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2006.12.13.수요일. 안개후 맑음

*산행시간:7시간50분(도상거리:약 14km)

*동행인:바람풍광

*지형도;1/50,000(영진)


 

용산역(07:15)-대전역(08:16)/(08:21)-영동역(08:55)/택시(09:00)-가리터널(09:20)


 

가리터널(09:20)-304봉(09:40)-556.5갈림봉(10:50)-740봉(12:05)

-795봉(13:25)-740.6(14:40)-삼봉산(930.4)(16:00-16:20))-임도(16:30)

-당곡리삼봉(17:10)


 

삼봉(17:10)-영동역(17:25-18:50)/(18:58)-대전역(19:34)/(19:41)-서울역(20:45)


 


 


 

                               (미지의 성^^)


 


 

*후기


 

충북의 영동역에서 내렸다. 아, 아주 포근한 날씨다.

동행인이 옆 가게로 물을 사러간 사이 나는 멀리 삼봉산을 바라본다


 

사나흘 쌀쌀하다 완화된 공기는 부드러운 안개를 몰고 와서는

뿔 모양의 삼봉산을 미지의 성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봉우리가 두 개 뿐인데 왜 삼봉이라 했을까?

나머지 하나를 더 찾으려 해도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머지 하나를 끝내 찾지 못한다.

뿌연 안개의 답답함 속에 도깨비의 유희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안개 속에서는  눈을 감으세요'

'당신이 닿지 않았던 품속'

'짜릿한 전율과 황홀함은 나에게로 향한 통로!'


 

이슬 같은 여인의 음성으로, 한편으로는 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삼봉산이 어서 오라 꼬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영동역에서 바라보는 삼봉산은 도깨비 뿔처럼 이상하게 생겼다.

내가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유약한 탓인지

왠지 멀리서 바라보면 영험한 느낌이 들면서

캥기는건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껄쩍지근했다.


 

동행인이 가게에서 나온다. 우리는 나란히 승차장으로 걸어 내려간다.

윗부분이 반짝반짝 빛나는 남자가 길 건너편에서 손을 흔든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그가 누구인가 살핀다.

‘그렇지, 전에 한번 이용했던 대머리 택시 기사다!’

“좋았어! 사람 알아보시네!” 

나도 반가워 ‘구-욷!’ 하면서 손을 높이 들었다.


 

기차 터널이 옆으로 지나는 고갯마루에서 내렸다.

지도상엔 <가리터널>과 <범이산업>, <자룡퇴비공장>이 있는데

그런 상호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 포도밭 건너 골재공장과 퇴비공장이 보인다.

좌우로 낮은 산줄기가 있으나 불분명하여 쉬운 길인 골재공장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무단으로 공장안으로 들어간다. 산 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형 중기들이 쉼 없이 움직인다. 폐 아스팔트를 다시 부수어

작은 돌 부스러기로 만들고, 옆의 거대한 화로에서는 용광로 같은

불통이 돌아가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따끈따끈한 아스콘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는 ‘윙윙’ 거리는 기계소음이 너무 커서 귀를 막고 빠른 걸음으로 구내를 통과했다.

소나무가 조밀한 공장 뒷산으로 올라서자 솔잎이 잔잔히 깔려있었다.

야산은 갑자기 쥐 죽은 듯 고요해 졌다. 정말이지 딴 세상이다.

바로 아래 공장의 ‘웅웅’ 거리던 기계소음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차분한 마음으로 몇 걸음 이어 남향의 따뜻한 묘지를 지나 왼쪽의

길 흔적이 보이는 안부로 내려섰다.

그곳에는 <송유관 설치구역>이란 작은 푯말이 있었다.


 

안부에서 능선을 경계로 설치된 과수원 철망을 오른쪽에 끼고 위로 향한다.

잠시 후 과수원 높은 봉우리에 오르자, 가고자 하는 산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행시작 15분. 일단 미로 같은 곳을 순조롭게 잘 빠져 나왔다.

 


 



‘후-’ 하고

둘은 동시에 작은 숨을 고르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영춘지맥 상마암 부근의 꽃밭머리 풍경을 닮은 야산과 왼쪽 아래에

서송원으로 표기된 시골길이 보인다.

