는 단체산행객들의 차를 얻어 타고 대천항까지 가게 된다. 중간에 보령버스터미널에서 내려도 되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천항을 구경해 보기 위해 버스로 30분쯤 걸려서 대천항에 도착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미 어두워져 바다는 보지 못하고 수산시장에서 우럭을 사서 그 위층에 있는 식당에서 자릿세와 다대기 값을 내고 우럭회와 매운탕에 소주 한 잔을 걸치고 버스 정류장 앞에 가니 19시 30분이다. 여기서 보령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30분후 터미널 앞에서 내려 동서울로 가는 20시 20분발 막차를 탄다. 요금은 9900원. 무정차로 달린 버스는 22시 40분경 동서울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4년 전 가을에 민둥산을 다녀온 기억이 지금도 아스라이 남아 있는데 그 정도로 광활한 억새 군락은 아니지만 서해를 조망하며 바다와 함께 바라보는 억새의 정취는 더욱 각별한 일면이 있었다.

홍성과 보령에 걸쳐 있는 오서산에서 쉼 없이 불어오는 세찬 바닷바람 속에 지켜본 억새의 군무와 잔뜩 찌푸린 흐린 하늘 밑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서해의 전망은 가을의 서정과 낭만을 짙게 불러일으키면서 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해가 질 때까지 심취하여 바라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성연리 하산길 1. 
 


성연리 하산길 2. 
 


시루봉 - 해발 559 미터. 
 


임도와 만나게 되는 오서산 날머리. 
 


임도와 만나는 또 다른 날머리. 
 


임도의 정경. 
 


오서산의 암괴류. 
 


넙티제 위의 오서산 날머리. 
 


넙티제. 
 


넙티고개의 임도 안내석. 
 


버스 종점이 있는 성연리 주차장. 
 


대천항 수산시장. 
 


수족관의 활어들. 
 


오늘의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