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구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있다. 차창너머로 5분지4정도 찬 달이 교교하게 비추고 있다. 어둠 속에서 윤곽이 또렷한 산들이 스쳐지나 간다. 모습과 크기가 다양한 산들, 예전에는 관심없이 바라보던 산들... 저 산들을 내가 오를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오늘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을 더더욱 감사한다.

안내산악회의 8월 일정표에 사패산-도봉산 코스가 소개되었을 때 꼭 이 산행에 동참하여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년 전에 혼자서 도봉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출발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공교롭게도 출발하기 일주일전부터 오른쪽 복사뼈가 욱신거리며 아프더니 전날에는 아킬레스건마저 아프기 시작하였다. 휴가 중에 사흘이 멀다하고 산을 오른 탓인가. 산행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이것이 등산 고질병인가. 좀 나으면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파스도 바르고 찜질도 하여 상태를 완화시켜보려고 노력하였다.  6시 출발이어서 자명종 시계를 5시에 맞추어 놓고 등산준비도 해두었다. 하지만 등산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으로 잠도 잘 잘 수 없었고 뒤척거리다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오른쪽발의  통증이 남아있었다. 발목보호대를 하고 한번 걸어보았다. 좀 나아졌지만 그래도 통증이 전해진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예약을 취소한다고 생각해보지만 새벽에 딱히 연락을 할 수도 없다. 불편해도 그냥 갈까 망설인다.  평소 약속 취소라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보다도 산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하였다.

가보자고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걸을 때마다 아프다. 아무튼 버스를 탔다.

가이드가 산에 대한 설명을 한다. 중간에 탈출로가 있으니 몸 상태에 따라서 탈출하여도 된다는 말에 좀 안심하였다. 그래 안되면 중간에 탈출하자.

버스가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의정부시내로 빠져나왔다. 우리 일행은 안골매표소 가기 전에 우측 능선을 타고 사패산으로 향하였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뜨금거림을 느꼈다. 낮은 능선이어서 비교적 쉽게 등산을 하였다. 처음에는 일행 모두 일자형으로 줄서 올랐는데 어느 덧 띄엄띄엄 흩어져 올라간다. 그늘지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 등산할 만하였다. 등산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이었다. 길을 따라 오른다. 바위가 나온다 잠시 쉬면서 조망한다. 걷는 것에 집중해서 그런지 발도 덜 아픈 것같았다. 다시 오른다. 안골매표소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자연도 좀 쉬고 싶어요하는 간판이 붙어있다. 다니지 말라는 길로 오른 것이 기분이 찜찜하였다. 약간 가파르다. 윗도리는 땀으로 벌써 젖어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힘입어 오른다. 집채만한 바위다. 줄을 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갓바위다. 좀더 가니 사패산 정상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온다. 암릉이다. 탁트인 조망을 가진 정상이다. 바로 앞쪽으로 오늘 가야할 자운봉 신선대 오봉 등이 보인다. 송추계곡도 보인다. 저너머 산들이 연이어진다. 매끈한 바위가 점점이 박힌 것이 산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산 위에 떠 있는 흰 구름은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한폭의 동양화로 만든다. 통증을 참으며 올라온게  잘했다는 생각이다, 견딜만하다. 계속 가야지. 갓바위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참 재미있게 생겼다. 자연의 조화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다.

사패능선이다. 지루하지 않게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고 군데 군데 바위 전망대는 등산에 재미를 배가시킨다. 못견디면 탈출하겠다고 마음먹은 송추계곡과 회룡사 방향을 가리키는 사거리다. 직진하여 올라간다. 포대능선이 시작된다. 된비알이다. 그늘이 져서 다행이다. 바람도 잘 불지 않는 곳이다.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포대능선의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암릉지대다. 좋은 경치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힘들게 산을 오른자의 것임을 산에 오르는 이들은 다 아는 이치다. 엔돌핀이 많이 나와서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조심조심 바위를 오르락 내리락한다. 위험구간은 오늘은 우회한다. 자운봉으로 향하는 마지막 우회구간에서 된비알을 만난다. 작은 너덜지대다. 계속 오르다 지쳐 한번 쉬었다. 오르니 거대한 암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운봉, 신선대다. 많은 등산객으로 붐빈다.  거의가 40대 이상이다. 중년 이후에 산을 찾는 것이 이제 하나의 트렌드인가. 신선대로 바로 오르는 등산객있다. 노련하게 오른다. 보는 내가 아슬함을 느낀다. 잠시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등산을 하면서 내가 세운 원칙은 등산과 관련한 일은 안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도시락을 싸지만 오늘은 떡을 가져왔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표지판을 보고 주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봉우리를 돌아가다가 바위를 타기도 한다. 이제 우이암 방향과 갈라지는 곳이다. 오봉능선으로 진행한다. 바위를 오른다. 아슬 아슬 몸의 균형을 잡는다. 군데 군데 바위의 그늘 진 곳에서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거나 담소하면서 쉬고 있다. 아는 사람 없이 혼자 등산하는데 익숙한 나, 오늘은 안사람과 같이 왔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짙게 배인다. 다시 송추계곡 갈림길이 나온다. 오봉으로 계속 간다. 친절한 서울 등산객이 안내해준다. 고맙다. 사실 낯선 등산로에서 길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들 때가 많다. 같이 오봉까지 갔다. 바라보니 봉우리가 네 개만 보인다. 하나가 숨어있는데 여성봉쪽으로 가면 다 보인다고 했다. 저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인수봉 백운대가 뚜렷이 보인다. 한겨울 멋모르고 아이젠없이 올라간 백운대. 내려올 때 얼음길을 내려오면서 간이 콩알만하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 번째 봉우리에서 암벽을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봉우리 정상에 선 사람의 기분을 워킹만 하는 등산객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들을 보며 대리만족이라도 해야지.

북쪽으로 여성봉이 보인다. 가이드가 한말이 생각난다. “오늘 여성봉의 모습이 어떤 지 꼭 보고 와야 합니다. 모습이...” 말끝을 흐렸다. 내리막길 바위에서 저 멀리 사패산 암릉과 송추 쪽의 시가지 풍경이 보인다.

여성봉이다. 여인이 매끈한 무릎을 올리고 드러누운 모습이다. 정말 자연의 조화란! 움푹 패인 곳으로 오른다. 중간에 소나무 한그루. 이것은 화룡점정이다. 더 신비로운 자연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봉의 다섯 봉우리가 다 보인다. 이제 오늘의 산행도 끝이 나고 있다.

송추계곡에는 늦더위를 피하려는 피서객들로 붐볐다. 계곡은 음식점들이 점령하였다. 물도 그리 맑아 보이지 않았다. 국립공원 지역인데 이 곳은 예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슈퍼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의 시원함이 오늘 산행의 피로를 씻어 주었다. 무엇보다도 우려했던 발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은 대해서 감사하였다.

오늘의 사패산-도봉산 산행은 아마 잊지못할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