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창원에 계시는 장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
이 어려운 서민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집수리를
감행해 드디어 완성을 보았노라며 터다지기의 일환으로
예하 동생들을 집합시켜 저녁이나 같이 나누자는 얘기더라.
구미가 썩 당기지는 않았으나 가권의 막강한 실세에게 몽니를
부려 왼고개를 쳐봐야 계란 껍데기 뒤집어 쓰고 바우에
헤딩구 하는 격인지라 별수없이 본가 어머님을 모시고 창원
으로 설렁설렁 내려서는 수밖에..


오랜만의 가족 모임인지라 어른보다는 단연 애들이 신이나서
가뭄탄 방죽에 올챙이 끓듯 그런 소란이 없다.
객이 눈시울을 곱지않게 뜨고 메마른 일성이라도 매길라치면
큰형수와 어머님이 되려 퉁박을 주며 악머구리떼들을 두둔하며
감싸준다.  쩝...
이튿날  신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객의 잠투세 때문에
일찌거니 기침을 해 의관 정제하고 좌정했으나 향골이 아닌지라
체육관 갈일도 없어 괜히 산지사방 방정을 떨며 온식구들의
단잠을 침노하니 가시돋힌 책망이 여기저기서 가관이다.


하품을 입안가득 베어물고 고양이 기지개를 켜는  곁을 들볶아
조반을 채근해 먹고는 건성으로 바보상자를 보다가 그만 포만감에
까무룩 잠이 들었나보다.
술렁설렁 거리는 낌새에 어섯눈을 뜨고 살피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집사님(큰형수)이 온가족을 휘동해 예배당 갈 채비에
여념이 없다.
멀뚱한 객만 개밥에 도토리, 고추밭에 양배추격으로  썰렁허니
동떨어져 있다.


그래도 같이 살부비고 사는 곁이 아무래도 한팔이 더 가까운지라
안쓰런 시선으로 내려보며 한마디 훈수를 한다.
"어디 가까운 산이래두 갔다오지 그래요.."
젠장헐.. 누군 가기 싫어 이래 궁상을 떨고 앉아 있나.  옷도 배낭
도 맞춤한 신발도 없으니 구들막 장군을 자처하고 있는게지 ..
그러나 결국은 회가 동하여 형님댁에서 보면  기가막힌 풍광을 자랑하는
정병산을 잠깐 다녀 오기로 하고 평복 입성 그대로 길을 나선다.


도관광광과에서 근무한적이 있는 장형께 정병산의 산행 시간을
여짜오니 두어시간이면 족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도청뒤의 산행 입구 주차장엔 벌써 콩나물 시루로 변해 질서유지를
단속하는 경찰의 바쁜 손길이 명산의 유명세를 대변한다.
주차장에 설치된 안내도엔  주위 연계산들의 등로는 기입하지 않고
오로지 정병산만 덩그렇게 올려져 있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해마다 원단이면 무슨 요행수를 바라는 겄은 아니지만 위의를
갖추어 이지함 선생의 명저 토정비결을 펴놓고 1년 운세를 간금
하곤 했는데 올해는 서울에서 새해를 맞은탓에  토정 선생의
가르침을 받들지 못해 선무당 작두 잃은듯 좌불안석 이었던바
아니나 다를까 1월에 낙마수가 들었던지 도저히 떨어질수 없는
곳에서 낭패를 당해 졸지에 팔자에 없는 봉충다리 사주를 곁들여
자발없는 걸음새가 영 심에 차지 않았었다.


얼뚝절뚝  비척 거리며 오르노라니 객 자신이 봐도 참 가관이였다.
푸른물 들인 핫바지(청바지)에 어디 곡마단에서 굴러 나온듯한
핫저고리 (스포츠 다운 자켓), 뒷축 떨어진 미투리(고물 등산화 )
에 어디 공사장에서 이미 본전을 다뺀 이제는 기름 주머니가 된
목장갑이 더욱 수려한 풍채를 돋우고, 똥친 작대기 같은 썰렁한
지팡이에 의지한 뒤뚱거리는 다리는  소아마비를 겹으로 맞았는지
한걸음 뗄때마다 어깨춤에 굿거리 장단이 절로이니 보면 볼수록
점입가경이더라.


