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어있는 회룡골과 송추계곡

 

 

                                   사패산에서 바라본 오봉과 북한산 정상의 모습

 

 


  서울지하철의 이상한 풍경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무더운 여름입니다. 1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받았지만 우리가족(4명)은 모두 제 볼일이 있어 오늘은 각자 행동을 해야 하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날씨는 매우 청명한데 집에서 소일하려니 좀이 쑤셔서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2005년 8월 5일 금요일 아침, 배낭을 적당히 챙겨 집을 나섭니다. 서울지하철 1호선을 타려고 신도림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데 땀이 그냥 흘러내립니다. 그전에는 이렇게 땀이 많이 나지 않았는데 산을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땀구멍이 열려 이제는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땀이 나옵니다. 좋은 현상인지 아니면 내 몸이 부실해 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하철에 올라 자리를 잡고는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자 승객 하나가 애완견을 데리고 승차한 것입니다. 털이 많이 난 개는 보기에는 탐스럽게 생겼지만 짖는 소리는 사람을 매우 불쾌하게 합니다. 간헐적으로 개가 짖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 쪽으로 쏠리지만 이 여인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혼잣말처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애완견을 기르는 것은 사람의 취미라 누가 나무라겠습니까? 그러나 공공장소 특히 지하철과 같은 폐쇄된 공간에 애완견을 데리고 타는 것은 안될 말입니다. 꼭 이동이 필요하다면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며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다니지 말거나 기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청량리역을 지나자 이제는 개 주인이 내린 듯 좀 조용하다고 생각한 순간 피켓을 든 여학생(학생복을 입지 않아서 학생여부는 확인이 안됨) 몇 명이 지나가면서 구호를 외칩니다.
  "쓰레기를 줄입시다."
  "환경을 보호합시다."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하철 객차의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이런 구호를 외치는 것은 승객을 불편하게 할 뿐 별로 효과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들이 통로를 두 세 차례 지나다닌 다음 이번에는 큰 검정색 쓰레기 봉투를 어깨에 둘러맨 중년의 남자가 오더니 봉투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여 엎드린 채 무려 5분간을 그대로 있습니다. 이럴 경우 승객들의 동정심에 호소해 구걸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남자는 구걸도 하지 않고 일어서더니 유유히 다음 칸으로 사라집니다.


  날씨가 하도 더우니 사람들이 생각과 행동양식이 이상해지는 모양입니다. 어서 활동하기가 좋은 가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회룡골의 회룡폭포와 회룡사

 

  회룡역 구내를 빠져 나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11:00). 마침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사패산을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 봅니다. 아주머니는 가는 길이 여러 갈래이므로 어디로 올라갈 것인지 필자에게 되묻습니다. 회룡사 방면으로 간다고 하니 왼쪽으로 조금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한 차례 더 길을 물어 호원초등학교를 지나자 수령이 400년을 넘은 보호수인 회화나무가 반겨줍니다. 이곳이 행정구역상으로는 의정부시 호원동이군요. 회룡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가는데 강렬한 태양으로 인한 지열이 반사되어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무더워 10분을 걷고는 5분을 쉽니다.

 

                                      수령 400년이 지난 보호수 회화나무

 

                                                회룡매표소

 


  등산로 오른쪽에 제법 그를 듯한 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리붓고 있습니다. 폭포를 알리는 안내문은 없지만 "회룡폭포"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소규모의 폭포가 보이더니 다음에는 양 갈래로 물이 쏟아지는 쌍폭 그리고 그 위쪽에는 또 하나의 폭포가 있습니다. 맨 위의 폭포에는 수영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두 어린이가 들어가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필자도 당장 옷을 입은 채로 폭포수에 뛰어 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회룡골의 작은 폭포 

 

                                     회룡폭포

 

                         회룡폭포의 위 폭포(수정같이 맑은 물에 수영을 즐기는 어린이) 

 


  다리를 건너니 천년고찰 회룡사(回龍寺)입니다.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1년(681)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도 인연이 있는 절이라고 합니다. 범종각, 대웅전, 극락보전 등이 제법 운치가 있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회룡사 범종각

 

                                               회룡사 대웅전

 

                                                   대웅전 옆의 극락보전

 


  사패능선과 사패산

 

  범종각 아래에 있는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입구로 되돌아와 왼쪽으로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오릅니다. 이곳에서 사패능선까지는 1.5km거리입니다. 다리를 건너 삼거리에 이르자 오른쪽의 좁은 계곡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피서를 즐기고 있습니다.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면 이런 무더위도 짜증내지 않고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시원한 곳입니다. 필자도 산행을 그만 포기하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하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오늘은 사실 송추계곡의 송추폭포를 보기 위해 왔으므로 여기서 눌러 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좁은 계곡에서 나와 왼쪽의 회룡천을 따라 올라 가는 데 정말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이 들 정도로 다리가 무겁습니다. 계곡 옆으로는 꼭 설악산 천불동 계곡처럼 철사다리와 계단을 설치해 두었군요.


  이렇게 홀로 하는 산행이라 쉬고 싶을 땐 언제나 쉴 수 있음이 이점입니다. 철계단을 지나 한번 더 푹 쉬다가 돌로 쌓은 오르막을 치고 나가니 드디어 사패능선(회룡골재)입니다(12:58). 이정표를 보면 회룡매표소에서 2.5km, 가야할 사패산까지는 1.2km 이며, 포대능선을 거쳐 도봉산의 정상인 자운봉까지는 2.5km입니다. 