어렸을 적 시골의 풍경처럼 느껴지는 한적함과 함께

잠시 시간이 멎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산중에서 바라보는 작은 마을은 어렸을 때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님과 옆집 친구들의 모습들, 마을 뒷산에서 바라보던 동네,

서산으로 해가 떨어지던 건너 마을의 모습.

하여튼 그러한 것들과 오버랩 되면서 자꾸자꾸 그때의 모습이 그려졌다.

크고 웅장한 산도 좋지만 낮으면서도 어떤 정취가 느껴지는

야산에도 나름대로의 정감이 가고 있었다.

 

작은 304봉을 지나면서 좌우로 마을이 보였다.

서송원과 상가리의 마을길이 언듯언듯 나타나는데 요즘 시골이

대부분 그렇지만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꿈결처럼 아련한 평화로움이 스쳐지나간다.


 

차츰 남쪽으로 이어진 주능선의 윤곽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만한 산줄기의 형태가 보이면서 본류가 아닌 주위의 야산들은 하나둘 꼬리를 내렸다.

우리네의 보통 야산에 흔히 볼 수 있는 푸르른 작은 소나무들,

키 작은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그리고 작은 꼭지에서 빠져나온 도토리가

떨어져있는 신갈나무.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래서 미안하지만

우리끼리 편의상 잡목이라고 둘러대는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시골의 풍경들이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왼쪽으로 황간 쪽에서 발달된 산줄기(556.5봉에서 이어진)가 보인다.

동쪽으로 살짝 꺾이다가 다시 남쪽으로 이어지는 약간의 굴곡을 가진

낮은 산줄기에는 야생동물의 배설물과 그리고 생각했던 것 보다 능선이

걷기 좋게 트인 곳이다.


 

어느새 서송원에서 길게 산 아래 계곡을 따라 파고들었던 길이 끝나고 없었다.

상촌면에서 갈려져 나온 산줄기와 갈려지는 620봉이다.

1시간 30분 동안의 진도 치고는 양호한 편이다.

이곳에서 잠시 황간 쪽의 556.5봉과 주변의 조망을 두루두루 살핀다.


 

다시 건너편의 조금 더 높은 660봉을 향해간다.

갈림봉에서 10분 걸려 660봉에 올라선다.

왼쪽아래 하도대리의 도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꺾여 내려가서는

작은 안부를 지나 건너편 봉에 이르고 다시 내려선 안부는 왼쪽으로

소로표시가 있으나 실제 보이지 않는다.

안부를 지나 다시660봉에 오르고 완만하게 이어진 고만고만한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방향이 서쪽으로 90도 크게 꺾이는 740봉은

제법 가파르고 자칫 능선이 뚜렷한 상도대리방향으로 가기 쉽게 되어있고

서쪽방향은 빽빽한 잡목들로 능선이 쉽지 않았다

상당히 뚝 떨어지는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면서 오른쪽으로 임계리가 보인다.

 


 



안부로 내려서자 한움큼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거기서 점심을 하는데 사면으로 쌓인 갈색 낙엽과 앙상하게 서있는

나무들은  우리네도 생물적한계상  한 점의 잎사귀에 불과하다는

자연의 섭리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멈춘 양지에서 자연발생적인 아트월을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길게 이어진 상구배를 따라 795봉으로 올라간다.

이제 그림에 표시된 오늘 행로의 반 정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795봉에 오르면 삼봉산의 모습이 드러나서 실체를 보면서 진행을 하면

한결 산행이 즐겁고 성취감도 느끼면서 진행을 할 거라 여긴다.

그곳에서 보는 삼봉산은 어떤 모습일까? 봉우리는 말 그대로 3개일까?

민주지산방향은 어떤 느낌일까? 기대감이 생겨서 걸음걸이가 쌩쌩해지고

가벼워지겠지 생각한다.


 

길게 이어지는 구배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마지막의 삼봉산 오름과 비슷한

이번구간에서 힘든 오름길이다. 하지만 오지코스에서 이정도의 경사는

그리 쎈편은 아니다.

 


 

                                (795봉)

전위봉을 지나 795봉이다. 길 흔적이 조금씩 나타난다.

언듯언듯 눈 덮인 황악산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민주지산의 산줄기도 보인다.

드디어 눈부신 햇살이 부서지고 남서방향인 삼봉산으로 이어진 줄기가

보인다. 좌우로 평화로운 화신리와 상도대리마을이 보인다.