입구에서 얼마 틀리지 않은곳에 비음산으로 오르는 길이 오른편
으로 갈래를친다.
처음에야 산보 수준의 정병산만 원했지만 견물생심 욕심이 동해
까짓거 비음산만 갔다가 정병산으로 가지 싶어 곧바로 비음산
오름길을 추어 오른다.
길은 사면 왼편으로 비스듬히 흐르더니 급경사로 바뀐다.
서울은 가지도 않았는데 과천서부터 기는 촌샌님처럼  초장부터
걸음새에 단내가 피어 오르는게 오늘 일진의 대세를 짐작케한다.


한고비를 감아 오르니 선객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이제 정상이
되었음을 통기해 주는디 근데 어찌 정상이라 부르기엔 좀은 옹색
시럽네 .정상비도 없고 ..
따끈한 커피를 즐기는 미모의 아줌씨에게 비음진산을 물으니
턱짓으로 깊게패인 안부너머의 봉우리를 가리킨다.
젠장할 어째 정상이 조금 싱겁다 했더니 ..
벼두어섬은 착실할만큼 이마가 넓은 아줌마에게 호의를 사례
하고는 먼지 풀풀거리는 안부로 내려선다.


길은 오른편 안부로 곤두박질 쳤다가 마치 신작로 같은 완만한
오솔길을 올라 위성봉을 거쳐 왼편으로 조금 더 힘을 쓰면 참꽃
이 좋다는 비음산이다.
여태 오르막을 걸었기에 뒷굽에 힘이들지 않아 발이 아픈줄 모르고
왔는데 내림길에 서니 제법 옹골찬 통증이 은근히 뒤를 켕기게 한다.
숯불을 밟고 지나는듯  깡총거리며 내려서니  산꾼들이 줄줄이
기운차게 올라온다 .즐산하세요 를 연호하며 여유로운체하다가
그네들이 지나가면 바지에 설사한 놈처럼  걷기를 반복한다.


고산 네거리에서 넉넉한 품으로 오르는 길은 주위에 명물 소나무가
많아 쉬어 가기엔 제격이고 흙길이 미끄러운 곳엔 굵은 나무로
계단을 깔아놓아 산행의 작작한  묘미가 보통이 아니다.
마당쇠(위성봉)의 깍듯한 하정배를 받으며 정상으로 나서니 거칠것
없는 천의무봉의 풍광이 시선을 압도한다.
중앙의 불모산을 기점으로 부챗살처럼 뻗쳐오는 아득한 능선이
제일로 통쾌한데  주산(불모산)의 좌청룡은 웅산 천자봉을 거쳐
남해의 푸른 바다를 딛고 섰고 우백호는 용지와 대암을 거쳐
정병산을 움켜쥐고 크게 한번 포효하고는 지평선으로 달려간다.


먹거리라고는 달랑 생수 한병 뿐인지라 한모금 달게 마시고 편히
쉰다.    원래 계획은 여기 비음산에서 정병산으로 다시 돌아
나가는 겄이였으나 대암산과 용지봉을 한번 보매 그만 욕심이
불일듯하여 제코가 석자인 처지를 돌아보지않고  대암산으로
굽을 떼고 말았다.
비음산을 지난길은 팽팽히 당겨진 시위처럼 정병산으로 한길을 내어
놓고는 깊은 안부를 지나 슬금슬금 대암산으로 올라선다 .
초입의 안부외엔 급경사가 없어 오롯한 산행을 즐길수 있는 코스다.


비음산을 뒤로 한길은 자빠지면 코깨질 만한 곳에 정병산 갈림길을
걸어 놓았고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으로 빠져 나간다.
멸걸음 떼지않아 진례산성 안내판이 있고 암봉이 장한곳에 청라봉
이라는 표지판이있다.
비단을 두른봉이란 뜻의 청라봉은 객의 안탯골에도 있어 반가움이
더하다.     길은 아래로 뚝 떨어져 쏘아 가더니 밧줄이 걸린
된비알을 내놓으며 제법 혹독한 신참례를 닥달한다.
배낭없이 빈몸으로 가니 균형의 리듬이 깨져 상당히 힘이들어
저혼자 실소한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오르던 길이 어느순간 환해지며 둥근단에
정상비가 이채로운 대암산으로 올라선다.
길쭉한 정상부엔 성터인지 참호인지 모를 널찍한 호가 신기하고
바람을 피하기엔 안성 맞춤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식사와 휴식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
문득 주체할수없는 시장기가 모지락스럽게 밀려온다.
부러운 눈으로 남들의 성찬을 침꼴깍거리며 쳐다보다가 용지봉
으로 힘없이 발길을 옮긴다.