 

                     사패능선을 타고 가면서 바라본  사패산 정상(거대한 돌무덤) 

 


  사패능선을 타고 사패산까지 가는 길은 평범하고 부드러운 길입니다. 주 등산로 옆으로 난 등산로는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라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솔길처럼 좁은 흙 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몇 차례의 부드러운 오르내림을 반복한 후 드디어 사패산 정상 밑 삼거리에 도착합니다(13:36).

 

                                                    사패산 정상 밑 이정표

 


  쇠 난간을 잡고 오른 후 사패산의 정상 밑 큰 바위 그늘에 앉아 도봉산의 정상을 비롯한 주변의 조망을 즐깁니다. 그동안 대지를 짓누를 듯이 두텁게 끼였던 가스가 말끔히 걷힌 후라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을 보며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확 풀리는 것만 같습니다.

 

   도봉산의 포대능선과 정상부를 포함하여 도봉주능선과 보문능선 그리고 오봉과 그 뒤로 북한산의 정상부까지 선명하게 다가오고, 그 왼쪽으로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안골 방향으로도 바위봉우리 너머 아파트 숲과 그 뒤의 뭉게구름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사패산 정상에서 바라본 도봉산 주능선과 오봉 그 뒤로 희미한 북한산 정상

 

 

                                    가운데 수락산과 오른쪽 끝의 불암산

 

 

                                          안골방면의 바위 봉우리

 

 

                         왼쪽의 포대능선과 가운데 도봉산 정상부

 

                            소나무와 바위 사이로 바라본 북한산 정상

 

                                             사패산 정상 안내도

 

 

 

                                            사패산의 북쪽 조망

 

  찌는 듯한 더위에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면서 올랐지만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막힘이 없이 트이는 조망을 본 것만으로도 산에 온 보람은 충분히 있습니다. 다시 큰 너럭바위로 형성되어 있는 사패산 정상(해발 552m)에 오릅니다.  정상에 오르니 등산복 차림의 여성 2명이 정상 주변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참 좋은 일을 하십니다."

 

  필자는 인사를 건넨 후 주변을 둘러보며 조망을 즐기고는 다시 바위 밑으로 내려와 퍼지고 앉습니다. 복숭아를 깎아 먹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사패능선을 타고 당초 올랐던 사거리로 되돌아와 송추계곡으로 하산합니다(14:45).

 


  송추계곡과 송추폭포

 

  능선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약 30분 후 송추폭포로 길이 나뉘는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합니다(15:17). 이곳에서 왼쪽의 송추촉포까지는 350m 거리라고 씌어져 있지만 막상 가보니 더 먼 것 같습니다. 송추폭포는 북한산과 도봉산에 위치한 폭포 중 가장 이름 있는 폭포인데 그 동안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수량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럽습니다.

 

                                            송추계곡의 소폭포

 

                                                송추폭포(주 폭포)

 

                             송추폭포 위에 위치한 상단폭포

 

                  상단폭포에서 내려다 본 주폭포

 

                                          송추폭포 밑의 하단폭포

 

 

  주 폭포인 쌍폭을 카메라에 담은 후 그 위로 올라가 상단 폭포를 감상합니다. 깊은 계곡으로 흘려 내리는 폭포의 모습이 오히려 주 폭포보다도 더 볼만합니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희미하게 보이는 하단폭포를 어렵사리 카메라에 담습니다.  하단폭포는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한 만큼 값어치는 없는 평범한 것입니다.


  폭포에서 내려와 계곡을 건너는 징검돌이 놓여진 곳에서 배낭을 내려놓습니다. 계곡 한쪽 옆에 있는 큰 반석 위에는 일가족 4명이 오수에 빠진 채 피서를 즐기고 있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가족입니다. 필자도 상의를 벗고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는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려니 일어서기가 싫어집니다.


  오봉능선에서 폭포를 거쳐 하산하는 등산객 몇 명이 지나간 후 필자도 일어섭니다(16:30). 하루해가 좀 더 길었더라면 더 퍼지고 앉아 있었을 텐데 오히려 가는 해가 아쉽습니다.


  송추계곡의 양쪽으로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음식점 측에서 지나가는 차량에게 주차를 유혹하는 손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돌다리를 지나가는데 왼쪽에는 큰 폭포가 흘려 내리고 있습니다. 밑으로 내려가 폭포와 이곳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폭포의 규모나 소의 깊이와 넓이로 보아 오히려 송추폭포 보다도 더 웅장할 것 같은데 이름이 없는 무명폭포입니다.

 

                              하산길의  무명폭포

 

                                                     무명폭포

 

                                              어린이 들의 차지가 된 무명폭포


  여기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30분 동안은 참으로 피곤하고 지루한 길입니다. 수많은 차량이 비좁은 도로를 교행하고 있어 보행자가 길을 안전하게 걸어가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송추폭포 밑에서 땀을 식혔지만 이미 온 몸은 땀으로 다시 범벅이 되고 맙니다. 길옆의 음식점들은 전부가 매운탕과 같은 종류의 음식을 팔고 있을 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를 파는 곳은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보행자나 차량의 속도가 비슷한 곳을 지나 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17:20). 오늘 산행에 6시간 20분이 소요되었지만 반쯤 놀면서 산행을 했기에 걸린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갑자기 옷이 젖을 정도의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지나온 사패산과 오봉능선을 바라보니 안개에 젖어 하늘금이 희미합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산에서 비를 맞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방금 도착한 텅 빈 버스에 오릅니다. 북한산성입구를 지나며 만원으로 변해 버린 버스는 구파발에 도착하자 승객들을 토해 내기 시작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