795봉으로 내려와 건너편 봉우리로 간다.

아래에서 벌목하는 전기톱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화신리로 이어진 두 번째 능선을 지나친다.

제법 좁은 날등과 잡목들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부드럽게 아래로

향하는 능선을 대한다.

 


 

                                (795봉 부근에서의 우측 윗부분 뾰죽한 삼봉산과 좌측멀리 각호산)

은빛 겨울햇살 속의 미끄러짐!

빛이 부서진다. 하얀 수분을 품은 대기의 꿈결 같은 아련함

봉우리들 건너편에 삼봉산이 보였다.


 

740.6봉 직전의 안부에 이른다. 고압철탑이 있는 곳인데 잔디밭에 둘이 앉았다.

앞에 비둘기의 솜처럼 부드러운 깃털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깃털에 살짝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어쩌면 저리 살 한 점, 뼈 한조각 남기지 않았을까?

흔적 없이 해치운 그 새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왼편으로 보이는 임도는 송전탑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740.6봉 직전의 고압철탑 안부에서본 각호산에서 상도대리로 이어진 줄기)

각호산에서 상도대리로 이어진 능선이 톱날처럼 뻗어있었다.

그 능선에 푸른 소나무들이 아주 멋지게 뻗어있었다.

삶이 권태로워지면서 산이 그리워질 때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지만

<각호산-1031.1봉-557.5-상도대리>를 어느 곳과 연계해서 해보고 싶었다.

석기봉 -민주지산의 큰 줄기보다 톱날 같은 소나무산줄기에 눈길이 간다.


 

능선에 약간의 눈이 쌓여있고, 그리고 오후의 햇살아래 삼봉산자락이 빛났다.

굴곡이 크지 않는 그만그만한 봉우리들을 재미있게 넘어간다.


 

우리는 은빛햇살을 미끌어지듯 통과한다.

삼봉산에 일찍 도착하면 천만산을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바삐 가야 하는데... 에이,

가는데 까지만 여유롭게 가보자. 앞에 삼봉산과 천만산이 보인다.

안부를 지나 삼봉산 오름길로 들어선다.

 


 


 


 

 

                                (삼봉산 정상과 삼각점)


 

                                (천만산으로 이어진 줄기)


 

아, 힘든 오름이다.

삼봉산의 언저리 같은 전위봉에 올랐다.

다시 쉼 없이 삼봉산에 올랐다. 약간의 공터와 삼각점, 그리고 사방 조망이 아주 좋다.

민주지산과 삼도봉에서 황악산으로 이어진 대간의 줄기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살짝 내려와 삼봉산의 남봉으로 올라간다.


 

영춘의 가리산처럼 봉우리가 둘이어서 북봉과 남봉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정상표지는 북봉에 있는데 남봉이 약간 더 높다.

그곳에 오르니 바위가 서너 개 있고 천만산으로 이어진 능선들이 잘 보였다.

 


 

                                (삼봉산 남봉)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동행인의 모습이 오후의 힘없는 햇살 속에

빛과 어둠으로 묵직하게 서 있었다.

내가 그를 보고 “잠깐 그대로! 그대로!” 하면서

소슬한 바람에 호호 손을 불면서 사진을 박았다.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곧 임도를 만났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당곡리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뒤를 바라보면 삼봉산은 영동역에서 본 것처럼

신령스럽지 않고 평범하여 마음이 편한 사람을 만난 것 같이 좋았다.

마음이 편한 사람을 만나면 경계심이 풀어지듯이 삼봉산은

결코 도깨비 같지 않았다.  

 


 

                                (삼봉산)
                 

산 아래 당곡리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내려가고 있었다.

임도를 내려오면서 아침에 탔던 택시를 불렀다.

“산행 잘 마쳤습니까?” 수화기에서 대머리 기사의 두툼한 음성이 들렸다. 


 

소읍에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우리는 상행기차를 탔다.

영동을 벗어나자 창밖으로 시골의 희미한 불빛이 어둠속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문득 밀려오는 외로움에 노근리 쪽의 야산이 그리워지기도 했는데,

어떤 기억도 스며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혼자 생각했고, 또한 그곳에서는 백화산이 잘 보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