대암산에서 용지봉 가는길은 오른편으로 불모산과 젖꼭지 같은
시루봉 진해만의 바다가 어우러져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다.
아래로 내려섰다가 급하지 않은 봉우리 두엇을 넘으면 짧은
돌비알을 거쳐 제법 기골이 든든한 용지봉 정상에 이르는 환상적
인  길목이다.


대암산을 뒤로하고 지겨운 내리막으로 접어드니 왼편 엄지 발가락
이 엄청 쓰리고 아프다.(부실한 신발탓에 왕물집이 잡혔다)
왼발을 쓰기가 불편해 오른다리에 지나친 부하가 걸리니 관절이
저려오며 힘들다고 포달을 떤다.
완만한 개활지를 지나 낫술에 취한 도깨비 걸음으로 만만찮은 봉을
기어오르니 코앞에 용지봉이 우뚝하다 ,
여기저기 흩어져 식사하는 꾼들의 수저 소리를 피해 황급히 내려
서니 고운길이 오른편으로 작은봉을 지나 마지막 깔딱걸이를
걸어 놓았다.


객보다 두어걸음 앞에 아줌씨 두분이 수다를 떨며 가고 있었는데
용지봉 깔딱걸이 아래서 과일로 새참을 들던 일단의 남자 꾼들이
객앞의 두여자분에게만 배한쪽씩을 나눠 주고  허기로 하늘이
노랑게 보이는 객에게는 쓰다달다 말한마디 없다.
'에라이 쩨쩨한 인간들아...'
죽기살기로 정상에 오르나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주린놈이
무슨 감흥이 있어 환희 작약할까..?


근디 이무삼일인고 ...
정상 아래 한켠에 컵라면 아저씨가 컵라면을 절찬 판매리에 성업
중이지 않은가 .    번개처럼 뛰어가 아저씨 컵라면 하다말고 괴춤에
지갑을 찾으니 우째 이런일이...  
정병산에 잠깐 다녀 온다는 준비였기에 지갑과 손폰을 모두 로시난테
품속에 두고 왔으니..


씹다 뱉은 우거지상이 되어 한쪽 귀퉁이에 힘없이 찌그러져 발등을
찧고 싶은 심정으로 혼자 끙끙대는데 삭풍은 사정없이 몰아쳐 가난한
산꾼의 속을 가일층 애처롭게 한다.
이젠 허기보다 돌아갈길이 기약 없는지라 주위 꾼들에게 귀로의
최선책을 물으니  다시 대암산으로 돌아가 하산 하랜다.
별수없이 터덜터덜 돌아서는 길이 날이 설리가 없어 한걸음에 한숨
이요 ,두걸음에 장탄식이라 대암산 반십리를 눈물로 되짚었다.


조금 남은 생수를 아껴 마시며 개활지 허릿바 사잇길을 왼편으로
가로질러 나서니 거시기 사거리가 나온다.
언능 내려가 얼요기라도 할 욕심으로 아픈발을 무릎쓰고 하산길을
깝치니 기억에 남는 겄이라고는 약수터 두어곳이 전부더라 .
생활 체육 시설물을 지나 눈앞에 대방 아파트를 쳐다보며,과유불급
의 쓰린 이치를 온몸으로 체득한 신년 산행을 축하할 그 흔한
막소주 한잔 살돈이 없다는 아득한 현실에 주린배도 아픈발도 잊고
정월 삭풍에 목석처럼 굳어 가더라.


                    2005년 1월9일       진맹익   끝.


#각구간별 도달시간.

*11시05분...도청뒤 주차장.
*12시15분...비음산.
*13시05분...대암산.
*12시18분...용지산
*15시40분...대방 아파트.